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과 작동하는 것 사이

네 가지 혼란과 하나의 질문

by 남창우

표면 아래의 진실

목요일 저녁, 창업가 다섯 명이 모였다. 헬스케어, 교육, 금융. 각자 다른 분야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밀어붙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2시간 남짓한 대화였는데, 끝나고 나서 천천히 소화되는 종류의 이야기들이 있었다. 돌이켜보니 모두 표면과 본질이 다르다는 내용이었다.


팀원과 직원 사이

사람 이야기가 나오자 대화가 구체적으로 흘렀다.

"저는 팀원과 직원을 구분해요. 직원은 돈을 주고 특정 기능을 해주는 사람이고, 팀원은 나와 미션과 비전이 얼라인된 사람이에요. 창업을 결혼에 비유하는 이유가 있잖아요."

처음에는 개발자가 필요해서 뽑고, 디자이너가 필요해서 뽑았다고 했다. 기능으로 팀을 구성했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 나니 다음 방향이 그 사람들로부터 나오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비전이 없고 미션이 없는 사람이랑 같이 갈 수가 없어요. 시키는 것만 하는 사람이 돼버리거든요."

다른 분이 자신의 경험을 나눴다.

"비전이 얼라인된 사람에게는 레고 블록을 주면 돼요. 완성품을 줄 필요가 없어요. 그 사람들은 블록을 가지고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요. 그게 재미있기 때문에 하는 거니까."

반대로 기능으로 고용한 사람에게 비전을 기대하는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는 이야기였다. 처음부터 다른 계약을 맺은 셈이었으니까.

"비전과 기능이 동시에 맞는 사람을 찾는 건 거의 결혼만큼 어려워요. 처음에는 한 가지 맞는 사람이랑 해보고, 다음엔 두 가지 맞는 사람. 그렇게 기준이 쌓여가는 거더라고요."

팀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직원인 사람을 팀원으로 대할 때, 어쩌면 우리는 표면을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정말 절박한가?

날카로운 질문이 하나 나왔다.

"투자금이나 정부 지원금이 들어오는 동안에는, 진짜 절박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요?"

"런웨이가 막 쪼들려본 적이 없다보니 진짜 절박하게 일을 하고 있나 반성을 하고 있어서요."

다른 분이 자신의 생각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리스크를 부담하지 않는 사람이 의사결정을 하면 안 된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게 어쩌면 지금 자기 자신에게 해당될 수도 있어요. 고통이 크면 사람은 몸을 던지게 되어 있어요. 딜레마가 아직 있는 이유는, 그 고통이 아직 크지 않기 때문이에요."

리스크를 직접 지고 있는 사람만이 진짜 의사결정을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게 창업가의 특권이자 짐이라고.

정부 지원금은 런웨이를 늘려주지만, 동시에 절박함도 희석시킬 수 있다.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절박하지 않은 채로 의사결정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필요가 있다.


사업가의 DNA, 창업가의 DNA

"저는 사업가의 DNA는 없지만, 창업가의 DNA는 있는 것 같아요."

교육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분이 조심스럽게 꺼낸 말이었다.

"사업가는 돈 냄새를 잘 맡는 사람이에요. 돈 되는 걸 잘 하는 분들. 근데 저는 그런 재주는 없어요. 대신 방향이 맞는지 확신이 없어도 한 발짝씩 걷는 거는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요즘 잘 되고 있어?"라고 물을 때, 이분의 대답은 항상 비슷하다고 했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해야 할 것들을 한 걸음 한 걸음 해가고 있어."

잘 되고 있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려면 성과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해가고 있냐는 질문에는,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답이 될 수 있다.

이 두 가지 질문 중 어느 것에 대답하느냐가, 창업을 지속하는 힘의 원천을 달라지게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사업 DNA가 있는 분들은 곁에 두어요. 저는 그 분들이 필요하니까."

사업가가 되려 하지 않고, 창업가로 남으면서 사업가와 함께하는 것. 자신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먼저라는 이야기였다.

사업을 잘 하고 싶지만 자신이 사업가 기질인지 창업가 기질인지 모르는 채로 달리고 있다면, 어쩌면 우리는 자신에 대한 표면만 보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사주가 부정확해도 돈을 내는 이유

뜬금없어 보이는 이야기가 나왔다. 타로와 사주 이야기였다.

"사람들은 정확성을 원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사주가 부정확한 걸 알면서도 돈을 내잖아요."

이 이야기가 제품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사람들이 표면적으로 원한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로 지갑을 열게 만드는 것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검사 키트를 판다면, 사람들은 "정확한 검사 결과"를 원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이 사는 것은 병원에 가는 심리적 장벽을 우회하고 혼자 조용히 알고 싶은 마음의 해소일 수 있다.

사람들이 진짜 사는 것은 기능만이 아니라 기능과 결합된 감정의 해소라는 이야기였다. 제품이 해결하는 것은 무엇일까. 고객이 표면적으로 말하는 필요일까, 아니면 그 아래에 있는 감정일까?


본질을 다루는 법

네 가지 이야기를 나란히 놓고 보니 하나의 질문으로 모이는 것 같았다.

나는 지금 보이는 것을 다루고 있는가, 실제로 작동하는 것을 다루고 있는가.

팀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직원인 사람을 팀원으로 대하는 것.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절박하지 않은 채로 의사결정하는 것. 사업을 잘 하고 싶지만 자신이 사업가 기질인지 창업가 기질인지 모르는 채로 달리는 것. 고객이 원한다고 말하는 것을 만들지만 실제로 고객이 돈을 내는 이유는 따로 있는 것.

표면을 다루면 표면의 결과가 나온다. 본질을 다루면 비로소 다른 결과가 나온다.

2시간 남짓한 대화가 남긴 것은 이 질문이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다루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은 정말 본질일까?

나 역시 아직 답을 모른다. 다만 이 질문을 계속 던지는 것, 그것이 표면 아래로 내려가는 첫걸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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