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영화처럼 산다면야> 동상이몽 제작일지 #13
가끔 보면... 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아내와 저의 관계는, 뭐랄까, 라이벌 관계에 좀 더 가깝지 않나... 하는...
아니, 절대로 불평하거나 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부분은 사실 제가 좀 우쭐해하며 자랑하는 부분이에요. 두 명의 독립된 자아로서, 서로 자극하고 도와주며, 결국 서로의 성장을 돕는 그런 관계있잖아요, 왜. 강백호와 서태웅의 관계 같은 거 (물론 제가 서태웅입니다. 찜!). 처음 이민 와서 둘 다 파트타임 고객서비스 감정노동에 시달릴 때 어쩌다가 제가 먼저 정규직을 받았는데요, 그 소식을 들은 아내의 첫마디는 "우쒸이, 좋겠다..."라는 투정이었죠. 가끔 제 급여명세서에 찍힌 금액이 더 높을 때에도 "아유~ 우리 회사는 증말..."로 시작되는 본인 회사 불평. 최근에 책이 나와서는 주변 사람들이 아내에게 "오오오, 자랑스러우시겠어요.."라고 얘길 하면, "네? 제가요? 왜요? 전 그냥 '니가 재밌다니 됐다'인데요?"라고 단칼에 잘라버리기도 합니다. 저는 근데, 뭐 자화자찬에 부창부수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게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거든요.
특히 한국에 가서 예전 대학 동창들을 만날 때마다 더 그래요. 20대 때는 여권신장에 대해 멱살 잡고 설교하던 친구들이 이제와서는 남편 얘기, 자식 얘기만 하고 있는 걸 보면 안타깝죠. 어쩌다 이렇게 늙었나. 도대체 왜 본인의 인생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는가, 하면서요. 예전에 커피숍 같은 곳으로 출장수리를 갔을 때에도 한인 여성들이 모여서 나누는 얘기를 들으면 주로 남편 직장 얘기, 자식 학교 얘기뿐이었어요. 그렇게 자신의 삶의 이야기가 가족들에게 전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라이벌 관계가 더 건강하지 않나..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만.
그렇다고 지난 2년 간의 공저작업이 아내가 보기에 매번 예쁘게 보였던 건 아니었을 거예요. 집에서 맨날 TV나 만화만 보지 않으면 게임만 하던 인간이, 언젠가부터 스마트폰만 붙들고 헤실헤실거리면서 채팅을 해댔으니까 말이에요. 게다가 상대는 동년배 여성. 그것도 자칭 사랑교 교주에, 댓글에도 애정이 뚝뚝 떨어지고, "결혼한 남녀는 친구도 사귀면 안 되나요?"라고 따지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인생후르츠>,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와 같은 영화를 보고 쓴 글을 나누다가 보니까 자연스럽게 본인 결혼 생활에 대해서도 털어놓게 되니 결코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었을 겁니다. 뭐, 딱히 별 말 안 들어서 아내의 솔직한 심정은 잘 모르겠지만, 저 같으면 그리 기분 좋을 것 같지는 않다는 거죠. 그래도 들이받지 않고 (몇 번 받긴 했나?) 그냥 무덤덤히 '니가 재밌다니 됐다' 자세로 봐줘서 결국 책이 한 권 나왔으니 고맙다는 인사를 이 자리에서 하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언젠가 브런치 작가 'B급 할미' 님 글에 달린 남편분 댓글처럼요.
그리고 이제 거의 사반세기를 같이 살았는데요. 사실 아내도 알았을 겁니다. 남편이라는 사람이 '인간관계'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는 걸. 맞아요. 아직도 여전히 타인에게 관심을 갖는 게 어려워요. 그냥, 그런 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아니 이 나이가 되도록, 타인에게 관심이 있다는 감정이 어떤 건지 잘 모르겠어요. 공감 능력이나 연대의식과는 별도로 말이에요. 젊은 사람들로부터 종종 나이에 비해 꼰대질을 전혀 안 한다는 칭찬을 듣고는 하는데, 전 그냥 내 앞가림하기 바쁘기만 하고 남들한테는 관심이 없는 거예요. 사람들과 대화할 때는 재미있어요. 이연 작가님과 편지를 나누면서 이연 작가님 생각을 듣는 건 무척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특히 어떤 사안에 대해 나와 다른 생각을 듣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관찰력과 기억력도 괜찮은 편이라, 상대가 말할 때 찡그리는 눈썹이나 콧잔등 주름, 숨의 간격, 흥분할 때마다 나오는 특유의 톤. 시선의 떨림 같은 걸 잘 기억해요. 애니메이터 시절에는 이런 관찰력이 많이 도움이 되기도 했었죠. 노래방에 가면 모창 가수로 유명했구요. 그 사람이 흘려가며 얘기한 것도 잘 기억해서 그를 위한 선물 고르는 것도 쉽게 하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그걸 가지고 그에 대한 관심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어떤 사건에 대응하는 그의 태도를 몇 가지 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에 대해서는 아마 죽을 때까지 알 수 없고, 함부로 아는 척 - 이해하는 척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허가받지 않은 관심은 폭력이라고 생각하는 편이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이게 타인에 대해 관심이 없는 이유가 될 것 같지는 않아요.
정말이지... 부끄러워서 꺼내놓고 싶지 않았던 이유, 그런데 너무나 정답일 것 같은 이유는, 그냥 전 제 자신한테 관심이 너무 많아서 타인에게 관심을 둘 여력이 없는 것이겠죠. 50이 넘어서도, 점점 더 자신에 대해 알게 되는 부분이 있거든요. 이번에 책을 준비하면서 계속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내가 왜 이러는지 뒤늦게 깨달아서 신이 나기도 하고. 글을 쓰면서, 생각을 좀 더 정리하게 되면서 나에 대해 또 더 알게 되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게 너무 좋았어요. 이연 작가님은 종종, 본인의 건강 사정에도 불구하고, 때문에 중간에 일 진행이 어떻게 될 지 불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꿍꿍이를 선뜻 참여한 것에 대해 고맙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천만에요. 반사, 무지개 반사입니다. 이게 무슨 신해철의 <내 마음 싶은 곳의 너> 같은 말입니까? "너에게에에에~ 내 불안하안 미래르을 함께 하자고 말하긴 미안했기에~에~에"처럼 그걸 왜 본인 혼자 결정하나요? 물론 저 역시 어차피 정상에 오르지 못할 거라면 애초에 처음부터 시작도 하지 말자며 군대 가기 전에 여친과 헤어지기도 했었지만. 이젠 다 알잖아요. 봉우리는 그저 고갯마루일 뿐이라는 걸. 인간관계라는 건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지 내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전 그냥 이렇게 같이 글을 나누는 걸 제 자신이 진심으로 즐긴 것뿐이었어요. 끝나지 않는 여름방학 동안 별밤지기에게 보냈던 팬레터처럼.
그래서, 이제와 솔직히 말하자면, 영화 <바그다드 카페>를 보고 이연 작가님이 선희 언니와의 우정에 대해 절절한 감정을 담아 썼을 때는 적잖이 당황했었습니다. 여기에 어떻게 답글을 다나, 어떻게 써야 그나마 좀 덜 소시오패스처럼 보일라나... 하고 말이죠.
예전에 영화사에서 같이 일했던 한 선배는 제가 어떤 영화감독의 필모그래피에 대해 줄줄 꿰고 있는 걸 신기해한 적이 있었죠. 전, 그게 그냥, 저절로 그렇게 된 거라서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었지만 말이에요. 이걸 타인에 대한 관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를 찾아보고, 좋아하는 작가의 글과 그가 추천하는 영화를 찾아보는 게? 마치 이연 작가님의 글을 보고 반해서, 그 뒤로 이연 작가님이 쓴 글은 댓글까지 죄다 찾아 읽고, 이연 작가님이 본 영화는 따라 보고. 그러다 보니 같이 편지도 나누고, 가족 행사 일정이나 항암치료 스케줄도 알게 되는걸요?
그냥, 우리 '팬심' 정도로 합의할까요?
이 글은 출간준비 과정에서 탈락된 영화 <84번가의 연인>의 <팬레터> 꼭지에서 부분 발췌해서 만들었습니다. 표지 그림은 영화 <500일의 썸머> 포스터로 구상했던 후보 중 하나입니다.
8월 24일 오전 11시 서울 시민청 동그라미 홀에서 조촐한 출간기념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폴폴 작가님 사회로 진행되고, 저는 화상회의로 참가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이연 작가님이 노래를 부르시기로 했습니다. <절룩거리네>랑 <말달리자>를 연습하시는 것 같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