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의 효능감이란 무엇인가
"평소에 회고 같은 것들은 주간 회의 때 주로 하긴 하는데, 회고의 효능감을 잘 느끼기가 좀 어려운 것 같아요."
목요일 저녁, 양재천 근처의 조용한 공간.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3년째 운영하는 분이 입을 열었다. 회고를 '하긴 하는데' 그게 실제 변화로 이어진다는 느낌을 받기 어렵다는 것. 형식적인 회고와 진짜 회고의 차이가 뭘까. 이 질문이 밤새 우리를 따라다녔다.
다섯 명의 창업가가 모였다. 피트니스 앱을 개발하시는 분, 교육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대표님, AI를 활용한 투자 시스템을 준비하는 대표님... 각자의 영역은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자신의 프로젝트를 진지하게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구도 그냥 회사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것.
메타인지는 타인의 시선이 아니다
"실행 속도가 너무 느린 게 고민이에요. 완벽을 추구하다 보니 시작을 못하겠어요. 메타인지가 부족한 건지 모르겠어요."
그러자 의외의 답이 나왔다.
"저는 메타인지에 대한 부담감을 스스로 안 가져도 되지 않나 싶어요. 발등에 불 떨어져야 잘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늘어진다고 해서 열심히 안 하는 게 아니에요. 생존이 걸리면 어차피 누구든 하게 되니까요."
다른 분이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메타인지가 타인의 관점과 세상의 관점으로 자기 자신을 비판적으로 보는 거는, 그런 메타인지는 아닌 것 같고 그냥 동기화인 것 같은데요. 막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생각을 비우고 진짜 깊은 의식의 영역에 들어가서 딱 한 번 좋은 의사결정을 하는 게 회사를 살려요."
"오히려 더 역설적으로 나한테 더 집중하는 게 메타인지가 되는 거네요."
"그렇죠. 그런 여유나 편안함이 오히려 자신의 강점일 수도 있어요."
우리는 메타인지를 오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본다는 것을,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평가하는 것으로. 하지만 진짜 메타인지는 타인의 시선을 내면화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기 내면의 소리에 더 집중하는 것이었다. 나를 열정적이게 만드는 것을 찾는 것.
알고리즘을 이길 수 있을까
"논쟁적인 소재를 다루면 확실히 조회수는 터지더라고요. 근데 마음이 너무 불편한 거예요."
피트니스 앱을 만드는 분의 이야기였다.
"논쟁형 콘텐츠로 오는 사람들은 그냥 화풀이하고 떠나요. 진짜 팔로워는 결국 진정성 있는 서사를 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다른 분이 의견을 냈다. "SNS 알고리즘의 목표는 사람들을 플랫폼에 머물게 하는 거니까, 어쩔 수 없이 자극적인 콘텐츠를 더 노출시켜요. 그걸 너무 파괴적이지 않게, 현명하게 이용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결국 두 가지를 동시에 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모였다. 낯선 사람이 처음 찾아오게 만드는 훅과, 찾아온 사람이 머물게 만드는 서사. 전자만 있으면 트래픽은 터지지만 팬이 안 생기고, 후자만 있으면 아무도 먼저 찾아오지 않는다. 알고리즘을 역이용하되, 브랜드를 지키는 균형점. 그 지점을 찾는 게 창업가에게 주어진 콘텐츠의 숙제인 것 같다.
두 가지 창업 철학, 그리고 에너지의 효율
대화가 깊어지면서 흥미로운 대비가 드러났다.
한 분은 브라이언 체스키의 파운더 모드를 실천하고 있었다. 제품의 작은 부분까지, 고객 경험의 세세한 지점까지 창업자가 직접 챙겨야 회사의 영혼이 유지된다고. 주간 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서비스 디테일을 하나하나 점검한다.
반면 바로 옆에 앉은 분은 완전히 다른 접근을 하고 있었다. 자율 주행 시스템처럼 AI가 알아서 의사결정하고 실행하게 만드는 것. 사람이 일일이 개입하지 않아도 시스템이 돌아가는 구조.
그런데 이 대비가 단순히 관여냐 위임이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게 점점 드러났다.
"손끝 하나만 대면 퀄리티가 올라갈 것을 알면서도, 그냥 냅두는 게 왜 이렇게 어렵냐"는 질문이 나왔다.
"냅두는 게 어렵다면, 아직 내 역할이 어디인지를 진짜로 결정 못 한 것일 수 있어요. 저는 사업이 풀고자 하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하고, 실행은 팀에 맡겨요. 그 의사결정 하나가 실제로는 몇백 시간 일하는 것보다 더 큰 임팩트가 있거든요."
그리고 덧붙였다. "천만 원 벌기 위해 999만 원 쓰는 사람이 있고, 100만 원 벌기 위해 1만 원 쓰는 사람이 있어요. 이긴 게임은 절댓값이 아니라 비율이에요. 대표의 에너지도 마찬가지예요."
창업자는 모든 것에 관여해야 하는가, 아니면 시스템을 만들어 자동화해야 하는가. 답은 아마도 사업의 성격과 단계에 달려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 철학 모두 나름의 일관성을 가지고 있었고, 두 사람 모두 자신의 방식에 확신이 있었다.
정답은 없었다. 각자의 사업에 맞는 답이 있을 뿐.
AI를 회고 도구로 쓰는 법
자연스럽게 AI 활용 이야기로 넘어갔다.
"저는 AI와 대화한 내용을 기반으로 나에 대한 메타인지 분석을 요청해요. 장기간 대화 내용을 바탕으로 하면 제가 잊어버린 패턴이나 상관관계를 찾아주더라고요."
"근데 AI는 너무 좋게만 말해줘서, 따로 노션에 기록하면서 스스로 반성하고 메타인지를 하려고 해요."
"저는 AI 설정에 '아부하지 말고 냉혹하게 말해달라'고 해두면 훨씬 솔직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어요."
안드레 카파시의 방법도 공유됐다. "프롬프트를 짤 때 AI한테 직접 피드백을 달라고 하지 말고, '나한테 가장 피드백을 잘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생각해보고, 그 각각의 관점에서 피드백을 달라'고 하래요. 그러면 사업가 관점, 투자자 관점, 심리학자 관점 등 다양한 각도의 조언이 나와요."
프롬프트 세팅에 따라 AI가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된다. 회고도 마찬가지다.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답이 나온다.
임계치를 넘는다는 것
"저는 하다가 스트레스 받고 울고 싶은 단계가 있는데, 그 단계를 넘어섰을 때 비로소 열심히 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냥 즐겁기만 하면 열심히 안 한 거예요."
"근성장이랑 비슷하네요. 임계치를 넘겨야 하는 거."
"맞아요. 갑자기 소리 지르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때가 바로 성장하는 순간이에요."
근육이 성장하려면 근섬유가 찢어지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 편안한 무게로는 절대 성장하지 않는다. 창업도 마찬가지다. 편안한 영역에 머무르는 것은 성장이 아니다.
회고도 비슷한 것 같다. 편안한 질문만 던지면 편안한 답만 나온다. 불편하지만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진짜 회고가 된다. 회고의 효능감은 어쩌면 그 불편함을 견디는 데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새벽 5시, 깨어 있는 사람들
모임이 마무리될 무렵, 흥미로운 패턴이 발견됐다.
"저는 5시에 일어나거든요. 근데 웃긴 게, 자기 사업하는 친구들만 그 시간에 깨어 있어요. 저번에 새벽에 고민이 있어서 카톡을 했는데 갑자기 두 친구한테 답장이 왔어요. 둘 다 자기 사업하니까."
"사업 물려받은 친구들도요?"
"네. 사람들은 그 친구들이 편할 거라 생각하는데, 오히려 더 열심히 하더라고요."
"내 일이 되면 확실히 동기부여가 다른 것 같아요."
이 순간, 모두가 알아챘다. 우리는 동류라는 것을. 새벽에 일어나서 일하고, 이동 중에도 일하고, 밤을 새우고, 그럼에도 계속 하는 사람들.
한 분이 웃으며 말했다. "창업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것 같아요." 모두가 웃었지만, 아무도 그만두려 하지 않았다.
회고의 힘
2시간이 훌쩍 넘어 모임이 끝났다. 누군가는 사무실로 돌아가야 했고, 누군가는 먼 거리를 운전해야 했으며, 누군가는 새벽에 제출할 서류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모두의 표정은 밝았다.
회고의 힘은 내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다시 보는 것. 그리고 그 여정을 함께 걷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확인하는 것. 각자의 고민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서로 다른 해법을 엿보는 것.
누군가는 더 집중하는 게 메타인지라고 했고, 누군가는 여유를 가지는 게 강점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임계치를 넘어야 성장한다고 했다. 모두 다른 말을 했지만, 모두 같은 것을 향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나를 신나게 만드는 것을 찾는 것. 그것이 진짜 메타인지이고, 진짜 회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