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뭘까
나는 누군가의 첫사랑이다. 그 누군가는 잊을만하면, 아니, ’ 이제는 나를 잊은 걸까?‘ 싶을 때면 연락이 온다. 한 3-4년 주기로 연락이 왔던 것 같다.
그 누군가와는 고등학교 때 만났다. 그 애는 나를 정말 순수하게 좋아해 줬다. 비록 나보다 한 학년 아래였지만, 나보다 더 좋은 고등학교를 다녔고, 나의 어머니보다 사교육에 더욱 극성맞은 분을 어머니로 둔 탓이기도 했는지 그 애는 나를 많이 좋아하면서도 나에게 잘해줄 시간이 없었다. 내가 헤어짐을 통보했고, 그 애는 (그 애가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공부하던 미국 수능 교과서를 찢어버리고, 샤프를 두 동강 낸 사진을 나에게 보내어 자신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를 보내던 참 유치했던 친구였다.
그 애에게서 또 연락이 왔다. 바로 오늘. 내가 정말 외로운 날에. 사실 나는 만나는 사람이 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을 만나면서도 외로운 것은 매한가지다. 그 사람 또한 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서도 나를 외롭게 두는, 하루종일 카톡 하나 보내는 것도 힘들어하는 그런 사람이다. 그 사람은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만난다고 했다. 하지만 사랑은 뭔지 모르겠다고 했다. 얼마 전 소개팅에서도 나를 애프터 신청까지 해서 만나면서도 사랑을 믿지 않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만났고 당연히 그게 마지막 만남이었다. 솔직히 지금 만나는 사람이 나를 채워주지 못하고, 확신을 주지 않는 타입이라 그 애의 연락을 굳이 차단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우리는 아주 어리고 순수할 때에 만났던 오래된 친구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 애는 나에게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봤다. 지금 만나는 사람은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딱히 궁금하지 않았는데 그 애는 내가 요즘 무얼 하고 사는지, 행복한지 등등이 궁금한 것 같았다. 그 누군가는 나에게 자신은 지금 행복하지 않다고. 너를 좋아했었던 그 나날들이 자신에게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고 말했다. 자신이 당시에 나를 정말 많이 좋아했었는데 알고 있냐고 물었다. 그 애는 술이 취한 게 분명해 보였다. 서울의 대낮은 뉴욕의 밤 일 테니까. 그 애의 연락을 반갑게 맞이하면서 오랜 친구와 안부를 묻듯이 카톡을 주고받다가 그 애는 “너는 늘 멋있어!”라고 말해줬다. 그 말이 진심으로 와닿는 것은 참 오랜만이었다. 지금 만나는 사람도, 내가 짝사랑을 오래 했던 사람도 내게 멋있다고 말해주었지만, 사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그 친구가 말하는 말은 이상하게 나를 울리기에 충분했다. 그 친구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내 모습, 내가 가장 빛나고 “잘 나가던” 시절엔 나도 내가 멋있었기 때문일까.
지금의 나는 우울증 약에, 불안증 약까지 달고 사는 나약하며 방황하는 어른인데, 그 애의 기억 속의 나는 강인했고, 내가 봐도 빛이 나는 청춘이었다. 그 애는 자신이 한국에 오면 데이트를 하자고 말했다. 나는 “다시 만났는데 내가 늙고 못생겨져 있으면 어떡할래?”라고 말했고, 그 애는 “안 그런 거 알아”라고 말했다. 아마도 카톡 프로필 사진 때문일 것 같은데... 어렸을 때도 그렀지만 나는 얼굴에 살이 잘 찌는 편이었고, 지금도 몸보다는 얼굴살이 많아 살짝살짝 보이는 두 턱이 콤플렉스다. 그런데 그 애는 내 그런 모습을 보고도 설레어할까? 술에 취해서, 삶에 치여서, 일에 매몰되어서 가끔 행복하고 순수했던 그 시절 첫사랑이 떠올라 술에 취해 말한 말에 큰 무게를 두고 싶진 않지만, 나는 그 애가 나를 계속해서 그 모습으로 기억해 주길 바란다.
어쩌면 사랑이란 결국 나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닐까. 그 애가 지금 나의 실체와 상관없는, 어쩌면 꽤 다른 내 어린 시절의 모습에 취해서 연락을 해오고 그리워하는 것처럼, 사랑이란 결국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의 실체와 상관없이 자신이 생각하는 그 사람을 사랑하기로 한 그 결심 자체가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사랑이 뭔지 모르겠다 말하면서, 어쩌면 사랑은 서로 같이 만들어나가는 게 아닐까 했던 지금 만나는 그 사람의 말도 일리가 있는 것도 같다. 나는 연애를 하면 외로움이 없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그대로다. 연애를 한다고 해서 사랑을 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 사랑이란 대체 뭘까!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뤄낼 수 있는,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게 맞긴 한 걸까. 누구와 만들어야 하는 걸까. 나는 지금 만나는 사람과 사랑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