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 펜에 대하여

by 안노

딸아이가 보낸 택배함을 열어보고는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중세시대 어느 귀족의 서재 오래된 마호가니 책장 위에나 있을 법한

깃털 달린 펜대였다.

거기다가 애교처럼 작고 앙증맞은 잉크병도 따라 들어있다.

근 일 년째 머리카락 쥐어뜯으며 변변한 단편 한 편을 못 쓰고 있는 제 어미가 불쌍했던지

아니면 이러다가 정말 우리 집 재정이 바닥나 버릴지도 모른다는 본능적인 위협인지

아무튼 뭐라도 좋았다.

나는 태어나 처음 이런 멋진 선물을 받았으니!!!


내가 펜으로 글을 쓴 것은 일 년쯤 전부터다.

도저히 머릿속이 뒤엉켜 혼자 쩔쩔매다가 어느 날 문득

서랍 속에서 나뒹굴던 나무 펜을 발견했다.

그것도 딸아이가 오래전에 생일 선물로 사 준 것이었다.

딸아이는 내가 펜으로 뭔가를 쓸 때 그 소리와 느낌을 아주 좋아했다.

그림 그리듯 글을 쓴다고 했다.


하얀 종이를 앞에 두고 가만히 눈을 감고 앉아 생각했다.

떠오르는 대로 문장을 적어 내려 가 보았다.

어떤 의도도 욕망도 가식도 거기에는 근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흰 백지 20장을 몇 시간 동안 고요히 적어내려 갔다.


그때부터 내게 펜은 막힌 머리를 뚫어주고 답답한 가슴에 시원하게 구멍을 내주는 소중한 벗이 되었다.

제 어미 속을 꿰뚫고 있는 딸아이가 이번에도 아주 영민한 짓을 벌인 것이다.


뾰족한 펜에 잉크를 찍어 흰 종이에 몇 자 적을라치면 그 부드러운 깃털이 살랑살랑 댄다.

아!

기적의 향이 그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