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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May 09. 2022

내가 브런치 하는 이유

책도 잘 안 보면서. 글도 잘 못쓰면서.  

꾸덕하면서 선선한 척하는 저녁 퇴근길. 띵동! 내가 쓴 브런치 글 조회 수가 3,000건이 넘었다며 알림이 울렸다. 그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봤다고? 가짜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팔로워도 16명이나 생겼다. 누군가는 3,000건의 조회수, 16명의 팔로워 수가 우스울 수도 있다. 그런데 난 아니다. 아무 주제도, 맥락도 없이 마음 잡히는 대로 글을 썼다. 그냥 어제는 좀 꿀꿀해서. 오늘은 좀 신이 나서. 내일이 무서워서. 브런치가 마음속 노트라고 여기고 좋은 일, 나쁜 일 가리지 않고 기록한 지 2달이 지났다.




난 왜 브런치를 할까.

난 왜 브런치를 할까? 아니 난 왜 글을 쓸까. 왜 쓰고만 싶을까. 난 대학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했다. 과가 과인지라, 전문적인 지식도 중요했지만 그만큼 내가 앞으로 하게 될 일에 대한 가진 생각이나 마인드를 정립하는 게 더 우선이었다. 늘 내가 받는 시험지는 기다란 가로줄이 빼곡한 빈 종이 었고, 잘 모르겠는 시험문제도 운 좋으면 A학점에 넘볼 수도 있는 그런 과였다. 이상하게도 난 그때마다 특혜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책도 잘 안 보면서.

글도 잘 못쓰면서.

난 왜 답 없는 질문이 그리도 반가웠을까? 시험 시간에도 다른 친구들은 빈 종이가 아깝도록, 하지만 정답에 가까운 이야기를 제출하고 떠났다. 나는 시험지의 앞 뒷장을 빼곡히 채우고 가장 늦게 강의실을 빠져나가던 학생이었다. 괴롭지도 않았다. C학점이 나와도 상관없었다. 내 머릿속 단어를 펜 앞으로 끄집어낸다는 게, 그게 모여 한 문장, 한 문단을 만든다는 게 너무도 신기했다.


다음 날 내가 좋아하는 교수님이 내 시험지를 들고 강의실에 등장했다. 그리고는 100명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내 답을 읽어보라고 했다. 삐뚤빼뚤한 글씨를 강단에서 바로잡아 가며 내 답을 그럴싸하게 읽었다. 강의실에서 울려 퍼지는 시답지 않은 박수소리도 큰 공연장 박수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애초에 공감이나 감명까지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씀 혹은 읽음 그 자체로 나에게는 동기부여가 됐다.


이후로 대학 신문사, 잡지 등에 무보수로 기고를 하기 시작했다. 대가가 전혀 없었지만, 내 글이 프린트

되어 신문으로, 책자로 엮어진다는 게 때로는 돈보다 큰 가치로 성립됐다.


내가 좋아서 쓴다.

교육, 캠페인 기획팀에서 일을 하는 나는 글 쓸 일이 여전히 많다. 꼭 내 이야기는 아니지만, 세상에 필요한 일에 대해 생각하고, 정리해 글로 제안한다. 팀원들과 글로 소통하고, 다른 사람이 잘 찾아놓은 글로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며 하루를 보낸다. 내가 맡은 일 중 온전히 글로만 승부를 봐야 하는 업무는 단 10%에 불과하지만, 한번 잘 써놓으면 그 글만 바라보며 일 년 내내 일을 하게 된다.


매일 보고,  보면서 생각한다. 이번엔 이렇게 써볼걸. 저렇게 써볼걸. 똑같아 보이는 글을 여기 붙였다 저기 붙였다 하면서  문장을 단장해본다. 축구를 보는 것보다 축구장을 뛰는   설레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야구도 직접 하진 않지만 보는 재미 때문에 마니아 층이 생긴다.   쓰는   좋다. 아무개는 글은 책을 많이  사람들이  쓴다고들 한다. 절반 정도 인정한다. 많은 글을 보고, 접하다 보면 그대로 따라만 해도 멋진 작가가   있을 거다. 그렇다고 해서, 책을 많이 사람들 글을 써야 하는 이유는 어딜 찾아봐도 없다.


좋으면 쓰는 거고, 안 좋으면 안 쓰는 거다. 안 좋은 게 쓰고 싶으면 그걸 그 자체로 쓰면 된다. 그중 하나라도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면 라이킷이 눌리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다. 내 글은 나에게 위안이다. 친구한테는 이렇게 장황한 이야기를 꺼낼 수 없지만, 브런치에서는 가능하다. 나에게 “작가”라는 호칭이 붙는 것도 즐겁다. 어쨌든 결론. 난 내가 행복해서 브런치를 한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어느 날에는, 내 글로 돈을 벌 수 있는 세상이 오길 꿈꾼다. 상상은 자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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