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피부 속에서 꿈틀거리는 느낌
1997년에 산 앨범입니다.
그때 이 앨범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피부 속에서 꿈틀거리는 느낌이 든다.’
다크웨이브(Darkwave), 다크앰비언트(Dark Ambient)로 분류하는, 표현하기 애매한 음악이었습니다.
이 앨범은
노르웨이 음악인 모티이스(Mortiis)의
사이드 프로젝트 밴드 본(Vond)의 1996년 2집 [The Dark River]입니다.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겁니다.
몇 년 전 재 발표되는 놀라운 일이 있기도 했지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앨범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그런데, 왜 [The Dark River]를 여기서 언급하는 것일까?
의아할 것입니다.
우연히 이 앨범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잠깐 사이 [The Dark River]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어디서 샀고,
어디서 들었고,
무엇으로 들었고,
언제 들었고,
어떻게 들었는지 머리를 스쳐갔습니다.
[The Dark River]에 대한 느낌은 특별했습니다.
그때 그 경험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피부 속에서 꿈틀거리는 느낌이 든다 했던 경험 말입니다.
영화에서 팔뚝이나 얼굴 힘줄이 꿈틀꿈틀 움직이는 모습에 기겁하며 소리 지르던 장면과 비슷했다고 보면 됩니다.
피부 속에서 꿈틀거린다, 생각만 해도 찝찝합니다.
스멀스멀 기분 나쁜 느낌, 피할 수 없는 치명적인 끌림, 그때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남에게 소개하기는 미안하고, 나만 알기에는 아깝고.
[The Dark River], 20년이 흘렀어도 여전히 피부 속으로 파고드는 당신의 정체가 궁금할 따름입니다.
어렴풋한 느낌
‘그런 슬픈 눈으로 나를 보지 말아요
가버린 날들이지만 잊혀지지 않을 거예요
생각나면 들러 봐요
조그만 길모퉁이 찻집
은은히 흘러나오는
노래는 옛 향기이겠지요’
(출처: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손에 잡힐 듯 신기루 같은 추억.
골목 어귀, 조그만 찻집.
종일 탁자가 비워있습니다.
전축이 허전함을 대신합니다.
하루가 가고 불이 꺼지고.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대로.
어제와 오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내일.
찻집은 그렇게 삽니다.
누군가 찻집에 발을 들입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대답이 없습니다.
‘여보세요, 아무도 안계세요.’
침묵.
되돌아갑니다.
‘또각, 도각.’
발소리가 멀어집니다.
‘어서 오세요.’
먼지를 털자 뽀얗게 일어납니다.
손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뒤뜰로 나갑니다.
풀을 맵니다.
어제 뽑았는데 무성합니다.
커피나무를 올려다봅니다.
드문드문 열매가 맺혔습니다.
음악 소리가 들립니다.
맑은 날에 카랑카랑합니다.
하늘이 좋습니다.
퇴근 준비를 합니다.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연결고리입니다.
아침이다 싶으면 점심때고, 곧 저녁이 됩니다.
하루가 가고, 내일이 찾아오고.
그렇게 삽니다.
어정쩡한 느낌
2017년 2월 미국 데스코어(Deathcore) 그룹 수어사이드 사일런스(Suicide Silence)의 5집 [Suicide Silence]가 나왔습니다.
5년 전인 2012년 보컬리스트 미치 럭커(Mitch Lucker)를 사고로 잃으며, 밴드가 이대로 끝나는 게 아닌 가 했습니다.
수어사이드 사일런스에서 미치 럭커의 비중이 절대적이었고, 그가 없는 수어사이드 사일런스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듬해인 2013년 미국 데스코어 그룹 올 쉘 페리쉬(All Shall Perish)의 허넌 허미다(Hernan Hermida)를 새 보컬리스트로 맞아들이며 재가동을 준비했습니다.
미치 럭커의 빈자리가 채워질까, 그가 없는 수어사이드 사일런스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증이 커져갔습니다.
독보적인 개성과 파괴력을 갖춘 보컬리스트 미치 럭커가 빠진 수어사이드 사일런스는 역으로 관심의 대상이 됩니다.
2014년 4집 [You Can′t Stop Me]로 첫 선을 보인 2기 수어사이드 사일런스에 대체적으로 무난하다, 이 정도면 괜찮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안팎에서 내심 만족했고, 활동에 힘을 실었습니다.
다섯 번째 앨범 [Suicide Silence]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 앨범에 대한 평가가 그리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털어냈다고 생각했던 우려가 이제 서야 불거진 것이 아니냐는 내용에서 어리둥절하다는 의견까지 [Suicide Silence]를 두고 말이 많습니다.
수어사이드 사일런스의 음악 장르를 뉴메탈(Nu Metal)로 바꿔야 하지 않느냐는 식의 조롱 섞인 의견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전 미치 럭커의 이미지가 너무 강한 탓에 지금의 수어사이드 사일런스가 성에 차지 않을 수 있을 겁니다.
앨범 판매량도 이전과 비교해 많이 떨어졌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기대에 부흥하지 못한 앨범이라는 평가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앨범’, 흥미를 잃게 만듭니다.
(참고자료)
Maniadb, 산울림
Metal Injection, Suicide Sil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