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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훈 Apr 28. 2022

실감 나지만 실체는 없고, 실체는 없지만 실재하는-

메타버스 metaverse

이제는 사이버(cyber)가 아니라 버츄얼(virtual)이다.


1998년, 대한민국에 아담(ADAM)이라는 가수가 등장했다. 배우 원빈을 닮은 외모 덕에 큰 이슈가 되었지만, 사실 이슈가 된 이유는 그가 사이버 가수였기 때문이다. 이 후 다양한 사이버 캐릭터들이 나왔지만, 시들했다. 이 후 20여년이 흘렀다. 이제는 사이버(cyber)가 아니라 버츄얼(virtual)이다. 컴퓨터 공간 속에만 있던 사람이 실제 현실과 섞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혼란스러운 세상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사이버(cyber)는 "전자 통신 네트워크, 특히 인터넷과 연결된(connected with electronic communication networks, especially the internet)", 버츄얼(virtual)은  "인터넷 상에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made to appear to exist by the use of computer software, for example on the internet)"의 의미 - Oxford Dictionary




실감 미디어의 시대

2017년 뉴욕의 장난감 박람회에서 바비(Barbie) 인형으로 유명한 마텔(Mattel)사는 인공지능 홀로그램 바비인형 ‘헬로우 바비 홀로그램(Hello Barbie Hologram)’을 선보였다. 그동안 마텔사는 이 예쁜 물리적인 인형에 카메라를 장착하거나, 말하게 하는 등 다양한 기술을 접목했었다. 하지만 헬로우 바비는 그동안의 바비와는 전혀 다르다. 단순한 인형이 아니라, 인간과 소통하는 가상의 친구가 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가상의 실체’와 ‘소통이라는 행위’다. 우리는 지금 홀로그램이나 프로젝션 맵핑 등의 기술을 통해 죽은 가수를 살려내 콘서트를 하는가 하면, 패션쇼, 신제품 발표회, 혹은 집회마저도 가상으로 만들어내 소통하는 실감 미디어(Realistic Media) 시대를 살고 있다. 2021년, 순천향대학교는 SK텔레콤의 ‘점프VR’ 플랫폼을 통해 마련된 가상공간에서 입학식을 했다. 학생들은 학교를 구현해 만든 맵 안에서 자신의 아바타를 생성하여 참여했다. 세계 최초다.


이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바로 실감 미디어 덕택이다. 실감 미디어란 사용자 만족도 향상을 위한 몰입감과 현장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인간의 오감 및 감성정보를 제공하는 차세대 미디어를 의미한다. 실감미디어는 융합된 미디어로 고품질 정보를 경험하는 수준(융합미디어)에서 맞춤형 정보를 입체적으로 경험하는 수준(스마트 실감 미디어)을 넘어, 오감으로 상황을 인지하는 수준(네오스마트 실감 미디어)에 이르고 있다.


이제 ‘가상현실’은 영화 속에서나 존재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다. HMD(Head Mounted Display, 머리에 장착하거나 안경처럼 착용하여 사용하는 모니터)와 같은 디바이스를 통해 360°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과 AR(Augmented Reality, 증강현실)에 실감효과를 결합한 인터랙티브 실감 콘텐츠를 보면 누구나 가상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Hologram Barbie is your new personal assistant - CNET youtube



인간이 만들어 낸 또 다른 인류, ‘가상인간

인류의 역사는 어찌 보면,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소통하려는 도전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문자와 음성을 더 멀리 더 오래 소통하기 위한 편지와 전화, 그리고 각종 미디어의 출현이 이를 증명한다. 그리고 모바일과 소셜미디어는 이를 복합적으로 구현했다. 네트워크상에 존재하는 자신의 아바타로 소통하며 시공간의 제약을 완전히 극복한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시공간의 극복을 더욱 가속했고, 급기야 메타버스(metaverse)가 등장했다. 메타버스는 ‘초월’을 뜻하는 메타(Meta)와 '(현실)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다. 이 말은 미국의 소설가 닐 스티븐슨이 그의 소설 <스노 크래시(Snow Crash, 1992)>에서 ‘아바타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하는 3차원 가상 세계’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이제 메타버스는 소설 속에서 우리의 일상으로 완전히 들어왔다. 가상과 현실이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메타버스가 주목받고 활성화된 것은 팬데믹 장기화 상황에 당연한 결과다. 메타버스를 구축하고 콘텐츠 제작을 쉽게 해주는 게임 엔진 등의 기술 발전과 더불어 가상 세계에서 자신의 또 다른 개성을 표현하고 싶은 사람들 덕분에 메타버스는 교육에서 상거래까지 무한 확장되고 있다.


하지만, 헬로우 바비처럼 결국 중요한 것은 가상과 더불어 소통이라는 키워드다. 소통을 통해 가치가 생성되지 않으면 가상이라는 것도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가 공존하는 시대에, 소통의 주체인 사람도 현실의 사람과 가상의 사람이 공존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디지털 휴먼, 메타 휴먼, 사이버 휴먼, 버추얼 휴먼 등으로 불리는 가상의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상업적 용도의 ‘가상 인플루언서(Virtual Influencer)’로 인해 본격화 된다.


일본에서 이케아 광고 모델로 큰 인기를 끈 가상 인플루언서 ‘이마(Imma)’가 있다면, 한국에는 신한카드 광고 모델 ‘로지(Rozy)’가 있다. CF 속 모델이 ‘가상인간’이라는 것이 알려지며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로지는 올해만 8건의 모델과 100여 건의 협찬을 계약했다. LA 출신의 브라질계 미국인으로 설정된 미국의 가상 인플루언서 릴 미켈라(Lil Miquela)는 글로벌 브랜드들의 모델로 활약하며 올 한 해 수익만 133억 원을 벌었다고 한다.


[ 좌로부터 imma / miquela / rozy (출처: 각 인스타그램) ]


무엇이 가상이고, 무엇이 가상이 아닌가?

로지와 같은 가상 인플루언서 시장은 2022년 17조 원이 될 것이라 한다. 이들의 인기 요인은 계약에서 촬영과 관련한 모든 문제들을 컨트롤하기가, 실제 인간에 비해 매우 쉽다는 것이다. 팬데믹으로 인한 집합금지로 촬영이 금지될 일도 없고, 무한대로 수정도 가능하다. 사생활이나 과거의 품행 때문에 스캔들에 휘말릴 필요도 없다. 무엇보다 대중이 원하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반영해서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매력이다.


컴퓨터그래픽과 소프트웨어가 더 발전하며, 가상 인플루언서도 보다 인간적으로 보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인격과 개성이다. 가상 인플루언서의 SNS 대화를 보면, 실제 인간들이 가상 인간에 감정을 이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로봇이 인간을 어설프게 닮을수록 오히려 불쾌감이 증가한다는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 때문에 호불호도 있지만, 가상인간에 부여된 인격과 개성에 대체로 긍정적으로 반응한다.


영화 HER에서는 실제 인간이 인공지능 OS와 사랑을 나눈다. 실체(實體)는 없지만 실재(實在)하기 때문이다.


실체가 없이 OS와 대화만 하지만, 인간은 음성을 사용하면 그게 무엇이든 대상을 의인화하기 때문에 실재하는 것으로 느끼는 것이다.

또한, 대화 속에서 인격과 개성을 느끼므로 실체가 있는 인간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남녀노소 선호하는 젊은 여성의 목소리로 대화를 하니 호감과 친밀감마저 쉽게 형성된다.


최근 한 시각특수효과 회사가 2조 원에 인수된 사례가 있는데, 메타버스의 실감을 위해서라고 한다. 이러한 기술이 더 보편화 되어 가상인간이 지금 보다 훨씬 더 인간적인 외형을 갖춘다면, 가상인간과의 소통에 이질감은 사라질 것이다. 권투선수는 ‘가상의 적’을 머릿속에 그리고 쉐도우복싱(shadowboxing)이라는 훈련을 한다. 여기서 가상(假想)이란, ‘사실이 아니거나 사실 여부가 분명하지 않은 것을 사실이라고 가정하여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가상인간을 더 이상 가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비몽사몽의 시대,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지금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모든 것이 가상으로 바뀌고 있다. 가상현실, 가상화폐 그리고, 가상인간까지. 가상 아나운서가 이야기하는 뉴스를 듣고, 가상 오피스에서 일한다. 언택트 시대에 이러한 가상의 확장은 지속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지금, 우리는 이 시공간을 뛰어넘는 ‘가상’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사실, 우리는 이미 소셜 환경에서 ‘가상의 나’로 ‘가상의 타인’과 소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소셜 상에서 소통을 위한 ‘가상의 나’는 현실 세계의 자신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프사(프로필 사진) 정도만 갖춰도 되었다. 하지만, 현실과 가상이 혼합된 세계에서는 현실 세계의 자신과 완전히 분리된 별도의 자신이 필요하다. 현실 세계 관점에서는 실체 없는 가상의 인간이지만 가상 세계에서는 엄연히 실재하며 실체가 있는 또 다른 가상의 나 말이다.


그래서, 소셜 환경에서 ‘가상의 나’가 소통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메타버스 환경에서의 가상 인간은 ‘존재’에 더 초점이 맞춰진다. 그리고 우리는 현실에서 충족되지 못한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현실 세계의 자신보다 더 멋지게 이 존재를 만들어 내고, 가상 세계에서 소비를 지속할 것이다. 종국에는 현실 세계의 나와 가상 세계의 나는 그 간극이 커질 것이고, 현실은 가상에 지배당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도대체 가상과 현실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꿈은 아니지만, 꿈 같이 느껴진다’는 비몽사몽(非夢似夢)과 같은 시대다.


프랑스의 저 유명한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명제, “인식만이 실체다”와 같이 비현실이 현실을, 인식이 실체를 압도하는 시대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술과 활용의 문제에 앞서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문제, 즉 나의 정체성과 현실 인식 능력에 대하여 먼저 성찰해야 한다. 정체성은 내가 어디에 발을 딛고 있는지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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