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영화처럼 산다면야> 동상이몽 제작일지 07-2
전 고층건물 시설 관리기사라서 정해진 휴일이나 휴가, 병가 외에는 긴급 상황 때문에 갑자기 쉬는 경우는 없습니다. 시설물에 이상이 발생하는 게 뭐 사람 사정 봐주면서 발생하진 않거든요. 코로나 시기에도 쉬지 못하고 출근했었고, 폭설이 내리든 폭우가 내리든 그것 때문에 또 문제가 생길 수 있기에 출근해야 합니다. 그날도 밤새 폭설이 내리는 바람에 도시 전체 교통이 마비되었던 날 아침이었어요. 선로가 얼어서 언제 올지 모르는 전철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동안 사진을 한 장 찍어서 친애하는 공저자에게 보내지 않았겠어요? 꽁꽁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면서.
이렇게 해서 나온 글이 영화 <박쥐>에 대한 꼭지 <우주의 조화>와 <우주는 혼돈>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이연 작가님의 글에서 꽃을 사람 얼굴에 비유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한 때 생물시간을 좋아했던 사람으로서, 그리고 사람 얼굴을 꽃에 갖다 붙이는 것에 좀 뾰족해져 있던 제가 단박에 반박 대댓글을 또 썼습니다. 좀 길지만, 맥락 이해를 위해 전문을 올립니다.
그리고 여기에 달린 대대댓글도 전문을 올립니다.
아. 정말. 이건 도무지 모르겠어요. 도대체 왜 그때 이연 작가님이 갑자기 글을 또 다 잠그고 댓글도 멈추고 잠적을 했는지 말이죠. 가까이 살면 리어 네이키드 초크라도 걸어서 실토를 하게 했을 텐데. 게다가 잠적하기 전에 뭐라고 뭐라고 화를 내는 말을 했었거든요 (당연히 이 글도 잠겨있습니다).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정확히 무슨 얘기가 오고 갔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기분은 여전히 나쁜.
그 당시에도 이연 작가님이 도대체 무슨 일에 삐친건지 고민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뭐 사실, 걸고 넘어가자면 또 제가 잘못한 일이 천지삐까리니까. 글을 수정했는데 그걸 제대로 못 알아봐서 그릉가, 아니면 한국에서 같이 봤던 영화 <애프터 선>의 정서를 하나도 이해를 못 했어서 그릉가. 그런데 아무래도 가장 유력한 이유는 그거 하나였어요. 제가 ‘조인성’ 배우와 동급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했었던 거. 아니 왜, 저 나이대 여성들은 조인성만 특별 취급하는 겁니까? 농담이고 장난이었던 게 당연하잖아요 (5프로 정도는 진담이지만). 제 아내도 그렇거든요. 제가 ‘변우석’이 되었든 ‘차은우’가 되었든 비교를 하면 그냥 ‘풉‘하고 비웃거나 ‘으이그으’하고 혀를 쯧쯧 차고 마는데, 조인성을 들먹거리면 아주 싸늘하게 한마디 해요. “죽고 싶냐?”
이연 작가님. 말해봐요. 나한테 왜 그랬어요?
(아니 아니 말하지 마세요. 왠지 “죽고 싶냐?”보다 더 심한 대사가 머릿속에서 자동재생되는 것 같아서)
그러던 어느 날, 며칠의 침묵 뒤에 이연 작가님한테서 편지가 왔어요. 짧은 단답형 대답처럼. 빨리 원고를 끝내버리려는 듯한 뉘앙스의…
아놔… 저도 이 때는 참다못해 좀 따져야 했습니다.
이번에도 쓰다 보니 분량을 훌쩍 넘어버렸네요. 그럼 ‘대중성 논쟁'과 ‘김영란 법과 선물 해외배송' 때문에 생겼던 작은 소동, 그리고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았던 퇴고 과정에 대해서는 차후에 지면이 남으면 또 꼬발르도록 하겠습니다.
표지 그림은 이연 작가님 글 <우주는 혼돈> 뒤에 들어갈 예정이었던 삽화 스케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