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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짜장, 중깐

by 김동균

요즘 전국적으로 짜장면의 질이 떨어졌다는 불만이 많다. 첫 번째로는 중식 숙련자들이 고령화로 점점 줄고, 두 번째로는 배달앱이 활성화되면서 초짜들이 창업하는 배달전문점이 늘어서라는데 다들 일리있는 말이 아닌가 싶다. 어느 음식인들 안그렇겠냐만은 중식은 참 손이 많이 간다. 강한 화력에 볶는 것이 조리의 기본이고, 잘 볶기 위해서 큰 웍을 하루종일 들고 흔들어야 한다. 이런 중노동을 감내하는 영업장이 점점 줄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가장 말이 많은 음식이 간짜장인데, 간짜장은 양파를 다른 부재료들과 함께 강한 화력으로 볶고, 그 위에 춘장을 덧입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요즘 간짜장이라고 파는 것은 미리 ‘끓여놓은’ 짜장소스에 생양파 몇 조각 볶은 것을 섞어서 내주는 것이 다수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간짜장을 내놓는 곳은 거른다며 제대로 볶는 중국집의 정보를 떠들썩하게 공유하는 모습을 커뮤니티에서 종종 볼 수 있다.


난 오래전부터 제대로 된 짜장에 대해 상당히 목마른 편이었다. 25년전 수도권으로 올라와 먹은 중국집들의 짜장면은 대체로 충격적이었다. 미리 삶아서 불은 면에 춘장보다는 전분의 비율이 높아 불그죽죽한 빛깔, 달디 단 맛, 이틀은 족히 지난 듯 숨이 완전히 죽어 흐물거리는 채소들과 빈곤한 고기조각들. 어떻게 서울 사람들은 이런걸 먹고 사나 싶었다. 그런 주제에 대구 음식 맛없다고 무시하기까지. 당신들 혓바닥부터 먼저 점검하라는 반박을 아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에서 맛있는 짜장면을 찾는 것은 포기한지 오래였다. 지금 사람들이 불만을 갖는 짜장면의 전형들은 이미 서울에서는 오래전부터 완성돼 있었다. 불특정 다수가 모여서 떠들 공간과 주제가 늘어났을 뿐. 그들이 가진 불만은 지방 사람인 나에게는 수십년전부터 체감되는 매우 실존적인 문제였기 대문이었다.


여기저기서 여러 사람들에게 많이 떠들어왔지만, 나에게는 확고한 짜장면의 이데아가 있다. 센 화력에 볶은 채소에서 풍기는 불에 그을린 향, 여타 조미료를 최대한 배제하고, 최대한 양파와 춘장 중심으로 뽑아낸 은은한 단맛과 강렬한 짠맛, 전분물은 가급적 적게 넣어서 춘장 본연의 검은 빛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 면은 금방 뽑아 단단하면서도 쫄깃해야 한다. 굵지 않은 것이 베스트다.


이같은 짜장면의 이데아는 아주 어릴 적 먹었던 어딘가의 중국집에서 박혀있던 그 기억에서 만들어졌다. 휴일에 엄마 손을 잡고 가거나, 집에 아무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낡 마루 위에 놓인 천원 짜리 한 장을 들고 찾았던 그 중국집. 손글씨에 세로로 쓰인 빛바랜 메뉴판이 벽에 걸려있고, 그리 깔끔하지 않은 내부의 풍경. 두꺼운 비닐로 감싼 테이블 위에 손때가 남은 고춧가루 통과 간장, 식초병들. 가게안에 반쯤 들어찬 손님 사이로 가쁜 숨을 내쉬며 배달통을 들고 오가는 배달부들. 지금은 아주 먼 지방으로 가야 볼수 있을까말까한 풍경들이다.


목포는 오래된 풍경이 군데군데 많이 남은 도시다. 발전이 지체된 징표이기에 지역 사람들에게는 안타깝기 그지 없지만, 뜨내기 여행객에게는 사라졌을 거라 생각했던 오래된 기억의 흔적을 다시 찾아낼 수 있는 보물창고 같은 곳이기도 하다.


목포의 ‘중깐’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왔다. 잘게 다진 채소들을 볶은 유니짜장 스타일의 장과 마치 기스면에 들어갈법한 가는 면발이 알려진 특징이었다. 지역을 대표하는 짜장면이니 언제고 기회가 되면 반드시 먹어보고 싶었다.


아내는 아들과 함께 몇 번 목포를 다녀왔지만 나는 번번이 타이밍이 맞지 않아 방문할 기회가 없었는데, 백수가 된 김에 군 말 없이 가자는 아내의 제안을 따랐다. 1박 2일의 간단한 일정이었지만 외달도에 들어가서 숙박을 하기로 했고, 그 전후로 목포에서 맛있는 식당들을 찾아서 먹기로 했다. 대충 3끼를 먹어야 했는데, 대한민국 맛의 중심인 호남에 온 이상 한끼도 허투루 먹을 수 없다는 각오를 다졌다. 물론 그 중 한끼는 반드시 중깐으로 먹을 것이라 다짐했다.


목포역 근처에서 중깐으로 많이 알려진 곳은 총 세군데였다. 뜨내기 주제에 목포의 깊숙한 곳을 탐색할 기운과 정보력 같은 건 없으니 무난히 알려진 곳 중 하나를 선택했다. 중화루, 태동식당, 대명춘 셋 중 대명춘을 택했다. 중화루는 아내가 이전에 한 번 가본 적이 있다 했고, 태동식당은 싫어하는 연예인이 방문했다 해서 가기가 싫었다. 이렇게 소거법에 따라 남는 곳은 대명춘이었다. 세 군데 모두 지근거리에 모여있어서 어느 곳을 택해도 지리상의 문제는 없었지만.


금요일 오후 1시 무렵 들어갔는데 넓지 않는 내부공간에 테이블은 거의 만석이었다. 마침 한 팀이 먹고 비운 자리가 바로 나서 웨이팅은 없었는데, 타이밍이 안 맞으면 웨이팅을 각오해야 할 것 같았다. 햇살이 강해서 웨이팅이 있었다면 지옥이었을 듯 했다.


주방은 오픈돼 있었고, 주방장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 한 명이 분주히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서너명의 중년 여성들이 홀과 주방을 분주히 오갔는데, 모두 한결같이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억양이 크게 강하지 않은 남도 사투리를 구사했다. 낡은 듯 하면서도 깨끗한 내관이 손님이 많이 찾는 집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자리에 앉아 예정대로 나는 중깐 곱빼기를 시키고 아내와 아들은 짬뽕 짜장 탕수육 세트를 시켰다. 음식은 여느 중국집과 비슷한 속도로 나왔다. 나의 메뉴로 나온 중깐의 비주얼. 소복히 담긴 장의 빛깔이 검다. 색깔에서부터 대합격. 가는 면 사리 위로 오이채와 계란 후라이가 올라가 있다. 계란 후라이라니, 이것도 대합격. 하지만 나는 계란 노른자가 장과 섞이는 걸 별로 안 좋아하니 후라이는 따로 덜어놓고 나온 장을 면 위에 남김없이 모조리 부었다. 슥슥 비비니 면 사이로 장이 잘 스며들었다.

중깐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라

첫 한 젓가락을 함뿍 집어 들어올렸다. 가느다란 면이 늘어지는데 탄력이 젓가락을 타고 전해졌다. 그릇 바깥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면발의 가벼운 저항에 입에 넣기도 전부터 이거다 싶었다. 호쾌하게 면을 입으로 잡아당겨 쑤욱 집어넣었다.


면과 함께 딸려들어온 장의 짜릿한 짠맛과 어우러진 기름의 고소함이 혓바닥을 감싼다. 비비면서 뒤섞인 오이의 향이 은은하게 풍겼다. 그 뒤로 춘장이 머금은 발효된 구수한 향이 조금씩 콧 속으로 밀어닥친다. 어릴적 먹었던 맛의 기억. 입가에 꾸덕하게 묻어나던 짜장의 감촉이 떠올랐다. 그 때는 한 그릇에 천원이었지. 삼십 몇 년쯤 전이었나. 가끔 냄비를 들고 가면 그날 남은 짜장을 한가득 그냥 퍼주기도 했던 인심좋던 사장님. 징병 신체검사를 받고 나와 병무청 앞에서 먹었던 오래된 중국집도 맛있었지. 꼼수 없이 정직하게 만들어 직진하는 짜장 본연의 맛. 그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데, 조금 더 능숙하게 단련된 듯 한 맛.


면은 굵지 않은 것을 선호하지만 이처럼 가는 면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들어올렸을 때 느낀 그 탄력은 입안에서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분명 기계를 돌려 뽑아냈을테지만 타이밍 좋게 잘 삶고 씻어내 장과 잘 어우러지게 계산된 면이었다.


이런 짜장면은 야금야금 한 젓가락씩 얌생이처럼 먹어선 안 된다. 내 손아귀 힘이 허락하는 한 크게 집어, 내 입안의 용량이 허락하는 한 밀어넣고 이 사이를 가볍게 지나 혓바닥을 스치고 목구멍을 빠르게 넘어가는 그 느낌을 즐겨야 한다. 나는 그것이 이 짜장면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곱빼기로 시킨 짜장면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릇안에 있던 짜장면은 분명히 내 뱃속을 들어갔을텐데, 내가 먹은 기억은 시작의 그 순간. 그 이후는 희미하기 짝이 없다. 기억을 사라지게 만드는 맛이었다. 곱빼기 한 그릇이 아쉬워 숟가락으로 남은 장을 싹싹 긁어먹었다. 채소 한 조각이 허투루 버려지는 게 아쉬웠다.


빈 그릇을 보며 고뇌에 빠졌다. 나이를 먹으면서 소화력은 감퇴하고, 건강 관리를 위해 일부러 살을 빼며 식사량을 줄였는데, 곱빼기로 먹은 짜장면의 양이 너무 아쉬웠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는 초자아 저너머의 외침. 아주 길고 깊은 고민 끝에 지나가는 사장님을 붙잡고 외쳤다. “사장님, 중깐 하나 더요.”


고등학교 때 학교 앞 중국집에서는 학생들에게 면을 거의 무제한으로 주었다. 학생들이 앉은 테이블에는 면이 수북히 담긴 바구니와 짜장이 담긴 대접 하나를 내주었다. 그 성의를 감히 무시할 수 없기에 나와 친구들은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살면서 가장 많이 짜장면을 먹은 시기였었다.


그 이후로 이렇게 짜장면을 많이 먹은 적이 없었다. 아무리 맛있는 집이어도 곱빼기 한 그릇을 뛰어넘는 식욕을 불러일으키진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한 그릇을 더 먹지 않고 기차를 탄다면 나는 다시 목포를 찾을 그날까지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저녁 또한 맛있는 걸 먹기로 예정돼 있었지만, 그런 건 몇 시간 후의 내가 고민할 문제였다. 지금은 오로지, 지금의 나만이 존재했다.


추가 주문한 중깐은 채 2,3분도 되지 않아 나왔다. 내가 감히 이걸 두고 더 먹을지 말지 고민을 했었단 말이지. 대학교 경제원론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게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다. 교과서에서는 밥을 먹을 때마다 배가 차니, 처음 먹는 한 숟가락과 배가 부를 때 먹는 한 숟가락의 효용이 같지 않다는 걸 예로 들면서 설명을 한다. 하지만 거기에서 나에게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란 없었다. 주면 주는대로, 얼마든지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 한 그릇과 마찬가지로 기억을 날려가며 비운 두 번째 그릇을 보며 비로소 안도감이 들었다. 적어도 후회는 하지 않겠구나라는 안도감. 지금껏 먹어본 짜장면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 진실로. 내가 그려왔던 짜장면의 이데아는 여기에서 다시 정립되고야 말았다.


이것으로 끝이냐, 그럴 리가 없다. 아내가 시킨 짬뽕을 한 젓가락 얻어먹었다. 잘볶인 채소의 불향은 기본이었고, 유행을 타지 않겠다는 도도한 의지가 느껴지는 묵직한 해물베이스의 국물이 혀를 압도했다. 짬뽕만 먹었어도 결코 후회하지 않았을 것 같았다. 탕수육 역시 마찬가지. 부드럽게 잘 튀겨진 튀김옷이 부담없이 씹혔다. 이것이 40년을 넘은 맛집의 기개다. 이런 음식을 만들어내는 이들이야말로 장인의 칭호를 얻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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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뽕과 탕수육도 수준급

오랫동안 상상만 해왔던 목포의 중식은 상상 이상이었다. 맛의 세계는 넓고도 깊다. 기억을 더듬어가면 다다르는 최고의 맛이 있는데, 그를 갱신하는 한 층 위의 맛. 도시는 정체되고 낡아가지만 그 안에 품은 맛은 바위보다도 단단하고 굳세게 버티고 있다. 안녕 목포, 다시 만나요, 중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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