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듦을 표현하지 않게된 계기
" 대런 플레처 크로스, 박지성 헤딩슛!! 골~~~~~~~!!!!"
2010년 3월 어느 일요일밤, 여느 때와 같이 내가 좋아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를 챙겨보고 있었다. 오래된 라이벌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박지성 선수의 멋진 다이빙 헤딩골, 더군다나 경기의 결승골이었다.
“아빠 왜 안 오시니, 전화해 봐.”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으셨다. 평소에도 친구분들과 술자리를 하시면 늦게 들어오시곤 했고 다음날 일찍부터 일하시는 날은 할아버지댁에서 주무시고 바로 일을 하러 가신 날도 있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단지 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이겼다는 사실이 너무 기분이 좋았고, 다음 날 학교에 가서 친구들이랑 경기에 대해 이야기할 생각에 굉장히 신나 있었다.
다음 날 아침은 날씨가 굉장히 좋지 않았고 비도 추적추적 내렸다. 아버지는 전날 집에 들어오지 않으셨고 나는 학교에 서둘러 등교해서 수업을 듣고 있었다.
1교시 영어 이동수업 시간이어서 수업을 듣는 중에 핸드폰 진동이 계속 울리는데 수업에 집중하느라 확인하지 않던 중, 한 선생님께서 나를 급하게 찾으셨다. 선생님의 표정은 좋지 않으셨다. 그때까지도 무슨 일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일단 급하게 집으로 가라고 하시는 선생님 말씀에 가방을 챙겨 신발을 신으려는 와중에 무심코 확인한 핸드폰에는 문자가 와있었다.
철상아, 아버지 돌아가셨다. 의료원으로 와 –작은 아빠.
문자를 확인하고 나는 그냥 다리가 풀려서 앉아서 몇 분 간을 멍 때렸다. 갑자기 벌어진 일에 슬픔이라는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아버지 얼굴을 직접 확인하기까지 아무렇지 않던 내가 영안실에 누워계신 아버지 얼굴을 보고 터져버렸다. 믿기지 않던 일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니 실감이 났는지 슬픔이 몰려왔던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와 단 둘이 집으로 가서 물품을 정리하던 중 태어나 처음으로 어머니의 눈물을 봤다.
“철상아, 우리 이제 어떻게 사니.”
라고 말씀하시며 우는 모습을 보니 오히려 울음을 참으면서 위로하고 더욱더 강하게 마음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열심히 사는 모습, 어머니와 동생 책임지고 잘 지켜내는 모습 보여드릴 테니까 꼭 지켜봐 달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후 장례가 치러지고 산소에 모시는 순간부터 그 이후로도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오히려 가족들과 대화하며 웃었다. 이미 일어난 일을 다시 되돌릴 수 없으니 힘든 건 지금까지만 생각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자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모든 정리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간 날, 많은 친구들은 나를 걱정하는 눈빛을 보였다. 나는 오히려 그런 시선을 받는 게 싫어서 평소처럼 똑같이 행동했다.
평소처럼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같이 축구도 하고, 농담도 하고, 장난도 치고.
내가 내 힘듦을 빨리 잊어버리자. 겉으로 드러내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시작이었다.
이때 내 나이는 고등학생 2학년 18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