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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알바 1일차 후기>

by 김동균


이래저래 이력이 붕뜬 기간이 돼서 쿠팡 알바를 뛰고 있다. 뭐 이런 거까지 해야 되나 싶기도 했는데, 내가 뭐라고 이런 거 하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라는 생각에 과감히 쿠펀치 앱을 깔고 가장 가까운 곳, 가장 쉬운 일로 신청을 했다.


쿠펀치 앱은 근무 지원부터 출결까지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앱인데, 처음에 설치를 하면 주간과 야간, 심야, 오전 숏, 심야 숏 다섯가지 타임 중에 선택을 한다. 그 다음에는 입고, 출고, 허브, 재고관리/검품 등의 업무를 선택하는데, 이 중 입고 업무가 초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돼 있어서 신청을 했다. 그리고 집주소를 입력하면 통근버스 정차 위치를 기준으로 가장 가까운 센터들을 안내해주는데 나는 통근버스 탑승 시간이 가장 늦은 부천2센터로 선택했다.


한 번에 최대 3일까지 근무 신청이 가능하고, 지난 일요일에 화수목 3일 연속으로 신청을 했다. 신청을 한다고 바로 승인되는 것은 아니며, 출근 전날 오후 늦게서야 근무가 확정됏다. 그러니까 난 월요일 저녁 무렵에나 확정이 됐다는 것. 요새 이런 저런 일들이 순탄하게 풀리지 않아서 설마 이것조차 떨어지나 했는데, 그런 건 아니었고 아직 나는 사회적으로 쓸모가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받게 되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출근 전날 숙면을 취한 뒤, 새벽 다섯시 반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했다. 통근버스의 탑승시간은 6시 45분이었고, 부지런한 사람들 여럿이 이미 먼저 줄을 서 있었다. 40분이 되니 통근버스가 저 멀리서 다가왔는데, 그다지 안락하진 않은 25인승 소형버스였다. 탑승을 할때는 원더셔틀이라는 앱을 깔아서 그때그때 큐알코드를 발급받고 승차 인증을 해야 한다. 사람들이 줄지어 타니 버스가 거의 찼다. 버스는 총 세 군데를 정차해서 오는데 내가 타는 곳은 두 번째였다. 세 번째에 도착하니 자리가 모자라 타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개별로 택시를 타고 와서 영수증을 내면 비용 처리를 해준다고 했다.


센터 근처로 도착하니 차 밖으로 희한하게 생긴 건물이 보였다. 투박하게 생긴 큰 건물 옆에 뱅글뱅글 돌아 올라가는 꽈배기같은 도로가 달려있었다. 그런 건물들이 몇개 보였는데, 쿠팡 뿐만 아니라 다른 물류 회사들도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탄 버스가 그 나선형 도로를 따라 옥상까지 올라갔다. 옥상에서 사람들이 내리자 나도 따라 내렸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하는지 몰라서 사람들을 따라 내려갔다. 총 6층짜리 건물이었는데 처음 온 사람은 2층에 가야했다. 이걸 안내해주는 사람이나 공지가 없어서 각 층에 붙어있는 안내문을 보고 눈치껏 따라가야 했다.


도착해서 알게 된 사실. 내가 신청한 부천2센터는 FC, 프레시센터, 정식명칭은 신선센터였다. 로켓프레시 상품을 다루는 곳이라 냉장, 냉동 창고가 있었다. 3,4층이 냉장, 5,6층이 냉동이었는데, 1,2층의 정체는 아직까지 모른다. 1층은 아마도 배송이 나가는 곳이 아닐까 짐작하고, 2층은 장비 지급과 HR사무실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다른 층의 창고같은 공간이 옆에 있는 걸로 보아 뭔가 역할이 있긴 있을 것이다.


첫 출근을 하면 HR사무실 키오스크에서 바코드가 찍힌 간이 사원증 같은 것을 발급받는다. 이걸 발급받은 뒤 데스크에서 출입증을 또 따로 지급받는데, 간이 사원증은 개인 소지, 출입증은 퇴근시 반납하도록 돼 있었다. 이 절차를 마치면 사무실에서 나가서 방한복과 방한화를 지급받는다. 보통 체격의 남성들은 대체로 2XL, 여성들은 XL을 주문했다. 혹독한 다이어트끝에 살을 뺀 나였기에, 과감히 2XL을 주문했다. 안 맞으면 바꾸면 되지. 락커룸에선 옷을 갈아입을 필요도 없이 입고 온 옷 위에 방한복을 덧입으면 됐다. 다행히도 보통 체격의 남성에 맞춘 그 방한복이 내게도 꼭 맞았다. 이런데서 살 뺀 보람을 찾고야 말았다! 봐라 나도 이제 보통 체격의 남성의 반열에 들었단 말이다! 방한화는 평소에 신는대로 270을 달라고 했는데, 좀 헐렁했다. 다음 날은 265로 달라고 해야겠다 싶었다.


첫 출근자는 간단한 교육을 받는다. 안전, 보안, 성폭력 교육 등이었는데 대충 2시간이 소요 됐다. 앉아서 2만원을 번 것이다. 이런 개꿀이 있나. 다른 후기를 보면 사람들이 집중 안 하고 딴짓 한다는데 다들 모범생인건지 잘 경청했다. 가장 중요하게 강죠하는 건 작업장 안에 핸드폰을 들고 가서는 안 된다는 거였다. 작업자들의 안전사고 문제 때문이라고는 하는데, 꼭 그것만이 아닌 거 다 아시잖아요.


교육이 끝난 뒤 신청한 파트에 맞춰서 안내자들이 왔다. 나는 입고 업무였는데, 안에서는 IB라고 불렀다. 왜 바깥과 안에서 다르게 말하는건데. 정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 명찰은 전부 영어 이름이 써 있었다. 안젤라, 올라프, 대니, 이걸 죄다 한글로 써놨다. 도대체 왜. 그러면서 나는 왜 동균님이라 부르는데. 나도 발렌시아라고 불러라 이것들아.


이동한 곳은 3층이었다. 신선식품을 보관하는 냉장 창고였는데, 업무에 본격적으로 투입되기 전에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정말 간단했다. 우선 PDA를 지급받고, 사용법을 들었다. 그 다음은 PDA를 이용해 상품을 진열하는 법. 이게 다 였다. 뭔가 다른 일들도 해야 할 거 같았는데, 첫 날 하고 도망갈지도 모를 초심자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알려줄 필요는 없다는 암묵적인 학습효과가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창고 안에서 가장 중요한 단위는 토트다. 상품들의 주문 품목과 주문량은 일정치 않고, 그땍때 다르다. 전 날에 왕창 팔렸던 상품이 오늘은 하나도 안 팔릴 수도 있다. 그럼 이 재고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단일 품목 몇 박스가 아니라, 그 때 그 때 수요에 따른 품목의 입고량을 하나의 단위로 묶는 것이다. 이걸 토트라고 한다. 그래서 당장 시금치 60봉, 배추 20봉을 진열해야 한다면 각각이 한 토트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한 토트가 꼭 같은 품목인 것도 아니다. 한우 양지 200그램 2팩, 새송이 버섯 10봉, 상추 20봉이 한 토트가 될 수도 있다. 이것은 주문에 따른 출고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이걸 누가 가르쳐주진 않았고, 하루 헤매면서 일을 하고 알게 된 사실이다. 불문부답. 물어보지 않으면 절대 먼저 설명해주지 않았다. 작업을 하는데 생소한 용어들이 간혹 귀에 들리는데 당연히 안다는 듯, 혹은 몰라도 상관없다는 듯 전달되는 것들이 있었다. 역시 일용직들에 대한 대우란.


창고 내부는 제법 추웠다. 널찍한 공간에 진열대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고, 진열대에는 숱한 상품들이 놓여있었다. 진열대마다 구역과 라인 번호가 크게 붙어있었고, 진열대는 6층까지 있었다. 나는 검수가 끝나 창고로 들어온 상품들을 토트별로 카트에 싣고 가서 낱개로 진열하는 일을 하면 됐다. 카트에 상품을 실을 때 유의해야 할 점은, 토트 내 상품의 숫자를 잘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열개 묶음 우유 일곱박스가 있는데, 토트 딱지는 하나만 붙어 있다. 그러면 다른 토트들과 구분해서 일곱 박스를 한 번에 다 싣고 가야 하는데, 딱지가 붙은 한 박스만 싣고 가면 나머지 여섯 박스는 정체가 모호해지는 것이다. 이걸 잘 신경써야 했다.


상품은 진열대 빈 곳에 알아서 잘 진열하면 됐다. 축산 구역과 큰 박스 상품 구역이 따로 있다는 것, 맨 아랫줄은 채소들로 채워야 한다는 것, 한 칸에는 세 종류의 상품만 진열할 수 있다는 것만 알면 됐다.


일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각 칸에는 위치 바코드가 붙어있었다. PDA로 토트의 재고확인 후 진열로 들어가 토트를 다시 한 번 찍고 박스 안의 개별 상품의 바코드를 찍고 진열칸의 위치 바코드를 찍고 상품을 진열한 뒤 진열한 숫자를 입력하면 끝이었다. 한 칸에 진열이 다 안되면 다른 칸을 찾아야 했는데, PDA로 근처 진열칸 아무데나 바코드를 찍으면 진열할 수 있는 곳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이렇게 상품을 다 진열하고 나면 다시 재고확인으로 토르에 남은 상품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토르를 마감하면 됐다. 이 일을 계속 반복하면 됐다.


점심은 11시부터 12시까지였는데, 업무는 10시 55분에 마감하도록 했다. 정시에 식당에 갈 수 있게 해주는 거였다. 식단은 그날 그냘 바뀌는 정식 메뉴와, 컵라면+삼각김밥, 컵밥, 끓여먹는 라면, 샌드위치 간편식 중에서 선택이 가능했다. 첫 날이니만큼 정식을 먹었는데 그 날은 참치비빔밥이었다. 맛은 딱 대학교 학식 수준이었다. 먹을만하다 정도.


식사 후에는 각 층 휴게실에서 각자 알아서 쉬면 됐다. 그때는 휴대폰 사용이 가능했다. 그런데 건물 내부에서는 휴대폰이 잘 안터졌다. 답답해서 안락의자에 앉아 눈을 붙였다.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오전 동안 크게 한 일이 없어 피곤할 것도 없었다. 방한복은 덥고 무거웠다. 잠시 울적한 기분이 들었지만, 내 삶이 좀 더 다채로워지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려 했다. 지금 정체기에 들어온 걸수도 있지만, 어떤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내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려 했다. 최대한 건조하게 지금 상황을 바라보려 했다. 휴게실은 어두웠고, 사람들은 조용했다. 자판기에서 뽑은 음료수 캔 따는 소리가 어쩌다 한 번씩 정적을 깼다.


점심 시간이 끝나고 다시 작업장으로 모였다. 창고 앞 검수장에서 사람들이 모였다. 감색에 주황색 줄이 들어간 방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같은 옷 입은 사람 수십명이 투박한 공간에서 무리지어 서 있으니 오징어게임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들도 돈을 벌려고 거기에 참가했었지. 딱 한 사람만 살아남는게 문제였지만. 여기가 그런 비인도적인 막장은 아니니 비교할 건 아니지. 여기는 나름대로 열심히 자기 삶을 책임지려고 모인 사람들이니까.


최고 관리자로 보이는 사람이 작업에 들어가기 전 간단한 전달사항을 알려주고 체조를 시켰다. 약간의 갈굼도 있었다. 작업 속도가 떨어지니까 좀 더 올려달라는 말. 여러분이 열심히 일을 해야 회사도 돈을 벌고 여러분께도 돈을 줄 것 아니냐는 말. 아마 이 사람도 위에서 한 소리 들었으니 현장에서 이렇게 말을 하는 거겠지. 그렇게 얘기해도 뭐. 소속감없는 사람들이 태반일테니 소귀에 경읽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단기 고용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아시겠어요?


점심 먹기 전 했던 일을 오후에 똑같이 진행했다. 루틴한 일이었지만, 품목이 다양해서 지루하진 않았다. 빈공간이 없어서 돌아다니다 찾아내면 나름대로 희열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어차피 첫날이라 모든 게 신기해서 그런 거 아니겠어. 반복되고 익숙해지면 지루하고 지겨워지겠지.


오후에는 식곤증 때문인지 스피커로 음악이 나왔다. 블랙핑크의 뛰어가 나오는 걸 보니 DJ가 최신 유행에 제법 민감한 듯 했다. 연식이 오래되지 않은 템포 빠른 음악들이 계속 나왔는데 블랙핑크의 뛰어가 유독 반복됐다. 선곡자가 노래방에서 부르려고 연습용으로 픽한게 아닌가란 의심이 들었다. 그런데 그 뮤직비디오는 봐도봐도 적응이 안된다. 내가 늙어서 그런건가 싶었는데, 어릴 때 봤어도 이상하다 느꼈을 게 분명하다.


그렇게 남은 다섯 시간을 보냈다. 나는 이런 반복작업을 할 때 열심히 해야 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런데 눈 앞에 (물리적인) 일감이 쌓여 있는 것을 굉장히 불편하게 느낀다. 그게 화수분처럼 계속 생기는 일인데 당장 눈 앞에 있는 걸 빨리 치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법 집중해서 하게 된다. 나는 단순반복작업에 최적화된 인간인 것이다. 내가 하는 모든 업무가 전산으로 다 기록되는데 다섯 시간 동안 나를 찾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걸로 봐서는 내가 별 문제 없이 일을 하고 있는게 분명했다. 중간 중간 눈치껏 쉬면서 다섯 시간을 보냈다. 시간은 잘 흘러갔다.


4시 55분이 되니 업무를 마감하라는 공지가 스피커에서 들려왔다. 작업 마무리부터 퇴근 준비 완료까지를 업무 시간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런 혁신적인 기업 문화라니! 요새 다른 데도 다 그런가요. 제가 옛날 사람이라 이런 분위기에 영 익숙치가 않습니다.


아침에 모였던 2층으로 가서 방한복과 방한화, 출입증을 반납하고, 곧장 퇴근하면 됐다. 옥상으로 가서 나를 기다리는 아침의 그 통근 버스에 다시 올랐다. 통근버스는 출근한 길을 반대로 따라 나를 집 근처까지 데려야 주었다. 바깥이 우중충했다. 내일은 비가 쏟아진댔다. 하루를 허투루 소비하지 않았다. 뭐라도 한 내가 자랑스러웠다. 비가 쏟아지는 내일도 오늘처럼 하면되겠지. 먼 미래는 생각지 말자. 일단 지금은 오늘을 책임지는게 더 급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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