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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그래퍼 Apr 30. 2020

런던의 첫 번째 조각 <보행자 신호>

<보행자 신호>




 드로에서 1시간 30여 분간 언더그라운드를 달려 복스홀에 도착하였다. 비로서야 마주한 런던의 빛. 그리고 그 빛을 통해 전달되는 런던스러운 것들이 적당히 나를 전율시켰다. 새빨간 2층 버스, 검정ㆍ브라운ㆍ붉은 다양한 머리색과 피부색의 사람들, 남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 탱크탑 착용하고 조깅하는 길쭉한 누나들까지....
 처음 마주하는 모든 것들, 그 모든 것들이 내뿜는 이야기, 그리고 그들을 느끼려는 나. 한동안을 움직이지 않고 한자리에 서서 벅찬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크게 호흡을 하였다.
 어렵사리 다시금 옮기기 시작한 발걸음. 얼마나 걸었을까? 빨간 보행자 신호가 켜진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섰다. 한국의 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는 이곳의 보행자 신호등. 길을 건너고픈 자는 신호등에 붙어있는 자그마한 버튼을 눌러야 한다. 멍하니 신호가 바뀌기만을 기다린다면, 계속 멍하니 그 앞에서 서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신호등의 버튼을 눌러놓고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다가 문득, 이러한 사소한 삶의 방식의 차이가 벌써부터 내가 이곳에서 나아갈 방향을 일깨워주는 듯했다. 이 보행자 신호가 지금의 나와 무척이나 닮아 있는 듯 한 사실을 느낀 것이다.  


 한국이라는 횡단보도 맞은편의 곳에서 지금의 내가 서 있는 런던이라는 곳으로 건너라고 나를 떠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다. 순전히 나의 의도였다.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들을 걷어차 버리고, 나와 연결된 것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는 이곳으로의 발걸음이 쉽지는 않았지만, 나는 서울에서 런던으로 넘어오기 위해 내 삶의 보행자 신호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런던에서의 내 나이 26(만).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가 인천 상공을 통과할 내년이면 나는 2살 많은 28살의 고령학번의 대학생이 될 것이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내가 내 삶의 횡단보도를 건너려 할 때 만류한 여럿의 지인들이 있었다. 물론, 그들의 걱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결국엔 나는 이곳에 있다.  


 어느 누군가가 맞은편의 길을 건너기 위해 횡단보도 앞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그가 맞은편 어딘가에서 행하여야 할 어떠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이곳에서 하고자 하는, 그리고 이루고자 하는 것들이 있었기에 나는 보행자 버튼을 누르고 긴 횡단보도를 건넌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이루고자 했던 것들이 마무리되는 그 어느 날에는 런던에서 서울로 다시 돌아가는 보행자 신호를 누르게 될 것이다.   

 내가 이곳으로 오기 위해 신호 버튼을 눌렀을 때, 알 수 없는 누군가(조물주라 칭하겠다)는 ‘건너도 좋다’며 내게 초록 신호를 주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버튼을 눌러도 그는 안전함을 의미하는 초록의 계시를 내어 줄 것이다.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 믿는다. 


 

다만, 갑작스레 다가오는 차를 간과하지 않도록 좌우를 살피는 것을 잊지 않기를........






* 하나, 한 가지 치명적인 사실은 런던의 80%가 신호를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호를 지키는 20%는 학생들을 인솔하는 선생님과 학생들, 그리고 관광객들일뿐이다. 오래된 건물과 거리를 그대로 간직한 런던에서는 서울의 광화문 거리나 강남거리 같은 널따란 8차선 혹은 16차선 도로를 찾아볼 수가 없다. 커봐야 6차선. 하여 도로의 폭이 좁다 보니 신호를 지키지 않고 바로바로 건너버리는 일이 다반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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