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적인 것은 교육적인가에 대한 고민
무엇을 위한 민주적 학급 운영인가?
민주적 학급운영이라는 말은 시대의 요구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당위의 문제이다. 그런데 교사인 나의 학급 운영이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이것은 이런 질문과 연관되기도 한다. “교육적인 것은 민주적이어야 하는가?”담임으로서 나의 교육활동이 반민주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비민주적인 것이지만 교육적일 수 있는 상황은 없을까? 학교 교육에서 ‘민주적’이라는 말은 그래서 다시 ‘교육’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무엇을 위한 민주적 학급 운영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무엇일까? 어떤 정답을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분명한 것은 있다. “학급을 원활히 관리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민주적 학급운영은 아니다.”이다. 민주적 학급운영은 교사가 하는 것이 아니다. 교사와 학생이 민주주의라는 형식 안의 내용을 함께 채워가는 과정이다. 서로의 인권을 존중하는 토대 위에, 평등한 의견 제시와 결정권을 가진 사회적 존재들이, 교실이라는 공간적 한계 안에서 만들어가는 교사와 학생에 의한 학급 운영이다. 학교 교육의 틀 안에서 민주 사회의 시민으로 살아갈 학생들에게 필요한 역량을 체득하고,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알아가는 과정으로 의미를 지닐 것이다.
민주적인 것은 교육적인가?
한편 이러한 질문도 이어진다. “교육을 위한 민주주의일까? 민주주의를 위한 교육일까?” 전자는 ‘교육’을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의미하는 것이다. 후자는 ‘민주주의’를 위한 도구로서의 ‘교육’을 의미하는 것이다. 두 가지 질문은 목적과 도구의 관계가 상반되는 질문이다.
사실 “교육 vs 민주주의” 의 대립 구도로 몰고 가서는 안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 교육적인 것과 민주적인 것 사이의 선택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결정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민주적인 것이 반드시 교육적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상황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은 교사의 ‘교육’에 대한 성찰과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낸다. 그를 통해서 교사의 교육활동에서 교육철학을 다지고 학생들의 성장을 위한 방법론들을 단단히 하는 단초가 되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민주주의의 가치와 학급 운영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는 자유와 평등이다. 민주적 학급운영에서는 자유와 평등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자유와 평등 이외에도 학급의 민주적 운영을 통해 학생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그러한 가치들은 어떻게 민주적인 방법으로 선정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 민주적 학급 운영에서 민주적 가치의 문제는 이렇게 다양한 질문을 유발한다. 이 중 자유와 평등이라는 기본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가. 나의 자유는 너의 자유와 만나는 곳에서 멈춘다.
- 학생들은 자유를 본인이 하고 싶은대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무제한적인 자유를 상상하고 있다. 자유는 제한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또한 나와 공동체의 관계에 대한 생각도 이기적인 경우가 많다. 공동체를 위한 나의 자유의 제약, 실상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 개인적 자유를 오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이다. 나와 너로 이루어진 공동체에서 각자의 자유의 무제한적인 보장은 결국 자신의 자유가 침해받는 결과를 만들기 때문에 공동체 안에서의 자유에 대한 이해를 학생들이 할 필요가 있다.
나. 다양성은 고유성이다.
- 평등은 다양한 존재들이 두려움 없이 존재를 드러내고, 특정한 사안에서 의견 개진과 결정권에서 소외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학생들은 다름을 틀린 것으로 아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 나와 다른 생각, 나와 다른 행동이 잘못이며 틀린 것이라는 인식은 평등을 가로막는 벽이다. 나와 너로 이루어진 학급 공동체는 각자의 다양성이 인정되어야하며, 이는 각자의 고유성을 드러낼 수 있는 평등한 문화 속에서 가능함을 학생들과 이야기해야한다. 우리가 다름을 인식하는 것, 그리고 그 다름 안에서 개개인의 존재 자체가 가진 가치를 동일하게 생각하는 것. 그것을 위한 서로의 이해와 존중. 이것은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며 동시에 인권을 지키는 것이다. 또한 자유와 마찬가지로 타인에 대한 평등의 가치를 지켜주는 것이 바로 나의 평등한 존재로서의 가치를 지키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공론화를 위한 방법들
그 각자의 자유가 우리의 자유 안에서 멈추고, 멈춰 선 곳에서 공동체의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의견을 말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 내 의견이 말해져도 된다는 안심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평상시 각자의 의견을 자주 개진하고 생각의 차이를 알아가는 일상적 활동이 필요하다. 다음은 그것을 위한 예를 살펴보고자 하다.
가. 프레네 교육의 꾸아 드 네프
- 꾸아 드 네프는 “별일 없니?” 정도의 의미이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 자신에게 있었던 일에 관한 수다와 비슷한 것이다.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그 아이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시간이다. 공동체 구성원 전체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학급에서 적용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것을 변용하여 사용할 수도 있다. 목적은 그 날 하루를 시작하는 구성원의 상태, 생각, 마음 등을 나누는 것이다. 이를 응용하여 매일 아침 5자토크라는 것을 시도한 적이 있다. B4 사이즈로 모두가 5글자로 하루를 시작하면서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교실에 종일 붙여 놓았다. 등교하자마자 적도록 하였다. 물론 담임도 동참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서 아이들이 우리들 중 누구라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과 나 이외의 아이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에 익숙해지고자 했던 시도이다.
나. 프레네 교육의 칭비축제
- 칭비축제는 ‘칭찬합니다’, ‘비판합니다’, ‘축하합니다’, ‘제안합니다’의 앞 글자를 딴 것이다. 학급 내에 칭찬, 비판, 축하, 제안 게시판을 만들어서 자유롭게 아이들이 작성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중 ‘비판합니다’와 ‘제안합니다’에 기록된 내용들은 학급 회의에 안건으로 올려서 논의를 하는 것이다. 다만 모든 사안을 논의하는 것이 시간적으로 어렵다면 기록된 내용 중 논의 주제로 선정하는 과정을 거치는 방법을 사용해도 된다. 칭비축제는 일상적 공론 과정의 한 형태이다. 다만 학생들이 좀 더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한 주제를 정하도록 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다. 써클을 활용한 학급 회의
- 아이들의 의견으로 정해진 토의 주제는 그것이 한의 결론을 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회복적 생활교육에서 사용하는 써클 형태가 좋다. 특히나 비판합니다에 나온 내용들이라면 그 비판이 적정성 여부와 개개인의 생각의 나눔을 통해 사안에 대한 생각을 다양한 측면에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준다. 써클 자체가 공론화를 위한 방법으로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기 위한 적절한 형태이다. 토킹스틱을 활용하여 발언하며, 발언을 경청하는 것만으로도 다양한 의견의 존재를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방관자, 관객이 아닌 참여자, 주인공 되기
가. 두레 활동
- 두레활동을 통한 참여유도. 아이들이 주체가 되어 준비하는 학급 단합 행사. 아이들이 만드는 학급신문 제작. 아이들이 관리하는 학급홈페이지 등 교사가 모든 짐을 짊어지고 끌고 가려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 둘 아이들에게 내어주게 되면 그만큼 교사와 아이들은 더 가까워진다. 교사의 많은 준비를 통한 일방적인 이끌어 감은 아이들에게 좋은 것을 알려주고 체험하게 해주는 효과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교사가 힘들어질 수도 있다. 아이들이 ‘뜻대로’ 따라오지 않음에 대한 실망도 커질 것이다. 권한을 주고 담임도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결과보다 과정을 통한 성취에 더 집중한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두레를 통해 아이들이 하고싶어 하는 역할을 스스로 선택하게 한다면 주체가 되어 진행하는 데에 책임감을 어느정도 가지고 진행하게 된다. 학급구성원 모두가 두레에 소속되어 있도록 해준다면 분명 그 중 한 두 명이라도 자신이 속한 두레의 활동에 책임을 느끼고 일을 주도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아이들도 조금씩 일에 참여하게 된다. 아이들이 직접 주체가 되어 이런저런 일들을 해보면서 담임의 어려움도 알고, 개인이 아닌 공동체를 위해 조금씩 양보하는 것도 배우게 된다.
나. 1인 1기여 활동
- 1인 1기여 활동은 학생들의 작은 기여가 모이면 공동체가 유지됨을 기본으로 한다. 여기에서 담임이, 또는 학급에서 필요로 하는 학급 역할이라는 관점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기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1인 1역이라는 것이 학급 내의 업무분장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역할 구분이 공동체의 톱니바퀴가 되기보다는 책임의 선을 그어놓고 오히려 분화시키는 경우도 발생을 한다. 그것을 역할이 자신의 선택이 아닌 맡겨진 책임질 무언가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기여활동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거나 제안된 것 중에서 고르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한다. 빈 곳이 생긴다면 그것은 학급 생활을 하면서 공동체가 풀어야할 숙제로 남겨두어도 괜찮지 않을까 한다.
민주적 학급 운영을 위한 남겨진 고민
민주적 학급 운영이라는 문구 앞에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사실 교사인 나는 민주적인가?라는 질문이다. 그리고 교사인 나는 일상의 민주주의를 실천하며 살고 있는자하는 자문이 뒤따른다. 그리고 고민이 깊어진다. 어쩌면 학생들에게 민주적 학급운영을 하면서 민주주의를 배우게 하는 것과 더불어서 교사인 나 자신이 민주적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한 배움을 함께 하는 과정이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든다.
과정이 민주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민주적 내용이 결론으로 도출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 또한 고민이다. 민주적 절차로 독재를 결정한다면? 그것은 민주적인 것일까? 또한 민주적 절차로 비교육적인 결정이 나왔다면 그것은 괜찮은 것일까? 그래서 형식적 민주주의보다는 일상적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것이 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 기반은 아마도 상호 인권 존중와 서로에 대한 신뢰 관계의 형성이 아닐까? 이것이 민주주의의 결과일지, 민주주의를 위한 전제인지를 잘 모르겠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와 같은 개념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둘의 관계가 불가분의 관계임은 분명하다. 민주주의 때문에 관계가 파괴되어서는 안된다. 관계 때문에 민주주의가 흔들려서도 안된다. 나 자신에게도 그렇고 학생들에게도 그렇고 이 둘의 구분은 쉽지 않을 것 같다.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온다. 무엇을 위한 민주적 학급운영인가? 그리고 민주적인 것이 교육적인 것일까? 그렇다면 교육은 무엇일까? 아마도 이 질문들을 학생들과 일 년 동안 나누는 것이 민주적 학급운영의 요체가 아닐까 생각한다.
[연수 원고로 제출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