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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선 Jun 01. 2024

당연한 실패, 필요한 실패

나의 호율중독 일지

이 글은 '브라질소셜클럽' 작가님의 <일과 출산, 육아 양립 가능하긴 한 건가?> 글의 리듬을 받은 변주곡입니다.






저 역시 엄청난 효율중독자였습니다. 최소노력으로 최대효과를 만드는 것이 인생목표였어요. 조금만 잔머리를 굴리면 혼자서도 일을 쉽고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데도 여럿이 하나를 가지고 끙끙대고 있는 걸 보면 답답해서 아주 견디지도 못했구요. 사실 뭐, 지금이라고 이런 게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에요. 게으른 천국이라는 캐나다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지만 인간 성격이 뭐 그렇게 변할 수 있나요. 그냥 최대한 잘난 체 안 하고 살려고 노력하는 거죠. 가진 건 쥐뿔도 없었음에도 욕심만 많아서 어떻게든 갖고 있는 걸로 효과를 내보려는 게 습관이 되고 성격이 되었던 걸지도 모릅니다. 흙수저 타령을 또 하면서 변명거리로 삼고 싶은 건 아니지만.


예전에 개인용 컴퓨터가 막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타이핑 능력이 곧 컴퓨터 능력이라고 오해받았을 때에도 타자연습을 안 했습니다. 주변에 한메타자교사로 200타, 300타 치는 친구들이 많았을 때에도 100타도 못 쳤던 전 전혀 꿀리지 않았던 걸로 기억해요. 실제 문서를 만들 때는 얼마나 타이핑을 정확하고 빠르게 치는가보다, 워드 프로세서 프로그램의 기능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실제로 아래한글 프로그램에는 스타일 기능이나 매크로 기능이 있어서 반복되는 단어나 문장들은 단축키 지정을 해서 문서를 빨리 만들 수 있었죠. 논산 훈련소에 첫 번째 아침 기상은 훈련병들에게 팀워크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우쳐 주는 시간인데, 비몽사몽 순간에 모포를 빨리 개고 침상을 정리해야 하는 게 임무였고 당연히 빨리 2인 1조를 만든 사람들에게 유리했습니다. 근데, 전, 혼자서도 잘 갤 수 있더라구요. 전혀 늦지 않고 말이죠. 당시 이등병 달고 있던 조교가 절 얼마나 얄밉게 보던지요. 애니메이션 기획일을 했었을 때에도 제 연구주제는 한국형 저예산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미국 저예산 영화의 대부 로저 코먼에 무척 경도되어 있었기도 했지만, 제 생각엔 역사에 남을 명작을 만드는 것보다 극장 상영이나 TV 방영만으로 수익이 나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훨씬 중요한 시점이라고 봤거든요. 캐릭터 머천다이징이나 해외 판권 같은 허황된 생각은 하지 말고 말이죠. 실제로 제 맡았던 TV시리즈 물은 제작 시스템을 완전히 재구성해서 제작비 절감에 성공도 하기도 했습니다. 방영료 만으로 수익도 났었고요.


그런 제게 있어서 처음 마주친 캐나다 노동 환경이 얼마나 답답해 보였겠어요. 지금은 사실 여기 노동강도도 많이 높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새벽에 문 열면 아침 식사 밀프렙이 문 앞에 와 있는 한국에 비기진 못하겠죠. 그러니 20년 전 캐나다는 말해서 뭐 하나요. 인터넷에 문제가 생기면 기사가 오는 데까지 3~4일이 걸리고, 버스 시간 끝나기 전에 (여긴 표를 한 번 사면 1시간 30분 동안 무료입니다) 슈퍼에서 물건 계산을 하려고 하면 계산대에서 손님과 날씨 얘기, 고양이 얘기를 하는 점원 모습에 속이 터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새로 산 휴대폰이나 가전제품에 문제가 생겨서 구매처에 문의를 해 보면 담당직원들은 어찌나 그리 휴가들을 많이 가는지. '이야... 정말... 얘네들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사는구나... '라는 한탄을 매일매일 입에 달고 살던 날들. 그러다가 하루는 말실수를 크게 했지 뭐예요.


동네 마트에서 컴퓨터 수리 기사일을 하다가, 좀처럼 비전이 안 보여서 계속 구직 활동을 하던 차였거든요. 그러다가 어떻게 인연이 닿아 이 지역 대학교의 서점 컴퓨터 매장에서 단기 알바를 했었죠. 왠지 거기에 발끝이라도 적을 두고 있다 보면 대학교 다른 일자리에 지원할 때 도움이 될까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참, 나, 제가 당시 민간기업 소매업에서 너무 빡세게 굴렀어서 그랬을까요. 아래층 사무실 직원들이 업무환경이 너무 한심스러운 겁니다. 전 마트에서 수리기사로 일하면서 컴퓨터 고치고, 고장 난 컴퓨터 때문에 화가 난 손님들 상대하고, 제조사에 문의해서 수리부품 발주하고, 문제가 있는 컴퓨터를 제조사에 연락해 반품하고, 그리고 매장이 바쁘면 판매 도와주러 나서고.. 뭐 이런 일들을 다 했었는데, 그곳 서점에서는 판매직원은 판매만, 수리기사는 수리만, 나머지 부품발주, 반품 등을 서류 작업들은 사무실 직원 5명이 나눠서 하고 있더라고요. 느릿느릿. 수다 떨면서. 아놔.


그런 거 있잖아요. 같이 일하는 직장에 불필요한 리소스가 너무 많아서 움직임이 무척 느린 것 같은 느낌. 불필요한 인력들을 쳐내고 조직 개편을 한 다음에, 차라리 그 인력들에게 들어갔던 비용을 정예인력들이 나눠가지는 것이 합당한 정의라는 생각. 그 당시에 제가 여전히 그런 생각에 매몰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나중에 마트 동료들과 알바 얘기를 하면서 "와.. 정말.. 거기 인력을 다 잘라도 충분히 돌아갈 거야"라는 톤으로 말을 했더니, 동료들이 깜짝 놀라더라구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냐는 식으로 말이죠. 말실수했다는 느낌은 곧바로 들었지만, 그래도 한동안 내 생각이 틀렸다고 받아들이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어쩌면 당시의 제 생각은, 가격경쟁력, 가성비가 수출무기였던 개발도상국 시대를 관통하면서 성장했고 IMF 시대 동안 생존원리를 깨닫게 된 모든 한국인들이 가졌던, 그리고 여전히 가지고 있는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주변 지인들이 사회에 자리를 잡기 시작하던 1990년대만 해도, 사실 몇몇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신입사원 월급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지금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연봉차이가 몇 배로 뛰었잖아요. 물론 지금은 삼성 등 4대 재벌의 수익이 국가 GDP의 10%에 육박하는 상황이 되었기는 했지만요. 그래도 임금 노동자 입장에서는 기업의 수익이 고용의 추가 확대로 이어지기보다 현재 피고용인들에게 이익분배로 이어진다는 의미가 될 겁니다. 어쩌면 직원 입장에서도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야 하는 사람을 추가 고용해서 같이 일하는 것보다. 지금 식구들끼리 좀 더 으쌰으쌰해서 일을 처리하고, 초과이익분을 보너스로 받는 걸 더 좋아할지도 모르고 말이죠. 예전의 저처럼요. 이 글을 통해서 현재 제 시각과는 다른 어떤 생각이나 문화를 비판할 의도는 없어요. 그 사회 구성원들이 합의한 노동 시스템을 외부자가 가타부타 판단하는 것 자체가 받아들이기 힘들죠. 하지만 이런 효율 중심 사회로부터 필연적으로 버림받게 될 요소들은 지목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이를테면, 출산이라든가. 따지고 보면 전혀 경제 능력이 없는 생물을 낳고 자립시키기까지 25~30년 간 부양을 하는 일이라는 게, 얼마나 비효율적인 일이냐구요.






하루는 일본 만화 <우주형제>를 읽고 있었어요. 가끔 영화나 만화를 보다가 혼자 뜨끔하면서 눈물을 막 흘릴 때가 있는데, 이 때는 주인공 뭇타가 나사의 우주비행사 후보 선출 프로그램에서 훈련받는 장면이었거든요. 팀 동료들과 달에 안전하게 착륙하고 도착지점까지 자력으로 찾아가는 탐사차량 모형을 만드는 미션을 받았어요. 아주 한정된 재원으로 말이죠. 여러 가지 브레인스토밍을 거쳐 뭇타의 아이디어가 채택되어 예산을 편성하는데, 뭇타가 예산을 너무 빡빡히 짜는 거예요. 팀원 중에 한 명이 묻죠. 비록 적은 재원이지만 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모형을 만들기엔 충분하니까 좀 더 넉넉하게 가자고. 그때 뭇타가 이런 식으로 말해요.


"아냐. 실패할 비용이 필요해."


아... '실패할 비용'이라니. 왜 그딴 말에 엉엉 울게 되었는지. 달 탐사차량 모형 제작을 하는 만화를 보다가 울고 자빠져있는 남편을 바라보던 아내는 무슨 생각이었을까요.


Chuya Koyama, Space Brothers, 2008, Kodansha


어쩌면, 제가 그렇게까지 추구했던 '효율'이란, 답답해서도 아니고 이기기 위해서도 아니라, 사실은 살아남기 위한 거였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그건. 지금 2024년의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도 유효한 것 같습니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되고 세 살 버릇이 여든 간다고 배워 온 한국 사람들에게, 한 번의 실수가 자기 인생을 돌이킬 수 없도록 만든다고 생각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초딩부터 대딩까지, 그리고 스펙을 쌓아서 대기업 입사에 성공해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여전히 유효할지 몰라요. 사회의 요구에 따라 선배들이 만들어 온 길. 입시 코디네이터들이 꾸려 온 길에서 벗어나는 게 바로 인생 실패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여전히 유효할지 모른다는 거죠. 왜 우리는 실패를 그렇게까지 무서워하게 된 걸까요. 다른 길을 찾는 사람들을 '어긋난 길'로 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게 된 걸까요. 왜 우리는 '실패'를 불필요하다고,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고려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게 된 걸까요.


이런 실패를 두려워하고 불필요하게 생각하는 사회 정서는 곧바로 회사 조직에도 적용됩니다. 프로젝트를 짤 때 딱 맞는 인력자원으로만 구성하고 여유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죠. 일당백의 정예인력. 말은 그럴싸하지만 이는 실패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계획입니다. 돌발 위기상황에 전혀 대처할 수 없는 조직이고요. 정예인력으로 편성된 조직에서는 구성원들이 아플 수도 없습니다. 다칠 수도 없고. 아이가 다쳐서 병원에 실려가도 일을 빠질 수가 없어요. 이러니 아이를 낳을 생각을 못하는 건 당연한 거죠. 이게 어떻게 사람이 일하는 노동환경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보통 건물 안의 화재 방어 시스템에는 스프링클러용 펌프가 최소 두 개가 있는데, 이는 한 개의 펌프가 유사시에 고장이 났을 경우에도 백업 펌프로 스프링클러를 작동하기 위함입니다. 이렇듯 기계조차도 메인과 백업이 있는데, 그 건물에서 일하는 회사원들에게는 그런 게 없다니......


명실공히 경제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한국 사회에는, 이제 이런 초과 여유분에 대한 관용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예상치 못한 실패나 고장은 언제든지 있을 수 있으니 그걸 다 떠안을 수 있는 충분한 여유가 필요하다는 거죠. 그리고 이제 국가차원에서 정예인력 시스템을 폐기하고 좀 더 여유 있고, 좀 더 넉넉하게 갈 수 있는 확대고용 시스템으로 가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타인의 근무태만을 지적하기보다 부러워해야 하는 문화가 잡혔으면 하고요. 정부고용을 확대 편성해서 공무원 조직부터 앞장서서 사람들이 일하기 편한 시스템으로 가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요. 현장 직원들의 피땀, 가족시간을 갈아 넣어서 성과를 만드는 시스템이 아니라, 내가 아프면 집에 갈 수 있고, 아이가 아파도 집에 갈 수 있는 그런 노동 문화로. 그래야지 민간 기업도 따라갈 수 있을 거 아니에요. 아니면 적어도, 개인적인 성취감이나 그에 따른 높은 보수를 쫒는 사람들은 민간 기업에, 워라밸이나 가족과 사회의 안정을 쫒는 사람들은 공공분야로 나뉠 수 있을 겁니다. 지금부터 남녀노소 불문하고 잔업을 거부하지 않으면, 그래서 적어도 아이를 어린이 집에서 제 때 픽업할 수가 없다면, 절대로 한국의 출생률은 반등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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