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1.
친구가 사라져 버린 오대수의 이름을 부릅니다.
음악이 주변을 감쌉니다.
음악이 색칠을 합니다.
보라색으로.
온통.
보라색은 [올드보이]의 색상입니다.
보라색은 오대수의 마음입니다.
보라색은 이우진의 과거입니다.
보라색은 미도의 현실입니다.
보라색이 [올드보이] 등장인물을 통제합니다.
[올드보이] 배경 또한 보라색입니다.
방 안을 보라색이 집어삼키고, 하늘 역시 보라색입니다.
슬픈 장면에서도, 욱하는 장면에서도, 절망하는 장면에서도, 반가운 장면에서도, 환희의 장면에서도 보라색이 두 눈을 뜨고 바라봅니다.
영화 속 보라색은 단호했습니다.
영화 [올드보이]를 볼 때마다 보라색에 허우적거립니다.
늪인 줄 알면서 직진합니다.
영화 속 보라색은 필터입니다.
영화 [올드보이]를 관통하는 보라색은 영화 [올드보이]에 성격을 부여합니다.
너는 이런 보라색,
너는 저런 보라색,
너는 옅은 보라색,
너는 짙은 보라색,
너는 빛바랜 보라색,
너는 풋풋한 보라색, 그렇게 이야기를 만듭니다.
보라색은 마지막에 가서 살포시 폭발하고서야 사그라집니다.
그때 그의 일그러진 입술 역시 보라색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보라색은 영화음악의 명령을 받습니다.
보라색은 영화음악을 만나기 전 ‘평범한 보라색’이었습니다.
보라색은 주파수 668-789 THz, 파장 380-450 nm인 파장, 즉 가시광선 중 하나이었습니다.
보라색은 [올드보이]를 만나며 모습이 달라집니다.
보라색은 이야기를 머금기 시작했습니다.
보라색은 인물을 대신하기 시작했습니다.
보라색은 사건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보라색은 여름철 땀 마냥 끈적끈적 영화에 들러붙었습니다.
보라색은 이윽고 영화 [올드보이]와 하나가 됩니다.
보라색과 영화 [올드보이]는 뜨겁게 사랑을 나누었고 멋지게 산화했습니다.
반면 미국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Spike Lee)가 리메이크한 영화 [올드보이]에서 보라색을 찾기란 어렵습니다.
오대수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도, 이우진이 등장하는 장면도, 미도가 오대수를 만나는 장면도 보라색이 피지 않았습니다.
리메이크한 영화 [올드보이]에서 보라색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영화 [올드보이]에서 리메이크한 영화 [올드보이]를 빼면 이런 결과가 나옵니다.
영화 [올드보이] - 리메이크한 영화 [올드보이] = 보라색
보라색은 영화 [올드보이]를 대표합니다.
영화음악 [올드보이]는 보라색의 다른 모습입니다.
2.
객기 어린 마음에 영화 [올드보이]를 백 번 보겠다고 큰소리친 적이 있습니다.
약속은 지키지 못했고 30번가량 본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백 번 보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 계기가 영화도 영화지만 음악의 영향이 컸습니다.
올드보이 음악이 좋았습니다.
그때 객기가 지금 생각해보면 그만큼 영화음악을 더 듣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영화 [올드보이]를 감싸는 보라색, 영화음악도 그 색채에 자유롭지 못합니다.
음흉하고 신비로운 기운을 품고 있은 보라색, 서양에서 왕족만 독점적으로 썼다는 보라색, 영화음악 앨범 커버를 도배한 보라색, 기분 나쁘고 찜찜한 기운이 스멀스멀 영화를 감쌉니다.
보라색, 이 찜찜함은 여름철 땀 마냥 끈적끈적 며칠이 지나도 몸에서 떠날 줄 모릅니다.
경험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의무가 되는 못된 학습효과 탓에 오늘도 오싹한 영화음악을 듣고야 맙니다.
‘대수야, 야 대수야, 야 오대수’
(참고자료)
영화 [Oldboy], Spike Lee
위키백과, 가시광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