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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담 Mar 31. 2024

뜻밖의 위로자



'아마 하루 종일 좋아하는 공간에서
글을 쓰고 있지 않을까?'



무엇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주변 사람들의 격려에 의해 움직이기도 하지만,
멋대로 상상한 미래의 모습에 몰두한 덕이 컸다.
그런데 그 미래가 흐릿해질 무렵

번아웃이 찾아온다.
지금의 내가 그렇듯이.  



반복되는 출퇴근,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끊이지 않는 키보드 소리.
100개가량의 글을 쓸 때쯤이면 눈곱만큼 일지라도
그간 기대해온 미래와 가까워질 줄 알았다.
'이럴 것이다'라는 난무한 추측 중
생각만큼 이루어진 것도 있고,
혹은 그 이하의 결과를 맞이한 것도 있다.



분명히 좋은 일도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그 밖의 일만 도드라져 보인다.
이번 주는 손을 놓아버릴까,
뭘 위해 아둥바둥하는 걸까.
애써 참아왔던 부정적인 생각들이
한꺼번에 우글거리기 시작하면서
선명했던 미래가 채도 0으로 기울인다.



물 탄 초코우유처럼 색 바렌 미래를
바라보는 현실은 조금 싱겁다.
발걸음이 무거워지고 머리는 멍하다.
그렇다고 온종일 흐리멍덩하게 있을 수만은 없으니
당장 눈앞에 보이는 책 한 권이라도 펼쳐본다.



2년 전에 봤던 책이다.
그러니까 내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기 전에 읽었던 책이다.
책을 읽을 때 마음에 드는 문장에 밑줄을 긋고
그때의 생각을 짤막하게 적곤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과거의 나에게서도
똑같은 습관을 발견한다.    



책 곳곳이 파란색 형광펜으로 가득하다.
뭘 이리도 많이 그어났는지,
오늘의 나에게는 별 감흥이

오지 않는 밑줄투성이다.
다른 사람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느낌이랄까,
손발이 오그라드는 말이 적혀있을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한 장씩 넘긴다.



'모든 순간순간이 언제

크레이지 퀼트가 될지 모른다.
무엇이든 기회로 잡을 수 있도록 마음을 고치자.'



98 페이지 모퉁이에 끄적거린
못생긴 글씨에 유독 시선이 간다.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인 자투리 천을 꿰매
하나의 큰 조각을 만드는 크레이지 퀼트,
2년 전의 나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이도 저도 아닌 조각난 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다만 오늘의 나와 다른 게 있다면 마음가짐일까.



과거의 나에게서 뜻밖의 위로를 받는다.
꽤나 기특한 생각을 했었고,
열심히 살아보려 했었구나 하고.
이 순수한 마음이 짓밟히면 불쌍하니
이만 털고 일어나기로 마음먹게 된다.
미래의 내가 흐릿해져
오늘의 내가 주저앉아 버릴 때,
뜻밖의 위로자를 만나 힘을 얻는다.



과거의 내가 그랬듯,
그간 꿈꿔왔던 미래를 향해 다시 가보기로 한다.
오늘도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다 보면
언젠간 눈앞에 펼쳐질지도 모르니.
번아웃 끝! 극복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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