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영화처럼 산다면야> 동상이몽 제작일지 07-1
이연 작가님이나 저나 출간 이후에 종종 이런 얘길 하곤 했습니다. 지난 2년간 한 번도 다툼이나 갈등 없이 즐겁고 유쾌하기만 했던 공저활동이었다고.
죄송합니다. 뻥이었습니다.
뭔가 갈등이 있었더라도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여리여리 소녀 감성 이연 작가님은 그냥 훌쩍이기만 하고, 신라면처럼 성격 칼칼한 동선 작가만 혼자 삐약삐약거렸을 거다. 책을 읽고 둘이 호흡이 착착 맞는 것처럼 보이는 건 착한 이연 작가님이 죄다 맞춰준 거라 많은 분들이 생각하실 것도 같아요.
깜빡 속으신 겁니다.
저도 참 답답합니다. 하필 글 싹 감추고 두문불출하는 걸로 유명한 작가님이랑 공저를 하게 된 바람에, 제 억울한 사연을 어떻게 낱낱이 증명할 방법이 없네요. 그래도 재떨이가 날아다니고, 울면서 문 꽝 닫고 뛰쳐나갔었던 날들 중에 몇 가지만 골라서 넋두리를 늘어놓기 전에 (추리고 추렸음에도 장시간의 대형폭로가 이어질 예정이라 이틀에 걸쳐 연재합니다), 지난 2년 간의 집필 과정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대화 캡처본을 먼저 보여드릴까 해요. 마치 1분 미리 듣기처럼.
그러니까 처음엔 제가 먼저였던 것 같아요. 이연 작가님 블로그를 자주 방문하셨던 분들은 운전석 차창을 통해 빗물에 굴절된 풍경을 찍은 사진을 많이 보셨을 거예요. 전 그게 아주 불안 불안했거든요. 제발 운전하다가 딴짓하지 말아 달라. 아무리 신호대기 중이라도 말이지. 완전 막가파 아니냐면서. 그랬더니 본인은 또 ‘막가파’라는 별명이 마음에 드신다고 하더라구요.
아놔.
그러고 나서 이연 작가님이 이중섭의 이야기를 꺼냈었죠. 전쟁 중에도, 가족과 헤어지면서까지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담뱃갑 종이에 그림을 그렸던 그의 생애에 대해서. 중섭과 떨어져 살 수밖에 없던 아내에게 쓴 편지 “내 사랑하는 아내, 남덕 천사, 만세 만세 만만세”를 언급하면서 말이죠 (이 원문도 지금 잠겨있습니다. 대신 그전에 쓰셨던 글을 첨부합니다).
그런데 전 그런 삶에 대해 그 어떤 찬사도 연민도 보낼 수 없었어요. 예술가라고 하더라도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일말의 책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세상을 뒤흔들고 역사에 남을 예술품을 만들 수 있다면 난 굶어 죽어도 좋다 “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보통 이럴 경우 자기만 굶는 게 아니잖아요. 가족들이 굶는 걸 보면서 만든 예술작품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혹은 자신이 굶어 죽어가는 걸 지켜보는 가족들의 마음을 무시하고 만들어낸 작품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현실 세상에서 논쟁의 대부분은 상대방 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듣기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인 거죠. 서로 다른 생각을 한다고 해서 자긴 생각을 주장하다 보면 “내 말이 그 말이자나아아!!”라는 짜증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리고 보통 그 뒤에는 ‘내 말을 잘 듣지도 않고서. 근데 너 나한테 왜 이래?’라는 질타가 숨어있죠).
한동안 이연 작가님이 고전인문학자 ‘고미숙’ 선생의 <나이 듦 수업>에 대해 글을 쓰신 적이 있었어요 (이 글도 잠겨있습니다). “20대에 결혼했다. 50대에는 서로 해혼解婚 하는 게 맞다. 결혼은 묶었던 것이니 해혼으로 혼인을 푸는거다. 묶었으니 풀어야 한다. 죽기 전에 풀어줘야 한다. 이혼하지 말고 해혼하라.”를 인용하면서. 저는 여기에 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어서, 영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꼭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당장 긴 댓글이 바로 달리더군요.
그러고 나서 이연 작가님의 글을 받았습니다.
<알려는 마음>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이 글의 당시 제목은 <그러려니>.
그런데 이때가 마침 2022년 핼로윈 즈음이었어서, 더 이상 물고 뜯거나 장난칠 여력이 없었죠.
생각해 보면 영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만큼 이야기 꽃이 끊이지 않았던 영화가 없었던 것 같아요. 보고 나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 보고 나서 많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요즘에는.
내일 2부가 계속됩니다. 표지 그림은 이연 작가님의 글 <씨큐… 씨큐… 제 목소리 들려요> 뒤에 삽화로 넣으려고 했던 스케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