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포아빠 Jul 09. 2020

미국_엄격과 권위의 나라

미국 겉핥기_열두 번째

사람들이 미국에 대해 가지고 있는 큰 선입견 중에 하나는 '위아래도 없는 나라', '맘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라는 것이다. 어디서부터 그런 오해가 시작됐는지는 알 수 없는데, 내가 자라면서도 버릇없는 행동을 하거나 뉴스에 방탕한 젊은이들에 대한 리포트가 나오면 "막돼먹은 게 미국 놈도 아니고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을 엄청 좋아하는 거 같으면서도 알 수 없다.


짧은 기간 경험한 미국 사람들, 미국 사회는 자유롭다. 그러나 위아래가 없는 사람들은 아니다. 더더군다나 질서도 없이 맘 내키는 대로 방탕하게 사는 게 용납되는 사회는 더더욱 아닌 거 같다. 오히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엄격하고, 규칙과 질서를 존중하며, 권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손윗사람과 맞담배를 피우는 것이 엄청나게 황송하고 탈권위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술도 어른 앞에서는 고개를 돌려마시는 그런 엄격과 권위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 학생들은 교수와 이야기할 때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이야기한다. 자유로운 가운데에서도 모두가 존중하는 규칙과 질서가 있고, 권위적이지 않지만 권위 그 자체는 그 어느 곳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곳이 미국이다. 권위는 없으면서 권위적이기만 한 회장님과 의원님들, 경의선 길에서 굴러다니는 수많은 술병과 쓰레기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더 선명하게 든다. 


#장면 1. "연구실에선 술을 마실 수 없습니다" 



위 사진은 내가 있었던 학교에서 오후의 한 때를 포착한 것이다. 어떤 생각이 드는가? 수업이 없는 시간에 친구들과 무릎담요 같은 것을 펼쳐 눕거나 앉아서 책도 보고, 과제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는 모습. 그야 말로 자유롭고 낭만적인 캠퍼스 생활이 그려지지 않는가. 나도 미국 대학생 흉내 낸답시고 사진을 찍은 자리에 누워 책 좀 읽어보려다가 옷에 잔뜩 잔디만 묻어 낭패를 봤다. 나는 나무와 나무 사이에 해먹을 걸어 잠을 자는 학생도 봤다. 그러나 학교에서 무엇이든지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학생들은 자유롭고 학교는 활기찼지만 엄격한 규칙 안에서 그랬다.


미국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를 초청해준 교수와 좀 더 친해지자는 심사로 집에서 병맥주 두병과 과자를 챙겨 그를 방문했다. 과장되게 밝은 얼굴로 그의 연구실에 들어가 맥주를 담아온 종이봉투를 내밀며 "가볍게 한 잔 하면서 이야기 좀 나눌까요"라고 친한 척을 했다. 그렇게 병을 꺼내려는 순간 그가 인자한 얼굴로 부드럽게 얘기했다. "연구실에선 술을 마실 수 없습니다. 커피 한잔 하면서 이야기하죠". 매우 당황스러웠지만 최대한 당황한 기색을 감추면서 "아... 그그그... 그런가요.."라고 얼버무리고는 그와 어색한 대화를 했다. 물론 큰 기대(?) 속에 챙겨간 종이봉투를 도로 집으로 가져왔음은 물론이다. 속으로 생각했다. '연구실은 누가 보는 것도 아니고, 마음만 먹으면 맥주 한 잔 못할 건 없을 것 같은데 사람 무안하게....' 그렇게 규칙에 대한 엄격한 준수가 인상적이었다. 미국 생활 초반 그런 일을 겪고 나도 내가 배정받은 연구실에서 커피나 물 말고 알콜을 먹을 생각은 하지도 않게 됐다. 


몇 달 후에는 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어떤 동아리에서 천막을 쳐놓고 음식과 맥주를 팔고 있었다. 우리나라처럼 주점 같은 것을 하는 학생들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구경을 가보았다. 그런데 천막 앞에 시위대 앞에 경찰이 치는 폴리스 라인 같은 줄이 좁은 구역에 정사각형으로 둘러져있었다. 그리고 줄에 A4용지가 걸려있었는데 "여기가 음주 구역"이라는 내용이었다. 그 좁은 사각형 안에서만 맥주를 마실 수 있었던 거다. 좀 더 지켜보니 정말 음식과 맥주를 산 학생들은 모두 다 그 사각형 안에서만 머물렀다. 즐겁고 활달하게. 그러고 보니 학교 잔디밭에 누워있고 엎드려있는 학생들은 많이 봤어도 술 마시는 학생은 보지 못했던 것이 생각났다. 잔디밭에 탕수육과 고량주를 배달시켜 먹는 우리나라 대학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아마도 군사독재 시기 이후 최대 규모의 학내 민주화 운동이 벌어지지 않을까? 여하간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 신선한 경험이었다. 엄격한 규칙의 적용과 이에 대한 구성원들의 존중. 미국은 자유로운 나라이지만 막돼먹은 나라가 아니다. 


#장면 2. 권위는 공간의 구성으로 구현된다


내가 살던 솔즈베리 북쪽으로는 미국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 조 바이든의 지역으로 유명한 델라웨어주가 자리하고 있다. 델라웨어주의 행정수도는 도버(DOVER)인데 차로 1시간 반 정도가 걸리는 이 곳을 딸을 데리고 간 적이 있다. 깔끔하게 정리되고, 고풍스러우며, 조용한 도시에는 주정부, 주의회 건물들이 멋지게 서있었다. 



여기에서 미국에서 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주차구역을 만났다. 바로 주 의원을 비롯한 주요 직위자들의 전용 주차구역이었다. 단순히 '의원 전용'이라고 구분해 놓는 것을 넘어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새겨 넣어 그 사람만을 위한 주차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아니 이런 권위적인 일을 미국에서?'라는 생각이 잠깐 스쳤으나 국민이 선출한 권력에 대한 존중과 그 권위를 세워주고자 하는 의도가 느껴졌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게 주된 임무인 백악관 기자들도 대통령이 브리핑룸에 입장할 때는 기립함으로써 대통령에 대한 존중을 표현하는데, 그건 대통령이란 개인이 잘 나서가 아니라 바로 국민이 뽑은 대표이기 때문이리라. 


자신들이 뽑은 대표에 대한 존중과 예우. 권위에 대한 인정. 그렇게 자신들의 공동체가 운영되는 원리를 지켜가는 것이 미국인가 싶었다. 국회의원들이 누리기만 하고 일은 안 한다고 이를 해결하는 건 국회의원을 줄이거나, 일을 잘하라고 보장된 권위를 무너뜨리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각광받는 나라에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다.



내가 미국에 머물 던 때 현재 연방대법관인 닐 고서치(Neil Gorsuch)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있었는데, 청문회 장의 배치도 권위 그 자체였다. 청문회를 하는 의원들은 후보자를 둘러싸고 그보다 높은 곳에서 후보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의원들이 지체 높으신 양반 나리들 이라서가 아니라 국민을 대표해서 대법관 후보자를 검증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서류를 흔들고, 약점 하나 잡았다는 듯 윽박지르거나 의원을 우습게 보냐며 후보자를 다그치지 않고 후보자에게 궁금하고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 차근차근 물어봤지만 소리 지르지 않는다고 권위가 없어 보이진 않았다. 이 청문회장의 구조가 국민의 대표자들을 어떻게 취급하는지, 아니 국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잘 보여줬다.


#장면 3. 견학의 나라, 갈 수 있는 곳과 없는 곳이 명확하다


미국은 견학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는 곳마다 'VISITER CENTER'가 있다. 그곳이 어디든 찾아오는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전시물 등을 통해 그 장소가 어떤 곳인지 알려준다. 그러나 여기에도 철저한 공간의 분리와 엄격함이 있었다. 어느 곳이든 견학과 구경을 할 수 있지만, 아무 데나 다 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그 공간이 가진 권위를 사람들에게 일깨워주고 있었다. 어떤 곳은 섣불리 들어갈 생각도 못하고, 실제로 그렇게 자유롭게 들여보내 주지도 않는 곳이 많은 나라의 사람으로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런 공간 중에 대표적인 것이 미스터 선샤인의 유진 초이 대위가 다녔다는 아나폴리스의 미 해군사관학교였다. 우리나라도 육군사관학교 홈페이지에 가보니 견학 신청을 받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군사보호시설이므로 함부로 들어올 수 없고 미리 예약해야 한다는 안내와 함께였다. 그런데 미국의 해군사관학교는 미리 신청을 할 필요도 없었고, 그냥 구경 가듯이 가서 방문자센터에 들어가 간단한 절차만 거치면 캠퍼스를 활보할 수 있다. 


방문자 센터에는 조금 완성도가 떨어지긴 하지만 한국어를 포함해 여러 나라의 말로 사관학교를 소개하는 안내자료도 있어서 단순히 구경하는 게 아니라 사관학교에 대한 내용도 알 수 있었고, 지나가는 사관 생도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애기 아빠가 다정한 부녀의 모습을 찍어달라는 요구에 가던 길을 멈추고 웃으며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렇게 오는 사람 막지 않는 사관학교에서도 어디든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가까이에 있는 공간이지만 그곳의 군기와 규칙을 침범해 아무 곳이나 갈 수는 없었다. 해군사관학교에서는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들어가서 살펴볼 수 있는 건물과 들어갈 수 없는 건물이 구분되어 있었다. 모든 곳이 엄격하게 통제되어 아예 접근을 불가능하도록 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공개하고 누구든 접근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공개할 수 없는 곳은 철저하게 관리했다. 이건 무조건 막거나, 접근을 어렵게 해서 위엄을 세우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복잡한 일임에도 그걸 마다하지 않았다. 진정한 권위가 어디서 나오는가. 아니 그 이전에 권위는 무엇인가에 대해 우리가 새롭게 고민해 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권위라는 것, 또 엄격함이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주고, 무언가 숨겨져 있는 것 같은 신비함을 유지하는 것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귀찮고 피곤하더라도 보여줄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열면서도 정확하게 선을 지키고, 존중하는 모습은 권위적이지 않되 권위가 있었고, 자유로우면서도 엄격했다.


누가 미국을, 미국 사람들을 근본 없다 하는가. 위아래가 없다 하는가. 예의를 모른다고 하는가. 그들은 어떤 면에선 우리보다 훨씬 더 엄격하고 위엄 있고, 그런 권위를 중시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자유롭지 않은 것도 아니다. 우리가 찾고 있는 진짜 권위는 무엇일까. 권위적인 사회에서 넘쳐나는 갑질에 생각해볼 문제다. 미국은 엄격 한나라, 권위에 철저한 나라다. 

작가의 이전글 도서관에서 나는 울었네:보좌관의 직업 안정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