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은밀한 글쓰기

by 배가본드

나는 글 쓰는 배가본드이다.


꼬마 때 이 말을 많이 들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허구한 날 글쓰기 타령이나 하고 앉았다." 글쓰기 타령만 그랬던 게 아니라 어떤 타령을 해도 다들 질색했다. 타령 얘기 나왔으니 말인데 내가 어렸을 때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게 타령이다. 첫째로 소질이 되게 없었고, 둘째로 그걸 흉내내다 어른들에게 된통 야단을 맞았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때, <레 미제라블>을 읽고 숙제로 독후감을 써서 냈더니 다시 써 오라고 한다. 빅토르 위고의 인도주의와 민중주의 언급이 빠져서였다(나는 퐁텐블로 숲길의 묘사에 매혹될 뿐이었다). 지금도 나는 글쓰기 능력은 뭔가의 세부나 그 물질성에 들리는 능력일 때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의 그 독후감은 그야말로 오답일 뿐이었다. 그전에도 쓰기 싫던 독후감이 더 싫어졌고, 나는 '글 쓰기라면 질색을 하는 아이'가 되었다. 그런 아이로 박제당하는 건 억울했지만, 나만의 특별한 감동이 보편성에 흡수되는 것보단 나았다.

퐁텐블로 숲길 (사진 출처 : 네이버 하늘 하늘 님의 블로그)

중학생 때는 독후감 쓰기 싫은 이유 하나가 더 늘었다. 꿈을 현실 언어로 일단 바꾸면 꿈은 사라지고 꿈 이야기만 남듯 독후감도 일단 쓰고 나면 책은 사라지고 감상문만 남는다. 읽은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그 이야기는 우리와 함께 성장하지만 독후감을 써 버리면 책의 성장은 거기서 멈춘다. '몇 번을 읽었지만 아직 다 읽지 못함.' 그 묘한 미완성 상태에 있고 싶다.


고등학생 때는 대학 가면 문학 교양수업을 꼭 들어 보고 싶었다. 마침내 대학에 들어갔고, 기쁜 마음으로 <한국 문학의 이해>를 골랐다. 첫 수업의 주제는 '한국 문학이 나아갈 길은?'이었다. '한국 문학에 지금 필요한 것은?'도 아니고 '한국 문학이 나아갈 길은?'이라니, 물음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문학을 사람이 어디로 몰고 간다는 것인가? 물어볼 데도 없어 한참을 고민했다(이제는 고민하지 않는데 의문이 풀려서가 아니다). 다음날, 수강신청을 조용히 철회했다. 지금까지도 이것이 내가 받아 본 유일한 문학 교육으로 남아 있다.


병역을 마치고 첫 직장에 들어가서, 직장 내 글쓰기 동아리에 가입했다. 사원이 많은 회사라서 동아리에도 여러 직군의 사람들이 두루 모여 있었는데, 그때 나는 휴대폰 생산 시스템을 관리하는 엔지니어였다. 모임 첫날 자기소개 시간에 소속 부서와 가입 동기를 짤막하게 말하자 "엔지니어가 왜 글을 쓰세요?"라는 물음이 날아왔다. 그 동아리의 장이었다. 말을 길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자세히 설명할 상황도 아니라서 "누구나 그렇듯 제게도 필요해서요."라고 짧게 대답했지만, 그는 전혀 납득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때 하지 못한 대답을 이제 와서 하자면 이렇다. 우린 어느 시대보다 읽을거리가 넘쳐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책, 기사, 영상 등 무수한 콘텐츠를 보며 살아가지만 머리에 남는 게 없다. 뭔가를 먹는다는 건 사람이 바깥세상과 가장 직접적으로 만나는 일인데, 그 바깥세상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게 소화이다. 소화되지 않은 것은 내 몸속에서 아무 구실을 못 한다. 내 바깥에 존재하는 정보도 똑같아서 암만 읽고 시청해도 소화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그 소화하는 과정이 바로 글쓰기다. 새 정보와 마주치고, 그 정보에 의문을 제기하며, 그 의문에 대해 사유하고, 그 사유를 글로 쓰며 소화하는 과정이 있어야 비로소 그 정보가 내 것이 된다. 현대인이 무수한 콘텐츠를 접하며 살아도 사고력은 이전보다 늘지 않고 같은 방식의 사고를 되풀이하며 알고리즘의 노예가 되는 것은 읽고+쓰기의 세트에서 바로 이 '쓰기'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글쓰기가 필요하지 않은 인생은 없는 것도 이 때문이고, 그 사람이 엔지니어든 공무원이든 상인이든 농부이든 달라질 일은 아니다.


나는 그 모임을 바로 그만두었고, 한동안 글쓰기에 담을 쌓고 살았다. 글쓰기 할 때마다 가슴에 주홍글씨를 단 느낌, 그리고 나를 소개하면 기이한 질문이 날아오고 설명은 온통 나의 것이 되는 상황에 질려 버렸고, 글쓰기가 즐겁지 않아졌다.


긴 세월이 흘렀고, 직업이 두 번 바뀌었다. 이번에는 직장 내 글쓰기 대회가 있었다. 시간도 오래 지났으니 한번 참여해 보려 했는데, 예비 서류심사라는 게 있고 인적정보를 먼저 내라 한다. 떨어졌다. '전공이 맞지 않는다'라는 게 그 이유였다. 작품은 제출해 보지도 못하고.

이런 경험이 늘어갈수록, 글쓰기는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커져 갔다. 은밀한 글쓰기에 좋은 브런치라는 사이트를 알게 된 게 그 무렵이다. 마침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 글을 보내면 읽고 조언해 주는 네이버 블로거 한 분에 대해 전해 들었다. 누군가가 권유하길 그분은 전공자이고 글 평가를 전문으로 하시니 조언을 구해 보라 하셨다. 내 성격상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용기를 내어 그분께 연락드리고 글을 3개 보냈다.


이틀 후, 회신이 왔다. 그분께서 특히 강조해서 조언하셨던 것은 '말하는 것처럼 쓰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게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말임을 모르지 않았지만, 글을 쓰는 데에 가장 해로운 것도 그 말이라고 생각했다. 글의 중요한 기능들 중 하나가 바로 말을 성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다 보면 말과 똑같아지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글이 나를 끌고 가며 생각이 아니었던 생각이 날아가고 진짜 생각만 남겨놓기 때문이기도 한데, 그건 말에는 거의 없는 기능이다.


그분께서 또 강조하셨던 것은 부사어와 피동 문장을 쓰지 말라는 것이었다. 기계적으로 따르고 싶지 않았다. 내 생각을 말하면, 기본적으로 뭐든 써도 된다. 단 내가 왜 그렇게 썼는지 스스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부사어와 피동 문장도 표현의 방법이고 직접 써 보면서 어떨 때 쓰는지 스스로 깨쳐서 상황에 따라 뽑아들 줄 아는 사람이 되어 갈 것이지, 그렇게 절대 쓰지 말라고 제해 버리면 그 사람은 그 표현 방법을 아예 쓸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세 번째로 강조하셨던 것은 의성어 의태어를 풍부하게 사용해서 색깔을 넣으라는 말씀이었다. 그분께서는 국립국어원의 소식지를 언급하셨는데 거기엔 '소리가 예쁜 우리말'이 연재된다. 여기서 말하는 소리가 예쁜 우리말이란 대개 첩어로 된 의성어, 의태어들이다. 이런 말들은 글에 생기를 더하지만 습관이 되면 글이 중간 이상 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어떤 바람을 '살랑살랑'으로 뭉개 버리면 세상에 단 하나뿐인 그 바람을 개별화할 수 없어진다. 바둑이나 장기에서 뻔한 수를 '속수'라 하는데 그런 수로는 상대가 중수 이상만 되어도 이길 수 없다. 글에 첩어를 적극 활용하라는 코칭, 말하자면 그런 게 '속수'다. 나는 소셜 미디어에서 전문가의 칭호를 달고 '이건 절대로 안된다' '100% 망하는 사람들의 방법' 이런 식의 말들을 좋아하지 않는데, 가장 큰 이유는 이런 말들이 대개 맨스플레인(mansplain) 용으로 만들어진 것들이기 때문이다.

일간지에 칼럼을 올렸던 적이 있다. 칼럼에는 기존의 거푸집 같은 틀이 있다. 서론 본론 결론의 3단으로 명확히 나누어지고, 직설적이어야 하며, 기승전결의 기법에 맞추어야 했다. 신문사에서는 에세이와 칼럼의 형식을 엄격하게 구별했던 것이다. 그런 틀을 따르기 싫었지만 담당 기자한테서는 이러이러하게 고쳐 달라고 여러 번에 걸쳐 피드백이 왔다. 그렇게 최종안을 넘겨주었는데 실제로 일간지에 실린 글을 보니 이게 내 글이 맞긴 한가 싶었다. 문장은 모조리 바뀌어 있었고, 중간 내용이 뭉텅 빠져서 뒤에 나오는 지시어가 가리키는 게 없어지기도 하고, 심지어 결론까지 바뀌어 있었다.


이 무렵부터는 혼자 조용히 쓰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은 글을 내고 등단을 하라고 권유를 했다(그건 내가 잘 써서가 아니라, 그렇게 글쓰기를 좋아하면 혼자 숨어서 쓰지 말라는 말이었다). 그러기 위해 기성 작가들이 가르치는 글쓰기 교실이나 문학 교실에 가서 배우는 게 어떠냐고 했다. 작가가 그렇게 생산되는 곳을 거치면 어떤 작품이 나올까 궁금해서 그런 곳에서 발행하는 책자에 실린 글들을 찾아보았다. 어떤 금형틀에서 나온 모양을 가진 듯한 느낌이었다. 제도권 내로 들어가 훈련을 받아서 객관적으로 더 잘 쓴 글을 만들어낼 순 있더라도, 어쩌면 나도 붕어빵 신세를 면하지 못할지도 몰랐다. 무엇보다도 그때부터는 못써도 되는 편안함을 잃어버릴 것은 분명했다. 나에게 글이 '잘 써야만 하는 것'이 되어 버리면 자칫 글쓰기에 흥미를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공학도에 엔지니어 출신으로서 글쓰기를 하는 게 이상한 듯 바라보는 일이 무수히 반복되는 과정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은 어떤 최고의 작가도 정확히 그려낼 수 없는 나만의 고유한 재료였다. 나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게 즐거웠다. 마음속 어두운 방 안에 불을 켜는 기분 같기도, 아이가 되어 바닷가에서 흙을 가지고 노는 기분 같기도 했다. 그런 나에게 어떤 분께서 의미 있는 말을 한마디 해 주셨다. "다른 세계에서 넘어오셨다는 이유로 글에 자부심 있으신 몇몇 분들은 어떤 경우에도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겁니다. 나중에 어디선가 족보도 없는 놈이라는 둥 하는 식의 말을 듣게 되면 그건 대단한 칭찬이라고 해석하세요."


브런치에 들어와 손가락이 뛰노는 대로 글을 쓴 지 4년이 되어 간다. 영원한 아마추어로 남겠다고 마음먹으니 가볍고 자유롭다.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글 쓰는 게 편안하고 행복하다. 이제 글쓰기는 나의 은밀한 놀이이며 나의 기도이기도 하다.


나는 글 쓰는 배가본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