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영혼은 안녕하십니까?

눈 뜨고 코 베이기

by Vainox






우리의 시대는 참 빠르게 지나간다.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KTX로 단 2시간 30분, 오늘 주문한 물건은 내일 아침이면 도착하고, 편지는 이메일이라는 형태로 순식간에 전송된다. 인터넷 영상은 배속 기능으로 빠르게 넘기며, 대화조차 이모티콘 하나로 끝날 때가 있다.


기다림은 곧 불편함이고 느림은 사치다.

이제는 시간을 한가하게 쓰는 일조차, 바쁜 현대인들에겐 죄악처럼 여겨진다.


고유한 감각과 예술성이 필요한 창작조차 예외는 아니다.

이제는 키보드 몇 번 두드리고 마우스 몇 번 클릭하면 작품이 나온다. 예술은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너무나 쉽게 생성되고 소비되는 일회성 미디어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인공지능 덕분에 누구나 쉽게 창작할 수 있고, 그 문턱이 낮아진 건 좋은 변화라고.


그러나 나는 말한다. 아니, 꼭 말해야겠다.

인공지능으로 생성된 창작물은 누군가의 영혼을 도둑질한 결과다.


인공지능. 즉 AI는 수많은 학습 데이터를 바탕으로 우리와 대화하고, 이미지를 만들며, 글을 완성한다.

편리함과 기술의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경이롭게만 보였던 그것의 실체는 우리 모두의 그림과 문장을 짓밟고 세워진 도둑의 성에 불과하다. 단단해 보이는 데이터의 땅은 결국 창작자들의 허락 없이 수집되고 사용된 침탈의 흔적일 뿐이다.


창작은 작가의 인생과 숨결이 담긴 영혼의 조각이다. 만일 당신이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본 경험이 있다면, 하루 종일 고민한 끝에 겨우 써 내려간 문장 하나의 가치, 날밤을 새 가며 그려낸 그림에 담긴 마음의 무게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지켜내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바로 저작권이라는 이름의 울타리다. 쉽게 말해, 창작자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사회의 이다.


인공지능의 무단 학습은 단순히 법을 어기며 개인의 권리를 빼앗은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기술과 문화를 훔치는 일이다.


예를 들어 보자. 내가 온 마음을 담아 빚어낸 창작물이, 어느 날 기계가 찍어낸 복제품으로 대량 생산된다고 치자. 그런데 그 수익은 나에게 돌아오지 않는다. 그 상황에서 "내 작품이 유명해졌으니 기뻐해야지."라며, 단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복제가 쉬워질수록 창작자의 고유성은 사라지고, 비어진 자리엔 배고픈 통장이라는 현실만이 남는다.

물론 "창작은 배고픔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창작해보지 않은 자의 헛소리다. 설령 그 말이 맞다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살아있는 자의 이야기다. 게다가 방범창을 달고, 울타리를 보강해도 자꾸 도둑이 든다면? 작가는 점점 더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지 않게 된다. 그리고 결국, 살기 위해 펜을 놓는다.


인공지능의 학습은 철저히 '인간의 문화' 위에 세워진다.

그리고 그 원형이 사라지는 순간, 인공지능의 발전도 끝나게 될 것이다.



나 역시 편리함의 이름 아래 누군가의 영혼을 훔치고 있던 건 아닐까.

이제는 그 질문 앞에 멈춰 설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