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인구가 별로 없는 원룸촌, 코인빨래방 혹은 편의점 정도나 들어올만한 골목 어귀에 돈까스집이 하나 생겼다. 우리 집에서 이백 미터 정도 거리. 한 달 전 쯤부터 내부 공사를 뚝딱뚝딱하고 있길래 뭔가 싶었다.
오픈 며칠 전 지나가다 본 가게에는 간판도 없고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내부 풍경은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 오픈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그곳이 돈까스집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허술하게, 꾸민 듯 안꾸민 듯. 요새는 이런게 힙한 감성이라지. 아니나다를까 가게는 오픈을 했다면서도 영업을 하지 않았다.
불꺼진 가게 문 앞에 붙어 있는 작은 포스트잇 한 장.
「죄송합니다.
재료 수급 문제로
영업 며칠간 중단합니다.
공지는 인○타에
그럼 그렇지. 이렇게 주목을 끌겠다는 거지. 각자도생, 약육강식의 시대, 뭐라도 하나 튀어보이려면 이래야지. 이렇게 자신들은 극한의 맛을 추구하는 장인이라고 어필하고 싶다는 거 아니겠어. 것보다 중단이라고 하는데 영업하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이런 가게는 모 아니면 도다. 정말로 맛있거나 아니면 중2병에 걸려있거나. 경험상 전자일 확률은 그렇게 높지 않았다. 별다른 기술도 없으면서 자아도취에 빠져 인○타 같은 SNS로 입소문 내보고 안된다 싶으면 그냥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가게가 어디 한 둘인가.
가양동이었다. 페이스북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하도 맛있다고 난리를 쳐서 찾아가본 라멘 가게가 있었다. 인증샷으로 올린 라멘의 때깔이 굉장했다. 일본여행에서 먹었던 본토의 맛이라는 평가. 쇼유라멘 한 그릇에 물경 만삼천 원. 주인장이 오사카의 유서깊은 라멘 맛집을 찾아가서 육 개월 간 읍소를 하고 삼 년을 넘게 일하면서 전수받은 비법으로 차린 라멘집이라고 했다.
열심히 라멘을 뽑는 주방을 바라보며 열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전부였다. 사람들은 꽉 차 있었고 가게 밖으로 스무 명 정도가 줄을 서 있었다. 한 시간 여를 기다린 끝에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가게 군데군데 이름모를 애니메이션 등장인물 피규어들과 건담 프라모델이 늘어서 있었다.
퉁명스럽게 주문을 받는 주방 보조.
-쇼유라멘 하나요.
-저희는 바리카타예요.
-네?
-면 익힘이 그렇다고요. 꼬들꼬들해요.
설명을 하는 주방보조의 눈빛. 이런 것도 모르냐는 눈빛. 이랏샤이마세같은 접객 태도는 오사카에서 안 배워왔나. 그리고 난 퍼진 게 좋은데.
-선불이에요. 만삼천원요.
-차슈 추가는 안 되나요?
-미리 말씀하셔야죠. 메뉴판에 있는데.
그래도 차슈는 아네? 라는 눈빛. 마음에 안 들었다.
-아, 못 봐서요. 그럼 그냥 주세요.
마음에 안 들었다. 너무너무 마음에 안 들었다. 뭐라고 하고 싶은데. 여기는 원래 그런 곳인양 아무 말 없이 먹는 다른 사람들. 왠지 뭐라고 한 마디 하면 인터넷 어딘가에서 진상으로 올라 조리돌림 당할 거 같아 말을 멈추었다.
십분여를 기다리니 주문한 라멘이 나왔다. 검붉은 빛깔의 국물. 라멘 좀 먹어본 사람들이 말하길 국물이라고 하면 안 된단다. 스프라고 해야 한단다.
그래요. 냉면은 자르면 안 되고 식초랑 다른 양념 같은 것도 넣으면 안 되죠. 면도 순메밀로 먹어야 하죠. 그렇게 말했던 사람들의 고나리질은 식초와 양념을 적당히 넣어서 먹으라는 평양 옥류관 직원의 인증으로 와사삭 박살이 나버렸지.
스프나 국물이나 뭐라 부르든 뭔 차이야. 그리고 바리카타가 뭐! 난 일단 저 직원의 눈빛이 마음에 안 들어!
아무 말 없는 주방장과 도도한 주방 보조. 그래, 이 정도 자존심을 세웠으면 정말 맛있겠지. 내 페친들도 맛있다고 했으니. 믿어보겠어.
한 젓가락을 들고 면을 빨아들였다. 말도 안되는 식감이었다. 꼬들꼬들하다더니 이건 숫제 생면. 입안에서 밀가루 냄새가 풀풀 풍겼다. 국물, 아니 스프를 한 숟갈 떠먹었다. 쇼유는 간장이다. 일본의 간장은 짠 맛 같은게 없는 건가. 완전 맹탕이었다. 간이 고혈압 환자를 위한 건강식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차슈는 그나마 먹을만했는데, 면과 국물, 아니 스프가 엉망이었다. 도대체 내 페친들은 뭘 믿고 이런 곳을 추천한 거지. 아니 무엇보다 오사카에서 3년을 수련한게 사실이긴 한 건지. 3년을 수련했는데 이렇다면 요리 감각이 근본적으로 없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3년을 수련했는데 실력이 늘지 않아 쫓겨난게 분명했다.
도대체 이걸 두고 맛있다고 한 사람들은 뭔가. 내 페친들의 혀는 어딘가 고장난게 분명했다. 아니 그냥 미친 건가. 이걸 왜 만삼천원 씩이나 줘야 하는 건가.
후회가 쓰나미처럼 밀려들었다. 우리집에서 가양동까지 오는데만도 한 시간은 족히 걸리는데. 여기까지 와서 또 한 시간을 기다렸는데 이게 뭔가 싶었다.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 집이 맛있다고 떠들었던 페이스북 친구들을 죄다 차단했다. 그게 맛있다고? 진짜? 바이럴 아냐? 그건 너무 하잖아. 이 집 인○타에 찾아가서 행패를 부리고 싶었지만 이 집 라멘이 맛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반격이 두려워 차마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같이 앉아있던 사람 중 누군가가 바리카타도 모르던 그 사람요? 라고 댓글을 달지도 몰랐으니까.
그렇게 내가 남긴 댓글과 대댓글은 캡쳐를 당하고 짤이 인터넷 어딘가에서 붕붕 떠돌며 본 이들로부터 ‘맛알못’이라는 조롱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그만큼 난 소심하다. SNS는 서로를 평가하기 바쁘다. 그 일련의 흐름 안에서 벗어나면 조롱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특정한 포인트가 포착되면 조리돌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그런 황당할지도 모르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 끝에 난 맛없다는 평가를 다른 이에게 말하기를 포기했다.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한 시간, 화가 났다. 모처럼의 휴일을 낭비해버린 기분이 들었다.
그게 벌써 일 년 전 일이다. 그 뒤로 SNS에서 맛있다고 사람들이 호들갑 떠는 집은 일단 불신부터 하게 됐다. 일단 좋아요를 하나라도 더 받고 관심을 더 끌기 위해 온갖 필터를 먹여 음식 사진을 먹음직하게, 신묘한 각도로 본래 양보다 더 푸짐해보도록 찍고 과장된 문구를 동원해 맛을 공감각적으로 부각시킨다. 궁금했다. 그런 식으로 좋아요를 하나라도 더 받으면 무슨 이득이 있을까. 그러니까 알바라는 의심을 받는게 아닌가. 내 의심은 합리적이고 정당했다.
지하철 입구로 가려면 항상 돈까스 집을 지나친다. 아침 일곱시 출근길에도 닫혀 있고, 저녁 아홉시 퇴근길에도 닫혀있다. 영업을 중단한다는 쪽지가 일주일이 넘게 붙어 있었다. 그놈의 재료 수급은 도대체 언제나 완료가 되려는 건지.
#maniakatsu 라는 해시태그만 눈에 들어왔는데 월요일 아침 출근길에는 문 옆 작은 나무 판자에 가게 이름이 적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카츠狂>이 가게 이름이었다. 아, 그러니까 해시태그가 매니아카츠구나. 소소한 깨달음의 기쁨이란. 이런 작은 깨달음도 뿌듯한데 보리수나무 아래서 진리를 깨우친 싯다르타는 얼마나 큰 희열을 느꼈으려나.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한 셜록 홈즈는 어떻고. 아 뭐래. 뭔 헛소리야.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maniakatsu 를 검색해보았다. 서너 개 올라온 포스팅. 가게에 쪽지로 붙어 있는 것과 똑같은 영업 중단 공지가 맨 마지막 게시물이었다. 그 바로 아래에는 가게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포스팅이 있었다. 한껏 돈까스의 색감을 강조한답시고 콘트라스트와 하얀색 채도를 잔뜩 올린 사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뻔한 문구. #존맛개맛 #카츠광 #maniakatsu #맛스타그램 이런 게시물에 해시태그는 볼 때마다 닭살이 돋는다. 오글거려. 꼭 저런 표현 밖에 못 쓰나. 바이럴한 게 고작 이거 하나인가. 실소가 새나왔다. 그래도 깨달은 사실 하나. 영업을 하긴 했었구나. 난 왜 못 본 거지.
동네 돈까스집에 대한 관심을 끄고 인터넷 창을 열었더니 구제역 사태가 열흘째라는 뉴스가 포탈 메인에 떠 있었다. 벌써 살처분한 돼지가 이백만 마리를 넘었단다. 이백만, 머리가 아득해지는 숫자다. 이백만 원도 크디 큰데. 댓글을 보니 돼지를 무차별로 매장하는 살처분 현장의 끔찍한 목격담과 정부 방역 실패를 규탄하는 목소리, 무분별하게 구제역을 확산시킨 축산업자에 대한 욕, 이러니까 채식을 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한데 뒤섞여 아비규환이나 마찬가지였다.
아, 그 집이 그래서 영업 중단을 했구나. 또 다른 깨달음을 얻었다.
김 대리 이 개새끼. 출근하자마자 지랄이다.
-어제 오후에 내가 말한 거 들었어요, 못 들었어요?
-들었습니다.
-근데 왜 안 했어요?
-퇴근 시간 다 됐는데 그게 좀...
-아, 퇴근 시간 얼마 안 남아서...좋네...
-죄송합니다.
-내가 뭐 어려운 거 줬어요?
-아닙니다.
-아니, 와꾸 탁 나오잖아. 엑셀에 필터 넣고 두 어 번 정렬만 하면 끝날 거. 그게 어려워요?
-안 그래도 열어봤는데 양이 많기도 하고 오늘 출근하자마자 하려고 했습니다.
-당장 내가 지금 회의 가서 말해야 되는데 이게 정리가 안 돼 있으면...하 진짜...
-그게 그 부분은 말씀을 안 하셔서...급하신 줄 알았으면 집에서라도 했을텐데 죄송합니다.
-센스 없어? 내가 퇴근 직전에 주면 그만큼 급한 사안인 거 몰라요?
-죄송합니다.
-아니 내가...됐어. 인턴한테 내가 뭘 기대해. 그 따위로 해서 정규직 되겠어요?
이 개새끼. 진상 새끼. 맨날 이런 식이다. 뜬금없이 툭 던지고 갑자기 됐냐 안 됐냐 확인하고. 일을 시키면 뭔 데드라인이나 주든가. 아니면 와꾸라도 지가 좀 잡아주든가.
이번도 그런 식이다. 4만 개 넘는 고객 데이터 던져주고 정리를 하래. 그것도 완전 로데이터. 기간으로 정리를 하라는 건지 구매 물품으로 정리를 하라는 건지, 구매액으로 정리를 하라는 건지. 센스껏? 분석할 때마다 포인트가 다른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아나. 이제 고작 2개월 된 인턴인 내가. 회의 때 배석을 시키길 하나.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하나도 모르는데. 맨날 복사기 당번이나 시키고 잡일이나 시키는 주제에. 존대도 아니고 반말도 아니고. 화가 난다. 키보드를 박살내고 싶다. 키보드를 부수면 카○오톡을 못하지. 아님 저 정수기. 아니 김 대리 새끼 대가리부터 박살을 내야지. 아, 배고프다. 꼬르륵.
회의를 마치고 온 김 대리의 표정이 생각보다 밝다. 듣자하니 임기응변은 잘한다고 했다. 뭔가 화제를 전환하든가 하면서 대충 잘 넘어갔겠지. 아니면 나한테 시킨 건 그다지 급하지 않은 거였다거나. 어느 쪽이든 뭐. 그런다고 저 진상이 앞으로 진상을 안부릴리 없을테니까.
-아이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밥 먹으러 갑시다.
-아...네...알겠습니다.
-아침에 내가 뭐라 했다고 꽁해있는 거 아니지? 다 당신 잘 되라고 그러는 거야. 돈까스 어때요? 오늘 기름진 게 좀 땡기네. 회사 앞에 ‘오하요’, 거기 괜찮아.
오피스타운은 사실 딱히 맛집이랄게 없다. 좀 먹을만하다 싶으면 줄을 한참 서는게 기본이다. 그야말로 먹을만한 수준. 그건 돈이 아깝지 않다는 수준과 같은 말이다. 돈을 내고 먹는데 돈이 아깝지 않은 수준이 보장돼야 하는 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식이 아닌가. 돈 낸 만큼 효용을 보장받아야지. 돈이 아깝지 않다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 몇 십 분을 더 허비해야하는 건 용납이 안 된다. 그런데 용납이 안 되면 뭐 어쩔 건가. 맨날 샌드위치나 삼각김밥 따위로 때우는 건 너무 슬프잖아. 그런 건 취준생 시절로 충분하다고.
그리고 회사 근처 맛집이라면서 블로그니 페북이니 인○타니 올려대는 사람들. 거기 진짜 맛집이긴 해요? 기본만 해도 줄서서 먹는게 그 동네인데, 반은 자리 값이고, 반은 시간 값인데, 아님 뭐 그 동네에서 회사다니는 거 자랑하고 싶어요? 하기사 은근 가슴팍에 사원증 슬쩍 보이게 찍고 그러더라. 얄팍하기 짝이 없어요.
하여튼 김 대리 개진상이 데려온 여기도 뭐 오피스타운의 흔한 식당 중 하나. 오하요? 고자이마스입니다. 간판을 보니 떠오르는 드립. 입 밖으로 내면 분명 비난을 받겠지. 내 맘속에만 온전히 킵.
-나는 히레까스.
-저는 그냥 냉소바 먹을게요.
-왜, 여기 시그니쳐가 히레까스인데, 그거 먹어요.
-아니 괜찮아요. 저는 오늘 좀 산뜻하게 먹고 싶어서요.
-그래 그럼 뭐. 취향 존중. 다원화 사회, 민주주의 사회. 난 꼰대 아니거든. 강요 안 해요. 여기요. 히레까스랑 냉소바 하나씩 주세요. 내가 오사카 갔을 때 난바역 앞에서 먹은 돈까스 집이 있거든. 거기가 완전 기가 막혀요. 사전 정보도 없이 감만 잡고 딱 들어갔는데 거기가 로컬 맛집인 거야. 진짜 현지인들만 아는. 내가 그만큼 감이 좋아요. 그런데 여기가 얼추 그 맛이랑 비슷하더라고. 깜짝 놀랐지 뭐야. 여기가 가격이 좀 되긴 하지만 맛이 그만큼 받쳐주니까. 사실 암만 비싸도 가격보다 맛이 더 잘 나오면 가성비 좋은 거 아닌가. 그니까 여기는 가성비 맛집. 하하.
찐따 같은 게 뭐래. 작년에 그 짝퉁 라멘 맛집도 오사카 어쩌고 하더니 너도 오사카냐.
-나이가 몇 살이랬죠?
-스물 일곱입니다.
-한창이네.
나보다 꼴랑 네 살 많은 게 같잖기 짝이 없다. 틀딱이세요?
-내가 일하는 거 두 달 동안 쭉 봤는데, 그게 좀 더 사람이 열의가 있으면 좋겠어요. 인턴이라도 지금 그렇게 기회 잡기 쉬운 게 아니잖아요. 정규직 전환형 인턴이래매. 그럼 더 열심히 해야지. 우리 회사가 좀 작아도 나름 강소기업이라고. 업무도 업무지만 자기계발 없이 뭐가 안 돼요. 바깥도 치열하지만 안도 치열하다고. 일단 사무용 툴부터 빨리 마스터를 해요. 특히 엑셀, 너무 느려. 단축키, 열 선택, 행 선택 이런 거 빨리빨리 익혀야 돼.
-대리님, 엑셀이나 자료 복사 이런 거 말고 다른 건 언제쯤 배울 수 있을까요. 회의 하실 때 정도는 제가 배석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회의가 아무나 들어오나 어디. 이제 두 달 됐잖아. 기본부터 마스터해야지. 서두르지 말고 기다려 봐요. 내가 당신 에스컬레이션 제대로 시키려고 기본기부터 확실히 단련시키는 거니까.
계속 일할지 안할지도 모르는 애 가르쳐봐야 뭐하나 이거겠지.
-음식 나왔네. 먹읍시다.
핸드폰 카메라를 여는 김 대리. 각도를 이리저리 재더니 연신 찰칵찰칵. 잔망스럽게 사진 찍는 꼬라지가 영낙없는 진상의 스탠다드다. 찍고 깨작거리는 꼬라지 보니 너도 인○타구나.
-이 황금빛 튀김옷 좀 봐봐. 이게 딱 오사카 느낌이거든. 아, 진짜 언제 다시 가려나.
아, 진짜 그 놈의 오사카 좀. 돈까스 안 시키길 잘했지. 내 돈까스 보면서 두 배로 오사카 타령 했을 거 아냐. 근데 소바가 더럽게 맛이 없다. 국물에 얼음만 오지게 많아서 면이 꽁꽁 얼었다. 차갑고 크리스피한 면발. 얼음덩이 소바. 결국 반도 못 먹었다.
-거 봐. 내가 히레까스 먹으라니까. 이게 오사카에서...
아 오사카!!!!! 이를 악 물자. 메데타시...메데타시...저 새끼 말 들을 걸...이라는 생각은 하지 말자. 이 시리고 맹탕에 바사삭하는 소바는 또 만이천원. 무려 내 월급의 영쩜육퍼센트. 굳이 여기로 끌고 온 김 대리 새끼는 행여나 밥을 사나 했더니 역시나 더치페이. 말로만 선배인 새끼.
딴 짓 하기 딱 좋은 구석탱이 내 자리. 입사날 총무부장이 내 자리를 안내해주는데 김 대리가 인턴이 자리는 부장이라면서 이죽거렸다. 지 일도 바빠 죽겠는데 누구 가르칠 시간이 어딨냐고 투덜투덜. 그런 소리는 당사자 없는데서 하는게 예의 아닌가. 그 때부터 이 새끼 진상이구나 싶었지.
시스템 갖춰봐야 사장이랑 그 이사(=사장 마누라) 기분대로 돌아가는 작은 회사답게 업무 시간에 제법 빈틈이 많다. 뭐 하나 제대로 만드는 것도 없이 물건 떼다 팔아먹는 회사인데 인턴까지 쓰고 있으니 겉으로 보기엔 제법 번드르하다. 듣자하니 사장이 유통업에서 굴러먹은 짬밥이 제법이라 인맥빨로 장사를 한다나. 지역구 의원이랑도 쏠쏠한 관계라고 한다. 선거 때는 그 당 찍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도 내려온다지.
인○타는 온통 셀럽이랑 음식 사진 천지. 보정빨이라도 부럽다. 저 얼굴, 저 몸매, 저 돈. 나는 닿을 수 없는 그 어딘가를 이래저래 훑어보다가 자괴감에 빠진다. 아무 생각 없는 줄 알았는데. 최근 검색했던 #maniakatsu 를 다시 한 번 탭.
얼레. 오늘 영업한다는 공지가 있었다.
「요즘 아실만한 상황으로 고기 수급이 어려웠습니다. 고기 가격도 올랐습니다. 우리흑돈으로 모시고자 했으나 구할 길이 막혔습니다. 당분간 버크셔K로 갑니다. 그래도 돈까스 가격은 그대로. 오늘은 점심만 로스까스 겨우 가능할 거 같습니다. 어서 오세요.
30분 전이구나. 다녀온 사람 하나가 ‘#카츠광’을 달고 포스팅을 올렸다. 어마무시하게 맛있단다. 겉은 그렇게 바삭한데 속은 또 어찌나 촉촉한지. 입에 넣자마자 씹기도 전에 사르르 녹아버리는 부드러운 식감은 또 어떻고. 퍽퍽해야 등심인데 퍽퍽하지 않단다. 돈까스의 신기원? 백○원은 여기 안 오고 뭐 하냐고? 극찬에 극찬. 호들갑은. 너무 오버가 심하니 바이럴이라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잖아. 하, 그런데 그렇게 맛있나. 집 근처인데 속는 셈 치고 한 번 가봐? 오늘은 점심 장사만 한다잖아. 에이 뭐, 오늘만 날인가. 내일이라도 기회 있겠지.
딴 짓은 그만. 밥값은 해야지. 김 대리가 떠넘긴 잡무로 시간이 훌쩍훌쩍 지나간다. 이대로 퇴근시간까지 직행. 출근할 때는 지랄맞게 시간 안 갈 거 같더니 노가다성 단순업무가 이런 거는 좋다. 시간이 잘 가거든. 나도 생산적인 일에 몰두하고 싶다. 엑셀 노가다 같은 거 말고. 과장이랑 거래처 이름 주고받으며 분주해보이는 김 대리가 부럽다. 저 사람은 정규직. 나는 한 달 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턴.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퇴근하고 싶다.
콩나물 시루 전철에서 내려 집에 가는 길, 카츠광에 불이 켜져 있었다. 문 앞에는 ‘금일 영업 마감’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고, 안에서는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과 또래의 사람 한 명이 같이 앉아 캔맥주 하나를 들고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여유로운 모습. 점심에 먹었던 바스라지는 냉소바가 생각났다. 맛대가리도 없는 거. 그 뒤로 아무 것도 안 먹었구나. 배가 고팠다. 편의점에서 1+1으로 파는 컵라면 두 개와 김밥 한 줄을 샀다. 딱 하나 남은 김밥, 나이스 캐치.
서울 어귀의 원룸촌. 내 집은 8평짜리 표준형 원룸. 아침에 억지로 박차고 나온 이부자리의 어지러운 모양새가 그대로다. 며칠째 화장실 환풍기가 고장 나서 습기를 제대로 못뺐더니 집안에 온통 퀴퀴한 물비린내가 풍긴다. 빨래는 마르지도 않고. 아, 건조기 사고 싶다. 집주인은 환풍기 고쳐달라고 말한 게 며칠 째인데 답도 없다. 자린고비 같은 새끼.
라면에 물을 붓고 밥상 위에 세팅.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넷○릭스를 훑어본다. 썸네일을 하나하나 클릭하며 내용을 훑다보니 라면이 다 익었다. 라면 먹을 동안 뭐 볼지 아직 정하지도 못했는데. 어쩔 수 없이 어제 밤에 처음 방영한 드라마를 켰다. 라면 먹는 동안 보는둥 마는둥했는데 뭐야 이거 생각보다 재밌네. 제법 몰입이 되네.
김밥 밥알이 뭐 이렇게 딱딱한가 싶어 보니 폐기까지 앞으로 2시간. 그거 딱 하나 남은 데는 이유가 있었어. 반쯤 식은 국물에 억지로 불려서 먹어보다 결국 포기했다. 시발, 오늘 점심 저녁 다 똥 밟았네. 쓰레기통으로 직행. 십 리터짜리 쓰레기봉투 채우기까지 한참 남았으니 이대로 방치하면 집안에 한동안 썩는 내가 진동하겠지. 비닐봉지로 둘둘 감아서 최대한 밀봉. 나 같은 싱글을 위해 작은 쓰레기 종량제봉투가 필요하다.
드라마의 다음 편을 기약하며 구직 사이트를 훑어보았다. 오늘도 마땅한 곳은 없다. 역시나 경력직 구인 뿐이네. 일을 시작해야 경력이 생기죠. 이 사람들아. 대기업, 그리고 중견기업 오너분들. 신입 좀 정규직으로 화끈하게 뽑아주세요. 뽑아만 주시면 경제 활성화를 위해 돈 팍팍 쓸게요, 오늘만 사는 것처럼. 다 귀찮다, 오늘은 양치만 하고 자야지. 발도 씻고.
침대에 누워서 인○타를 열었다. 카츠광. 방문 인증 포스팅이 몇 개 더 올라왔네. 낮에 봤던것과 비슷한 사람들의 반응. 사진빨 죽인다. 두툼하게 썬 고기의 촉촉한 분홍빛 단면. 그렇게 맛있나? 내일 퇴근길에 한 번 먹어 봐? 자야겠다.
출근. 복사해서 붙여넣기, 잘라내기, 딜리트, 복붙, 복붙, 잘라내기, 잘라내기, 딜리트 딜리트 하루 여덟 시간 동안 내가 하는 일. 두 달 째 내가 하고 있는 일. 김 대리 새끼는 외근 나가서 오늘 점심은 혼자 먹어야 한다. 그 돈까스 집은 안 가. 제대로 먹어야 되는데 한 끼에 최소 8천원. 가성비 괜찮은 집은 줄이 길고, 결국 내 선택은 ○솥도시락이다. 기름기 넘치는 반찬들이긴 하지만 5천 원도 안 되는 돈에 이렇게 따뜻한 밥 주는 데가 또 있나 어디. 구석지고 아늑한 내 책상 자리에 앉아 넷○릭스를 틀어놓고 한 끼 맛있게 흡입. 도시락 가게 왕복에 이십 분, 먹는 시간 십 분. 남은 삼십 분은 넷○릭스에 집중하는 해피 타임.
그 전에 잠깐. 인○타에 #maniakatsu 를 검색. 점심 두 시간 전에 올라온 공지. 오늘은 저녁까지 영업이 가능할 거 같다고. 퇴근해서 한 번 가볼까?
오후 네 시, 외근을 다녀온 김 대리의 얼굴이 흙빛이다. 김 대리에게 보고받은 부장 얼굴도 흙빛. 부장이 사장한테 다급히 전화하는데 사장 얼굴도 보나마나 흙빛이겠지.
-폭탄 떨어졌어. 폭탄. 저번 주에 1○번가 특가 이벤트로 나간 거 있잖아. 전동 공구 세트. 중국 꺼. 드릴 기어 결함이래. 그게 완전 설탕이랜다. 영국인가에서 리뷰 떴대. 파사삭. 한 반 년 쓰면 기어가 싹 다 갈려서 모터도는 소리만 난대. 아, 미친 새끼들. 물건을 어떻게 만든 거야. 싹 다 리콜, 리콜. 아 씨발. 진짜.
-아...그럼 저는...
-뭐해야겠어, 야근이지. 일단 고객 명단 추리고. 다섯 시에 반품 접수 공지 나가니까 전화 받을 준비해.
젠장할...그거 판매량 오천 개 넘는데...
퇴근. 깜깜한 바깥. 시계를 보니 열한 시 반.
-수고 했어요. 먼저 퇴근해. 택시 타고 들어가요. 택시 영수증은 총무부에 제출하고.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먼저 들어가보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인턴 두 달을 넘어가는 시점에 처음 맞이하는 야근. 하지만 오늘로 끝날 일이 아니란 거. 지옥같은 날들이 기다리고 있다. 반품 들어오는 거, 둘 데도 문제다.
택시에서 내리니 열두 시가 넘어가는 중이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에 가다보니 불 켜진 카츠광의 모습이 보였다. 아직도 집에 안 간 거야? 오늘 저녁은 저기서 먹으려고 했는데. 사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좌석으로 둘러싸인 조리공간에서 바쁘게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저기 배달도 안 하는 거 같던데 지금 이 시간에 뭐 하는 걸까.
무슨 생각이었던 걸까, 영업 마쳤다는 팻말을 무시하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가게 안을 꽉 채운 고소한 냄새. 문을 열고 사람이 들어오니 사장이 튀김기에서 바쁘게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내 쪽을 쳐다보았다.
-저, 손님 지금 영업 안 합니다.
-아, 죄송해요. 영업 안 하시는 거 아는데 지금 뭐 하시는 건지 너무 궁금해서요.
-네?
-아, 저 이상한 사람 아니고요. 밤 늦게까지 열심히 하고 계시는 게 뭔가 해서요.
뭐 이런 게 다 있냐는 사장의 눈빛, 짧게 자른 머리에 단단한 체형, 얼굴로 보아하니 삼십 대 초반. 팔뚝을 보니 3대 500은 기본일 거 같다. 이런 사람한테 이런 눈빛을 받는 일을 저지르다니. 내가 미쳤지.
-아 저희 가게가 가오픈 중이라서요. 혹시 인○타 보셨어요? 거기다 계속 올리는 중인데. 여러 품종이랑 부위로 계속 테스트 중이에요. 요새는 구제역 때문에 고기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수급 쉬운 물건으로 맛 내보려고 테스트 하고 있어요.
생각보다 청아한 목소리. 처음 표정과는 다른 태도. 불쑥 찾아든 낯선 이에게 이런 친절한 설명이라니. 장사하는 사람의 기본은 이래야하는 거겠지. 가오픈 중이라니. 어쩐지 어수선하더라.
-암만 그래도 이런 늦은 시간까지, 대단하시네요.
-뭘요. 그냥 좋아서 하는 거예요. 근데 이 근처에 사시나봐요?
-네, 야근하고 지금 퇴근하고 있어요. 저희 집은 저기 한 이백 미터 가면 있고요.
-아이쿠 이 시간까지. 동네 분이신데. 내일, 열두 시 지났죠? 그럼 오늘 점심에 재료 안 떨어지면 저녁까지 영업하니까 오세요. 고기 넉넉하게 주문했으니까 저녁까지 가능할 거예요. 그래도 모르니 인○타 공지는 확인해주시고요.
-네, 꼭 올게요. 갑자기 불쑥 죄송합니다.
-아녜요. 퇴근하시고 꼭 오세요.
밤 늦게까지 맛을 위한 테스트. 이런 게 장인정신의 영역이겠지. 분명히 맛있을 거야. 인○타에서 극찬하던 그 사람들 거짓이 아니었을 거야. 내일, 아니 오늘 저녁에는 가봐야겠다.
그럼 그렇지. 예정된 야근. 혹시나 하고 기대를 하면 안되는 일이었다. 쏟아지는 전화와 스물스물 밀려드는 택배. 어제 오후에 공지했는데 어떻게 오늘 벌써 이렇게 밀려드는 걸까. 미친 대한민국 택배 시스템같으니. 회사 지정 택배사로 보내면 일괄로 환불 처리해준댔더니 마음 급한 고객들이 손에 잡히는 택배회사 아무데나 막 착불로 맡겨서 그 택배비도 내줘야 한다. 김 대리가 그거 나보고 하래. 회사 지정 택배로 안보냈다고 반송처리하면 분명 개막장 판매업자로 조리돌림 당하겠지. 아 망할!!
중국 업체랑 전화로 싸우던 부장은 중국 가서 직접 해결해야겠다며 부랴부랴 짐을 싸서 회사를 나갔다.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고. 오늘은 아무 것도 못하고 다들 전화만 받는 중. 그래도 6시 이후에는 안 받아도 되겠지. 다들 그 정도 상식은 지킬 거야.
숨 돌릴 틈은 오로지 화장실 가는 시간. 오늘 저녁 카츠광에는 못 가겠네. 변기에 쪼그려 앉아 인○타를 열고 카츠광 페이지를 확인했다. 지난 밤 사장이 말한 대로 다른 날보다 재료가 넉넉하게 들어와서 저녁 좀 늦게까지 영업이 가능할 거 같다고. 아 사장님, 전 오늘도 열두 시나 돼서 퇴근할 거 같아요. 오늘 저녁도 어제처럼 백반이나 시켜먹겠지, 그거 아니면 설렁탕. 돈까스 먹고 싶다.
밀려드는 택배와 전화, 끝없는 환불 작업도 이주일 정도 지나니 어느 정도면 끝이 듯 했다. 주말도 없고, 저녁도 없고. 택배 까고 정리하고 트럭에 실어 컨테이너로 보내고. 이 짓거리를 회사 사람들이 전부 나서서 하루에 십수번을 했다. 하나에 십만원짜리 물건 오천 개를 한 번에 반품 받았으니 회사가 멀쩡할 리가 없다. 내일 돈 땡겨서 오늘 버티는 중소기업 아닌가. 평소에 코빼기도 안 보이던 사장이나 사장 마누라가 자기 아들내미까지 불러서 반품 업무 처리하는 걸 보면 보통에 보통 일이 아닌 건 확실했다. 그래도 직원한테만 안 떠넘기니 일말의 양심은 있는 거라고 해야 할까.
중국 업체에 갔다가 며칠만에 돌아온 부장의 얼굴은 열흘이 지나도록 어두웠다. 우리한테 물건을 보낸 그 업체도 도산 직전이라나. 말해 뭣하나 싶은 그런 상황. 신생 기업인데 야심차게 출시한 물건이 그 모양이니 안 망하는게 이상하긴 하지. 그런데 손해 배상을 받는 건 고사하고 그냥 리콜된 물건을 우리가 껴안고 처리해야 될 상황이었다. 사장은 중국 업체 쪽에서 뭔가 수습중인 모양새니 좀 더 희망을 갖고 기다려보자고 직원들을 다독였다.
그렇게 오랜만에 정시 퇴근길. 포털 메인 제일 위에 뜬 뉴스. 구제역이 두 달 넘게 잡히지 않고 확산일로라고 한다. 살 처분된 돼지 수가 삼백 만 마리를 넘었다고. 기사에서는 이대로라면 최악이었던 2011년 구제역 사태를 뛰어넘을게 확실하다고 했다. 그러고보니 카츠광. 거기 가야 되는데. 이 주 동안 정신이 없어서 거기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인○타도 한참 안 들어가봤으니.
골목 어귀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카츠광, 불이 꺼져 있다. 문 앞에 붙어있는 쪽지.
「재료 수급이 어려워 당분간 휴업합니다.
영업재개시 인○타에 공지합니다.
또 휴업이네. 언제부터인건가. 아쉽네. 오늘은 오랜만에 김밥이랑 라면 먹어야겠다. 이 주 전에 1+1으로 사서 하나 남은 라면이 있었지. 김밥만 사가면 되겠네. 이번엔 제조시간 잘 확인해야지.
-조용한데 가서 얘기 좀 해요. 옥상으로 좀 갈까요?
김 대리 새끼. 아침부터 왜 이렇게 무게 잡고 지랄이래. 뭔 꼰대같은 소리를 하려고.
옥상에는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김 대리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나 비흡연자인데. 나한테 묻지도 않네.
-이번에 우리 회사 폭탄 맞았는데 같이 뒤치다꺼리 하느라 고생 많았어요. 나도 이제 숨 좀 돌리겠네.
-이 주 동안 진짜 죽는 줄 알았어요. 주말도 없고. 어제 오랜만에 칼퇴근해서 진짜 좋았어요.
-맞아. 우리 엄청 고생했지. 내가 다 알아.
-그러게요. 우리 이만큼 고생했는데 회사에서 뭐 안 나와요? 소고기라도 사줘야 되는 거 아닌가.
-이제 들어온지 석 달 다 돼가죠?
-정규직 전환형 인턴으로 해서 들어왔죠. 들어올 때 총무부장님이 엥간하면 정규직 된다고 하셨는데. 우리 회사 엄청 손 모자라다고.
-그래서 말인데...
김 대리의 굳은 표정. 느낌이 쎄하다. 그 뒤는 듣고 싶지 않다.
-네...
-이번에 리콜 건으로 회사 손해가 막심해. 대충 들었겠지만 중국 업체가 도산 직전이라 손해 배상도 못하고, 리콜 받은 물건들은 우리가 비용 들여서 다 폐기해야 되는 상황이에요. 이게 한두푼으로 메꾸기 어려운 상황이라네.
-그래서 아마 정규직 전환은 어려울 거 같아요. 그러니까 이 달 말까지만 일해야 될 거 같네. 진짜 내가 당신은 어떻게든 정규직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미안하게 됐어요.
이 기분을 뭐라고 해야 하나. 막막한 것도 아니고, 후련한 것도 아니고, 미묘하게 더러운 이 기분. 설마 했는데 내가 고작 너 따위 놈들한테 버림받다니. 자괴감과 분노, 비탄이 섞인 이 기분. 내가 너한테 그런 말 듣고 싶지는 않았는데.
-하...네, 알겠습니다. 회사가 어렵다는데 어쩔 수 없죠.
애써 담담한 척. 내가 이 인간한테 쏟아부은들 뭘 어쩌겠나. 이 새끼도 대리 나부랭이인데.
-자세한 건 이따가 총무부장님이 말해줄거예요. 그리고 같이 점심 먹어요. 내가 돈까스 살게.
안 먹어 개새끼야.
-네.
오사카 난바역 앞 가게 그 맛이라는 돈까스. 김 대리가 그렇게 오버를 떨었는데 그다지 특이한 맛도 아니다. 흔한 체인점 맛인데. 맛알못 새끼.
-내가 진짜 당신 사수 맡아서 잘 키워보려고 했는데. 이게 상황이 너무 안 좋아서 어쩔 수 없게 돼 버렸어. 나도 너무 안타깝네.
체하겠다. 이 개새끼야. 니가 사수로 나한테 뭘 가르쳐줬다고.
-그래도 이게 다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실무 경험 차곡차곡 쌓다보면 그게 다 자산이거든. 이번에 폭탄 터진 거, 그거 진짜 큰 경험이에요. 나도 이런 사고는 처음이라고. 그런 일 한 번 겪으면 어딜 가든 어려울게 없어. 진짜 인턴 삼 개월 알차게 채워 나가는 거야.
데이터 덩어리 던져주고 엑셀 복붙 말고 나한테 뭘 더 시켰다고. 내가 여기서 잡일 말고 한 게 뭐가 있는데. 너 혼자 바쁜 척은 다 하면서 나한테 뭘 가르쳐줬는데. 이 주 동안 맨날 열두 시에 집에 갔는데 보상은 하나도 없고 그냥 나가라고? 지 딴엔 저게 위로라는 거지. 싸이코패스 같은 놈.
-나갈 때 경력 증명서 챙기는 거 잊지 말고.
확인사살. X소기업 삼 개월짜리 인턴 경력 증명서 얻다 쓰라고. 그냥 생각을 비우는 게 낫겠다.
-여기는 진짜 맛이 제대로야. 일본에 가도 먹힐 거라니까. 그리고 항상 유종의 미가 중요하다고. 마지막까지 성실한 모습을 보여줘야 또 기회가 찾아온다고. 세상이 생각보다 좁아. 그러니까 너무 낙담하지 말고 끝까지 우리 잘 해봐요.
아 돈까스 졸라 맛없어. 안 먹어 씨발. 세상이 아무리 좁아도 너는 다시 안 봐, 이 새끼야.
오후에 나를 불러 총무부장이 해주는 얘기는 아침에 김 대리가 해준 얘기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김 대리한테 먼저 들었다니 총무부장은 그 인간은 뭐 쓸데없는 소리를 다 해놨다고 구시렁거렸다. 어째 TMI긴 했어.
나가는 날이 예정돼 있으니 일이 손에 잡힐리 만무. 3개월도 안된 근무기간이니 책상에 딱히 정리할만한 뭣도 없었다. 석 달 동안 알바만도 못한 월급받으면서 남은 건 하나도 없네. 2주 풀야근은 어쩔 거야. 야근 수당. 주말 출근 유휴수당. 그건 다 정산해주겠죠, 설마.
워낙에 엿같은 기분을 달래야하니 지하철에서 내려 코인노래방을 찾았다. 첫 번째로 부른 노래는 ‘질풍가도’. 일반인이라면 남자든 여자든 한 키는 낮춰줘야 소화가 가능하다. 그래도 힘찬 가사에 한껏 질러대면 분이 좀 풀린다. 그 다음으론 자우림 ‘스물 다섯 스물 하나’, 딱 지금 내 기분, 내 나이에 맞는 노래. 그리고 나훈아의 ‘테스형’, 그래 이거지. 세상이 왜 이러냐고요. 노래를 한껏 부르고 나니 기분이 좀 프레시해졌다.
다음 달부터 뭐 해서 먹고 사나. 편의점 알바라도 다시 해야 하나. 휴업한다던 카츠광에 불이 들어와 있다. 문에 쪽지도 없고. 설마 영업 재개? 그런데 안에 손님이 하나도 없네.
슬그머니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영업 하시는 거예요? 인○타에 공지도 없던데요.
-아이고, 그 때 밤에 오셨던 분이네요.
-저 기억하시는구나.
-뜬금없었으니까요. 오늘은 재료가 워낙 소량이라 지나가다 땡겨서 오는 분 계시면 팔고 아님 말고 그러려고요. 일부러 공지 안했어요.
이 양반. 기억력, 친화력 다 좋네.
-그럼 저 뭐 먹으면 돼요?
-난축맛돈이라고 아세요? 거기 안심을 좀 구했어요. 히레까스로 드세요.
-딴 건 또 없구요?
-난축맛돈 드셔보신 적 없죠? 드셔보신 적 없으면 오늘 한 번 드셔보세요.
-그럼 그걸로 주세요.
-네, 준비해드릴게요. 십 분 정도 걸립니다.
여덟평 쯤 되는 공간. 내 방 크기랑 얼추 비슷했다. 가게 한 가운데 정갈하게 세팅된 조리시설과 그 주변을 둘러싼 좌석들. 열 명도 앉지 못할 작은 가게였다. 고요한 적막 가운데 기름 자글거리는 소리와 촤르르 하며 돈까스 익어가는 소리, 튀김기 위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만이 들렸다. 그리고 식용유의 고소한 냄새, 조금의 쩐내도 섞이지 않은 신선한 기름이었다.
-이 난축맛돈은 근내 지방, 살코기 사이사이에 지방이 아주 환상적으로 껴 있거든요. 제주 흑돼지 아시죠? 엄청 맛있는 거. 근데 그게 자라는 속도도 느리고 새끼도 많이 안 낳아서 생산성이 떨어지거든요. 근데 서양 품종 중에 랜드레이스라고. 얘는 빨리 자라고 새끼도 많이 낳고. 생산성 짱. 그래서 흑돼지랑 랜드레이스랑 교배를 잘 시켜가지고 만든게 요 난축맛돈이에요. 난지축산연구소 맛있는 돼지. 이게 엄청 비싸요. 보통 돼지 두 배 가격. 한 달에 삼백 마리도 안나와요, 아직은. 요 놈한테서 나온 이 안심. 고기 사이에 지방이 보통 돼지 서너 배. 그래서 가격도 두 배. 완전 명품. 그니까 이 안심이 얼마나 죽여주겠어요. 이걸로 히레까스를 만든다? 말할 필요가 없죠.
사장님, 완전 투머치토커. 안 물어봤어요. 안 궁금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방 많은 고기만 엄청 좋아해요. 돼지는 삼겹살, 목살, 갈비 이렇게 나가고, 나머지는 잘 안 팔려요. 특히 돼지 안심은 정말 안 먹어요. 동네 정육점 가서 돼지 안심 달라고 하면 파는 집 거의 없어요. 근데 이 안심으로 돈까스를 만들면 환상적이죠. 느끼하지 않으면서 부드러운 육질. 삼겹살 같은 걸로는 꿈도 못 꾸죠. 완전 돈까스 최적화 부위.
멈출 줄 모르는 사장님의 입. 그만 하셔도 돼요. 진짜 안 궁금하다니까요.
-다 익었네요. 이걸 바로 썰면 기름도 질질 흐르고 엄청 뜨겁겠죠? 이 분 정도 기름을 빼면서 래스팅을 해주면 완벽한 맛이 되죠.
기름이 다 빠진 돈까스를 도마 위에 올리고 사장님이 섬세하면서도 호쾌하게 썬다. 사라락, 파사삭. 잘 벼린 칼질 한 번에 튀김옷과 고깃덩이가 함께 슥삭. 노란튀김옷과 옅은 분홍빛 고기 단면의 환상적인 색조합. 잘린 틈 사이로 수줍게 피어오르는 저 수증기. 수증기 틈바구니를 헤집고 고기의 향이 고소한 기름냄새와 함께 퍼져나온다. 식용유의 열이 튀김옷의 벽을 거쳐 돼지고기의 단백질을 감칠맛 덩어리로 만들었다. 냄새에는 감칠맛이 함뿍 묻어나왔다. 저 색, 이 냄새는 내 무의식이 알고 있었다. 무의식이 말초신경을 두드리고, 말초신경은 침샘을 활성화시켰다. 입안 가득 고이는 침. 꼴깍.
나무쟁반 위에 깔끔하게 세팅된 돈까스. 오리엔탈 드레싱을 뿌린 얇게 채 썬 양배추 샐러드, 맑은 미소된장국. 그 옆으로 종지가 셋, 하나는 분홍빛 소금, 하나는 와사비, 하나는 무슨 기름? 실로 아름다운 광경이다. 이 아름다운 것이 지금 내 바로 앞에 있다.
-처음에는 요 소금에 찍어서 와사비 살짝 올려서 드셔보시고요.
와사비의 알싸한 향이 먼저 코를 찌르고 뜨거운 튀김옷의 바삭한 질감이 혓바닥과 입천정을 긁는다. 튀김옷이 먼저 입안에서 나풀나풀. 아 고소해. 한입 베어물고 우물우물. 이가 들어갈 때는 단단했던 고기 덩어리가 입안에서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사르르 풀려서 흩어진다. 단단하면서 부드러워. 뭐지 이 형용모순은. 고기 조각 사이로 배어나오는 풍부한 육즙. 감칠맛이 폭발한다.
-입맛에 맞으세요?
-와, 진짜 장난 아니게 맛있어요.
-한 조각 드시고, 다음 조각은 들기름에 살짝 찍어 드셔보세요.
정체불명의 기름이 들기름이었구나. 사장님이 시키는대로 또 한 점. 나물이나 무쳐먹던 들기름에 이런 가능성이 숨어있었어? 들기름의 강렬한 향이 돼지고기의 여린 향을 감싼다. 동반 상승으로 이뤄내는 조화가 바로 이런 거구나. 맛이 증폭되고 있어! 이것이야말로 신세계!
-색다르죠? 와사비야 요새 고기랑 같이 많이 드시니까. 그런데 들기름도 돈까스랑 제법 잘 어울린다는 거 모르는 분들이 많으세요.
-진짜요. 처음 먹어보는 맛이에요.
-돼지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난축맛돈, 와사비는 임실에서 난 거예요.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향이 특징이죠. 들기름은 나주에서 온 거고요. 소금은 히말라야 핑크 솔트. 요새는 많이 쓰는 소금이죠. 천일염 같은 바다소금보다 다른 성분이 적어서 정직한 짠 맛이 나죠.
우리 설명충 사장님, TMI는 스탑. 일단 좀 먹고요. 그런 거 얘기해줘도 저 기억 못해요. 그리고 그런거 뭐 중요한가요. 이렇게 맛있는데.
-제가 너무 말이 많았죠. 그럼 이젠 드시는데 집중하시게 해드릴게요.
마음이 표정에서 드러났나보다. 여덟 조각으로 곱게 썰린 돈까스가 하나 씩 줄어든다. 슬프다. 내 뱃속으로 들어가는 거니 질량보존법칙으로 돈까스의 총량은 유지되는 건데, 눈 앞에서 사라지니 영원히 소멸하는 것만 같다. 머리 속에 커트 코베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Smells like teen spirits>.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노래. 롤링스톤이 뽑은 500대 명곡 중 9위라지. 난 90년대 얼터너티브락이 좋다. 가사는 뭔 내용인지 모르겠지만 간지는 폭발하잖아. 퇴폐적이고 염세적이고. 허세를 부리려면 그 정도는 돼야 하는 것. ‘A mulatto! An albino! A mosquito! My libido!!!!!’ 다른 게 마약이냐. 이 맛이 바로 마약이다. 커트 코베인이 이 맛을 알았다면 헤로인 같은 건 빨지 않았을텐데. 커트 형님, 왜 그렇게 빨리 가셨답니까.
무의식이 의식을 지배하고, 본능이 이성을 마비시키던 시간. 돈까스는 혀를 교란하며 황홀경에 빠뜨리고 뇌에 강렬한 기억을 새긴 뒤 내 신체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회사에서 잘린 더러운 기분이 이렇게 일소가 되는구나.
-맛있게 드셨어요?
-와, 대박. 왜 진작 안 왔나 모르겠어요.
-사실은, 영업 오늘까지만 하고 정리하려구요.
-아니 왜요? 엄청 맛있는데, 계속 장사하시면 안 돼요?
-고기값도 너무 올랐고, 좋은 고기 구하기도 힘들고. 요새 장사할수록 손해예요. 구제역이라고 손님들 오지도 않고. 구제역 끝나도 계속 나쁜 상황일 거 같아서 정리하려구요.
-오픈하신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요. 그래도 좀 더 해보시면 입소문 타서 대박날 거 같은데요.
-그냥 좀 어려울 거 같아요. 그래서 오늘은 누구든 오시면 최고 좋은 고기로 대접하고 정리해야지 생각했는데, 손님이 딱 오셨네요.
이게 무슨 예상치 못한 폭탄 선언인가. 사장님, 그러지 마세요.
-저 오늘 처음 먹어보는데, 그게 또 마지막이라니 좀 어이없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기분 참 희한하네요. 진짜 맛있게 먹었는데.
-제가 손이 느려서 좀 더 수련도 해야 하고, 돈까스 워낙 좋아해서 독학으로 어떻게 가게까지 열어봤는데 만만치가 않네요. 처음 생각하고 다르게 수지타산이 안나오더라고요.
오늘 두 번째 본 사장님의 TMI 독백. 나만 들을 수 없지.
-저도 오늘 회사 짤렸어요.
얼굴근육을 총동원해서 진심으로 놀라는 돈까스집 사장님의 얼굴. 뭘 또 그렇게까지 놀라고 그러세요. 민망하게스리.
-어이쿠, 어쩌다가요.
-국가에서 지원하는 정규직 전환형 인턴으로 들어갔는데, 석 달 다 돼가니까 회사 어렵다고 나가래요. 나라에서 돈 주면 사람 쓰다가 지들 돈 써야 되니 쫓아내는 거죠.
-와, 진짜 나쁘네요. 그런 나쁜 사람들이 다 있어.
-요새 다 그래요. 취업 못 하는 젊은 사람들은 넘치고, 돈줄은 다 윗 세대들이 쥐고 있고. 뭐 어쩌겠어요. 늦게 태어난 게 죄지.
-노동청에 신고하고 그런 건 안 돼요?
-인턴인데다 수습기간이잖아요. 회사가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고요. 방법 없어요.
말을 하다보니 조금씩 가슴속에서 뭔가가 치밀어 올랐다. 콧날이 시큰거렸다.
-아니 있잖아요. 그런데, 저 이 주 동안 하루도 안 쉬고 맨날 밤 열두 시에 집에 들어갔거든요. 그런데 그거 수습 다 되니까 저보고 나가래요. 저 같은 사람한테 돈 쓰기 싫대요. 맨날 잡무만 시키고 아무 것도 안 가르쳐줘놓고는 좋은 경험으로 생각하래요. 더 화나는 건요. 그런 일자리도 감지덕지하래요.
눈 앞이 흐려진다. 눈꺼풀 아래로 축축한게 고인다.
-사장님, 오늘 돈까스 진짜 맛있는데, 왜 장사 그만해요. 이거 먹으면서 스트레스 완전 다 풀렸는데, 왜 오늘까지만 장사해요. 저 매일 먹으러 올 테니까 장사 계속하면 안 돼요?
눈물이 뚝뚝 허벅지 위로 떨어진다. 아 쪽팔려. 오늘 두 번째 본 사람 앞에서 완전 개진상짓거리.
-손님, 죄송해요. 저도 진짜 고민 많이 하고 어렵게 결정한 거라...
-사앙니미 왜 되동해여...데가 괜히 말뜸드려 가지구...
울음이 섞여서 발음이 뭉개진다. 진짜 개진상이 따로 없네, 나.
-손님이 마지막인데 이렇게까지 만족하신 반응 보여주셔서 제가 너무 보람차네요. 더 열심히 준비해서 더 맛있는 돈까스집 다시 열게요. 그 때 꼭 오세요.
울음을 멈추고. 목을 가다듬고. 진상짓은 이제 그만.
-네 꼭 다시 장사하셔야 돼요. 그럼 사장님 가게 정리하면 뭐하시는거예요?
-재료나 조리법 공부도 더 해야겠지만, 가게 운영부터 기본기를 다져야 하니, 오사카 쪽으로 가서 오랫동안 잘되는 가게 같은데서 기본부터 배워볼까 해요.
또 오사카입니까. 다들 거기 뭐 꿀발라놨어요. 일본엔 오사카 말고 없나요, 왜 거기만 가요.
-네, 사장님은 잘 되실 거예요.
-네, 손님도 좋은 기회 분명히 생길 거예요. 힘내세요.
고용 종료 통보를 받고 나니 내가 뭘 하든 회사에서 신경쓰는 사람이 없다. 유종의 미를 거두자던 김 대리도 딱히 유종의 미를 거둘만한 일거리를 주지 않는다. 말도 안 걸고. 그럴만한 여유도 없어보이고. 이렇게 퇴사까지 시간을 죽이면 되겠지. 계속 흙빛인 회사 사람들 얼굴을 보니 위기 혹은 망조가 든 게 분명하다. 이런 거지같은 회사, 망하든 말든. 그냥 확 망해버려라.
구직 사이트는 오늘도 역시 신규채용은 전멸. 뉴스에선 구제역으로 살처분된 돼지 숫자가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네. 사백만 마리, 이게 말이 돼? 그 생명을 고스란히 땅에 파묻었다고?
인○타를 열었다. 예쁘고 잘생긴 애들 사진 홍수. 오늘도 부럽다. 너네들.
그 사이로 올라온 카츠광의 공지 포스팅.
「많은 고민 끝에 영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길지 않은 영업 기간 동안 사랑해주신 손님들께 감사 말씀드립니다.
맛을 위해 더 정진하고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기억하고 기다려주시는 분이 계시다면 꼭 보답하겠습니다.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내 기억 속에만 머물러 있을 압도적인 그 맛. 다시는 못 먹을 거 같은 그 맛.
그야말로 환상종 돈까스.
나도 오사카나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