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철학: 이유를 물으며 살기
이유를 묻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이유를 물으며 사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다. -이어령-
'한글은 세계 최고의 문자이다.' 한국인이라면 수차례 들어봤을 법한 문장이다. 한글의 창제 과정과 그 과학성을 설명할 때 흔히 듣는 표현이지만, 이 문장을 곱씹어 보면 여러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정말로 한 문자가 다른 문자들 사이에서 '최고'라고 평가될 수 있을까? 우리는 학교에서 문화 상대주의를 배우며 문화를 우열로 나누는 것이 옳지 않다고 배웠는데, 한글의 우수성을 주장하는 것이 그와 모순되지는 않을까? 혹은 이러한 평가가 우리의 자부심과 민족주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한글은 수백 년 동안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고, 지식을 쌓으며,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준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한글의 진정한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그 과학성과 독창성, 창제 의도에 대해 보다 객관적이고 깊이 있는 시각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한글의 과학성의 근거로 제시되는 3가지 주장에 대해 검토해 보자.
(과학성의 근거 1) 한글 자음은 발성 기관의 모양을 본떴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자음이 실제 발성 기관과 시각적으로 닮지 않았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ㅅ은 치아 모양을 본떴다고 하지만 닮지 않았고, ㅁ은 입술을 따왔다고 하지만 사각형과는 거리가 있다. ㄱ은 혀의 뒷부분이 목구멍을 막는 모양을 나타낸다고 하지만, 혀의 실제 모양과는 큰 차이가 있다. 또한 인도의 문자 체계인 데바나가리 역시 음성학적 기반을 가지고 있어, 발음 기관의 모양을 반영하려는 시도가 한글만의 독창적인 특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과학성의 근거 2) 한글의 기본 요소들이 결합하여 음절을 형성하는 방식이 논리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글의 음절 블록 구조는 초성과 중성, 종성을 결합해 음절을 이루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러한 구조는 체계적이고 시각적으로도 정돈되어 있다. 하지만 알파벳 체계 역시 글자를 결합해 음절을 만든다. 영어에서는 글자 하나하나가 소리를 나타내고, 이를 조합해 단어와 음절을 형성한다. 즉 한글 외에 다른 문자 체계도 각기 다른 논리와 체계를 가지고 있다. 한글의 음절 블록 구조는 독창성을 드러내기는 하지만 특별히 논리적이라기보다는 시각적 미학에 가깝다.
(과학성의 근거 3) 한글이 과학적이기 때문에 배우기 쉽고 문해율이 높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학습의 용이함은 개인과 문화에 따라 다르며, 알파벳 체계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한글의 음절 블록 구조가 오히려 혼란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또한 조선 시대 한글 보급 속도가 느렸던 점을 고려하면 이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근대화 이후 의무 교육이 보급되면서 문해율이 급격히 높아졌고, 이는 한글 자체의 용이성보다는 교육 제도의 발전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이나 대만 같은 다른 국가들도 의무 교육을 통해 높은 문해율을 달성했기 때문에, 한글의 과학성만이 문해율 향상의 주된 요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세종이 한글을 만든 것이 독창적이라는 주장에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몽골 제국의 파스파 문자는 모음을 별도로 표기하고 자음 형태도 한글과 유사해, 한글의 선행 레퍼런스였을 가능성이 크다. 파스파 문자는 몽골 제국이 티베트 문자를 바탕으로 만든 문자로, 정사각형 배열과 모음과 자음의 분리 표기가 특징이다. 후기 고려는 몽골의 영향 아래 있었고, 조선 왕가는 몽골이 현지 지배를 위해 다루가치 관직을 줄 정도로 몽골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가문이다. 세종 역시 몽골 문화를 접했을 가능성이 크다. 집현전 학사였던 신숙주가 몽골어 전문가였다는 점을 고려하면(출처: http://koreatimeshi.com/?p=3136), 파스파 문자를 참고했을 개연성은 높다. 세종이 이를 참고했더라도 한글은 한국어의 특성에 맞게 변형되었고, 이는 뛰어난 업적임에는 변함이 없지만, 완전히 독창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세종의 한글 창제 의도도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세종은 조선 왕조의 정통성을 선전하기 위해 한글을 만든 측면이 있다. 한글 창제 이전에 세종은 집현전 학자들에게 '용비어천가'를 짓게 했는데, 이는 조선 왕조의 정통성을 강조하고,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백성들에게 설득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당시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상황에서, 조선 왕조의 정당성을 백성들에게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 한글이라는 새로운 문자를 도입한 것이다. 물론 세종이 복지 정책을 도입하는 등 백성들을 위하는 마음이 있는 군주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글 창제의 목적을 순수하게만 볼 필요는 없다. 세종은 국가의 안정화를 위해 필요하다면 강제 이주 정책(사민 정책)도 불사했던 전근대 군주였으며, 한글 역시 이러한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한글 반포를 반대했던 최만리 등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다. 국사 교과서에서는 지배층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한글 반포를 반대했다고 설명하지만, 이는 지나치게 단편적인 해석이다. 당시 한글 반포 반대론자들은 한자가 어렵지만 고전을 통해 한자를 배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지적 소양을 쌓을 수 있다고 보았다. 반면, 한글은 배우기 쉬웠지만 깊이 있는 지식을 쌓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조선 중기 이후의 상소문에서는 중앙 관청의 관리조차 한글만 쉽게 배워 공문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는 하소연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는 당시 식자층이 한글 보급에 대해 가졌던 우려를 보여준다. 인터넷의 등장처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정보와 지식이 늘어날수록 그에 따른 부작용도 있었다는 점에서 이들의 우려는 일정 부분 이해할 만하다. 조선 초 식자층의 한글에 대한 낙관론을 현대에 대입해 보면, <먼 나라 이웃 나라>에서 언급된 인터넷에 대한 초기 낙관론(위 그림 참조)과 유사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글은 특별히 우수한 문자라고 보긴 어렵다. 세종이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도 아니고, 순수한 애민 정신만으로 창제한 것도 아니다. 또한, 한글 반포를 반대했던 이들을 단순히 기득권 수호자라고 매도할 수 없다. 한국은 해방 이후 민족주의를 이용해 빠르게 근대 국가를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자문화 중심적인 시각을 교과서에 담아냈다. 이 과정에서 한글을 '세계 최고'라 자평했지만, 이는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비롯된 과장일 수 있다.
이제 한국은 드라마와 음악을 수출할 정도로 문화적 영향력을 갖춘 선진국이며, 지나친 민족주의적 선전을 멈추고 보다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때가 되었다. 한글은 조선이라는 특정 시대적 맥락 속에서 탄생한 문자이며,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 있는 유산이다. 그러나 이를 우수성의 잣대로 삼아 다른 문자를 폄하하거나 민족주의적 자긍심만을 강조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