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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선 Sep 27. 2023

아름다운 연대 뒤에는 항상 누군가의 처절한 양보가 있다

랜드 엔 프리덤 (Land and Freedom, 1995)

"보수는 부정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


딱 듣기에도 빈정거리는 말투여서 그리 좋아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단칼에 부정을 할 수는 없었죠. 왜, 듣기는 싫은데 왠지 맞는 말 같아서 더 짜증 나는 경우 있잖아요.


일단 사회의 평화와 안전은 전혀 외면하고 사리사욕만을 위해 부정부패를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사람들을 '보수'라고 일컫는 게 온당한지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이긴 합니다. '보수 (保守)'라는 단어가 탐관오리나 기득권자들, 혹은 그들을 신봉하는 현대판 노예들을 종종 대표하고 있는 현실은 안타깝기 그지없죠. 하지만, 이 자리에서 그 어원을 분석하거나 용어 정립을 시도하는 건 다음 기회로 미룰까 해요. 그러니까 ‘보수’, ‘진보’의 정확한 개념이나 어떤 사람, 세력, 정당을 과연 보수라고 할 수 있는지, 어떤 사람, 세력, 정당을 과연 진보라고 하는 게 과연 타당한 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보다 궁금한 것은 이런 거죠. 진보를 망하게 만드는 분열이라는 것이 정말로 나쁜 것인지. 아니 그전에, 도대체 망한다는 것이 무슨 개념인지 말이에요. 가장 흔한 예로, 대통령 선거처럼 상대보다 많은 득표를 해야 승리를 하는 상황에서, 진보 진영이 후보 단일화를 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는 것이 망하는 건가요?


(현실적으로 많은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더라도) 대부분의 민주주의 사회의 의사결정에 있어서 다수결이 차선책으로 사용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대표적으로 선거나 투표가 그렇겠죠. 때문에, 선거철만 되면 각기 다른 정당끼리 전략적인 선거연대에 들어가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에요. 지금 당장 서로의 입장차이를 인정하더라도 공동의 이익을 위해 일시적인 연대에 들어가는 것이죠. 굳이 닳고 닳은 '비판적 지지'라는 용어를 쓰지 않더라도, 한국의 정치 역사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선거과정에서 전략적인 선거연대는 항상 있어 왔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두 가지입니다. 가장 첨예한 것은, 비록 '대동단결'이라는 용어를 쓴다고 하더라도 분명 구심점은 있어야 할 텐데, 쉽게 말해 선거연대를 한다면 누가 양보를 하고 누가 대표가 될 것인가에 대한 문제겠죠. 많은 사람들이 '정치'라는 단어에서 연상하는 모종의 흑막, 비밀거래, 암투와 같은 대부분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이 과정에서 발생하게 됩니다. 정치인들은 아름다운 '협상' 혹은 '타협'이라는 표현을 쓰겠지만요. 그런데 첨예하긴 하더라도, 이러한 문제는 생각보다 쉽게 해결되고는 합니다. 말 그대로 '거래'를 하기도 하고, 또 비용이 들더라도 '예비선거'를 통해서 대표주자를 선출하기도 해요. 사실 이보다 더 타협하기 어려운 것은 정책에 있어서의 차이예요.


"일단 힘을 키우고 높은 자리에 올라간 다음에, 그러고 나서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바꾸면 되잖아."


많이들 하는 얘기죠. 어느 지점까지는 매우 현실적인 조언이기도 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신념을 관철할 수 있는 미래를 위해 지금 타협해서라도 권력을 쟁취하려고 합니다. 물론,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종종 현재의 신념을 저버리는 행동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요. 그래도 나 혼자 바르게 살기 위해서라면 지금도 비타협적으로 똑바른 길을 걷겠지만, 가족과 사회의 안녕 수준까지 올라간다면 아무래도 생각이 많아지는 거죠. 그렇다고 해서 무한정 양보만 할 수는 없는 일이지 않겠어요? 그래서 우리들은 어느 지점에 선을 그을지 고민하게 되는 것이겠죠.  각자 가지고 있는, 본인이 생각하기에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최저 하한선. 예를 들어 2017년 캐나다 BC주 선거에서는 BC 자유당이 신민당을 2석 차이로 앞서고 있었는데, 3석을 가지고 있던 BC 녹색당이 신민당을 지지함으로써 연립내각이 생기기도 했어요. 그리고 탄소세를 증세하거나, 산림을 파괴하는 파이프라인 공사를 저지하는 녹색당의 정책을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신민당의 정책이 여전히 대형 노조나 기업, 산업개발을 옹호하는 쪽으로 갔다면 녹색당에서는 지지를 할 수가 없었겠죠. 이건 그냥 의석을 어떻게 나누고 내각을 어떻게 구성하고의 문제가 아니었으니까요. 나에게 생기는 당장의 이익이 아닌 내 신념의 하한선을 지키기 위해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됩니다.


사실 욕망은 신념보다 타협하기 쉽습니다. 물론 욕망을 갖는다는 것이 죄가 될 수는 없죠. 내 신념을 지키는 일을 좀 더 쉽게 하기 위해 권력을 욕망하는 일은 특히 그렇습니다. 하지만 신념을 지킨다는 것, 신념이 지배하는 행동이란 무척 구체적이고 세세한 반면에 욕망이 지배하는 행동은 비교적 단순한 건 사실입니다. '당선', '이권', '현금거래'처럼 말이죠. 때문에 욕망만 따르는 정치세력들에 비해, 신념을 따르는 정치세력들이 더 분열이 잦고, 더 타협이 어려운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하던 분들도 그렇지 않았나요? 일제에 부역했던 관료들, 나라를 팔았던 매국노들이 눈앞의 영락에 모두 안분자족하면서 타협하며 살았던 것에 비해, 모든 피로와 고통을 감내하던 항일 독립운동가들은 서로의 신념과 노선에 따라서 분열과 연대를 반복해 왔어요. 최초의 임시정부가 생겼을 때에도 '대한'이라는 이름을 이어나갈지 '조선'이라는 이름을 이어나갈지부터 해서, 왕실을 구심점으로 삼자는 복벽주의도 있었고, 아예 토지소유권을 뒤집어 농민들에게 분배하자는 조선독립동맹도 있었으니까요. 카톨릭의 부패에 반기를 든 종교혁명 이후 등장한 개신교도 각각의 신념에 따라 여러가지 정파로 나뉘었고, 80년대 후반과 90년대에 핍박받으면서 사회변혁운동을 하던 사람들에게도 수많은 정파들이 있었잖아요. 하지만 각각의 정파가 생긴 것이 자기들이 감투를 나눠 먹고 싶어서 생긴 것이 아니라, 각 정파마다 생각하는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점, 그리고 직면한 당면과제들이 달랐기 때문에 쉽게 단결하기 힘들었던 거죠.







랜드 엔 프리덤 (Land and Freedom, 1995)



제작 : BBC Films, Canal Plus, British Screen, Diaphana

배급 : Artificial Eye, Diaphana

각본 : 짐 앨런 (Jim Allen)

연출 : 켄 로치 (Ken Loach)

출연 : 이안 하트, 로사나 파스토르


1936년 2월 스페인. 사회주의자 연합과 공화주의자, 좌익 세력들은 선거에서 승리를 획득했다. 그들은 일련의 민주개혁을 약속했다. 대지주, 자본가, 종교계, 군부 세력은 노동 계급의 힘이 커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같은 해 7월 18일, 프랑코 파시스트 세력은 민주 정권에 대항하여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 정부(인민전선) 지지자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군대를 조직했다. 노동조합들과 정당들로 조직된 그들은 파시즘 정권에 대항하여 민주적 권리를 위해 싸웠다.

- 메인 타이틀 롤에서






조지 오웰은 <카탈루냐 찬가>에서 1937년 바르셀로나 시가전에 대해 기록을 남기기 전에 스페인 내전 당시 국내외 정치상황에 대해 간략하게 기술을 하죠. 5장에서 밝힌 당시 카탈루냐 지역의 좌파 정치세력들을 (대단히) 도식적으로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UGT 전국 노동자 총 연합 : 당대 스페인 전역 150만의 노동자들이 가입했던 사회주의 노동조합들의 단체.

PSUC 카탈루냐 통일 사회당 : UGT의 정치적 기관으로 초기에는 다양한 마르크스 주의자 결합했지만, 이후에는 공산당이 장악하면서 우익 사회주의자와 일부 노동자,  쁘띠 부르주아지까지 포용했다.

CNT 전국 노동자 연맹 : 스페인 전역 200만의 노동자들이 가입했던 무정부주의 - 생디컬리즘 노동조합 단체. 당시에는 CNT와 UGT에 복수 가입한 노동자들도 많았지만 조지 오웰에 따르면 CNT가 더 노동자들을 위한 단체였다고 한다.

FAI 이베리아 지역 무정부주의 연합 : CNT의 정치적 기관. POUM에 비해서는 정치적으로 좀 더 유연했다고는 하지만, 교회와 부르주아지들에 대한 비타협적 적대나 특권층과 불의에 대한 순수한 적대행위는 더 강력했다고 한다. PSUC와 공산주의자들이 중앙집권 및 효율을 강조한 것에 반해 무정부주의자들은 자유와 평등을 강조했다.

POUM 마르크스주의 통일 노동자당 : PSUC나 FAI와는 다른 또 다른 정치세력으로, 숫적으로 비교적 열세였고 카탈루냐 지방 밖에는 영향력이 없었다. 전쟁과 혁명을 분리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고 파시즘에 대한 유일한 대안은 노동자들에 의한 직접 통제뿐이라고 주장했다. POUM이 직접 대표하는 노동조합 블록은 없었고 의용군들은 주로 CNT에서 참가하였지만 당원들은 일반적으로 UGT에 속했다.


(조지 오웰 저, 정영목 옮김, 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2001)



1934년 10월 우파정권의 반동적인 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시작된 노동자 대봉기는 1천 명의 사망자와 수천 명의 구속을 남긴 채 잔인하게 진압되었었습니다. 이 사건은 1936년 민주선거를 통해 CNT, UGT, 공산당, PSUC 등이 연대한 인민전선이 새로운 공화국 정부를 수립하도록 하는 토대가 되었고, 곧바로 노동 / 토지정책의 개혁적인 시도가 시작되기도 했죠. 하지만 이는 또, 왕당파와 지주, 교회의 불만을 고조시키면서, 곧이어 같은 해 7월 스페인령 모로코에 머물던 프랑코 군부의 반란을 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자본가, 파시즘 세력의 반란을 저지하기 위한 스페인 농민, 노동자의 싸움에, 전 세계 노동자 및 진보 지식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전하게 되었고, 반대편에선 스페인의 사회주의 혁명을 저지하기 위한 독일과 이탈리아 등 강대국들의 지원 역시 이어졌습니다.


스페인 내전 초기, 공화국 정부는 반란군을 진압할 기회가 있었지만 노동자 의용군들에게 무기 지급을 머뭇거리는 바람에 때를 놓쳤다고 해요. 때문에 의용군들은 낡아빠진 무기에 보급이 안 되는 상태로 독일제 무기로 무장된 반란군과 맞서야 했다고 합니다. 조지 오웰에 따르면 실제 전투보다 추위와 배고픔과 싸우는 일이 더 많았다고 하죠. 그리고 1936년 10월부터 소련에서 무기 공급이 시작되는데, 이때부터 중앙정부 구성원은 소련을 따르는 사람들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POUM 이 빠지고, 다음에는 중앙정부 수반이 '카발레로'에서 '네그린'으로 바뀌더니, 그다음에는 각종 사회주의 정책을 철회하면서 CNT와 UGT가 차례로 숙청되었던 거죠. 그러면서 전쟁 발발 1년 후가 되면 정부에는 우익 사회주의자와 자유주의자, 그리고 소련의 입장을 따르는 공산주의자만 남았다고 합니다.


우익 사회주의자와 공산당으로 구성된 정부의 일차적인 목표는 전쟁 승리였습니다. 일단 먼저 반란군을 진압하고 나서, 그 이후에 시간을 들여 혁명의 기회를 만들어 나가자는 거였죠. 그러면서 농장과 생산수단 집산화나 노동자 순찰대 정책을 폐지하고, 노동조합이 관리하던 산업을 정부가 접수하게 됩니다. 이어서 노동자 의용군을 해체한 후 정부 인민군으로 재편성하기도 하는데, 정규군에서는 의용군과 달리 계급에 따른 임금 차별과 장교계급의 특권 같은 걸 다시 복구했다고도 해요. 그리고 1937년, 네그린은 공식 연설을 통해 사적 소유를 존중한다고 천명했는데, 이들의 반혁명정책은 결과적으로 수많은 중간계급의 농장주나 상인들을 정부 측으로 포섭하는데 공헌하기도 했습니다.


조지 오웰에 의하면 정부의 공산주의자들은 적당한 때가 올 때까지 혁명을 미루자고 했지만 사실상 소련의 의지로 혁명을 저지했고, 전쟁의 의미를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으로 축소해서 전 세계 노동자들의 연대를 방해했으며, 이는 결국 소련정부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물량전으로 전환시켰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사실 이는 POUM 소속으로 활동했던 조지 오웰의 시각일 뿐, 만일 인민정부가 전쟁을 혁명과 연결했을 때 결과가 더 좋았으리라고 보장을 할 수는 없죠. 역사에서 가정이 의미 없는 것처럼요. 그리고 POUM에서 동지들과 같이 전쟁에 참여했던 조지 오웰조차도 마음으로는 전쟁 승리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PUSC의 주장에 동의했었으니까요. 인민정부와 공산당의 소련제 무기보급이 지역마다 불균등하게 이루어지는 것에서도 조지 오웰은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정적에 무기를 보내지 않으려고 했다"라고 단언했지만, 그 정황 역시 여전히 알 수 없습니다. 소련이 당시 군사동맹이었던 프랑스의 식민지 정책을 존중하기 위해, 스페인 내 혁명을 방해하려는 목적이었다는 것 역시 조지 오웰의 추정입니다.


하지만 네그린 정부가 POUM이나 CNT의 노동자 의용군들의 무기를 압수하고 의용군을 해체하려고 했고, 한편으로는 친정부, 친귀족 치안대를 은근슬쩍 부활시킨 것은 역사적 사실이에요. 그리고 그들이 "내전을 사회혁명으로 바꾸려는 자들은 궁극적으로 파시스트의 손에 놀아나는 자이며, 의도와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반역자"라며 POUM과 CNT를 몰아붙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PSUC와 CNT 사이에 크고 작은 반목과 분쟁, 더 나아가 살인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1937년 5월 3일, 치안대가 무정부주의자들이 장악하고 있는 바르셀로나 전화교환소를 공격하면서 '바르셀로나 시가전'은 시작되었습니다. 파시즘에 대항하여 함께 싸웠던 동지들끼리 총부리를 겨누게 된 이 비극으로 400명의 사망자와 1,000여 명의 부상자가 나왔고, 이후 CNT와 POUM은 무장해제 되었습니다.








급진적인 혁명과 온건한 대중운동의 대립, 중앙집권 및 통제와 권력분산 및 자유의 대립은 사회변화를 꿈꾸던 사람들에게 언제나 있어 왔었습니다. 어떤 대의에 같이 공감하고 싸움의 전선 역시 같은 곳에 긋는다고 하더라도, 막상 일에 있어서는 각자 우선순위도 다르고 어디까지는 허용하지만 어디서부터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선도 다릅니다. 정세파악의 차이로 인한 정책의 차이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죠. 그리고 쉽게 타협되지 않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개개인의 영달의 문제가 아닌 신념의 문제이기 때문이에요. 문제는 '생각은 달라도 같은 방향을 향해 달리고 있다'라는 연대의식이 '나의 위대한 진보에 저들이 방해가 되고 있다'라는 독선으로 언제든지 순간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점이겠죠. 상대의 진심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바로 그 순간에 말이에요.  대의를 위해서라면 크고 작은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가볍게 생각하는 경우도 아직 많아요. 모든 힘을 중앙으로 강력하게 모아서 당면과제를 돌파해야 한다는 방식으로, 그 밖의 다양한 의견이나 정책들은 차후의 과제로 미뤄지거나 무시됩니다. 리더 한 사람의 영향력이 큰 왕정사회, 귀족사회의 경우에는 이런 방식으로 개혁이 성공한 경우가 종종 있어왔지만, 근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소수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탄생한 권력이 민주주의를 제대로 지켜낸 사례는 보지 못했어요. 쉽고 효율적이겠지만 다양한 이견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방식이 과연 사람이 우선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정책의 베이스가 될 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해서 "저들은 기회주의자다"라고 단언한다면 더 이상 타협의 여지는 없어지잖아요. "방향은 다르지만 저들 역시 이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려고 하고 있다"라는 믿음이 없어서는 쪼개지고, 또 쪼개질 수밖에요. 오랫동안 같이 지내온 친구라고 해서 모두 같은 생각을 할 수는 없지 않나요?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말이에요. 하지만 적어도,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마음으로 현 정세를 그렇게 파악하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내 생각에 그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능멸하기는 어렵습니다. 모든 고행을 겪으면서까지 자기 신념을 비타협적으로 지키려는 사람들은 그만큼의 존중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 '세상물정 모르는 멍청이', '국짐 2중대' 등의 멸시를 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요. 차라리 완전 반대파였다면 이런 욕을 먹지도 않을 겁니다. 그냥 저들은 저런 사람들이니까 하면서... 어차피 반대편과는 선거연대를 할 일이 없으니 그런 거겠죠. 그런데 선거 연대의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 만으로 당연히 내 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오만하기 그지없습니다.


힘의 논리를 바탕으로 누군가의 신념을 양보받는 것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최악의 적을 막기 위해 차악을 선택해야 한다는 당위에는 공감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지지하는 사람이 당연히 바로 그 '차악'일 거라는 명제가 모든 사람에게 통용될 거라는 자뻑은 뭘 근거로 하는 건가요? 이런 건 상대를 나와 다른 신념을 가지고 이 사회에 봉사하는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원할 때 표를 던져줄 수 있는 자판기 정도로 생각하는 게 아닌가요? 자신의 목적을 위해 타인의 양보와 희생을 당연하게 여긴다면 바로 사이코패스와 다름없죠. 소련의 지원을 받지 않으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없다는 확신으로 CNT와 POUM을 무장해제시켰던 네그린 정부나 PSUC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내 양보에 대해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존중받지 못한다면, 신념을 가진 그 어느 누가 양보를 하려고 할까요?


어쩌면 많은 경우, 연대의 시초는 동정과 연민에 기인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가 차이점으로 인해 소소한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그떄부터 "내가 지들한테 그동안 어떻게 해줬는데..."라는 걸로 시작되는 '배은망덕'의 감정 때문에 삐치게 되는 것이겠죠. 그렇다면 이렇듯 답답한 상황 속에서도, 왜 아직 우리에겐 연대가 필요한가요? 비록 우리는 저마다 신념도 다르고 당면과제가 다르더라도, 욕망으로만 움직이는 반대편은 수익분배라는 단순한 명제만으로도 똘똘 뭉쳐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것이 지금 당장 나 자신에게는 위협이 안 되더라고, 피부로 느끼는 현실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영화 초반, 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인민전선의 활동가의 말처럼요.


우리의 패배는 곧 여러분의 패배입니다. 스페인에서 프랑코가 권력에 다가갈수록 여기에서도 파시스트가 권력에 다가가는 것입니다. 프랑코가 싸움에서 이긴다면 모든 곳에 파시스트들이 들끓게 될 것입니다. 머지않아, 놈들은 자유를 사랑하는 모든 민중들을 야만과 전쟁 속으로 내동댕이 칠 것입니다. 스페인, 영국, 미국, 중국 할 것 없이 우리는 평등사회라는 같은 염원을 가진 같은 계급의 민중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여 우리의 투쟁을 여러분의 투쟁으로 만드십시오. 함께 나아갑시다


실제로 무정부주의에 회의적이었던 POUM이 모든 피해를 무릅쓰고 바르셀로나 시가전에 뛰어들어 함께 싸웠던 것도, CNT를 향하는 총구가 언제든지 자신을 향할 수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CNT 입장에서도 POUM의 트로츠키주의가 공산당의 스탈린 주의보다 나을 게 없었겠죠. 하지만, 이후 POUM이 탄압받았을 때, 끝까지 그들을 옹호하며 목소리를 높인 사람들은 무정부주의자들 뿐이었다고 조지 오웰은 밝히고 있습니다.


현재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같은 소수자인 무슬림 난민이라고 할지라도 다양한 성적 취향이나 성 정체성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고, 몇몇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이 어떤 이슬람 문화에 대해선 적대적이기도 한 상황은 캐나다에서도 종종 나타납니다. 하지만 인종, 사상, 정치적 견해, 외모, 나이, 문화, 성 정체성을 바탕으로 차별이나 증오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명제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모두 동의를 해야 한다는 거죠. 그렇지 않다면 다른 소수자를 향하던 칼끝이 언제든지 자신을 향할 수 있으니까요. 차별금지법을 지지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이 상위법으로 존재하는 캐나다에서도 여전히 다양한 정치적 시각이 원내로 진출할 있게 만드는 비례대표제에 대해선 반대가 심한 편이에요. 가끔 주민투표 안건으로 올라올 때가 있지만, 그때마다 기존 정치권과 그들의 지지자들이 힘을 합쳐 악성 루머를 퍼뜨리기도 하고요. 소수 정당이 원내에 진입하면 나치와 같은 극단주의 세력이 장악하게 될 거라고 말이죠. 현재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과 뉴질랜드, 그 어느 곳에서 극단주의 세력이 난립하는 경우는 없고, 승자독식 구조인 미국과 영국, 캐나다에서 오히려 결격사유가 많은 사람들이 종종 국가수반이 되는 걸 보면 저들의 협박이 근거가 없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국회 의석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면 정국이 불안정해진다고요? 확실히 비효율적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힘의 논리를 바탕으로 무조건 거대정당 중심으로 단결을 했을 때에도 변화는 없었습니다. 


공동의 이익에 대해 합의가 되고, 연대의 구심점을 인물이 아닌 정책으로 하고, 연대를 위한 양보에 대해 걸맞은 존중이 있다면, 조금씩 천천히 바꾸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공동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가 신념을 포기할 때, 그들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그 신념을 이어받을 것을 분명히 약속한다면 그래도 연대를 패배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그래도 여전히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분열로 인해 망하는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차근차근, 조금 더 천천히 갈 뿐.






덧 : 조지 오웰이 책에서 지적했듯이, 이렇게 분열과 반목을 넘어 상대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시키는 건 항상 뒷전에서 편하게 머리만 굴리는 사람들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방구석 손가락 파이터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자극적이고 무책임하게 과장된 사실을 바탕으로 선동한다는 것, 그리고 대중들의 여론이 여기에 쉽게 휘말린다는 사실이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하다는 건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어요.   


전쟁의 가장 끔찍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모든 전쟁 선전물, 모든 악다구니와 증오가 언제나 싸우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는 점이다. 내가 전선에서 알게 된 통일 사회당 의용군 병사들이나 이따금씩 만나는 국제여단의 공산주의자들은 결코 나를 트로츠키 주의자나 배반자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런 일은 주로 후방의 기자들이 담당했다. 우리를 반대하는 팸플릿을 쓰고 신문에서 우리를 헐뜯는 기사를 쓰는 사람들은 모두 안전한 집에, 혹은 기껏해야 발렌시아 신문사 사무실에 있었다. 총알과 진창으로부터 수백 킬로는 떨어진 곳이었다.



그동안 우리는 정당 정치인들의 애를 끊는 심정으로 결정한 양보를 너무 쉽게 비난해 왔던 것은 아닌가요? 우리는 사랑에 이어 사회문제 역시 인터넷으로만 배우고 있었던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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