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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선 Feb 28. 2023

집중력 향상법

댐 붕괴를 막는 방법

폴폴 작가님의 유튜브 시리즈 <단 하나의 질문 - 몰입>의 비트를 받은 변주곡입니다.



폴폴 유튜브 https://www.youtube.com/@user-qn2sw8wx7e









만일 '몰입'이라는 것이 순간적인 집중력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누구나 몰입을 할 수는 있겠죠. 특히 한국에서 일반적인 중등교육을 받아온 사람들이라면 다들 시험 앞두고 벼락치기 한  한 적이 있잖아요. 대학이나 직장에서는 내일이 바로 마감인 프로젝트를 초치기로 밤새며 준비할 때도 많습니다. 관건은 그게 얼마나 깊게, 얼마나 오래가느냐인 것이겠죠. 대부분의 벼락치기 시험공부는 대개 책상정리나 방 청소로 끝나는 경우가 많잖아요. 또 그때가 되면 왜 그리 독서가 땡기는지도 모르겠어요.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세로 쓰기 세계 고전들도 막 읽고 그랬으니까요.


야구 선수들이나 테니스 선수들은 가끔, 경기 중에 수박만한 공이 자신을 향해 천천히 날아오는 것처럼 보였다는 증언을 하고는 합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담배 연기 자욱한 비디오 편집실에서 종종 30분의 1초 길이의 프레임 하나에 들어간 노이즈를 잡아낸 적이 있습니다. 눈이 보고 잡는 게 아니에요. 그냥 위화감을 느끼는 건데, 그럴 땐 정말 어디론가 후욱 들어가는 느낌이 들죠. 비디오 게임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 <페르시아의 왕자>라는 게임이 처음 나왔을 때, 타임어택을 하는 제 손가락은 어느새 자기가 알아서 움직이고 있었어요. 시선 역시 게임 캐릭터인 '페르시아 왕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의 시선이 되어 스테이지 전체를 저 앞까지 쳐다보고 있죠. 온갖 살벌한 장애물과 아찔한 낭떠러지, 강력한 적을 맞아 싸우고 있다 보면 어느새 컴퓨터 모니터 화면 주변은 시커멓게 지워지고 모니터 화면 역시 희미하게 초점이 안 맞은 채 뭔가가 계속 자동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만 알아요. 그러다 위화감이 후욱 들 때가 오면, 점프.


책을 읽을 때에도, 영화를 볼 때에도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게임은 내 몸의 능동적인 참여가 필요하다는 것이겠죠. 고도의 몰입을 통해서 미세한 혈류와 근육 섬유 하나의 움직임이 철저하게 통제되다 보면, 오히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잊을 때가 많습니다. 그냥 시간이 엄청나게 느려진 채 뭔가가 계속 흘러가고 있고, 태스크가 하나하나 튀어나올 때마다 자동적으로 몸이 움직여요. 게임뿐 아니라, 다른 단순작업을 할 때에도, 혹은 거듭된 훈련이 있었다든지 수백 번씩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해뒀던 어떤 동작을 할 때에도 시간이 느려지고 몸이 알아서 움직이는 걸 발견합니다. 원래 그렇게 집중력이 좋은 사람이었냐구요? 그럴 리가요. 산만하기가 바닥에 물감 뿌려놓은 전위예술 같았었는데. 그런데 이런 깊은 집중력은 훈련을 통한 향상이 가능하더라구요. 저는 어쩌다 보니 원치 않았음에도 혹독한 훈련을 거치게 되었는데, 만일 높은 몰입능력을 원하신다면 이런 훈련법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과민성 대장증상이 있잖아요. 어릴 적부터.


갑자기 몰아치는 분출욕으로 아찔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이건 뭐 시도 때도 없어서, 한창 소개팅을 많이 하고 다닐 때는 종로, 혜화동, 강남역 근처에서, 심지어 집 근처 어느 건물 몇 층에 무슨 화장실이 개방되어 있는지 다 꿰고 있을 정도였어요. 그땐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 속에 안 맞는 음식을 거부도 못 했거든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터득이 되더군요.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해서 대장의 연동운동이나 괄약근과 타협을 보는 일을 말이죠.


일단 배가 싸해지면서 더운 여름날에도 갑자기 아랫배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질 때가 있는데, 이때부터 긴장하기 시작합니다. 꾸르릉 꾸르릉 소리가 느껴지면 십중팔구예요. 퍼스트 임팩트죠. 이때부터 지난날의 처절한 경험들과 지금 내 두뇌의 모든 자원을 이용해서 '지속가능성'에 대해서 계산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 이 싸한 느낌을 그냥 넘기면 30분 이내에 세컨드 임팩트가 오고, 그걸 어떻게 극복을 하더라도 세컨드 이후 15분 안에 더 커다란 써드 임팩트가 온다는 것. 하지만 지금 당장 화장실을 찾는다 하더라도, 지금 내 배를 괴롭히는 이 흉악한 비둘기들을 시원하게 내보낼 수 있다는 보장은 없죠. 태연한 표정으로 주어진 시간을 충분히 쓰면서 비둘기들을 꼬셔 천천히 밖으로 유도를 해야 합니다. 속이 더부룩하다고 해서 이때 물을 많이 마셔봐도 소용이 없습니다. 어차피 잠시 후 소화기관에 있는 모든 수분은 대장에서 흡수과정을 거치치 못한 채 뿜어 나올 테니까요. 추가적인 압력을 제공할 뿐이죠. 필요한 수분과 미네랄 섭취는 거사를 마치고 난 후여도 상관이 없습니다.


세컨드 임팩트를 맞아서 모든 것이 다 처리가 되면, 그만큼 축복받은 경우도 없을 거예요. 데이트 중 장시간 자리를 비워 눈총을 산다거나 배탈을 유도한 음식에 따라 이후에도 몇 번의 세컨드 임팩트가 반복될 수도 있겠지만, 상대방에게 그저 불쾌감을 줄 뿐이지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대형참사는 막을 수 있는 경우니까요. 문제는 세컨드 임팩트 때 해결을 못 볼 경우예요. 바로 깊고 깊은 몰입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주변이 다 시커멓게 물들고, 지금 이 순간 내 앞에는 내 대장과 괄약근 만이 남아있습니다. 아랫배에서는 흉악한 비둘기의 난동 때문에 가스가 많이 차게 되는데, 이러다가 배가 터지는 게 아닌지 걱정도 되는 순간이죠. 상황에 따라 허리띠를 조금 느슨하게 해서 위기를 잠시 모면하는 경우도 있지만, 가장 대중적인 방법은 괄약근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바늘 틈새만큼만 열어서 바람만 내보내고 물기나 덩어리는 붙들어놔야 하거든요.


인간이, 네?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고 인격체로서 존엄성을 가진 인간이, 이때만큼 집중력이 필요한 순간이 또 어디 있겠어요, 네?


수년간의 수련과 칼끝 같은 집중력을 통해 바람만을 골라 내보내는 미봉책에 성공한다면 세컨드 임팩트는 일단 어떻게든 무마가 됩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15분 내에 닥쳐올 써드 임팩트에 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일분일초가 아까운 순간이죠. 빨리 개방 화장실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모험 같은 건 할 필요가 없어요. 걷는데 1분을 더 소모한다고 하더라도 열려있는 것이 분명한 화장실이 더 중요하죠. 사전에 괄약근 조절 훈련이 안 되어있는 사람들은 이 시점에서 또 다른 고난을 겪습니다. 무리한 움직임으로 괄약근에 쥐가 날 때가 있거든요. 그렇다고 무턱대고 근육의 긴장을 풀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요. 일단은 잠시 앉을 곳을 찾아야 합니다. 다리를 꼬는 걸 잊지 않고. 체중과 엉덩이 살집을 이용해서 홀로 분투하고 있었던 괄약근을 부담을 덜어주는 순간입니다. 그렇더라도 여기서 2~3분 정도를 허비하는 건 아깝기 그지없죠.


그리고 근육경련이 풀리면 다시 서둘러 길을 나섭니다. 장담컨대 무슨 무슨 '거리', 무슨 무슨 '길' 등 사람들에게 유명한 데이트 코스에서 잔잔하게 분위기를 즐기지 못하고 허둥지둥 걷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이 안쓰럽게 뒤를 쫓고 있다면, 이들은 지금 곧 써드 임팩트를 맞이하는 위급상황이 틀림없습니다. 우리의 한 순간 양보가 이 사람들의 존엄성을 지켜줄 수 있다는 걸 기억합시다. 이 때는 정말 등어리에서부터 땀이 주룩주룩 흘러 엉덩이가 다 축축해지죠. 때문에 괄약근과 대둔근의 결착 상태가 미끄러질 수도 있음도 주의해야 해요. 지금부터는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합니다. 마치 초점 잃은 모니터 화면을 보더라도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이듯이, '급똥'에 대한 모든 것을 잊은 채, 아예 그 비슷한 것조차도 완전히 머릿속에서 지워버려야 해요. 폭포나 분수, 맨 팔로 둑의 구멍을 막아서 제방이 무너지는 걸 방지했다는 네덜란드 소년 따위의 상상은 금물입니다. 무념무상. 하지만 내 몸은 내 의지에 상관없이 저절로 화장실을 향해 가도록 만듭니다. 이게 몰입의 최고 경지인 트랜스 (Trance) 상태인 것이죠. 그리고 이 무념무상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선 주변에 보호자나 다른 동반자가 절대 없어야 합니다. 혹여라도 옆에서 "자기야  괜찮아? 많이 급해? 저기까지 갈 수 있겠어?"라고 말을 건다면, 트랜스 상태는 무너지고 해일처럼 덮쳐오는 변의(便意)에 순간적으로 인간성을 잃게 될 수도 있을 테니까요.


살벌한 장애물과 아찔한 낭떠러지, 그리고 강력한 적을 모두 무찌르고 무사히 화장실 한 칸을 차지한 당신. 이미 성공한 인간입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길거리에서 똥이라도 지렸다면 유튜브 백만 뷰 정도는 일도 아니었을 거예요. 하지만 이렇게 자신의 존엄성을 지켜냈으니,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훌륭한 일인가요. 당신의 인내력과 당신의 몰입능력 덕분에 모든 걸 무사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던 거죠. 이런 위기를 몇 번 거듭해서 겪다 보면 주변 상황이 어떻든 간에 한 가지 일에 완전히 몰입하는 것에 무척 익숙해집니다. 한 가지 더, 디테일까지 겸비하자면, 화장실에 들어가 서둘러 허리춤을 내리기 전에 화장지 조금을 양변기에 던져 넣는 걸 잊지 맙시다. 양변기 물 표면장력을 저하시켜서 비둘기 괴물들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올 때 사방으로 다시 튀어 오르는 걸 막아주거든요. 푸드덕푸드덕 힘차게 날아오르는 소리도 줄여주고 말이죠.






그렇더라도, 모두가 저처럼 선천적인 재능을 물려받을 수는 없겠죠. 그럴 경우 변비약을 사용해서 훈련을 하시면 됩니다. 가능하면 최대한 장시간 여행에서, 목포나 기장행 우등고속버스에 탑승하시기 전에 변비약을 복용하시면서 연습하시면, 일 년 후에는 놀랍도록 행상된 집중력을 느끼실 거예요. 어쩌면 기사님과 소통하는 텔레파시 능력도 덤으로 생길 수도 있어요. 이상, 몰입능력을 향상하는 법에 대해 조언드렸습니다.


(단점 : 주변에 친구가 없어짐)




덧) 만일 단지 급똥이 아니라 식중독으로 인한 급성장염 등 심한 복통이 유발되는 경우엔 호주머니용 작은 핫팩을 복부에 넣어두면 단 시간에 진정되기도 합니다. 모두 핸드백에 비상용 핫팩 하나쯤은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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