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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포아빠 Aug 23. 2022

역사는 소위원회에서 이루어진다

간신히 여의도 서식기_열 두번째

국회에 대한 TV뉴스에 주로 사용되는 화면은 높은 천장에 밝은 전구들이 빛을 비추는 본회의장이다. 때때로 여야 의원들이 마주앉아 설전을 벌이거나 장차관을 상대로 질의를 하는 상임위원회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국회하면 본회의장을 떠올리고, 의원들이 투표하고 국회의장이 의사봉을 두드려 법안과 예산 통과를 선포하는 것을 국회의 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엄밀히 말해 절차적 수순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법안과 예산 등이 테이블에 올려져 논의되고 토론되는 집중 해부의 장은 각 위원회의 소위원회다. 소위원회는 사람들이 알고있는 것 이상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소위원회에서 결정되고 통과된 법안과 예산(결산)은 상임위원회와 본회의에서 '수정안 제출'과 같은 절차에 따라 변경되기도 한다. 특히 정부가 제출한 내용을 가지고 심사하고,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권한이 크며, 오히려 국회보다 기획재정부라의 입김이 강력한 예산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런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면 소위원회는 국회가 실질적으로 일을 하는 알파와 오메가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위원회는 논의가 시작되는 관문이기도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논의가 끝나고 결정되는 출구라고 할 수 있다. 소위원회에서 다루는 안건과 항목으로 채택되지 않으면 아예 논의조차 되지 못하기 때문에 소위원회는 정부와 국회, 그리고 시민사회에 까지 가장 중요한 국회의 기구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소위원회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면, 각 상임위원회는 필수적으로 소관부처의 업무범위에 해당하는 법안과 예산을 심사하는 법안소위와 예산결산소위를 두고 있다. 상임위원회는 각 교섭단체를 대표하는 간사를 두고 있는데 소위원회를 이끄는 소위원장을 간사들이 맡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단,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또 이와 함께 일반시민들이 제출하는 청원을 법안소위에서 함께 다루지 않고 따로 청원심사 소위원회를 구성해 처리하는 위원회도 있다. 한편 필수적으로 설치되는 소위원회가 아니어도 각 상임위원회의 형편과 주요 이슈에 따라 별도의 소위를 구성해 운영하기도 한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가 법안, 예산결산 소위와 함께 주요 이슈인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별도로 다루는 '일본군위안부문제대책소위원회'를 구성해 활동한 것이 한 예이다.


임시국회와 정기국회가 열리는 시기에 소위원회도 함께 개최되는 경우가 많은데, 처음에도 언급했지만 소위원회에서 다루어지고 심사를 통과해야 상임위와 본회의를 거쳐 법안과 예산이 빛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법안과 예산 등 국회에 제출되는 안건들은 해당 상임위로 배정되고, 상임위 전체회의에 상정된 후 소위원회에 회부되어 본격적인 심사과정에 들어간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입법전쟁, 예산전쟁이 펼쳐지는 것이다. 


정확한 설명을 위해 법안을 예로 들어보자. 법안심사소위원회에는 수백, 수천개에 달하는 제출법안이 대기하고 있다. 그러나 모두 한꺼번에 심사할 수 없기 때문에 한정된 시간에 우선순위를 정해 심사를 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법안심사소위 심사안건으로 올리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소위원회 개최 전부터 벌어진다. 아무리 법안을 잘 만들어도 법안소위에서 다루어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법이 '구슬'이라면 소위는 그 구슬을 '꿰는'곳이다. 


여기에는 의원실도 예외가 아니다.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제출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통과가 되어야 실제 성과가 되기 때문에 각 의원실은 자신들의 법이 하나라도 더 법안소위 안건에 올라가도록 계속 협의하고, 호소한다. 상임위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간사 의원실에서 소속 의원실에 이번에는 꼭 올려야 하는 법안을 몇 개 선정해 알려달라는 식으로 조정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법안소위가 아닌 예산결산소위에 속한 의원들은 법안소위 소속 의원들에게 연락해 자신의 법을 다루어달라고 요청하고 법안의 중요성을 설명하기도한다.


국회와 함께 법안 제출권을 가지고 있는 정부와 입법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제도화하려는 시민단체, 노조, 기업, 이익단체들도 발에 땀이 나도록 바쁘게 의원회관을 찾아 저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법안의 심사와 통과를 위해 활동한다. 법안소위 개최시기가 되면 법안소위 의원실을 중심으로한 의원실에는 이들의 방문과 설명, 호소가 끝없이 이어지는데 업무시간에는 일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이들의 방문에 응대하고, 설명을 듣고 또 의원실의 입장을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법안소위 안건으로 올라가면 절반은 성공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루어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물론, 소위원회 진행과정중 시간의 한계로 안건으로 올라갔다가 다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소위에 올라간 이상 안건으로 살아있는것이기 때문에 이 또한 실패는 아니다. 


안건으로 올라갔다면 이제 통과를 위한 2차 전쟁이 시작된다. 하나의 법안을 둘러싸고 모든 사람들의 의견이 일치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국회, 정부, 시민사회, 기업 등의 의견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법안이라면 법안의 통과와 저지를 위한 활동은 더욱 가열된다. 예를 들어 한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국회의원과 함께 한 구역을 관광단지로 개발할 수 있도록 규제를 푸는 법안을 통과시키고자 할 때,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법안 통과를 주장하는 활동을 한다. 지역경제 활성화, 개발이익을 통한 지방정부 부채감소, 일자리 창출등이 주된 논거다. 그러나 한 편 해당지역의 주민들은 환경파괴와 개발이익이 지역주민이 아니라 사업자에게만 돌아간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하는 의견을 개진한다. 법안소위 위원실을 돌며 설명하기도하고, 법안소위 장 앞에서까지 진을 치며 의원들에게 호소하기도한다. 이렇게 극명하게 의견이 엇갈리는 사안의 경우 의원들은 난감한 상황에 처하기도 하지만, 갈등과 자원 그리고 이익을 조정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정치가 그야말로 본연의 역할을 해야하고 할 수 있는 장이 열리는 것이다 


이는 법안 뿐 아니라 예산심사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예산안을 정부가 제출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계획하고 제출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정부부처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특정한 예산에 대해 교섭단체와 국회의원이 삭감의견을 밝히면 해당 부처의 부서는 발등의 불이 떨어진다. 예산이 삭감된다는 것은 자신들의 업무와 영향력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소위원회가 법안과 예산의 통과를 결정하는 시작이자 끝이라는 점과 함께 이를 통해 가장 적나라하게 갈등과 이해관계가 드러나고 부딪히며, 조정된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더욱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소위원회에 관심을 가지고,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울러 소위원회는 발언시간의 제한 없이 또 장차관이라는 대표선수만이 아니라 해당 안건을 다루는 실무자들까지 함께 토론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정부와 국회의원의 자질과 실력이 가장 정확하게 드러나는 현장이므로 정부와 국회가 얼마나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상임위원회와 본회의는 5분내지 10분이라는 제한된 시간에 발언하고 토론하는 곳이다. 그래서 심도깊은 토론이 이루어지기 어렵고, 정부와 국회의원의 실력이 드러나는 경우도 별로 없다. 그러나 소위원회는 정해진 발언시간이 있는것도 아니고, 업무를 종합적으로 관장하는 고위공무원 뿐 아니라 실무자들까지 토론에 참여하기 때문에 사안에 대한 이해와 공부가 없으면 제대로 심사를 할 수 없다. 그런 경우 정부의 주장이나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의견에 의존하게 경우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때문에 정부와 국회, 그리고 국회의원이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기 원한다면 언론에 보도되는 가십거리의 말한마디, 단편적인 사건만 보지말고 소위원회에서 어떤 말을 했는가, 어떤 토론이 이루어지고, 어떻게 심사를 했는지를 찾아보는 것이 제대로 된 평가를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보좌진의 입장에서도 소위원회 준비는 매우 벅찬일에 속한다. 보통 법안소위가 열리면 2~3일의 기간에 100건이 넘는 법안을 다루게 되고, 예산 심사의 경우 소관부처의 전체예산을 다루게 되기 때문에 이를 다 준비한다는 것은 어렵기도하고, 실제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정부는 부처와 부서별로 자신들의 담당 업무를 준비하면되지만 의원실은 이들을 상대로 전부를 준비해야하기 때문에 시작부터 공정한 게임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국회에는 상임위에 소속된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 국회 예산정책처와 입법조사처라는 지원조직을 통한 분석보고서 등이 제공되어 도움을 주기도한다. 또, 학계와 시민사회 등의 의견을 참고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를 준비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안건 중 더욱 집중하고, 심도있게 살펴봐야 하는 사안을 잘 선택하고 이에 맞게 준비하는 요령이 필요하기도 하다.


또한, 보좌진은 정부 등으로부터 법안과 예산에 대한 설명과 주장을 듣고 이에 대응하는 일과 함께 의원실이 제출한 법안과 관심을 가지고 있는 예산과 관련한 사항들을 관철하기 위해서도 일해야 하기 때문에 일이 두배가 되는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 정부가 의원실의 법안에 반대하는 경우, 정부를 설득하는 일을 해야하고 통과를 원하는 안건을 소위원회에 올리기 위해 안건협의 권한을 가진 간사의원실과도 치열하고도 지난한 협의과정을 거쳐야 한다.

소위는 준비에도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할 뿐 아니라 배석하는 일도 업무강도가 높은 일이다. 시간제한이 없고, 치열한 토론이 펼쳐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위 사진은 2012년 11월 어느 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소위현장을 직접 찍은 사진인데 이 때가 밤 12시 가까운 시간이었다. 책상에 어지럽게 쌓여있는 자료들, 늦은 시간까지 심사에 임하는 국회의원들과 조금이라도 더 자신들의 입장을 반영하기 위한 공무원들의 모습이 포착되어 있다. 소위 현장에서는 준비한 내용만 다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토론의 과정속에 새로운 내용과 쟁점이 등장하기도 하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래서 긴 회의 시간에도 긴장을 늦출수가 없고 때로는 회의장 밖에서 정부 실무자와 논쟁과 협의를 하기도한다. 


이렇듯 소위는 국회가 일하는 가장 치열한 현장이다. 나는 소위를 준비하고 참여하면서 국회가 더욱 소위 중심으로 일해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현재는 너무 짧은 기간에 많은 안건들을 처리해 심도있고, 치열한 토론이 제한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위가 실질적인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한 국회운영의 고민이 필요하며, 더 활발한 소위활동을 통해 국가의 사안들이 더 많이 다루어지고 더 깊이 이야기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덧붙여 소위의 경우 정부는 실무자들이 토론에 참여해 답변하기도 하지만 아직 보좌진들은 직접 참여하는일이 없다. 국회의원과 함께 실무를 담당해 해당사안에 대해 더 잘 이야기할 수 있는 경우 보좌진들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더 깊이있는 토론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역사는 소위에서 이루어진다. 국회 무슨일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한가. 눈을 들어 '소위원회'를 바라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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