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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훈 5시간전

AI, 인간과 기술의 공진화(coevolution)

“2024년이라는 세상은 인간이 만든 것인가? 혹은 AI가?”

⁕아래 글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인문학적 빅데이터 해석]

글 정호훈 소셜리스닝랩 대표/대림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진화생물학에서는 종(種)끼리 서로 영향을 주면서 진화하는 것을 공진화(共進化)라고 한다. 공진화는 유전자의 돌연변이에서부터 형질 변화에 이르기까지 생물의 모든 진화에서 관찰된다. 그 과정 중 급격한 환경 변화나 종간 경쟁 등의 이유로 어떤 종은 멸종하기도 한다. 추정에 따르면 지구 역사상 약 40억 종의 종이 진화했으며, 이 중 약 99% 이상은 대량 멸종했다고 한다. 이제 인류는 AI라는 새로운 환경에 대응해 진화하고 있다. 인류 진화의 결과는 AI와의 공진화인가? 혹은 멸종인가?

(출처: x.com Grok AI로 생성)



인간이 AI를 만들고, AI는 세상을 만든다.


AI로 인한 인류의 멸종이라니!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다. AI와 로봇에 대한 많은 신화가 인간을 위협하는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고, 그로 인한 과대망상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 미(美) 국무부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민간업체 글래드스톤(Gladstone)AI의 보고서 때문이다.


보고서는 AI 관련 주요 인물 200여 명에 대한 인터뷰를 기반으로 작성되었다. 주요 내용은 어느 시점에는 AI 시스템이 통제를 상실하고 세계 안보에 파괴적 결과를 초래하여 “최악의 경우 인류 멸종 수준의 위협될 수 있다"는 것. 이를 막기 위해 AI 성능을 제한하고 시급히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한다. SF영화의 단골 소재 거니 하고 넘어갈 수 없는 것이 그 위험성이 현실화되는 시점을 2028년으로 예측하였기 때문이다.


1950년대 ‘AI’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되고 반세기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발전된 AI보다, 최근 몇 년, 아니 며칠의 발전 속도가 더 빠르다. AI는 데이터 학습 범위 내에서만 연산할 수 있었으며, 학습 데이터의 한계와 높은 비용 등의 이유로 AI 발전은 더딜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AI는 스스로 데이터를 만들어 내고 있다.


KIST 인공지능연구단의 조정현 책임연구원은 “AI 학습용 안면 인식 데이터, 보행자 재식별 데이터, 행동인식 데이터 등 다양한 연구 과제를 수행하면서 데이터의 희소성, 편향성, 개인정보보호 이슈 등을 마주하게 되었으나 예를 들어, KIST가 개발한 VIGFace라는 ‘안면인식용 가상 데이터’는 개인정보보호 이슈 없이 실제 데이터를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시뮬레이션이나 알고리즘을 통해 가상으로 만들어지는 ‘가상 데이터’가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하였다.


또한, “실제 세계의 초불확실성, 돌발상황도 오히려 실제 데이터를 구할 수 없는 문제인 만큼, 그에 해당하는 다양한 가상데이터를 생성하고 학습데이터로 활용함으로써 AI가 예측가능한 문제 영역으로 가져올 수 있다”고 하였다. 이제 AI는 인간처럼 기존 데이터를 활용하여 응용이 가능하며, 제한적이지만 인간처럼 사고하고 추론하고 연산도 할 수 있다. ‘오늘의 가상이 내일의 현실’이 될 만큼 인간과 AI의 진화 속도는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다. 과연 인간과 AI의 공진화가 가능한 이야기인가?



AI와 인간의 공진화낙관 혹은 비관


AI의 “사고”는 인간의 사고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AI는 대량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패턴을 인식하고 예측을 수행하지만, 인간처럼 깊이 있는 이해나 유연하고 창의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추지는 못했다. 하지만 위대한 철학자 헤겔의 정(These)-반(Antithese)-합(Synthese) 개념처럼, 인간과 AI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화하고 있다.


물론 이 진화 과정에는 AI 발전에 대한 찬성론자와 반대론자의 갈등도 있다. 찬성의 이유는 생성형AI를 사용해 본 이는 모두 공감할 것이다. 쉬운 접근성, 과정의 생산성, 그리고 결과의 혁신성이 있다. 이러한 ‘효율’이 이노베이터, 얼리어답터, 그리고 대중으로 퍼지는 <기술확산모델>의 속도를 순식간에 이루어지게 하였다. 실제로 챗GPT는 최단 시간 사용자 1억 명을 돌파한 기록이 있다. 반대의 이유는 <기술수용모델>의 관점에서 설명될 수 있다. 윤리/투명/공정, 오남용, 장기 사용 시 문제점 등 수용자의 부정적인 믿음과 태도와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AI 발전에 대한 찬반 논쟁은 국민들의 대화 속에서도 나타난다. 최근 1년, 소셜 빅데이터에서 ‘AI’ 연관 키워드로 총 300만 건 정도의 콘텐츠 분석한 결과, 전반적으로 산업, 경제, 그리고 기술 동향에 대한 언급이 다수였는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협업’, ‘일자리’, 그리고 ‘범죄’ 이슈였다. 협업은 긍정적 측면에서, 범죄는 부정적 측면에서, 그리고 일자리는 긍정과 부정 모두 포함한다.



AI 연관 이슈 중 ‘코워크’, ‘협력’ 등 ‘협업’ 관련 키워드는 ‘시장’, ‘서비스’, ‘사업’, ‘산업’ 등 비즈니스 관련 키워드와 주로 연관되어 있었다. 이러한 연관어는 ‘혁신’, ‘효율’, ‘최적’, ‘효과’, ‘창의’ 등의 감성어와 함께 언급되었다. 내용은 생산성을 주제로, ‘인간과 AI의 협업’보다는 ‘비즈니스 차원에서의 협업’이 주로 언급되었다. 기업의 생존이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니, 효율과 효과와 같은 연관어가 언급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AI를 기반으로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AI 도입 등 시스템적인 측면 외에 직원의 변화도 있었다. AI 연관 이슈 중 일자리 키워드는 크게 3가지 주제로 나눠볼 수 있었다. AI가 일자리를 빼앗는 것에 대한 우려, 구조조정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AI 환경에 맞는 교육과 인재 확보에 대한 것이다. AI에서 일자리 관련 키워드는 ‘구조조정’, ‘희망퇴직’, ‘감원’ 등의 키워드와 연관되어 있고, 이러한 키워드들의 주요 연관어는 ‘인재’, ‘교육’, ‘경쟁력’, ‘윤리’, ‘해고’다. 일자리 관련 감성어는 ‘우려’, ‘위협’, ‘위기’, ‘비용절감’ 등 사람들의 걱정이 담겨 있다. AI 교육은 ‘창의’, ‘혁신’ 등의 긍정 감성어와 연결되어 있다.


AI 연관 이슈 중 범죄 키워드는 ‘딥페이크’, ‘사기’, ‘스미싱’, ‘보이스피싱’ 등의 키워드와 연관되어 있었다. 이 키워드들은 ‘영상’, ‘이미지’, ‘보이스’, ‘성범죄’, ‘성착취물’, ‘저작권’, ‘개인정보’, ‘가짜뉴스’ 등의 키워드와 연관되어 있으며, ‘위험’, ‘우려’, ‘피해’, ‘가짜’, ‘악용’, ‘불법’, ‘윤리’ 등의 부정 감성어와 연관되어 있다. 딥페이크의 부정적 측면과 함께 교육이나 의료,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산업에 긍정적인 측면도 있으나 크게 언급되고 있지는 않았다.     

AI 연관 키워드에 이렇게 다양한 키워드와 이슈가 있는 것은 ‘일자리’와 ‘범죄’와 같은 우리의 ‘안전한 일상’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이론>에 의하면, ‘안전욕구’는 물리적 안전뿐만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안전까지 포함한다. 안전욕구가 해소되지 않으면 상위 욕구 단계로 나아가기 어렵고, 신체적•심리적 불안감이 증가하며, 오히려 가장 낮은 욕구 단계인 ‘생리적 욕구’에 집중하게 될 수 있다. 이러한 불안감의 반영으로 2024년은 ‘AI 광풍의 해’가 되었다고 보인다.


물론 지나친 낙관론이나 비관론, 혹은 불안한 심리적 상태의 반영으로 비현실적인 믿음이 형성된 부분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챗GPT의 창시자인 오픈AI의 샘 올트먼이 <모든 것에 대한 무어의 법칙(Moore's Law for Everything, 2021.)>에서 밝힌 노동에 대한 개념은 비현실적이지 않다. 그는 “AI 시대에 로봇이 노동의 대다수를 대체하게 되므로, 인간은 기본소득을 이용하여 생활을 해나가게 될 것”이라는 ‘근거 있는 두려움’을 제시하였다.


공진화 개념은 ‘생물’ 간의 관계를 넘어, 상호 영향을 미치는 개체 간의 상호 작용으로 확대되었고, 이제 논의는 AI 발전에 대한 낙관이냐 혹은 비관이냐를 넘어 AI가 만든 가상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할 것인가로 바뀌어야 하는 시점이다.



하이퍼얼리티현실 세계를 압도하는 AI 가상세계


AI가 만든 가상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인식하는 것이 문제라니, “누가 가짜 따위에 속고 있나”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가상세계와 현실의 세계가 혼재된 삶 속에서 살며, 가상을 현실로 인식하고 있다. 장 보드리야르는 그의 저서 <시뮬라시옹(Simulacres et simulation, 1981)>에서 다음 개념으로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명쾌하게 규명했다.


첫째, 시뮬라크르(Simulacrum)는 "진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짜인 복제품"을 의미한다. 인스타그램 필터로 수정된 사진이 실제 모습과는 다른 가상의 이미지라는 것이다. 둘째, 시뮬라시옹(Simulation)은 "현실을 모방하고 대체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유튜브나 틱톡에서 보는 인플루언서들의 연출된 가상의 삶이 현실의 삶을 대체한다는 것이다. 셋째, 하이퍼리얼리티(Hyperréel)는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완전히 없어진 상태"를 의미한다. 인플루언서의 이미지와 현실의 삶을 혼합해서 인플루언서를 이해하며 자신의 현실과 비교하여 괴리감을 느끼지만 마치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혼란을 겪는다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점점 더 '진짜'보다 '진짜같은 것'을 더 좋아하게 된다.


즉, 장 보드리야르의 개념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처럼 인식되고, 존재하는 것보다 더 실재처럼 인식되는 ‘시뮬라크르’가 현실을 대체하고, 그 실재처럼 인식되는 이미지에 의해 현실이 지배받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처럼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세계가 실제가 아닌 정교한 시뮬레이션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원본이 없는 AI 가상세계가 현실을 압도할까?


KIST 인공지능연구단의 조정현 책임연구원은 “실제 세계를 모방하도록 가상 세계를 렌더링하고 시뮬레이션 하는 기술과, 그 과정을 뒤집어 실제 세계를 유추하는 역렌더링, 역시뮬레이션 기술로 이것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이어 “인류가 그동안 수학과 과학이라는 엄밀한 도구를 사용하여 자연에 존재하는 물리 법칙을 찾아내고 문명을 발전시켜 왔는데, 그런 인류에게 AI와 가상데이터라는 새로운 도구가 주어진 것”이라며, “이 기술은 실제 세계와 가상 세계 사이의 대응 관계를 밝혀 내고 이를 기반으로 실제 세계에 존재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도 하였다.


또한, “분명한 것은 근대 철학자들의 논의와 연구 활동이 현실 세계와 모방 세계를 바라보는 인류의 관점을 확장시켜 준 것처럼, 우리가 실제 세계와 가상 세계의 대응 관계를 명확히 이해하고 구분해야,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딥페이크 동영상의 개인정보 침해 문제, 생성형 콘텐츠의 저작권 침해 문제와 같은 기술의 부작용을 극복하고, 또 이를 해결하는 새로운 기술의 발전도 이루어 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 우리는 AI가 만드는 가상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출처: www.theplaceholdr.com)



AI와의 공진화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인간적일 것!"


공진화는 원래,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진화적 상호작용'이라는 개념으로 제시되었었다. 공생(共生)과는 달리, 공진화는 생물 간의 상호의존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설'이든 허버트 스펜서의 '적자생존'이든 핵심은 환경에 적응한 개체가 생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미 AI는 도구와 협업을 넘어, 인간의 능력 향상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이렇게 인간지능과 인공지능이 공동 진화(co-evolution)를 통해 공동 혁명(co-revolution)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가운데, AI의 발전이 대책없는 낙관론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의 해소와 인간이 만들어 내는 갈등의 이해다.


최근 오픈 AI에서는 월 200달러를 내야 사용할 수 있는 ‘챗GPT 프로’를 출시했다. 이러한 고급 AI 도구와 시스템은 비용이 많이 들고 경제적 격차로 접근이 제한될 수 있다. 접근이 제한되니 교육과 혜택이라는 리터러시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이는 극도의 디지털 격차를 유발하고 불평등과 양극화를 더 키울 수 있다. 결국 AI와 인간의 적대적 공진화 보다, AI를 잘 활용하는 인간과 AI를 활용하지 못하는 인간의 적대적 공진화가 더 중요한 이슈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편견과 갈등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인간의 '인지-태도-행동' 과정을 보면, 선택적으로 지각하고 선택적으로 감정을 이입하고 선택적으로 행동하는 편견의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인류의 역사는 N명의 개성이 유발하는 갈등으로 만들어진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불필요한 갈등으로 에너지 소모도 많았지만, 이를 통해 다양성과 창의성이라는 것도 생겨날 수 있었다.


대량의 데이터에서 추출한 패턴과 확률에 기반한 AI의 사고체계가 알려주는 가상의 세계도 중요하지만,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 그리고 그것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대다. 비록 그것이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이더라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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