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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선 Apr 16. 2024

해리 스티븐스 빌딩

기억한다는 것에 대해

가끔 담당자가 휴가 가거나 할 때마다 내가 맡아서 임시 관리하는 정부청사 건물 중에는 '해리 스티븐스 Harry Stevens'라는 이름을 가졌던 건물이 있어. 백년 전에 밴쿠버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의 이름을 딴 건물인데, 사실 이 인간이 과거에 아시안 이민자 유입을 앞장 서서 반대했던 인물이었고, 심지어 인도에서 오는 이민선 '코마가타 마루'의 입항을 거부해 망망대해로 돌려보낸 참사를 주도했었거든. 그래서 그 악명을 지우고자 이제는 아무도 그 건물을 '해리 스티븐스 빌딩'이라고 부르지 못해 (https://www.cbc.ca/news/canada/british-columbia/harry-stevens-building-name-removed-1.5241870). 마치 볼드모트처럼. 이제는 그냥 건물의 주소를 따서 이름 대신 '125 East 10th Ave 빌딩'이라고 부르고 있는 형편이야.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 세계적으로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도그마가 확산되어 왔잖아. ESG를 중심으로 기업 구조도 재편되어 가고, 사회 정치적으로는 소수자에 대한 배려나 다원주의, 여성주의, 생태주의 등이 중요한 정치적 결정요소로 고려되기도 했었지. 캐나다에서는 쥐스탱 트뤼도가 이끄는 캐나다 연방 자유당이 2015년 총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하고 이후로도 10년째 집권하고 있는데, 당시 자유당의 공약이나 그 이후 10년 간의 정책들은 매우 진보적인 편이었거든.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신민당의 정책이 오히려 초라해 보일 정도로 말이야. 그 중 하나가 과거 영연방 식민지 시절 원주민들을 상대로 저지른 범죄에 대해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정부차원에서 사과하고, 그리고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하는 것이었어. 사실 캐나다 원주민들의 수난사에 대해 아는 것도 많이 없었고 관심도 그다지 없었지만, 가끔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왠지 어깨가 으쓱해지곤 하더라. 그래도 이 사회는 아직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가 남아있구나.. 하면서 말야. 하지만 뒤따르는 후속조치, 그리고 덩달아서 같이 조성되는 사회 분위기는 나로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어. 마치 이 나라의 부끄러운 역사를 그냥 지워버리려는 것 같아서 말이지.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이 '해리 스티븐스 빌딩'이라고 봐. 국가적으로 자행되고 당시 사회에서 용인되었던 잘못을 뒤늦게나마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왜 아예 이름을 없애버리는 건지 이해할 수 없어. 부끄러운 역사도 역사잖아.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걸 계속 기억해야 또 다시 반복하지 않을 텐데, 이름을 지운다고 해서 있었던 역사가 없어지는게 아닐 텐데 말이지. 연방정부 건물 이름이 꼭 항상 자랑스러운 이름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 이런 식의 역사 지우기는 비단 이 건물 뿐만 아니라 캐나다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밴쿠버의 유명 관광지 게스타운에 세워져 있는 '게시잭' 동상 (그리고 이 사람의 이름을 따서 '게스타운'이라는 동네 이름이 만들어졌었는데)도, 이 인간이 과거 식민지 시대에 어린 원주민 여성의 성착취에 관련되어 있다는 이유로 결국 (흔적도 없이) 철거되었는데, 이 때도 주민들 사이에서 무척 논란이 있었거든 (https://www.vancouverisawesome.com/local-news/vancouvers-gassy-jack-statue-was-torn-down-and-the-city-is-divided-5071579). 어떤 이는 "게시잭 동상을 보면서 우리 선조가 저지른 죄를 거듭 생각할 수도 있었는데, 이제 과거의 죄를 상기시키는 역할을 무엇이 대신 할 것인가?" (when the statue was there it provided an opportunity for hundreds of people to "shame him daily and now that isn't possible)라고  말했는데, 나 역시 이런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해. 이렇게 또 몇 십 년이 흐르고 나면 아예 저런 인물이 있었던 걸 완전히 잊게 되는 게 아닌지 걱정도 되고. 마치 자신들의 전쟁범죄 기록을 말살한 일본 자민당 정권 덕분에 현재 일본인들은 조선을 침략한 사실이나 종군 위안부, 731부대 생체 실험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것처럼 말야.


90년대에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에도 학교 창립자가 일본 제국주의에 부역을 했다고 해서 동상을 무너뜨리려는 시도가 있었어. 총학생회 입장으로는 본인들이 사랑하는 학교 캠퍼스 한 가운데에 흉물스러운 친일파(!) 동상이 서있는 걸 못 견뎌서 하는 행동이었지만, 나로서는 학교에 자부심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었기에 이 역시 이해할 수는 없었지. 그렇게 학교를 사랑한다면 동상을 끌어내기보다, 학교 창립자의 잘못을 속속들이 밝혀내고, 그것에 대해 응당한 사과를 해야하는 게 아닌가하고 말이지. 그런데 내가 선택해서 살고 있는 이 나라에서도 이런 경우를 겪게 될 줄은 몰랐지 뭐야. 물론 여기서도 사회적으로 논란이 있는 방식이지만, 이렇게 이름을 바꾼다든지, 동상을 무너뜨린다든지 하는 행위가 자신들의 선조가 저지른 죄를 정면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비겁함, 그리고 그걸 타자화하므로써 자신들은 정의로운 집단이라는, 동상의 철거가 곧 정의의 승리라고 주장하는 정치적인 고려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거야. 역사에 대한 평가 행위가 되려 역사적 사실의 아이콘을 없애려는 행위로 전환되는 아이러니라니.


굳이 학창시절까지 돌아가지 않더라도, 한국 사회에서는 각종 사회적 참사에 대해 망각을 유도하려는 시도들이 있었지. 삼풍백화점 희생자 위령탑이 사건과 상관없는 양재 시민의 숲에 세워진 것도 그렇고, 대구에 있는 시민안전테마파크에도 대구 지하철 참사 희생자에 대한 추모나 위령의 뜻이 담긴 이름도 쓰지 못하고 있어. 가깝게는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역시 마찬가지일 거야. 몇몇 사람들은 참사를 정쟁으로 이용한다고 주장하는데, 그걸 잊으라고 강요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 아닐까? 분명 있었던 일을 어떻게 잊으라고 강요할 수 있겠어? 많은 사람들이 유명을 달리하거나 평생 고통이 될 상처를 안았는데. 가까스로 화를 피한 사람들도 살아남았다는 죄의식을 품고 버텨가고 있는데. 어떻게 잊으라고 할 수 있냐고. 개인이 이런 원망스러움, 슬픔, 죄의식을 표현하는 방법은, 바로 기억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건데 말이야.


알아. 물론, 모든 사람들이 부끄러운 기억을 정면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는 않다는 거. 그래서 자신의 무력함을 감추기 위해, 기억하자는 주장에 대해 반발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거. 이해할 수 있어. 인간은 망각 기능 덕택에 자신의 정신 건강도 유지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누군가가 자신의 건강과 생존을 위해 선택한 망각에 대해 나로서는 비난할 수는 없다고 봐. 하지만, 기억을 거부하고 도망치는 것이 개인의 선택으로서는 용납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나 사회 차원에서 역사를 망각하는 것을 주도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 국가적 결정이나 사회적 합의는 이 시대의 가치를 반영하는 일이잖아. 지금의 도덕적 기준으로 봤을 때 선조들의 잘못을 발견했다면, 그걸 헤집어 내어 밝히고 우리 후손들 역시 계속 기억하도록 해서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게끔 하는 것이 현 시대를 사는 사람의 의무가 아닐까 하는 거야. 게다가, 지금 시대를 사는 우리의 가치판단이 절대적으로 옳고 우리 후손이 사는 미래에도 똑같이 통하리라는 보장이 없잖아. 그런데 부끄럽다고 해서 역사적 아이콘을 계속 없애기만 한다면 미래의 후손들은 가치판단을 할 수 있는 근거조차 가질 수 없게 되는 거지. 한 개인이 추모를 할 지 망각을 할 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와 사회는 역사적 사실관계를 보존하려는 책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 옛날 조선왕조실록처럼 말이야.


미국 건축 역사 중에 가장 드라마틱한 사연을 가진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는 '브루클린 브릿지'는 건축가인 아버지 존 로블링과 아들 로버트 로블링, 그리고 며느리 에밀리 로블링, 이렇게 한 가족의 노력이 모여 만들어졌는데, 완공 당시에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지 못해서 기념 현판에 에밀리의 이름이 새겨지지 못했다고 해. 하지만, 이후에 에밀리의 이름이 가장 높이 새겨진 새로운 현판이 설치된 이후에도 예전에 부끄러운 사회 의식을 반영했던 이전 현판은 그대로 남겨 뒀다는 거야.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남겨 두는 미국 사회의 터프함을 보여주는 것이겠지.


그래도, 지난 뉴욕 여행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역시 911 기념공원이었어. 그치지 않는 눈물을 상징하는 추모 조형물의 규모도 압도적이었지만, 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모든 기록들, 사건의 발생과 경과, 그리고 그 이후 사회의 혼란과 회복까지 가감없이 생생하게 보존하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어쩌면 역사의 기록이란 이런 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라. 물론, 911의 경우 (그 경위야 어쨌든 간에)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은 테러였었고 자신들이 저지른 부끄러운 역사에 대해 대응하는 캐나다나 한국 사회의 경우와는 차이가 있지만, 어떤 참혹한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지 않고 사실 그대로 보존하려는 용기만큼은 본받을 점이 있다고 생각해.


추모와 반성, 그리고 시스템의 개선은 모두 기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니까.





덧. 기억공간이 철거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https://v.daum.net/v/202404161402049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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