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이름의 연대기

이야기의 진심은 어디에 남는가

by Vainox





어떤 파동은 말보다 먼저 시작된다.

그건 누군가의 마음 안에서 오래 머물다, 겨우 문장이라는 형태로 세상에 닿는다.


이야기란 그렇게 시작된다. 수백 번 고뇌하고, 품었던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한 문장을 완성한다.

그렇게 쓰인 글은 조용할 수 있다. 화려하지도 않고, 주목받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안에는 그 사람의 시간과 감정, 그리고 말이 되지 못한 맥박이 들어 있다.


그런 문장을 나도 써본 적이 있다. 꾹 눌러쓴 단어 하나, 수십 번을 지우고 다시 고친 표현 하나.

내 영혼을 조금씩 떼어내어, 나만의 리듬을 새겨 넣은 글을.


큰 파장을 갖진 못해도 누군가에게는 전해지길 바라며


세상에 남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내 말 같지 않은 울림이 낯선 어딘가를 떠도는 기분을 느꼈다.

분명 영혼의 색과 리듬의 속도는 달랐다. 그러나 본질의 형태는 어쩐지 내 기억 깊은 곳과 닮아있었다.


도둑맞은 영혼은 자신의 결을 잃는다. 진심 없이 만들어진 울림은 쉽게 사라진다.

말은 누구나 흉내 낼 수 있다. 그러나 공허한 영혼은 빠르게 공중으로 흩어진다.


삶을 쓴다는 건 자신의 서명을 세상에 남기는 일이다. 그 작업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혼자일 때 가장 흔들리고, 대체로 쓸모없어 보이는 과정들 속에서 겨우 진짜 문장이 나온다.


고통을 지나온 사람은 안다.


그런 문장은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