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님, 직장생활 잘하려면 뭐부터 해야 합니까?"
또다. 또 그 질문이다. 연단에 서서 뒤통수는 쫄깃하고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난다. 신입 직원을 교육하는 내부 강사로서의 무게감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먼저 그 후배를 진심으로 칭찬하고 싶다. 호기심, 성실함, 새 출발에 대한 기대감. 이 모든 게 깔려 있지 않으면 이런 질문은 나오지 못한다.
문제는 나다. 당장 나부터 직장생활 잘하고 있다고 말할 자신이 없으니 이 물음에 대답이 떠오르지가 않는다. 신입 직원 수백 명을 상대로 2~3달에 1번 꼴로 출강을 나가는 게 벌써 5년째인데, 거의 매번 날아오는 이 물음에 모범답안을 아직도 못 만들고 있다.
주식을 좀 배워 볼까, 책을 읽다가 '비야 네가티바(via negativa, 부정의 통로)'라는 말을 발견했다. 옳은 것을 찾기보다는 잘못된 것을 찾기가 훨씬 쉽고, 그 잘못된 것을 하나하나 찾아서 빼 가며 바람직함에 한 발씩 가까워지는 사유의 방법.
머릿속에서 전구가 반짝 켜졌다. 독서를 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뭔가를 발견하고 온 몸을 떨 때가 가끔 있다. 처음에 내가 원했던 건 경제 지식이었는데, 뜻밖의 보석을 주운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갔던 복어집에 복어의 효능 설명이 붙어 있었다. 어제 갔던 추어탕 집엔 미꾸라지의 효능이, 그저께 갔던 보리밥 집엔 보리의 효능이... 아니 그런데, 어느 세월에 다 먹지? 아무리 좋아도 효과를 보려면 매일 먹어야 할 텐데, 그 많은 것들 매일 먹다 배 터져 죽으면 어쩌지? 다 좋은 것들이지만, 어쩌면 사람들에겐 그보다 술 담배와 과식을 하지 않는 게 더 확실하게 건강해지는 길은 아닐까?
주식투자에 성공하는 비법!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한다(나도 그랬다). 그런데 고작 책 한 권으로 주식투자 성공 방법이 설명되는 거라면 무엇 때문에 주식투자가 어렵다고들 할까? 우리나라 사람들 전부 부자 되고 직장인은 한 명도 없겠지. 실제로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주식투자 성공비법을 찾을 게 아니라 차라리 주식투자에 확실히 실패하는 방법을 하나라도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높은 이가 아닐까.
글쓰기를 잘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큰 울림을 줄 수 있을까?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뒤로 가장 많이 품었던 의문이다.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 뭘 해야 하는지가 고민의 포인트가 되면 기껏해야 잔기술 주워 담기에 골몰하며 더 중요한 걸 깨닫지 못한다. 나는 좋은 글을 쓰려면 뭘 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좋은 글을 쓰려면 뭘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하나하나 찾아내야 했다. 자기 관리나 직장생활에서는 입버릇처럼 비야 네가티바(via negativa)를 외치면서 글 쓸 때는 그걸 까맣게 잊고 있던 나의 미숙함을 이제야 고백한다.
그러면, 좋은 글을 쓰려면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늙어 죽을 때까지 그 고민은 멈추지 않겠지만, 지금 가장 도망치고 싶은 것은 현시적인 태도이다. 지식을 내보이고 싶은 현학적인 태도뿐만 아니라, 얼핏 보면 바다처럼 모든 것을 품는 듯한 솜털 같은 떡볶이류(?)의 글을 쓰면서도 실은 자신의 사고에 다른 이에겐 없는 상위 가치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보이고 싶은 그런 글쓰기 태도. 그 현시적 태도를 나 자신도 모르게 갖게 되는 악마의 유혹에서 가장 먼저 달아나고 싶다.
어떤 글은 분명 좋은 글인 것 같은데도 읽으면서 어딘가 턱턱 걸리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는데, 그 이유를 이제는 알 것만 같다. 많이 쓰고 또 써야 글이 는다고들 말하지만, 신나게 써대기만 했다면 과연 내가 이걸 자력으로 깨달을 수 있었을까. 아직은 쓰기보다 읽기가 훨씬 더 좋아서 다행이다.
내일 출근하면, 그때 그 교육생에게 메일을 써야겠다. 이젠 그도 누군가에게는 선배일 것이다. 뭘 해야 할지보단 뭘 하지 말아야 할지를 계속 스스로 찾아 가면 좋을 것 같다고 말해야겠다. 나도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그동안 알아낸 것들을 아낌없이 나누고, 나 자신도 항상 그게 궁금했는데 이제는 고민하는 방법이라도 알 것 같다고, 여기까지라도 알 수 있도록 해 줘서 고맙다고 써야겠다.
이제 나는 건강관리, 직장생활, 글쓰기에서 모두 도망자로 살기로 결심한다. 백 날 붙잡고 있어 보았자 답도 안 나오는 "무엇을 해야 할까?" 말고,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 나를 나쁜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들에게서 하나하나 도망치는 뺄셈을 무한히 반복하려고 마음먹는다. 나의 필명처럼 한없는 방랑의 길이 되겠지만, 그러면서 조금씩 더 나은 동료가, 더 나은 글쟁이가, 그리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갈 것이다.
비야 네가티바(via negativa).
그 한마디를 가슴에 꼭 품고.
※ 이 글은 @청예 작가님의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없는 이유(Feb 18. 2022)"를 모티프로 작성되었습니다.
그 글이 없었으면 이 글도 있을 수 없었기에, 작가님께 작게나마 고마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