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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창우 Aug 29. 2024

계약은 서로를 믿지 않기 때문에 하는 것일까?

일상의 철학: 이유를 물으며 살기

들어가며 

 법적 계약은 흔히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기 위한 도구로만 여겨진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느낀 경험을 통해 법적 계약의 본질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갖게 됐다. 이 글에서는 스마트 컨트랙트와 법적 계약에 대한 생각의 변화 과정을 서술하고자 한다.


https://blockgeeks.com/guides/smart-contracts/


확실성의 매력과 한계

 블록체인 관련 핀테크 스타트업에서 일하며, 스마트 컨트랙트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블록체인 상에 배포된 코드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전에 명시된 조건이 충족되면 블록체인 상에서 자동으로 실행되는 프로그램을 스마트 컨트랙트라고 한다. 인간의 자의적 판단을 배제하고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계약 이행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스마트 컨트랙트의 한계도 느끼게 됐다. 특히 신용 대출과 같이 미래 가치 창출 능력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금융 상품에는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을 알게 됐다. 그러한 믿음은 명확하고 정량적인 기준에 의한 판단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정성적인 판단에 의존하기 때문에 코드로 작성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담보 대출은 기초 자산 가격에 버블을 끼게 만들고 자산 가격의 급등락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부작용이 많아 신용 대출이야말로 금융이 만들어내는 가치 창출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데, 신용 대출을 지원하지 못하는 것에서 큰 아쉬움을 느꼈다. 

 이런 경험을 통해 현실 세계에서 진정한 가치는 종종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창출된다는 점을 인식하게 됐다. 불명확함을 수용하고 이를 통해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의 중요성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이미지 출처: 최하단에


법적 계약의 본질신뢰를 강화하기 위한 도구 

 처음엔 법적 계약이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법적 계약이 단순히 불신을 해결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상대방을 더 믿고 협력할 수 있게 만드는 장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약하다. 상황은 항상 변하기 마련이고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관계를 배신할 유혹에 흔들리기 쉽다. 법적 계약은 신의를 저버릴 때 처벌을 가함으로써 웬만해서는 신뢰를 지키는 것이 더 큰 이익이 되는 구조를 만들어낸다. 이를 통해 관계의 하방이 보장되므로 사람들은 서로를 더 신뢰하고, 협력을 통해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된다.


나가며 

 요컨대 법적 계약은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신뢰를 만들기 위한 장치다. 배신의 유혹을 느끼는 인간의 나약함을 인정하면서도, 서로 믿고 협력할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을 준다. 우리가 살면서 체결하는 중요한 계약인 고용 계약이나 결혼 계약을 생각해 보라. 계약은 서로를 믿지 않기 때문에 체결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더 믿기 위해 하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https://www.yourthoughtpartner.com/blog/bid/59619/leaders-follow-these-6-steps-to-build-trust-with-employees-improve-how-you-re-percei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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