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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알바 후기 -프레시백 포장과 출고 지원->

by 김동균


금요일과 토요일을 쉬고 일요일부터 금요일까지 6일 연속 근무 신청을 했다. 토요일 저녁 부천2센터 인사담당자에게 전화가 왔다. 입고 업무 TO가 다 찼으니 출고 업무로 근무를 하겠냔 거였다. 가급적 할 수 있는 파트는 다 해보자는 생각이 있었던터라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일요일 출근길은 막히는 것 없이 뻥뻥 뚫렸다. 평일보다 센터에 10분 정도 빨리 도착했다. 출고 파트는 정해진 집결지 없이 HR사무실 –정확히는 인도인접장이라 부른다-에 있는 모니터에 사람별로 지정해주는 위치로 바로 이동하면 됐다. 가나다 순으로 된 명단을 확인해보니 나는 2층으로 가라고 돼 있었다. 무엇을 하는 장소인지 처음에 짐작하지 못했던 그 곳에 가게 된 것이다.


2층은 포장을 하는 곳이었다. 고객으로부터 주문이 들어온 상품을 3층에서 6층까지 각 층에서 픽업해 2층으로 내려보내면 여기서 포장을 마치고 1층에서 차에 실어 배송을 하는 시스템이었다. 넓은 작업장 안에 십수개의 레일이 나란히 줄지어 서 있었고, 레일 옆으로 빼곡히 들어찬 포장대에 선 작업자들의 손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초심자들은 작업 전 교육을 받았다. 빈 포장대 옆에 배치되어 어떻게 포장을 하는지 설명을 들었다. 후덕하고 인상 좋은 중년 여성이 꼼꼼하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는데, 또렷한 발음으로 귀에 쏙쏙 박히게 설명을 하는 것이 다른 일을 해도 잘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장대 옆에 레일은 아래 위 2층으로 된 구조였다. 손을 올려 뻗어야 하는 위치에 있는 2층에는 쿠팡 프레시백이 다섯 개씩 겹쳐져 줄지어 있었고, 포장대와 바로 붙어 있는 1층에는 포장이 완료된 상품들을 바로 밀어서 내보낼 수 있도록 구성이 돼 있었다. 포장대 주변에는 포장재와 완충재를 채워놓고 바로바로 쓸 수 있도록 수납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포장하는 방법은 이랬다. 배송해야 할 상품이 담긴 토트를 가져와 바코드를 먼저 찍고, 그 안의 상품을 꺼내서 찍으면 포장대에 비치된 노트북 모니터에 상품의 종류와 포장해야 할 개수, 사용해야할 포장재와 완충재, 보냉재 정보가 일괄로 떴다. 완충재의 종류로는 크고 작은 은박 봉투 하나씩, 뽁뽁이 봉투, 그리고 오퍼스 스틱이라고 부르는 막대 형태의 완충재가 있었다. 보냉재는 드라이아이스와 아이스팩이 있었고, 포장재는 로켓프레시 상품으로 익숙한 프레시백과 3.5호, 5,5호, 7호 사이즈의 박스 세 종류가 있었다. 상품의 특성에 따라 포장재와 완충재, 보냉재를 적절히 조합해서 포장을 진행하면 되는 거였는데, 역시나 프레시백에 아무런 부자재 없이 덜렁 하나 들어가는 상품 작업이 가장 수월했다.


간단한 교육과 실습을 받고 바로 작업을 진행했는데, 입고에서 토트 개념을 이해하고 와서 크게 어려운 일은 없었다. 레일 위에 프레시백은 다섯 개 씩 겹쳐서 쌓여있었는데, 무게 감지 센서가 있는 건지 다섯 개를 다 사용하면 레일이 바로 이동해서 내 위치로 프레시백을 갖다 주었다. 이게 표준화된 공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한 수준으로 자동화가 이뤄져 있다는 것을 체감했다. 반면에 이런 작업들이 사람의 손을 타지 않고 완벽하게 자동화가 되는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그런게 가능하다고 해도 사람을 쓰는 것보다 과연 비용이 덜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포장을 진행하면서 느낀 가장 큰 문제는 자원의 소모가 상당하다는 거였다. 쿠팡에서 로켓프레시로 주문을 하려면 15000원 어치를 사야 한다. 그래서 누군가 로켓프레시 주문으로 다른 상품들과 함께 2440원짜리 친환경 파채 한 봉지를 샀다고 치자. 그런데 이 주문자가 다른 건 다 냉동 상품으로 사고 파채만 산 것이다. 그러면 이 작은 파채 하나만 분리해서 프레시백에 따로 포장을 해야 한다. 이걸 포장하는데 뽁뽁이 봉투 하나와 아이스팩 두 개가 들어간다. 반대의 경우라면 작은 냉동 상품 하나를 포장하기 위해 드라이아이스 세 개와 보냉 은박봉투를 사용하기도 해야 한다. 어떤 상품은 이런 저런 조합이 다 들어가서 상품 하나 때문에 완충재와 보냉재로만 프레시백이 꽉 들어차기도 한다. 단지 센터 내에서의 물류 이동에만 사용하기 위해 소모되는 각종 포장용 비닐과 바코드 용지 같은 것들을 감안하면 실제 소모되는 자원의 양은 훨씬 더 많을 것이 분명했다.


정말 편리하고 좋은데, 주문한지 수 시간 안에 도착하는 배송시스템은 가히 혁명이라고 부를 정도로 혁신적인데, 정말 미래에 대한 고려가 일절 없는 소모적인 시스템이라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려웠다. 집에 앉아 편안히 받아볼 때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을 현장에서 직접 목도하니 마음이 무겁기 그지 없었다. 매년 기온이 올라간다고 난리인데, 매 해마다 사람들은 역대급 더위라고 푸념을 늘어놓는데, 이런 편리함에 마냥 중독돼서 살아가도 괜찮은 걸까.


한 시간여 동안 포장 작업을 잘 진행하고 있었는데 관리자가 갑자기 나를 호출했다. 일손이 부족하니 다른 작업으로 투입하겠다는 거였다. 하던 작업을 멈추고 관리자가 나의 파트를 전환해서 보낸 곳은 옆옆 라인이었는데, 한창 바쁘게 진행되는 포장 작업을 지원하는 일이었다. 포장대의 작업자들이 수월하게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포장에 필요한 부자재들이 떨어지지 않게 채워줘야 했는데, 내가 카트를 끌고 다니면서 빈 곳들을 보고 알아서 채워주거나, 아니면 작업자가 요청하는 부자재들을 갖다주면 됐다.


내가 투입된 라인에서 가장 많이 소모되는 것은 드라이아이스였다. 포장재나 완충재 같은 것들은 라인 사이사이에 박스채로 갖다 놓으면 작업자들이 알아서 갖고 갔는데, 드라이아이스와 아이스팩같은 보냉재는 그렇게 배치를 해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적당한 타이밍에 라인을 돌아다니며 배송을 해줘야 했다. 드라이아이스 한 박스는 꽤 무거웠는데 카트 위에 열 댓개만 올려도 무거워서 카트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작업을 진행하다보니 그때그때 필요한만큼만 갖다주면 돼서 굳이 카트 위에 많이 쌓아놓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이렇게 본격적으로 몸을 쓰는 작업을 한게 정말로 얼마만인가 싶었다. 2004년에 군대를 제대했으니 그 이후로 처음이던가. 계속 책상에 앉아 문서 작업을 하거나, 기자들을 상대하면서 입으로만 일을 했었는데 40줄을 넘어서 다시 육체 노동이라니. 그런데 몸에 크게 무리가 간다거나 그런 느낌은 들지 않았다. 퇴근을 하고 나서도 엄청난 피로가 몰려온다는 느낌도 없다. 역시 쉬면서 꾸준히 운동을 한 덕인가.


출고 업무로 와서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며 일을 했다. 내 옆 라인을 담당하던 50 언저리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있었는데, 내게 제법 살갑게 굴었다. 순한 인상에 약간 두서없는 말투였는데, 작업이 수월한 팁들을 많이 알려주었다. 부천2센터가 세워졌을때부터 일을 했다는데, 박스를 잔뜩 쌓은 무거운 카트를 능숙하게 조작했다.


짬이 나서 작업장 전체를 한 번 쭉 둘러보았다. 작업대 파트가 상품 특성 별로 분리돼 있다는 걸 알았다. 처음 몇 라인은 냉장 상품만 포장하는 파트였고, 내가 지원하는 라인이 속한 파트는 냉장 냉동 고루 포장하는 파트였다. 내가 처음에 투입된 라인은 단품이나 동일 중복 상품을 포장하는 파트였다. 이렇게 파트가 구분돼 있었고 그날 그날 시간별 주문 상황에 따라 작업자들을 유연하게 배치했다. 철저한 분업화와 시장 상황에 따른 유연한 대처. 아마도 헨리 포드가 꿈꾸던 이상이 이런 시스템이 아니었을까. 심지어 작업자들의 고용마저도 그날그날 실시간으로 조정하니 쿠팡의 시스템은 그야말로 현대 자본주의의 총아라고 할만했다.


물론 이런 것들을 최대한 타이트하게 조정해서 숙련자들은 자기 일 하기 바쁘고 비숙련자들에게는 제대로 된 작업 안내나 지시도 없는 일이 허다해서 이상향에 완벽하게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포장 작업은 대개 중년 여성들이 많이 했다. 다들 숙련자들이라 손이 재빨랐다. 라인의 드라이아이스 소진 속도가 빨라서 쉴 틈 없이 채워줘야 했다. 특히 라인 맨 앞에 있는 여사님께서는 마땅히 그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있을 만큼 손이 빨랐는데, 드라이아이스를 정말 자주 채워줘야 했다.


2층에서는 다른 층에서는 볼 수 없는 진풍경을 볼 수 있었는데, 점심시간 공지가 스피커에서 들리자마자 여사님들께서 우루루 식당으로 뛰어가는 거였다. 식당은 4층이었고 건물의 층고가 무척 높아서 계단을 많이 올라야했는데, 그런 것에 아랑곳없이 계단을 우다다다 뛰어올라갔다. 다들 무릎 건강은 안녕하신지 걱정이 됐다. 나는 남중 남고를 나오다보니 여중 여고의 풍경은 알 수 없었는데, 점심 시간 여사님들의 질주를 보고 어땠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여사님들은 밥도 많이 먹었다. 적게 담긴 식판은 거의 보기 힘들었다. 추운 곳에서 반복작업을 하니 다들 열량 소모가 적지 않을 거였다. 암, 밥이 보약이지. 덧붙여 출고 파트는 점심이 입고보다 한 시간 늦은 12시부터 시작이다. 인원 분산 목적과 더불어 입고 파트에서 나가는 상품의 출고 작업을 진행해야 하니까 시간차를 두는 것이다.


오후는 역시나 루틴의 루틴. 몸을 많이 쓰다보니 시간이 잘 갔다. 허리를 한 번 펴고 화장실을 가려니까 한 시간씩 지나있었다. 한참 라인을 돌아다니다보니 안경 쓴 단발머리의 여사님이 나를 붙잡았다. 뭐 필요한게 있냐고 물었더니 에너지바 하나를 건네주었다. 내가 성실해 보였는지, 안쓰러보였는지. 아무튼 감사합니다. 작업에 몰두하느라 텅텅 비어있던 마음 한 구석에서 온정의 꽃이 피어났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이런 작고 따스한 교감이 사라지진 않겠지. 아마도 인류는 이런 사소한 친절 하나 하나를 나누면서 긴 역사를 지탱해온 것이 아닐까.


당연하게도 작업장에는 창문이 없어서 바깥의 날씨를 전혀 알 수 없다. 퇴근을 하고 옥상으로 나오니 햇살이 세차게 내려쬐고 있었다. 오랜만에 맑게 갠 하늘을 보니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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