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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훈 Dec 24. 2019

임금님의 빅데이터, 여론

[민심의 인문학] 민심으로 읽고, 여론이라 말한다.

올 한 해 대한민국은 수많은 이슈들로 넘쳐났다. 그리고 그 이슈들은 ‘편파적인 여론들’에 의해 요동쳤다. 호사가들의 말처럼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고 하니, 여론은 더 복잡하고 날이 섰다. 여론은 백성들의 관심사이며 임금님의 중요한 소통인데, 편파적이다 못해 ‘극단적인 여론들’은 결국 갈등의 골만 더 크게 키웠기 때문이다.





신문고는 임금님의 소통인가?


임금은 백성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선군(善君)이 되기 위해, 혹은 민란(民亂)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를 위해 민심을 읽고 소통하는 것은 임금에게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태평성대 시절에는 백성이 임금을 찾을 일이 없다. 그러나 하소연할 일이 많아지면 상황은 달라진다. 임금이 백성 전체와 얼굴을 맞대고 소통한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국민의 대표로 선출된 이들로 하여금 간접민주주의를 실현하고 동시에 직접 그 소리를 듣기도 한다.


솔로몬의 재판처럼 왕에게 상소를 하면 판결을 내려주는 이상적인 소통이 우리에게도 있었으니, 조선 시대의 신문고(申聞鼓)가 바로 그것이다. 조선의 태종이 중국 '등문고' 제도를 도입하여 '신문고'라는 이름으로 개칭하여 사용한 것이 시작인데, 법제화된 상소 절차에서도 억울함이 해결되지 않으면 백성이 임금에게 직접 호소하는 최후의 방법이자, 민의상달(民意上達)의 대표적인 제도였다.


목적이 옳다고 결과도 옳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신문고의 사용에는 신분과 지역 등의 제한과 절차의 복잡함, 관리의 편파적 승인 등 권리 남용, 사소한 일까지 이용하려는 무질서함에 실제로는 서울의 관리들 위주로 사용되며 설치와 폐지가 반복되었다.


이처럼 제도가 온전히 그 용도대로 사용되기는 어려운 일인데, 그렇다면 임금님은 평소 민심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여론이라는 글자의 의미에서 답을 찾을 수 있겠다.



임금님의 민심 읽기, 빅데이터


여론(輿論) 이란, ‘수레 여’에 ‘논할 론’이다. 말인즉슨, 임금이 수레 안에서 온 천지를 돌아다니며 밑바닥 무리로부터 듣는 많은 의견이다.

과거에도 여론 bigdata을 수집 crawling하고 민의를 읽고 issue monitoring & analyze 백성들과 서로 통하려고 communication & engagement 했다는 것이다. 매일 수레를 타고 전국을 돌 수는 없으니, 암행어사 등 다양한 제도적 보완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옛날의 임금님도 빅데이터를 통해 민심을 읽었다는 것이다.


빅데이터란, 다루기에 너무 큰 데이터 자체 또는 그것을 다루는 방식을 말한다. 과거의 임금님이 수레에서 논하던 것이 여론조사라는 방식을 넘어 빅데이터로 발전하게 된 것은 대용량의 데이터를 수집, 관리, 분석하는 방법론과 기술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론을 파악하는데 예나 지금이나 근원적인 2가지 딜레마가 있다.


하나는 커뮤니케이션학자 해럴드 라스웰의 SMCRE 모델(Sender-Message-Channel-Receiver-Effect)에서 알 수 있다. 메시지 message가 전달될 때는 ‘부호화 encoding’ 되고 수신자 receiver는 그 메시지를 ‘해독 decoding’ 하는데, 그 과정에서 불일치가 일어나 소통이 원활하게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임금이 수레에서 저잣거리의 이야기를 일일이 들으려 해도 모두 들을 수 없으니 특정 이야기를 들을 수 밖에 없고, 특정의 이야기가 대표성을 가질 수도 없고, 그 특정의 이야기를 누가 선별했다면 선별 과정 filtering이 완벽할 수 없으니, 온전히 소통하기에는 여러 장애가 있다. 여기에 어떤 매개체를 통해서 이야기를 듣는다면 그 문제는 더욱 복잡해질 수 있다. 결론적으로 직접 들으려 해도 다 들을 수 없으니 어느 한쪽의 이야기만 듣게 마련이고, 이것이 잘못된 판단의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담론(談論)의 문제다. 담론의 ‘(말씀)담’은 ‘말씀 언(言)’과 ‘불꽃 염(炎)’으로 이루어진 말인데, 화롯가에서 조용하게 이야기하는 것 즉, 담론이란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 비슷한 관심사를 이야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화로가 있는 사랑방에서 양반은 양반끼리 상놈은 상놈끼리 이야기를 하니 사실 모든 말과 글은 사회적이고 의도적으로 특정 담론을 전체 민심이라 한다면 갈등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임금님의 빅데이터는, ‘많이 듣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골고루 듣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있듯이, 각각의 관점, 견해, 입장, 그리고 이해관계가 담긴 수많은 말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임금이 이 수많은 말들을 누군가를 통해 듣는다면, 많이 듣고 소통하는 것보다 그것이 특정 담론이 아니라 그야말로 ‘민심’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 만큼 객관성을 담보하는 것에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여론으로 포장된 민심, 진실은 당신의 몫


전설의 정치 컨설턴트(일명 킹메이커) 리 애트워터 Lee Atwater는 네거티브 선거전략의 달인으로 "하고싶은 정치가 있으면 일단, 당선되라" 식의 논리로 여론을 주물러, 1988년 미국과 1996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서 열세의 부시와 옐친을 극적으로 당선시킨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조카이자 현대 PR의 아버지인 버네이스가 그의 저서 프로파간다 Propaganda에서 이야기 한 것과 같이, ‘심리학을 이용해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통제하고 여론을 조작해서 대중을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는 심리를 이용하면 간단하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고, 내일도 그럴 것이다. 이슈가 곧 여론이고 소통이기 때문에 민심을 가장한 여론은 언제나 우리를 이용하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여론의 객관성, 그것을 지키려는 노력은 임금 뿐만 아니라 우리 전체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정신차려야 한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사고하지 않고 잠시라도 한 눈 팔면, 여론이라는 포장지로 포장된 다양한 속임수에 금방 속아 넘어가게 될테니까.



[칼럼 후기]


1. 신문고와 온라인 청원

조선시대 신문고는 왕과 백성이 상호 연결되는 커뮤니케이션 통로였다. 하지만 신문고를 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허락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 사람의 객관성은 담보할 수 있는가? 물론 룰은 있었겠지만, 정상적으로 그 룰이 작동하지 않으면 커뮤니케이션의 오류가 생기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국민청원이 있다. 한 머리에 얼굴이 둘 있는 야누스 Janus처럼 긍부정이 함께한다. 고충이나 불편부당이 소통될 수 있는 좋은 창구이나, 그것이 민심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요, 공감하는 이가 많다고 해서 그것이 여론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물론 국민적 감정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지극히 공감이 실정법과 정서법을 혼돈할 만큼이 되면 안된다. 해외 선진 사례를 살펴볼 필요도 있다.


[MT리포트]'국민청원 선진국' 美·독일 어쩌나 봤더니

* [미국의 온라인 청원사이트] https://petitions.whitehouse.gov/

* [독일의 온라인 청원사이트] https://epetitionen.bundestag.de/epet/peteinreichen.nc.html 


그리고 다 아는 이야기지만, 온라인에서의 좋아요, 댓글, 공유는 기술적으로 조작하는 것이 가능한 시대이니 온라인에서의 모든 좋아요, 댓글, 공유를 너무 순진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2. 여론을 조사하고 다루는 사람들의 도덕

오늘날 간접민주주의에서 민심을 읽는 방식은 여론 조사를 흔히 이용한다. 하지만 <<이제 여론조사 시대는 가고… 빅데이터를 요리하라>>라고 여론조사의 대명사-'갤럽Gallop'의 짐 클리프턴 회장이 말한바와 같이, 조사 방법의 한계나 ‘의도성’ 등 다양한 요인들로 여론 조사는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불완전한 여론 조사 결과를 편파적인! 일부! 언론에서 입맛에 맞게 요리를 하면 우리는 속아넘어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이유는 단 하나다. 이슈를 감지하고 관리하는 것은 마치 모든 생명체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응하는 것과 다름 아니며, 그것은 본능과도 같은 것이다. 그것에 실패하면 생존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이슈를 관리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을 만들고 “이것이 민심”이라며 이야기하는 것이다. 어떤 조직도 마찬가지다. 어떤 제품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쩌면 이슈와 여론, 혹은 민심의 일상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혼란한 시대이며, 다양한 목적을 가진 이들이 여론을 이용하려 한다. 이제는 빅데이터가 객관적 여론이라는 면죄부처럼 걸러지지 않고 마구 사용되고 있다. 사실, 빅데이터도 여론조사와 마찬가지로 의도적으로 디자인할 수 있는데 말이다. 더 무서운 것은 빅데이터에서 가장 중요한 “해석”의 영역에 의도성이 더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상적인 이야기지만 여론을 조사하고 다루는 이들의 도덕성이 정말! 중요하다.


의도적으로 특정 담론이 나에게 유리하도록 아젠다 세팅과 프레이밍을 하여 이슈를 만들면 그에 따라 형성된 여론은 객관성을 얻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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