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들은 앨범(5)- 헤비메탈

2017년 4월 15일

by 초록 라디오

2017년 2월까지 재미있게 들은 앨범 몇 개를 적습니다.


Mors Principium Est - [Embers Of A Dying World]

Battle Beast - [Bringer Of Pain]

Kreator - [Gods Of Violence]

Overkill - [The Grinding Wheel]

Sepultura- [Machine Messiah]



Sepultura- [Machine Messiah]

레이블
뉴클리어 블래스트(Nuclear Blast)


멤버
데릭 그린(Derrick Green) 보컬
안드레아스 키저(Andreas Kisser) 기타
파울로 주니어(Paulo Jr.) 베이스
엘로이 카사그란데(Eloy Casagrande) 드럼


수록곡
① ‘Machine Messiah’
② ‘I Am The Enemy’
③ ‘Phantom Self’
④ ‘Alethea’
⑤ ‘Iceberg Dances’
⑥ ‘Sworn Oath’
⑦ ‘Resistant Parasites’
⑧ ‘Silent Violence’
⑨ ‘Vandals Nest’
⑩ ‘Cyber God’


떨쳐버리려고 노력하는데, 이번에도 실패했습니다.

의식한다고 하지만, 좀처럼 때기가 힘듭니다.

편견, 선입견 말입니다.

시작하기 전에 선을 긋다 보니 맛을 보려고 해도 정작 제대로 전달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안 된다 되뇌지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번 세풀투라(Sepultura)의 14집 [Machine Messiah]도 다를 바 없었습니다.

앨범을 듣기 전 어떤 음악일 거야 잣대를 그었습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세풀투라에서 나온 경험이나 자기들이 하면 얼마나 하는 비아냥거림의 표출이었지 반가움에서 나온 즐거운 행동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세풀투라가 안았습니다.

선을 안 긋는 건 정말 힘든 행동입니다.

생각을 가진 사람이 기준 없다는 게 더 이상한 말일 겁니다.

기준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그리고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사람마다 다르고 상황에 따라 제각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면 좋은 거 저러면 나쁜 거 이분법으로 나눈 사람이 있을 것이고,

기대를 품고 거기에 부흥할 때 잘 만든 거 부족하다 싶을 때 아쉬운 걸로 평가하는 사람,

듣는 것보다 나왔다는 사실로 만족하는 사람,

듣기도 전에 등 돌리는 사람,

질투에 일방적으로 적의를 나타내는 사람,

꼼꼼히 듣고 조심스럽게 결론을 내놓는 사람,

학연, 지연, 혈연에 사탕발림으로 덧칠하는 사람,

기대에 미치지 못해도 격려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이번 세풀투라 경우와 같이 경험에서 나온 편견으로 색안경을 낀 채 시작도 전에 평가절하하고 제대로 듣지도 않은 채 어떤 앨범이다 했던 사람도 있습니다.


변명거리가 없는 건 아닙니다.

2000년 이후 세풀투라의 활동은 논란의 여지가 있었습니다.

이들의 갈지자 행보가 의심을 불러일으켰던 게 사실이기도 합니다.

내놓는 앨범에 박수만큼 비아냥거림을 감수해야 했고, 보컬 데릭 그린을 향한 싸늘한 눈초리도 세풀투라가 감내해야 할 아픔이었습니다.


전자는 1989년 3집 [Beneath The Remains], 1991년 4집 [Arise], 1993년 5집 [Chaos A.D.], 1996년 6집 [Roots]의 연이은 성공으로 헤비메탈 먹이사슬 꼭대기에 군림하다 1998년 7집 [Against], 2001년 8집 [Nation]으로 곤두박질쳤던 세풀투라이기 때문에 후유증은 지금도 남아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락폭이 컸고, 그에 따른 대가도 적지 않았습니다.

모두 세풀투라가 받아들여야 하는 고통이었고, 그러면서 편견이 일상인 양 이들에게 달라붙게 된 것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보컬리스트 데릭 그린은 이전 멤버이었던 막스 카발레라(Max Cavalera)의 그림자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신세입니다.

밴드를 만들고 작곡자, 보컬로 활동했던 막스 카발레라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는 세풀투라에서 데릭 그린을 향한 편견 역시 말끔히 사라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세풀투라 자신이 키운 면도 적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손을 뻗기도 전에 벽을 세우면 그 사람들이 공들여 만든 무언가를 제대로, 재미있게 즐기는 기쁨을 맛보는 게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백지에서 시작한다는 건 앞서 이야기했듯이 어려운 일이고 여러 여건을 감안하고 편견을 두지 말고 함부로 선 그으려 하지 않는 것, 말로도 힘들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는 더욱 어려울 듯싶습니다.


미술관으로 그림을 보러 갑니다.
어떤 그림이 있을까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설렙니다.
그림 앞에 섭니다.
큐레이터가 옆에서 이렇게 저렇게 설명을 합니다.
그것도 재미있게 그림을 보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나만의 시각으로 그림을 즐깁니다.
왜 저기 나무가 홀로 서있지,
강물이 왜 붉은색일까,
저 사람은 어디를 보고 있는 걸까 상상의 나래를 펼칩니다.
큐레이터가 자리를 옮깁니다.
그림을 다시 한번 쳐다봅니다.
흥미로운 그림입니다.
옆 그림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어느새 보던 그림을 잊고 새 그림에 빠져듭니다.


그림 문외한이기에 가능한 일일 겁니다.

그림을 즐기는 사람, 음악을 즐기는 사람, 무용을 즐기는 사람, 소설을 즐기는 사람, 영화를 즐기는 사람 각자 자기 기준이 있기 마련입니다.

즉 자기 자아, 무의식 같은 자기 편견을 갖고 있습니다.

돌처럼 단단한 편견, 갈대처럼 유연한 편견, 가면처럼 알 수 없는 편견 등 심리학의 영역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편견은 그 정도가 얼마냐, 흡수력이 얼마냐, 수용성이 얼마냐, 담대함이 얼마냐, 존경심이 얼마냐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지 그 자체를 부정하거나 없앨 수 없는 개념이 되었습니다.


이제 편견을 갖는다는 데 자책감을 두지 않으려 합니다.

세풀투라의 이번 앨범 [Machine Messiah]와 만남은 어떠했을까?

무의식은 벽을 쌓아놓고 있었습니다.

그 벽은 높았습니다.

꽤 오래된 것이었습니다.

첫 만남은 이전 앨범과 다르지 않게 피식 정도이었습니다.

어느 날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시 들었습니다.

의심 적어 다시 들었습니다.

무언가를 즐기면서 한 단계 올라간다 싶을 때 갖는 느낌, 틀이 재배치되는 느낌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높아 보였던 벽이 난공불락은 아니었고, 오래되었다고 튼튼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꿍하고 담아놓았던 마음의 짐을 덜자 비아냥거림과 눈초리도 꽁지를 감추었습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적당한 긴장, 의심하라, 깨라, 당당, 자신 있게 즐겨라, 재미있게 즐겨라.


세풀투라의 2017년 14집 [Machine Messiah]에서 ‘Resistant Parasites’를 듣습니다.

(출처: 유튜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