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영화처럼 산다면야> 동상이몽 제작일지 #11
집에서 김장을 할 때면 이모들이 와서 같이 하고는 했습니다. 어머닌 1남 7녀 형제 중 맏딸이었거든요. 뭐 그렇더라도 그 정도로 형제가 많다 보면 가깝게 지내는 형제들이 있고 반목하는 형제들도 있었나 봐요. 김장날 와서 같이 일을 하는 이모들은 항상 정해져 있었죠. 그리고 또, 그날 온다고 해서 다 같이 동일한 양의 노동을 하는 것도 아니구요. 전날 배추를 씻고 소금 절이고, 다음날 무채에 고춧가루 묻히고 하는 건 제가 많이 도왔고, 이모들은 주로 와서 배추 속을 채우고, 돼지고기를 삶고 그런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 한 이모는 와서 절대 손에 물방울 하나 안 묻혀요. 그냥 수다에 수다에 지칠 줄 모르는 수다만 떨고 동일한 양의 김치를 얻어갔었죠. 어머닌 우리 가족이나 다른 이모들 앞에서는 그 이모가 얌체라고 흉을 보셨던 것도 같은데 매 김장날이 되면 항상 그 이모를 초청하고는 하셨어요. 아버지가 "이 좁은 집에 일에 하나도 도움 안 되는 애를 왜 불러?"라고 투덜대더라도, 어머닌 "에이, 참, 쯧.." 한 마디 하시고 그 이모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 이모의 수다 덕분에 다른 사람들이 무척 많이 웃었던 것 같아요. 어쩌면, 그런 엔터테인먼트가 노동의 피로를 이겨내는데 무척 큰 도움을 주었다는 걸 어머닌 무의식적으로 알고 계셨던 걸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지식인들과 대중문화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육체노동을 면제받는 이유도 거기에 있겠죠. 노동자들에게 웃음과 위로, 그리고 세계가 흘러가야 하는 방향을 제시해 주는 일. 저 역시 어릴 적부터 딴따라가 되고 싶었던 건 그런 이유일지도 모르고 말이죠.
그렇다고 책을 내게 될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 시나리오를 쓰고 기획서를 쓰던 시절에도 제가 출판사에 제 원고를 팔 수 있게 될 거라고는 정말이지 단 한 번도. 그렇다고 책을 싫어했던 건 아니에요. 누나 책상에 있었던 100권짜리 딱따구리 그레이트 북스를 도무지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때에도 소년중앙과 보물섬은 애독했었죠. 순수하게 글자로만 이루어진 책을 처음 읽은 기억은 소년중앙에 연재했었던 <쿠오레 (사랑의 학교)>, 그리고 아마 조흔파의 <얄개전>, 빅토리아 빅터의 <악동일기>, 김홍신의 <인간시장>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책과 친해지고 나서는 또래 친구들과 같이 이문열과 복거일, 헤르만 헤세를 읽게 되었고 말이죠. 그러면서 일기도 쓰고, 독후감도 쓰고, 연애편지도 쓰고 살았건만, 내 글이 출판사에서 책으로 엮어져 시장에 나올 거라는 건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에요.
아무래도 출판도서라는 매체의 특성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일 거예요. 종이와 인쇄잉크로 찍어낸 활자의 단순한 구성이 주는 무게감. 그 어떤 장식거리를 달더라도 속이 훤하게 다 보이는 투명함. 그야말로 잔기술 없이 계급장 떼고 맞다이로 붙어야 하는 치열함. 그런 걸 제가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이었던 것이겠죠. 현대미술도 그렇고, 공연예술도 그렇고, 영화라는 매체는 뭐 두말할 것도 없이 세월에 거쳐서 그 형태를 바꾸며 진화해 왔지만, 출판도서는 그냥 그대로, 그 모습 그대로 존재해 왔습니다. 때문에 고전 명작 도서의 울림은 그 어떤 다른 매체의 명작들보다 유통기한보다 훨씬 길기도 하죠. 당대에 기발한 독창성으로 인정을 받았던 고전영화들이 이제 와서 시장 흥행을 기대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새로 시장에 나오는 농구만화는 여전히 <슬램덩크>와 경쟁해야 하니까요. 원고지와 연필만 있으면, 혹은 컴퓨터와 문서편집 프로그램만 있으면 만들 수 있다는 접근성은 누구든지 쉽게 창작자가 될 수 있게 하지만, 이는 곧 기존의 틀을 깨는 천재적인 작품을 만날 가능성도, 반대로 무척 따분하고 완성도 낮은 작품을 만날 가능성도 동시에 높여주기도 합니다. 장식거리를 넣기 힘드니까 그게 또 노골적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말이죠. 무서웠어요. 책을 써서 시장에 발표한다는 사실이. 2022년에 이민 20주년을 기념하면서 POD로 찍어낸 책들은 그동안 도와주신 은인들에게 드리는 선물과 같은 거였거든요. 마치 영화학교 졸업작품 단편영화처럼요. 그리고 졸업작품 독립영화가 충무로나 할리우드 제작자로 이어지듯이, 그 글들 때문에 친애하는 공저자와 인연이 닿게 되었지만요.
원래 총 48 꼭지로 예상했던 전체 분량 중 24 꼭지가 정리되면서 1 막을 내린다고 생각하고 중간점검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습니다.
저렇게 장문의 편지를 받았음에도, 중간지점을 통과하면서 계속 이런 종류의 고민들에 사로잡혔던 것 같습니다. 이제라도 출판 계획은 접어야 하는 게 아닌지. 그래서 출판사들에 투고를 하기 전에 먼저 상업성을 평가받고 싶었죠. 혹시 아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난 22년 가을에 책에 실린 글들 중 10 꼭지 정도 모아서 브런치북을 만든 적이 있습니다. 공모전에 응모해서 평가를 받고 싶다는 단순히 실리적인 이유로. 제 생각엔 브런치북 응모가 최소한의 노력을 들여서 짧은 시간 안에 많은 현직 출판업 종사자들에게 상업성을 평가받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리고 브런치북을 발행하면 인사이트 리포트라는 게 있어서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의 각종 통계를 볼 수 있잖아요. 떨어진다고 뭐 개망신이다, 그런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3~4집 음반을 낸 기성 가수들도 오디션 프로 나와서 초반에 탈락하니까요. 그들의 가창력이 미달된 것이 아니라, 요즘 트렌드나 오디션 취지에 안 맞아서 그런 일이 많죠. 수상보다는 제삼자의 피드백이 저에게 더 중요한 거였어요. 창작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감하시잖아요. '성의 있는, 진실한 평가'를 받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게 호평이든 혹평이든 간에 말이죠. 무엇보다, 집필만큼, 아니 어쩌면 집필보다 훨씬 어려울지도 모르는 마케팅 과정에 있어서, 브런치북의 인사이트 리포트나 독자들의 피드백을 받는 건 무척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그래도 마케팅에 대한 부담감이 출간 계획을 세웠을 때부터 묵지륵하게 얹혀있었거든요.
덧, 표지 그림은 영화 <정복자 펠레> 꼭지의 초기 포스터 디자인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