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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드레나물밥, 간단할수록 어렵다.

by 김동균

최근 아내랑 대화하다 곤드레나물밥을 좋아한다고 말을 했더니 깜짝 놀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좋아하는데 왜 자기랑 한 번도 먹으러 가지 않았냐고. 분명 좋아하는데 제대로 먹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별로 먹어보지도 않았는데 좋아한다는 건 무슨 형용모순인가. 곤드레나물밥이 그 정도로 강렬하게 맛있는 음식이라고 해둬야 겠다. 곤드레나물밥이 별거 아닌 거 같은데 파는데도 별로 없고, 좀 한다 싶은 집은 어드매 산골짜기 같은 곳에나 있어서 먹기가 힘들었다고 둘러댔다. 사실이 그런지 아닌지는 잘 모른다. 그냥 내가 게으르다는 걸 돌려말한 것일뿐.


여차저차해서 주말끼니를 곤드레나물밥으로 준비해보았다. 계속 먹고 싶었다면서 왜 한 번도 직접 해먹을 생각을 못했던가. 불현 듯 곤드레나물밥을 해먹자는 생각이 떠올라 바로 오픈마켓을 열고 검색을 해보았다. 웹페이지에서 쏟아져나오는 곤드레나물들. 건조한 것, 생 것, 같은 국내산이라도 산지는 가지가지. 대기업에서는 아예 곤드레나물밥을 냉동으로 팔기도 했다. 곤드레나물의 공급이 이렇게 많으니 수요도 그만큼 된다는 것이 아닌가.


대령숙수도 아닌 내가 다양한 곤드레나물의 차이를 제대로 알리 없을 것이니 적당한 가격에 넉넉한 양을 주는 곳에서 주문을 했다. 하루 지나 택배를 받자마자 적당히 덜어내 물에 불렸다. 곤드레나물을 어떻게 손질해야 하나 검색을 해보니 파는 곳만큼이나 방법이 각양각색이다. 한번 삶아서 물에 불리란 사람도 있고, 물에 불린 뒤에 삶으란 사람도 있고. 삶지말고 불렸다가 밥할 때 그냥 올리면 된다는 사람도 있고. 어느 하나 딱히 신뢰가 가지 않아 엄마에게 전화해서 물어보았다. 엄마는 삶지 말고 불렸다가 그냥 밥할 때 넣으면 된다는 쪽이었다. 엄마 말도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았다. 대충 알아들은 척하고 전화를 끊었다. 엄마 미안해요.


왠지 안 삶으면 안될 것 같아 하룻밤을 불리고 삶았다. 삶고 나서 또 불렸다. 손질은 그렇다치고 밥하는 방법도 의견이 다양했다. 곤드레나물을 국간장과 들기름에 무쳐서 쌀 위에 올리란 쪽도 있고, 그냥 들기름만 무치란 쪽도 있고, 솥바닥에 들기름을 발라서 밥을 하라는 쪽도 있었다. 밥물을 많이 하라는 말도 있고 적게 하라는 말도 있고, 그냥 보통으로 하면 된다는 말도 있고. 이게 바로 정보 범람의 폐해다. 넘치는 정보를 제공해서 진실을 가리는 것. 그렇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일루미너티의 음모인 것이다. 이럴 때는 주관을 갖고, 스스로를 믿으며 도전해야 한다. 밥물은 보통으로 잡고 들기름에만 무친 곤드레나물을 올렸다. 이후 모든 것은 전기압력솥이 해결해 줄 것이다.


솥이 일을 하는 동안 오이무침과 두부부침, 메추리알 조림, 된장국을 만들었다. 연천에서 온 오이라는데 다섯 개에 천원에 팔고 있었다. 꼭지가 꾸덕해서 볼품 없었는데 무쳐놓으니 그 부분이 별미였다. 두부는 슈퍼에서 구입한 공장제. 해양심층수 어쩌고 해서 샀는데 딱히 더 맛있지는 않았다. 메추리알은 까서 파는 슈퍼제. 삶아서 일일이 까는거 너무 힘들어요. 메추리알 조림에는 곤약이 필수. 사실 곤약이 더 맛있다. 된장국은 호박을 넣어야지 했는데 호박이 없어서 냉장고에 짱박혀 있던 시들기 직전의 시금치를 넣었다. 다 끓이고 나서 냉장고 쌀통 뒤에 숨어 있던 호박을 발견했다. 세상일이 꼭 이렇게 흘러간다.


곤드레나물밥 양념장에는 파, 마늘 다진 것과 간장, 고춧가루, 십 년 쯤 묵은 매실청에 설탕을 넣었다. 들기름과 참기름도 넉넉히. 달래에 오미자청 뭐 이런 별거별거 다 넣고 싶지만 그런건 대령숙수급이 된 다음에 생각할 일이다. 그 정도면 산채정식 식당도 크게 차리고 한식대첩도 나가봐야지.


솥이 뜸을 들인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밥솥 꼭지부터 사방으로 퍼지는 곤드레나물의 향. 기대감이 몽글몽글 솟아올랐다. 5분 뒤 취사 완료 신호가 울리자 밥솥을 열어 위에 뭉친 나물을 한 번 휘적거린 후 다시 뚜껑을 닫았다. 제대로 된게 맞는지 잠시 고민하는 시간을 가진 후 밥을 펐다.


푸는데 좀 뻑뻑한 느낌이었다. 이게 맞나. 양념장을 적당히 넣고 비벼보았다. 한 숟갈을 입에 넣으니 곤드레향이 희미하게 퍼졌다. 아, 나물 좀 더 많이 넣을 걸. 씹어보았다. 나물이 어느 건 적당히 부드러운데 어느 건 질겼다. 나물이 문제인가 내가 문제인가. 내가 문제겠지. 다음에는 아주 푹푹 삶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양념장은 한 이틀 묵히면 더 맛있겠다 싶었다. 된장국에서는 안 풀린 된장 덩어리가 나왔다. 이 무슨 추태인가. 다른 반찬들은 상상을 넘어서지 않는 딱 그 맛들이었다.


전반적으로 맛은 있는데 뭔가 한끝 모자란 밥상이었다. 분투했지만 패배한 경기 같은 밥상. 정신승리같은 건 하지 않는다. 다음에는 반드시 더 맛있게 만들어야지. 민둥산 입구 산채정식 가게의 그 맛을 재현하는 날까지 정진 또 정진하리라.


밥상을 준비하다 발견한 것. 된장국에 들어간 새우젓이랑 메추리알 조림만 빼면 완벽한 비건식단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비건이 되겠다는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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