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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alerie Lee Jan 16. 2024

기대란 이름의 폭력

장미꽃을 바라며 잡초를 키운 정원사 이야기

한 정원사가 있었다. 그의 정원에는 잡초 한움큼이 자라고 있었다. 정원사는 그 잡초에게 최고급 비료와, 영양제와 온실을 마련해 주었다. 잡초는 정원사가 틀어주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말했다.


"정원사는 나를 정말 사랑하는구나. 이렇게 과분한 사랑을 주다니."


"과분하다니! 넌 곧 예쁜 장미꽃을 피울 거니까, 이렇게 해주는 건 당연한 거야"


하지만 해가 지나도 잡초는 장미꽃을 피우지 못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정원사는 잡초에게 말했다.


"난 네가 참 안타깝고 슬프다. 왜 장미꽃을 피우지 못하니. 난 너에게 모든 정성을 다했는데. 나는 너무 절망스러워 죽고 싶구나"


잡초는 자신에게 사랑을 준 정원사를 실망시켰다는 죄책감에 휩싸여 더 애를 쓰고 장미꽃을 피우려 했지만 뜻대로 될리는 없었다. 그렇게 잡초는 시들어갔다. 하지만 정원사는 잡초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비료와 영양제와 물을 주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잡초는 정원사에게 이제 그만하라고 애원했다.


"네가 장미꽃을 피울 때까지 멈추지 않을 거야",

정원사는 초췌해진 얼굴에 애써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어느 날 정원사가 온실을 방문했을 때 잡초는 죽어있었다.


정원사는 상실감에 빠져 죽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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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에게 최고의 모습을 바란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본질과 본성을 무시한 채 헛된 기대를 사랑이란 명목으로 관철시키는 것은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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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는 30년 넘게 내가 밥을 조금 먹는 것이 불만이라고 했다. 자신은 힘들게 밥을 만드는데 나와 아버지가 밥을 조금 먹는다 하여 "나가 죽고 싶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고 아빠와 나에게 죄책감을 주었다.


엄마는 항상 나와 아빠가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친다며 불행해했고, 이는 아빠와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대체 왜 그런 말도 안 되게 사소한 걸로 죽고 싶다고 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밥을 많이 먹는 대식가 쯔양이 딸로 태어났더라면 그러면 엄마는 그 많은 양을 하는 게 힘들다며 죽고 싶다 했겠지.


오늘 나는 엄마와 싸우면서 위의 예를 들었다.

대체 나는 그냥 조금씩 자주 먹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왜 나를 엄마 죽고 싶게끔 만드는 불효녀로 만드는 것이냐고.


마치 나는 그냥 잡초로 태어났을 뿐인데, 장미꽃을 피우길 바라는 정원사처럼 엄마는 자신이 모든 정성과 노력을 다하면 내 식성이 바뀔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정원사의 기대에 못 미치는 잡초는 정원사가 죽고 싶다 하니 자신도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워 죽었다. 나도 엄마의 기대에 못 미치는 내가 항상 괴롭고 죄책감이 들어 죽고 싶을 때가 많았다.


왜 맨날 사소한 이유로 극단적으로 죽고 싶다는 얘기를 하냐, 그러니 나도 우울한 것이 아니냐고 따질 때마다 자신도 그런 소리를 듣고 컸다고 말하는 엄마.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해 보지만 과연 나는 안 그럴 수 있을까 싶다. 출산율이 낮은 이유는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만 있지는 않다. 우리 세대는 부모 세대가 대물림 하는 심리적 악영향을 자식에게 주고 싶지 않아 자식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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