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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밴쿠버 새댁 May 10. 2024

30대 신혼부부, 이민을 결심하다

Prologue 1.


5년 반을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울 때 그런 생각을 했다.

나이 더 먹으면 절대 퇴사 못할 거야. 결혼도 하지 않고, 이룬 것 하나 없는 지금이 퇴사하기 딱 좋은 날이네.




여전히 불안한 30대

학창 시절에 공부를 곧잘 했고, 한국에서 알아주는 대학을 나와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렸던 과거가 있었다. 운이 좋게 대학 졸업 후 곧장 입사를 할 수 있었지만, 내가 좋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재능이 있지도 않은 이 일을 하는 것이 맞을까? 하는 고민이 시작됐다. 일에 대한 고민과, 연차가 쌓일수록 불어나는 책임감과 압박을 견디지 못해 퇴사를 하게 되었다. 그때가 2018년이다.


퇴사 후에 나는 실컷 잠도 자보고, 배우고 싶던 커피도 배우고, 취미였던 요가도 심도 있게 공부해 보고, 스타트업에 들어가 일도 해보고, 프리랜서 강사로 일도 해보았다. 좋게 보면 자유롭게 살아왔고 나쁘게 보면 불안정한 환경에서 방황하며 살아왔다. 지금까지 무려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나는 커리어적인 측면에서는 이룬 것이 없는 어른아이이다.



남편이 참 부럽다

그러다가 지금 내 옆에 있는 남편(앞으로 자주 등장할 예정이라 B라고 부르겠다.)을 만났다. B는 작년부터 캐나다 밴쿠버 소재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고, 최근에 캐나다 현지 회사에 취직을 했다. B에게는 캐나다나 미국 회사에 취직해 워라밸이 좋은 삶을 살겠다는 꿈이 있었는데, 차근히 그 꿈을 향해 걸어가는 중이다.


B가 대학원을 간다고 했을 때, 그것도 국내가 아닌 해외로 간다고 했을 때 정말 신기했다. 30대 중반쯤 되면 대개는 나처럼 더 이상 도전을 하지 않는다. 모험을 싫어하고 안정적인 것을 찾는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공부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다는 점과, 두려움을 무릅쓰고 쉽지 않은 해외살이를 하는 B의 모습을 보고 멋있다고 생각했다.


B에게 "나는 왜 하고 싶은 일이 없을까?", "이 일은 이게 힘들고, 저 일은 저게 안 좋아. 무슨 일을 해야 할까?" 이렇게 푸념을 자주 했다. B는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다면, 한국은 나이에 대한 제한이 많은 편이라 자유롭게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기가 어려울 수 있어. 그런 면에서 캐나다에서 한번 같이 공부해 보는 건 어때?"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이 말을 듣고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도 그런 꿈 있었지

나도 20대 때에는 외국에서 살고 싶은 꿈이 있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러웠고, 한국을 벗어나서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그때는 한국의 수많은 장점을 잘 보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우리나라처럼 안전하고 편리한 나라가 어디 있어?"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아무튼 그 시절의 꿈은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 묻혀 잊고 지낸 지 오래다. 이제야 빛바랜 그것을 겨우 꺼내보았는데, 그때만큼 단단하지 않고 녹이 슬어버렸다.


나 아직 30대면 가능성 있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이 나이에 영어도 안되는데 뭘 할 수 있겠어? 여기서도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거기서는 뭐가 달라지겠어? 돈만 날리고 돌아올게 뻔해.라는 생각이 가득 차서 마음이 착잡하다.



그래 결심했어

그래도 지금의 나는 B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이런 마음만으로 쉽게 결정하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좀 더 가볍게 생각하기로 했다. 가서 정 안 되겠으면 돌아오면 되지 않나?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후회하는 것이 낫다."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내가 언제 또 해외에 나가 살아보겠어? 5년, 10년 더 지나면 절대 못할 일이지. 이렇게 나는 퇴사할 때와 같은 마음으로, B와 결혼을 하고 함께 캐나다에 가기로 결심했다. 우리는 올해 4월에 혼인신고를 했고 5월 출국을 앞두고 있다.


B는 학교를 졸업하면 영주권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 그때 나도 배우자로서 캐나다 영주권을 받게 된다. B가 1년 넘게 고생해서 공부하는 걸 봐왔기 때문에 지름길로 가는 나로서는 굉장히 고마울 따름이다.


(+ 덧붙이자면, 작년에 B를 보러 캐나다에 놀러 갔을 때, "다음엔 함께 돌아오자"라고 마음속에 답을 내렸던 것 같다. B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원하던 삶을 살기 위해 먼 타지로 왔지만, 혼자 너무 많은 투두리스트에 짓눌려 힘들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곁에서 밥이라도 챙겨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것이 사랑이겠지?)





얼마 전에 유퀴즈에 빠니보틀이 나와서 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저는 집도 없고 차도 업고 돈 2천만 원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오히려 뭔가 시도하는 게 마음 편했어요. 잃을 게 없는 거죠. ‘잃을 게 없으니 한번 해보자!’ 가진 게 아무것도 없을 때가 기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지금도 많이 하고 있고. 주위 시선 신경 쓰지 말고, 하고 싶은 거 해봐야 후회 없다는 얘기를 많이 해주고 있어요.

빠니보틀, <유퀴즈 242회>



나 역시 한국에서 이루어놓은 것 없는 30대이니, 하고 싶은 거 한번 해보자! 가면 또 어떤 기회가 생길지 알 수 없는 것이니까.


캐나다로 떠나게 되면서 친구들, 가족들에게 내 소식을 꾸준히 전하는 채널이 필요해서 블로그에 글을 써보자 다짐했고, 그러다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쓸 수 있는 기회 또한 생기게 되었다. 이것만 보더라도 나에게 새로운 꿈과 희망(?)이 생기고 있지 않은가? 설렘 가득한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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