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려고 애쓰지 않아요

by 배가본드

어떤 회사가 실내 방향제 신상품을 만들려고 한다. 기존에는 없는 향을 만들어 보려고 고객들에게 아이디어를 공모한다. 운영자의 공지글에 사람들이 댓글을 단다. 무슨 향을 원해요. 무슨 향을 원해요.


나는 고양이 뒤통수 향기를 건의했다. 그런데 운영자가 다른 사람들 글에는 대댓글을 정성스럽게 달아주면서 내 의견만 외면한다. 다른 이용자들은 대댓글로 깔깔 웃기만 한다. 아니 왜들 이래? 고양이 뒤통수가 어때서? 그게 무슨 민망한 냄새도 아니거니와, 백 번 양보해서 민망하다 쳐도 남몰래 좋아하는 민망한 냄새 다들 하나씩은 있잖아. 고양이 뒤통수 향기, 그 말도 안되는 편안함을 아는 사람이 없군. 세상이 모르는 걸 혼자 알고 있다는 건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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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공자의 말씀인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럼 누구한테 가서 '도!' 하고 저녁에 다시 가서 버럭 패죽여도 된다는 것인가? 그 말을 한 공자 자신도 아침에 도를 들었는데 저녁에 누가 자길 죽이러 오면 "오냐 아침에 도를 들었으니 괜찮다" 이랬을까? 길을 가다 "도를 아십니까" 묻는 사람을 만나면 이놈이 오늘 밤 나를 죽이러 올 것만 같아서 식은땀이 흐르던데. 공자의 이 말이 어이없다고 꽃씨한테 말했더니 그건 뒷단인 '죽어도 좋다'가 아니라 앞단인 도를 깨치는 희열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며칠 후 넷플릭스 <솔로지옥>에서 출연자들이 찍는 커플화보가 예뻐 보여서 이번엔 "너랑 커플화보 찍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아" 했더니 이젠 꽃씨가 어이없어한다. 앞단인 함께 찍은 예쁜 사진을 많이 갖고 싶은 염원에 방점을 찍어야지 왜 뒷단에 방점을 찍닝? 똑같은 말이라도 인류사의 대현이 하면 명언이고 내가 하면 개소리다 이거지?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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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남모르는 고민이 하나 있었다. 너무 자주 야한 꿈이 꿔져서 정말 힘들었다. 어쩌다 한두 번이면 모르겠는데 이건 뭐 하루가 멀다 하고 이러니 죽을 맛이다. 나도 동화 같은 꿈도 꾸고 싶고, 풍경화 같은 꿈도 꾸고 싶단 말이다. 새 학년 시작할 때 담임 선생님이 다들 연습장을 한 장씩 찢어서 말하기 어려운 고민을 써내라 할 때도 그건 쓰기 어려웠다. 그걸 차마 형용할 수가 없기도 했지만, 더 큰 이유는 어렵게 입을 열 때마다 돌아오는 건 기운 빠지는 반응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나는 정말 괴로워서 죽을 판인데 왜들 픽픽 웃어? 정말 힘들겠구나 해 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고 다들 하는 소리가 음란마귀에 홀렸다는 둥, 머릿속의 카마수트라를 제거해야 된다는 둥, 자기도 제발 그래 봤으면 좋겠다는 둥, 한 달만 네가 되어 보고 싶다는 둥, 기껏해야 이런 식이다. 그런데 한 달을 내가 되어 보고 싶다는 잉간은 있어도 몇 년, 몇십 년을 내가 되어 보고 싶다는 잉간은 없더군. 대체 부러운 게 맞긴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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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기생충 검사를 한다고 학교에서 채변 봉투를 나눠 준다. 다음 날까지 숙제를 해 오지 못한 사람은 여섯 명. 나는 그중의 한 명이었다. 우리 여섯 명은 일 잘하는 누군가에게 외주 용역을 줬고, 나무젓가락을 가지고 일제히 달려들었다...(중략)... 우린 그렇게 숙제를 마쳤다.


며칠 후. 여섯 명이 일제히 호명당했다. 다 교무실로 내려오란다. 우리 여섯은 기생충 백화점으로 판정되었다. 요즘은 한 알만 먹으면 모든 기생충들이 구제되지만 그때는 회충약 따로 요충약 따로 이런 식이라서 두 손을 모아 벌리고 회충약, 요충약, 편충약, 촌충약, 포충약, 폐흡충약, 분선충약, 십이지장충약, 아니사키스충약... 대체 이게 다 몇 개냐. 수북하게 받아 든 약을 그 자리에서 다 먹으라 한다.


억울하지만 "선생님, 저 기생충 없는데 이거 안 먹음 안 돼요?" 이럴 수도 없는 이놈의 신세. 이런 망할, 내 살다 살다 약을 먹다가 배가 불러 터질 지경이라니. "네놈들은 도대체 뭘 먹고사는 거냣!" 하는 불호령과 함께 다들 신발 벗고 발바닥 까란다. 우리 6형제는 걷기는커녕 기지도 못할 정도로 발바닥을 빡빡빡 맞고 김흥국의 호랑나비춤을 추면서 4층의 교실로 뛰어 올라왔다.




자, 왜 이런 썰들을 늘어놓느냐. 공통점 하나를 말하기 위해서다. 이 모든 에피소드들의 공통점이 뭐냐면, '어디 가서 얘기했더니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고' + '뭐지? 왜 웃지? 딴 데 가서 이거 웃기는 데 써먹어야겠다 싶어서 그렇게 했더니 그땐 웃기기에 실패'하더란 말이다.


글로 사람을 웃기는 건 쉽다. 그냥 나사 하나 풀고 쓰면 된다. 이게 최근까지의 내 생각이었다. 중요한 걸 간과했다. 나 자체가 나사 하나 풀린 놈인데 일부러 하나를 푸니 곧 나사가 두 개 풀린 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 생각 없이 뭔가를 말할 때는 곧잘 웃고, '어? 이거에 웃네? 옳거니, 이거 간직했다 써먹자' 싶어 어디 딴 데로 가져가서 웃기려니 그러는 족족 실패했던 거였다.


그게 불만이었다. 나는 사뭇 진지한데 상대가 으하하 웃어 버리면 힘이 빠졌다. 내 고통을 사람들이 몰라주는 것만 같아서 서운할 때도 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통이라 하지 않는가. 하지만 좀 더 생각해 보니, 반대로 웃기려고 딴엔 애썼는데 아무도 안 웃어 버리면 그만큼 괴로운 일이 또 어디 있겠나 싶은 것이다.


바로 며칠 전에는 여러 명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고기가 많이 남으니 누군가가 나보고 고기 좀 더 먹으라고 권했고, 거기에 "저는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다가 다들 크하하 이래 버려서 황당하고 난처했다. 나는 진정 엄숙했고, 웃기려는 의도가 조금도 없었으며, 관심받고 싶어서 한 말도 전혀 아니었다. 내 일상에서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웃기길 원했다가 실패해서 난처한 것보단 웃기길 원하지 않았는데 웃어버려서 난처한 게 훨씬 나은 거니까 이젠 그것도 복이라면 복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다. 내가 웃기길 원할 때만 웃기기에 성공한다면 그보다 좋은 게 어디 있을까 싶지만, 그렇게 살 수 없는 건 기본 세팅이 나사 하나 풀려 있는 놈의 한계이다.

그런데 너는 왜 웃니? 내가 대체 뭘 했다고. 너까지 이러면 어떡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