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날 근무 확정은 상당히 늦게 됐다. 입고 업무 신청자가 꽉 차서 1차 대기자로 분류가 됐다는 문자가 왔다. 혹시 다른 센터로 지원하겠냐는 안내 문자가 뒤따라 왔는데 인천 저 멀리 있는 곳이라 거절했다. 안 되면 내일 하루는 쉬어야지 생각했는데, 저녁 8시가 넘어 업무 확정 문자가 왔다. 역시 참고 기다리면 되는 것인가.
아무리 단순하고 신체 부담이 적은 업무라도 몸을 꽤 움직였던터라 첫 날 퇴근하고 나서 허리가 좀 뻐근했다. 자고 일어나니 좀 괜찮아졌다. 피곤한 느낌도 별로 들지 않았다. 체력이 많이 달리지 않을까 싶었는데, 의원실을 퇴사하고 나서 쉬면서 운동을 꾸준히 했더니 이 정도 육체노동은 버틸 수 있는 신체 조건이 완성돼 있었다. 첫 날 첫 인상이 중요한데, 탈주할만큼 힘든 일은 아니다 싶었다.
둘째날 출근길에는 예보대로 비가 퍼부었다. 첫날과 달리 통근버스는 빈 자리가 있었다. 단기 알바, 일용직은 이런 거구나란 걸 새삼스럽게 알게 됐다. 센터 옥상에 도착하니 그래도 한 번 와본 곳이라고 제법 능숙한 척 하면서 사람들의 꽁무니를 쫓지 않고 2층으로 내려갔다.
둘째날은 교육이 없으니 바로 작업장으로 가야했는데, 입고 업무의 집결지는 4층이었다. 방한복과 방한화를 지급받고 잠시 쉬었다 4층으로 가니 또 오징어게임처럼 사람들이 무리지어 서 있었다. 근무 시작시간이 되니 총관리자 그 사람이 업무에 대한 공지를 전달했다. 하루 지났는데 그래도 간간히 눈에 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첫 날은 냉장 파트였는데, 둘째날은 냉동 파트로 투입됐다. 냉동은 5.6층이었는데 5층으로 가라고 했다. 파란 조끼를 입은 젊은 남성이 간단하게 할 일에 대해 알려주었다. 냉동고는 냉동고 답게 추웠다. 들어가기 전에 방한모와 핫팩을 지급받는데, 핫팩은 원하는 만큼 챙길 수 있었다. 나는 두 개를 챙겼다. 그런데 방한모의 숫자가 달려서 내꺼는 나중에 구해와서 주겠다며 일단은 들어가서 토트를 찍고 업무를 진행하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일단은 냉동고로 들어갔는데, 어제의 그 냉장고 따위와는 비교도 안되는 한기가 온 몸을 파고 들었다. 한기가 밀려들어 콧 속을 얼려버리니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대에서 혹한기 훈련을 진행하고 나서 가장 먼저 했던 결심은, 만약 겨울에 전쟁을 해야 한다면 총을 입에 물고 자살해버리겠다는 거였다. 그 정도로 추위라는 건 끔찍했는데, 그 끔찍한 걸 오늘 여기서 다시 만나고야 말았다. 심지어 방한모도 없는 상태에서 일을 하라니 이건 인권위 제소감이다. 두고보자, 이것들아. 니들 내가 누군지 알아? 누구긴 최저시급이 아쉬운 일용직 알바죠.
냉장쪽은 가끔 바닥에 질척이는 물기때문에 좀 짜증이 났는데, 냉동은 바닥이 너무 미끄러운게 문제였다. 발에 힘을 주고 중심을 잘 잡지 않으면 다치기 딱 좋겠다 싶었다. 업무의 루틴은 냉장 쪽과 다르지 않았는데, 진열의 난이도가 달랐다. 대용량 포장들이 많아서 진열칸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고, 죄다 냉동이라 단단하고 유연성이 없다보니 진열칸이 있어도 많은 수량을 넣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토트를 비우는 속도가 확실히 더뎠다. 어느 정도는 숙련도의 문제긴 하겠지만, 냉장 파트와 속도가 다를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반면 아주 확실한 장점이 하나 있었는데, 냉동고 업무는 45분을 일하면 반드시 15분을 쉬도록 돼 있었다. 이게 쉬는 시간이 많다는 장점 외에도 시간이 잘간다는 큰 장점이 있었다. 15분 몸을 녹이고 다시 들어가서 자리 잡고 일을 하다보면 45분이 금방 지나갔다. 전날 냉장 파트와는 시간 지나가는 체감이 달랐다. 카트를 끌고 돌아다니다 PDA에 찍힌 시계를 한번씩 확인하면 10분 씩 훌쩍 훌쩍 지나서 벌써 다음 쉬는 시간이 되었다.
첫번째 쉬는 시간에 젊은 관리자 친구가 방한모를 갖다주었다. 방한모를 쓰고 냉동고를 들어가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냉동고를 들어가니 하얀 눈발이 날렸다. 실내에 왜 눈이 내리나 싶어서 위를 올려다보니 천장에 성에가 잔뜩 껴 있었다. 아마도 공기의 흐름과 냉동고 모터의 진동 같은 것 때문에 얼음 가루가 조금씩 떨어지는게 아닌가 싶었다. 투박한 냉동 창고 안에 눈이 내리는 모습은 그 아이러니함 때문에 오히려 낭만적이었다.
첫 날에는 나를 건드리는 사람이 없었는데, 둘째날은 관리자가 나를 찾았다. 상품 진열을 똑바로 다 하고 토트 마감을 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실 내가 똑바로 했는지 안했는지 기억이 안났다. 너무 추워서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솔직히 말했더니 자신이 확인해보겠다며 더 말 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쉬는 시간 화장실에 가서 혹시 내 인상이 더러웠나 확인해봤다. 그렇진 않은 거 같은데. 일용직들과 쓸데없는 마찰을 만들지 않기 위한 거였겟지.
둘째날 점심은 라면을 선택했다. 봉지라면이 담긴 냄비를 집어 들고 라면 끓이는 기계에 올리면 물이 알아서 나오고 끓이는 것까지 자동으로 진행됐다. 이런 신문물이 있었다니. 다시 한 번 감탄하고야 말았다. 기계로 끓은 라면은 내 입맛에는 좀 싱거웠다. 역시 내가 끓인 라면이 제일 맛있다.
냉동고는 냉동 장치 모터 소리 때문에 매우 시끄러웠다. 그 소리 사이로 계속 작업 속도를 더 높이라는 –오피스 어딘가에 있을- 관리자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날아들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다룬 에너미 앳더 게이트라는 영화를 보면 확성기를 든 장교들이 돌격하는 소련 병사들에게 후퇴하면 죽는다는 독전을 가장한 위렵 멘트를 계속 날리는데, 그 장면들이 떠올랐다. 총도 없이 맨몸으로 돌격하던 젊은 병사들은 독일군의 쏟아지는 총알세례에 뒷걸음질 치다 아군의 사격에 맞아 죽었다. 아니 여기가 그 정도는 아니지만요. 왜 자꾸 오징어게임, 에너미 앳 더 게이트 같은 참혹한 상황을 다룬 작품들이 떠오르는 걸까. 그래 물류유통의 세계는 총성없는 전쟁인 것이지. 사실 나는 그 본질에 다가가고 있었던 거지.
둘째 날이 되니 일하는 사랃들의 얼굴이 점점 눈에 들어왔다. 연령과 성별, 생김새, 행색 등등 모두가 다양했다. 나랑 비슷한 연령대의 남성들이라면 아마도 유쾌하지 않은 사연이 있을 듯 했고, 방학이라 알바 삼아 온 대학생으로 보이는 친구들이 있었다. 무리를 이루는 아주머니들도 꽤 됐는데, 아마도 가정 생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대한민국 평균 중년 여성들이 아닐까 싶었다. 인상으로만 판단하긴 어렵지만 말투 등에서 제법 고학력자가 아닐까 짐작되는 사람도 있었다. 껄렁한 자세에 험악한 인상을 가진 젊은 남성이 있고, 기운차고 예쁘장한 젊은 여성이 있었다. 노가다판의 경험을 옆 사람에게 읊는 중년 남성이 있었다. 손을 잡고 식당에서 줄을 서 있다 식사시간이 끝나니 서로의 파트로 헤어지는 커플도 있었다. 수백개의 다양한 사연이 있는 소셜믹스의 장이 여기가 아닐까 싶었다.
냉동고에서의 업무는 시간이 매우 잘 흘러갔지만 후유증이 좀 있었다. 차가워진 몸이 좀처럼 녹지 않았다. 퇴근 때 통근버스의 에어컨 바람이 너무 차가웠다. 한 여름에 이런 추위를 느끼다니. 예전에 유행하던 박명수 어록 중에 공부 안 하면 더울 때 더운데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데서 일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지랄하고 자빠졌네. 어록은 얼어 뒤졌군요. 그딴 소리 하는 놈들은 반드시 쿠팡 신선센터 냉동업무에 투입시켜야 된다.
몸에서 한기가 오래도록 떠나지 않아 집에 들어가기 전 집 앞 시장 국밥집에서 막창국밥을 먹었다. 동네에서 제일 좋아하는 식당 중 하나다, 다대기에 청양고추까지 왕창 풀어서 음식에 화기를 듬뿍 돋구었다. 속이 따뜻해지니 살 것 같았다.
늦지않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이상한 각성상태가 이어져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별별 잡념이 머리 속을 휘젓고 다녔다. 내가 했던 많은 일들의 원인과 결과, 거슬러올라갈 수 없는 시간들에 대한 후회, 혹은 앞으로의 날들에 대한 대책없는 희망. 여러 부담감과 책임감. 낙관과 비관. 어떻게 수습할 방법이 없어 대책없이 잡념들을 마구 풀어놓고 날뛰게 두었더니 비로소 스르르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