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 잘 안 보면서. 글도 잘 못쓰면서.
꾸덕하면서 선선한 척하는 저녁 퇴근길. 띵동! 내가 쓴 브런치 글 조회 수가 3,000건이 넘었다며 알림이 울렸다. 그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봤다고? 가짜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팔로워도 16명이나 생겼다. 누군가는 3,000건의 조회수, 16명의 팔로워 수가 우스울 수도 있다. 그런데 난 아니다. 아무 주제도, 맥락도 없이 마음 잡히는 대로 글을 썼다. 그냥 어제는 좀 꿀꿀해서. 오늘은 좀 신이 나서. 내일이 무서워서. 브런치가 마음속 노트라고 여기고 좋은 일, 나쁜 일 가리지 않고 기록한 지 2달이 지났다.
난 왜 브런치를 할까? 아니 난 왜 글을 쓸까. 왜 쓰고만 싶을까. 난 대학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했다. 과가 과인지라, 전문적인 지식도 중요했지만 그만큼 내가 앞으로 하게 될 일에 대한 가진 생각이나 마인드를 정립하는 게 더 우선이었다. 늘 내가 받는 시험지는 기다란 가로줄이 빼곡한 빈 종이 었고, 잘 모르겠는 시험문제도 운 좋으면 A학점에 넘볼 수도 있는 그런 과였다. 이상하게도 난 그때마다 특혜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난 왜 답 없는 질문이 그리도 반가웠을까? 시험 시간에도 다른 친구들은 빈 종이가 아깝도록, 하지만 정답에 가까운 이야기를 제출하고 떠났다. 나는 시험지의 앞 뒷장을 빼곡히 채우고 가장 늦게 강의실을 빠져나가던 학생이었다. 괴롭지도 않았다. C학점이 나와도 상관없었다. 내 머릿속 단어를 펜 앞으로 끄집어낸다는 게, 그게 모여 한 문장, 한 문단을 만든다는 게 너무도 신기했다.
다음 날 내가 좋아하는 교수님이 내 시험지를 들고 강의실에 등장했다. 그리고는 100명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내 답을 읽어보라고 했다. 삐뚤빼뚤한 글씨를 강단에서 바로잡아 가며 내 답을 그럴싸하게 읽었다. 강의실에서 울려 퍼지는 시답지 않은 박수소리도 큰 공연장 박수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애초에 공감이나 감명까지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씀 혹은 읽음 그 자체로 나에게는 동기부여가 됐다.
이후로 대학 신문사, 잡지 등에 무보수로 기고를 하기 시작했다. 대가가 전혀 없었지만, 내 글이 프린트
되어 신문으로, 책자로 엮어진다는 게 때로는 돈보다 큰 가치로 성립됐다.
교육, 캠페인 기획팀에서 일을 하는 나는 글 쓸 일이 여전히 많다. 꼭 내 이야기는 아니지만, 세상에 필요한 일에 대해 생각하고, 정리해 글로 제안한다. 팀원들과 글로 소통하고, 다른 사람이 잘 찾아놓은 글로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며 하루를 보낸다. 내가 맡은 일 중 온전히 글로만 승부를 봐야 하는 업무는 단 10%에 불과하지만, 한번 잘 써놓으면 그 글만 바라보며 일 년 내내 일을 하게 된다.
매일 보고, 또 보면서 생각한다. 이번엔 이렇게 써볼걸. 저렇게 써볼걸. 똑같아 보이는 글을 여기 붙였다 저기 붙였다 하면서 한 문장을 단장해본다. 축구를 보는 것보다 축구장을 뛰는 게 더 설레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야구도 직접 하진 않지만 보는 재미 때문에 마니아 층이 생긴다. 난 글 쓰는 게 참 좋다. 아무개는 글은 책을 많이 본 사람들이 잘 쓴다고들 한다. 절반 정도 인정한다. 많은 글을 보고, 접하다 보면 그대로 따라만 해도 멋진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다. 그렇다고 해서, 책을 많이 보는 사람들만 꼭 글을 써야 하는 이유는 어딜 찾아봐도 없다.
좋으면 쓰는 거고, 안 좋으면 안 쓰는 거다. 안 좋은 게 쓰고 싶으면 그걸 그 자체로 쓰면 된다. 그중 하나라도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면 라이킷이 눌리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다. 내 글은 나에게 위안이다. 친구한테는 이렇게 장황한 이야기를 꺼낼 수 없지만, 브런치에서는 가능하다. 나에게 “작가”라는 호칭이 붙는 것도 즐겁다. 어쨌든 결론. 난 내가 행복해서 브런치를 한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어느 날에는, 내 글로 돈을 벌 수 있는 세상이 오길 꿈꾼다. 상상은 자유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