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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훈 Jun 21. 2021

혹시, “당근하세요?”,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서?

"세컨슈머, 사회적 가치로 포장된 소비의 또 다른 이름인가"

혹시, “당근하세요?”,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서?

     

‘인생은 한번 뿐’이라며 <욜로 YOLO> 하라던 미디어는 이제 ‘보복소비’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불안한 경기 상황에서 이러한 충동적 소비 자극은 먹히지 않는다. 소비사회의 풍요와 낭비 대신 소비자들은 이제 지속가능을 위한 윤리적 소비, <세컨슈머>에 주목하고 있다. 당신의 중고거래도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서인가?




원시시대부터 이어온 물물교환의 재탄생


주말 서울 동묘역과 신당역 사이 골목은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황학동 도깨비 시장 때문. 꼭 살 것이 있어서 가는 것은 아니다. 골동품이나 취향에 맞는 물건들이 즐비하고 먹거리도 넘친다. 사전에 전문 지식만 있다면 바가지 쓸 걱정 없이 맘에 드는 물건을 헐값에 살 수도 있다. 한국전쟁 이후 먹고 살기위해 군수품이나 고물을 사고팔던 황학동은, 70년대 골동품에서 80년대 이후 중고품을 팔면서 대한민국 벼룩시장 메카(mecca, 성지)가 되었다.


2000년대 초에는 중고거래가 온라인으로 들어왔다. ‘중고나라(네이버 카페)’는 중고시장의 메카 자리를 이어받았으나, 주로 제품 사이클이 빠른 휴대폰이나 노트북과 같은 IT 최신제품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중고로 사고자 하는 것이 다수로, 소비 환경에 영향력을 줄만큼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개인 간 거래’는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아 돈과 물건의 흐름을 파악할 수 없어, “존재하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시장”으로 큰 관심을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최근 “당근하세요?”라는 유행어가 생길 정도로, <당근마켓>, <번개장터>와 같은 모바일 중고거래 플랫폼들이 급부상하고 있다. 맞지 않는 옷이나, 1년도 안 된 휴대폰을 사고판다. 한정판 운동화를 살 수도 있다. 운이 좋으면 공짜도 있다. 분리수거비 내기는 아깝고, 동네 주민끼리 돈 받기는 애매한 것들이 꾀나 많기 때문이다. 돈을 매개체로 거래하기도 하지만, 서로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맞교환하기도 한다. 마치 생선 한 마리와 과일 2개를 물물교환 하던 원시시대처럼.


시장(market)이라는 공간이 형성되고 유통이 전문화되면서, 물물교환이나 중고거래와 같은 개인 간의 거래는 저 멀리 사라지는 듯 했으나, 이렇게 온라인 공간에서 재탄생하였다. 특히 가치와 경험을 중시하는 MZ세대(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합친 2030)를 중심으로, 새로운 소비 트렌드-세컨슈머가 형성되고 있다. 세컨슈머(Secondsumer)는 ‘제2’를 뜻하는 Second와 ‘소비자’를 뜻하는 Consumer가 합쳐진 단어로, MZ세대의 ‘지속가능한 삶’에 대한 관심이 반영된 소비 트렌드다.



나와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윤리적 소비


“MZ세대는 ‘돈 자랑’ 하는 플렉스(flex)나, 주말마다 호텔이나 리조트에서 호캉스를 일삼는 ‘소비 천재들’인데, MZ가 중고거래를 한다고?”라는 의문을 품을 수 있다. 합리적인 의심이지만, 잘못된 질문이다. MZ의 중고거래는 단순히 돈이 없어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IMF 사태를 겪으며 “아껴야 잘 산다”는 취지의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자’의 준말) 운동을 겪은 X세대는 “우리도 그런 거 해봤다”고 할지도 모른다. 이 또한 잘못된 말이다.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대국민 운동과 세컨슈머는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MZ세대는 왜, 중고물건을 팔고 사는 등의 세컨슈머 소비를 하는가? 산업사회 과잉생산 시대에 기성세대는 환경을 파괴하며 성장했고, 그 풍요로움을 낭비로 표현했다. 하지만 물질적 풍요 속에 나고 자란 MZ세대는 기성세대에 비해 물건에 대한 소유욕이 덜하고, 지속가능한 삶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래서 MZ세대는 중고 물건을 소비하는 것에 ‘환경과 사회문제를 고려해 로컬 및 친환경 제품을 구매’하는 의미를 부여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누군가 사용한 중고 물건은 세상에 단 하나뿐이므로 명품의 희소성 혹은 한정판과 다름 아니다. 취향이 극도로 세분화된 지금, 시장에서 사라진 물건을 손에 쥘 수 있다는 것도 큰 매력이다. 집 근처에 있는 동네 주민과의 거래에서는 따뜻한 유대감마저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나에게 필요 없어진 물건을 누군가와 거래한다는 것은 ‘집콕’이 많은 요즘, 물건을 정리하며 미니멀리즘 라이프를 실현하면서도 용돈까지 벌 수 있는 훌륭한 소비활동이다.


리바이스는 최근 중고 청바지(secondhand jeans) 판매를 공식적으로 시작했다. 새 제품보다 탄소 배출량은 80%, 폐기물은 700g 정도 줄일 수 있으니, 매년 767만t의 옷을 버리는 미국에서 이런 서비스가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처럼 재활용을 의미하는 리사이클링에서 재활용품으로 물건을 만드는 업사이클링으로, 그리고 이제는 아예 ‘NO TRASH’라며 폐기물을 줄이는 프리사이클링까지, 전 세계가 지속가능을 이야기 하고 있으니, 세컨슈머 소비가 트렌드가 된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소비를 아껴 또 다른 소비를 하다


이러한 ‘윤리적 소비 Ethical Consumerism’(‘착한소비’는 말장난이다)라는 의식 있고 의미 있는 소비 활동 덕분에, 지구 환경과 다양한 사회문제가 해결될 것 같다. 하지만 소비는 사회적이면서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의 표현이다. 그래서 세컨슈머의 취지는 좋지만, ‘꿈보다 해몽이 너무 좋은’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소비 행위’라는 관점에서 보면 온갖 가치로 포장된 세컨슈머가 아닌, 소비 행태로서의 세컨슈머가 보인다.


생각해보자. 기껏 해봤자, 몇 천원에서 몇 만 원짜리 물건을 사면서 뭐 이렇게 대단한 가치를 부여할까? 사실 우리의 의사결정은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일 때가 많아서, 의사결정 전후에  부조화를 종종 느끼곤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부조화를 해소하거나 감소시키려, 자신이 선택한 결정의 장점을 의식적으로 강화시키곤 한다. 소비사회에서는 누구나 멋지게 소비하고 싶기 때문에, “잦은 가성비 소비는 자존감을 낮추는 결과”를 낳는데, 세컨슈머라는 이름에 가치를 불어 넣어 중고거래를 가치 있는 소비로 둔갑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한 환경, 동물권, 사회 안전망 등 세컨슈머에는 이유가 많다. 그러나 “소비는 소비다”. 오히려 전에 없던 소비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세컨슈머-중고거래다. 갓성비 소비와 판매자와의 흥정을 통한 유대감 형성은 (다른 소비행위와 마찬가지로) ‘아드레날린 러시’로 만족감을 느끼게 해준다. 해외 벼룩시장(flea market)에서 중고 물건을 사며 사연을 그려보는 것처럼, 대형 쇼핑몰에서 구매를 하는 것과는 다른 즐거움을 얻기도 한다. 수동적인 소비자에서 능동적인 판매자가 되는 즐거움도 한 몫 한다.


중고마켓에서 거래되는 중고 물건들은 그야말로 낡아빠진 중고품뿐만 아니라, ‘거의 새 제품’이거나 ‘미개봉 상품’인 경우가 많다. 중고의류업계의 아마존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스레드업(ThredUP)'의 인기도 사실 단순 중고가 아니라 ‘새 것과 같이 가공한, 포장된 중고품’이 이유다. 즉 지금의 중고거래는 신상 대비 사용가치는 비슷하면서도 교환가치가 매우 낮은 물건의 소비 혹은 환경을 생각하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차원의 소비가 아니라, 단순히 ‘불황형 신(新)소비 행태’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돈을 아끼려고 중고거래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쓸모없어진 물건을 팔아 집을 정리하고 용돈을 마련해 주식이나 가상화폐 등에 재테크함으로써 불안한 미래에 대한 안심을 소비하는 경우도 있다. 샤넬이나 나이키 한정판 리셀(resell, 되팔기)을 의미하는 샤테크, 슈테크나 스타벅스 스티커를 모아 받은 여행용 가방과 같은 ‘굿즈(goods)’가 중고시장에서 인기인 것도 사실 ‘선한 의도’보다는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투자 마인드로 해석할 수도 있다.



중고거래 행위가 아닌소비 행위 자체에 대한 성찰을


소비 활동이 둔화되고 기존의 경제학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소비사회는 ‘보복소비’라는 기괴한 키워드를 들고 나와 소비를 부추긴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 온택트 등 전에 없던 환경에 처한 소비자들은 세컨슈머라는 나름의 자구책을 찾았다. 중고거래의 가성비는 쉽게 지갑을 열게 하여 충동구매를 일으키기도 하며, 사진에 혹해 구매했다가 사기를 당하는 낭패를 겪기도 하지만, ‘소비가 미덕’인 시대에 소비자는 나름의 소비를 통해 적게 쓰고 큰 만족을 얻고 있다.


이러한 세컨슈머를 ‘불황형 소비와 다름 아니다‘ 혹은 ‘좋은 의도로 포장된 소비’라고 폄하할지라도 그 취지만큼은 MZ라는 특정 세대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한다. 또한, 세컨슈머는 의식 있는 척하는 겉치레용 신념으로써의 ‘윤리적 소비’가 아닌 행동이 되어야 한다. 환경을 생각해서 중고거래를 했다면, 음식보다 포장용기가 더 많은 배달음식을 주문할 때에도 생각을 해야 한다. 물론 소비에만 윤리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생산과 공급에도 윤리가 강요되어야 선순환이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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