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를 두고 기성세대와 젊은세대가 다툰다. 그 중심에 AI가 있다.
이럴 줄 몰랐다. 이렇게 빨리 퍼지고, 이렇게 빨리 발전할지. 최근 챗GPT와 같은 생성형AI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하룻밤만 지나면 세상이 달라져 있다”고 한다. 오죽하면, ‘미래의 삶 연구소(FLI)’는 테슬라 CEO 일론머스크와 같은 유명 인사 1,000여 명의 서명을 받은 서한을 발표(2003년 3월)한 바 있다.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의 최신 버전 GPT-4를 능가하는 시스템의 개발을 6개월간 중단해야 한다”는 것. 이 새로운 기술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이제 세대갈등마저 만들어 내고 있다.
"열려라 참깨!"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에 나오는 주문이다. 어린 시절, 이 주문을 되뇌며 무언가 이루어지길 바란 적이 있다. 이후, 만화에서나 보던 AI 로봇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블레이드 러너(1982)>, <터미네이터(1984)>와 같은 영화로 보게 되었다. 세상 모르던 시절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조금 커서 본 AI 로봇은 공포스러웠다.
새로운 기술과 우리에게 미지의 세계를 상상하게 한다. 그다음은 공포와 불안을 준다. 이러한 감정이 개인을 넘어 집단이 되면 폭력이 발생하기도 한다. 러다이트(Luddite)와 테크래시(Techlash)가 그렇다. 19세기 초, 방직기가 노동자의 일거리를 줄인다며 노동자들은 기계를 파괴했다. 21세기에는 거대 IT 기업들의 과도한 영향력에 대한 반발과 적대감으로 실리콘밸리 통근버스를 공격하기도 했다.
멀리 볼 것도 없다. 과거 가스차가 나왔을 때는 담배 피우다 차가 폭발한다고 했고, 전기차가 나오자 비가 오면 감전된다는 우려가 실제로 있었다. 무식함보다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과도한 불안과 공포가 반영된 것이다. 새로운 기술은 사용자로 하여금 새로운 세계관과 문화도 만들어 낸다. 특히, 사용자가 다양할수록 세대차이로 인한 세대갈등도 자연스레 생겨난다.
SNL의 <MZ오피스>를 보면, 업무 중에 에어팟(이어폰)을 끼고 일하는 MZ팀원에게 팀장이 한 소리 하면, MZ사원은 “에어팟을 끼고 일해야 능률이 올라가는 편입니다.”라고 받아치는 장면이 나온다. 꽤 익숙한 장면이다. 하지만 딱히 할 말도 없다. 낯설고 불편하지만 충돌하지 않기 위해 피하기 일쑤다. 이렇듯, 새로운 기술은 미지에의 두려움을 넘어, 기존 규범을 붕괴하거나 접근성과 불평등과 같은 갈등을 야기하곤 한다.
AI에 대한 가장 큰 괴담은 “AI가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것이다. 이 공포감은 2016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2016년 3월, ‘세기의 바둑 대결’이라고 불리는 알파고와 이세돌 대국이 있었다. 승패를 떠나 ‘인공지능’ 키워드로 검색량이 가장 높다. (출처:네이버 트렌드)
그리고 같은 해, 세계경제포럼(WEF)의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에서 2020년까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총 71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210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전망이 이 괴담을 촉발했다.
2016년 한 해 동안 블로그, 카페/커뮤니티, 인스타그램, 트위터, 뉴스 데이터(991,723건)에서 ‘인공지능’ 연관어로 ‘이세돌’과 ‘대결’ 키워드 언급량이 매우 높다. ‘대결’ 키워드의 연관어는 ‘인류’, ‘인간’, ‘국민’이 그리고 그 연관어는 다시 ‘직업’과 ‘일자리’ 키워드로 연결되었다. 주목할 점은 다수의 부정감성어와 연결되어 있다. “인공지능이 우리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매우 ‘우려’스러우며, 이것은 ‘재앙’이며 ‘공포’”라는 언급이 다수였다.
그리고 지금, AI의 인간 일자리 대체 현상은 본격화되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2023년 보고서에서 “AI로 미국과 EU 등에서 일자리의 25%가량을 대체 가능하며, 풀타임 일자리로 보면 약 3억 개”라고 분석했다. 올 초, 산업연구원은 인공지능(AI)이 국내 일자리 327만 개(13.1%, 2022년 기준)를 대체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리고 다수의 글로벌 IT기업들은 이미 대량 해고를 진행 중이다.
기업활동의 핵심이자 근본적인 지향점은 ‘생산성’이다. AI라는 이 파괴적 혁신 환경은 작업을 자동화하고, 의사결정 프로세스와 상호작용을 변경함으로써 기존 시스템을 대체한다. 이 변화는 지극히 생산적이어서 지속될 수밖에 없고, 필연적으로 인력구조 조정이 수반된다. 이 과정에서 기성세대의 재교육을 통해 그들의 일자리를 보장할 수도 있지만, 기성세대의 변화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적응력이 높은 젊은 세대로 일자리는 교체된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것은, 실제로 젊은세대가 챗GPT와 같은 생성형AI를 많이 쓰고 있기 때문이다. 세일즈포스의 조사에 따르면,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의 65%가 생성형 AI를 사용하고 있으며, 생성형 AI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의 68%가 X세대 또는 베이비붐세대라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앱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의 조사에 의하면, 챗GPT 모바일앱 사용자는 23년 8월 24만 명에서 24년 5월 315만 명으로 크게 늘었지만, 사용자의 66%가 40세 미만이다.
기성세대와 젊은세대로 생성형AI 사용패턴을 나누는 것은 사용자를 과도하게 단순화하는 것이 아니냐고 할지도 모른다. 또한, “많이 쓴다고 잘 쓸까?”라는 질문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체로 새로운 기술의 수용은 젊은세대가 기성세대보다 더 빠르다. 또한 목적을 가지고 많이 쓰면 잘 쓰게 된다. 가치관이나 타당성에 대한 문제는 차치하고, 나이가 들고 신체기능이 변하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적응하고 활용하는 것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2022년 11월 챗GPT가 등장하고 짧은 사이에 AI와 일자리/직업의 연관성은 더 높아졌다. ‘인공지능’와 ‘AI’ 연관어 중에서 ‘일자리’와 ‘직업’ 키워드를 포함하고 있는 주요 감성어(긍부정어)를 분석해 보면, 2022년 대비 2023년 크게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업무 자동화’를 경험하며, ‘효율’과 ‘혁신’ 언급량도 늘었지만, 특히 ‘위협’이 큰 폭으로 늘어 2016년에 이어 AI로 인한 일자리 감소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주요 감성어의 내용분석을 한 결과, 세대별 이용량별로 조금씩 다른 견해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베이비붐세대와 X세대로 보이는 사용자는 AI로 인해 일자리를 잃는 것에 대한 불안감과 비관주의와 함께 “그래도 인간의 감성과 같은 고유한 능력은 여전히 중요하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는 AI 기술을 탐구하는 등 비교적 낙관적 태도를 보였다.
커뮤니케이션계의 구루(guru)인 마샬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의 저명한 저서 <미디어는 마사지다(The Medium is the Massage)>의 아이디어를 빌려서 말하자면, 미디어로써의 AI는 단순히 정보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우리의 감각과 인식에 영향을 주고,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세대갈등마저 유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기술수용이론에 따르면 새로운 기술이 세대갈등을 유발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개인화된 학습으로 편향되고, 서로 다른 AI 시스템을 사용하는 그룹 간에 정보와 관점의 차이가 벌어지고,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가 심화되어 갈등은 더 해질 수 있다. 그러나 AI가 더 큰 갈등을 만들어 낼 것으로 생각되는 이유는 일자리와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는 ‘스몸비(smombie, 스마트폰 좀비)’와 함께 ‘아랍의 봄’도 만들었다. 이처럼 기술은 인간을 속박하기도 해방시키기도 한다. 사회적 함의 없이 무분별하게 만들어 내는 트렌드연구소의 세대 구분을 유행처럼 써서 갈등이 증폭되는 것처럼, AI라는 도구에 종속되고 기성세대와 젊은세대가 협력하지 않는다면 스몸비와 같은 종속을 넘어 단절과 소외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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