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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선 Sep 02. 2024

다시 꿈을 꾸기 시작하란 의미일까

책 <영화처럼 산다면야> 동상이몽 제작일지  #21

로브 라이너 감독의 영화 <스탠바이미 Stand By Me(1986)>에는 친구들끼리 숲에서 야영을 하는 도중 모닥불을 앞에 두고 한 아이가 자신이 만든 얘기를 친구들에게 들려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내용은 별거 없어요. 그냥 자신을 업신여긴 마을 사람들에게 축제에서 토하는 걸로 복수하는 청년의 이야기예요. 그런데 그걸 보고 있자니, 과연 어릴 적에 나만의 오리지널 이야기를 만든 적이 있던가, 하는 궁금증이 생기더군요. 책 속 <밤과낮 - 개 같아져요> 꼭지에는 이연 작가님이 어린 시절 언니에게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줬던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전, 도무지 그런 창작능력을 인정받거나 뽐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단 말이죠. 기억이 닿는 가장 오래된 과거에서 처음 그린 만화는 '손오공'을 각색한 거였어요. 고등학교 수학여행 장기자랑 연출 때에도 <전국 노래자랑>과 <퀴즈 아카데미>를 패러디했었고요. 대학 때 쓴 첫 장편 시나리오는 '이현세' 만화 같다는 얘길 들었고, 이후에 쓴 다른 장편은 <마스터 키튼>이 너무 연상된다는 얘기마저 들었으니, 비록 이번에 상업용 책을 출간하게 되긴 했지만 제 스스로도 독창성에 대해서는 좀 자신이 없달까? 그런 게 있습니다.


그런 걸 보면, 전 창작일로 밥벌이를 했을 적에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안정적인 제작비 환수에 대해 더 관심이 많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애니메이션을 할 때에도 연구주제는 극장수입이나 방영권 판매만으로 제작비를 충당할 수 있는 저예산 작품 제작 시스템에 관한 것이었고, 헐리우드 영화인 중에서 가장 좋아했던 사람 역시 '로저 코먼'이었으니까요. 2차 창작을 더 재미있어했던 것도 그런 이유일 거예요. <터미네이터> 2편이나 <인디아나 존스> 4편 시나리오를 친구들과 경쟁적으로 써보기도 하고, 이후에 천성일 감독의 <7급 공무원>를 보고 나서는 <돌아이> 시리즈를 잇는 한국 영화 최고의 프랜차이즈 물이 나왔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2편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어요. 물론 실현되진 않았고, 이후에 <범죄도시> 시리즈가 나와서 그런 바람을 달래주기도 했지만요.


창작물을 시장에 팔아서 먹고사는 모든 사람들이 아는 원칙은 하나입니다.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자신만의 번뜩이는 무언가'가 있어야 흥행에 성공하고, 생계가 유지되며, 다음 작품을 또 만들 수 있다는 것. 아예 난생처음 보는 형식이나 내용은 아무래도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겠죠.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 모두 '난해하다'. '사변적이다'. '자의식의 남발이다'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익숙해도 문제일 거예요. '지루하다', "뻔하다', '클리셰 투성이다'라는 얘길 듣게 됩니다. 결국 적절한 밸런스를 찾아야 하는데 그게 쉽다면 모두가 대박 작가가 될 수 있겠죠. 그게 어려우니까 예술/창작인들의 일반적인 수입이 연봉 2백만 원인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인지 익숙한 설정 속에서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녹이거나, 아니면 <슈렉>처럼 익숙한 설정으로 들어가는 척하다가 완전히 전복하는 방법을 쓰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저희 원고를 보고 출판업계 사람들이나 지인들이 보내 준 피드백 중에 공통적인 건 이거였습니다. '기획의도는 좋았지만 작은 출판사에서 내기에는 부담이 있다', '영화 전문 출판사를 통해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더 좋겠다'. 아주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죠. 일단 낯선 부분이 많았으니까요. 영화책이라면서 영화내용에 대한 얘기는 거의 없고, 두 작가가 나눠 쓰는 서간체 형식 같지만 또 영화 속에서 건져낸 달랑 한 올의 실타래에서 각자 자기 개인적인 이야기에 지적질만 늘어놓았을 뿐이니까요. 그것도 암투병과 이민생활이라는 무척이나 독특한 배경을 가지고 말이죠. 게다가 초기 기획에서는 책 속에 수록영화에 대한 소개마저 없애자는 의견까지 있었으니 얼마나 불친절한 책이 될 뻔했습니까. 이렇게까지 새로운 방식으로 책을 꾸민 건, 지난 글에도 말했던 것처럼, 기존 방식을 답습한 글을 가지고 굳이 종이를 낭비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지극히 단순한 의도였지만, 그래도 얼마나 많은 출판사들이 과연 관심을 가져줄까, 하는 의문은 있었던 거죠. 뭐, 안되면 우리끼리, 기념으로 POD를 내고 말지, 하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연초에 잠시 글에서 손을 놓았던 시간이 있었는데, 그 사이에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더군요.


세상에 이런 책 한 권쯤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ㅠㅠ



그래도 선주문을 받던 어느 날은 <선재 업고 튀어>를 누르고 실시간 1위를 하기도. 한두 푼씩 도와주신 지인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를




고맙게도 이렇게까지 생각해 주는 출판사를 만나게 되어 다시금 박차를 낼 수 있었습니다. 봉준호 감독이 시상식에서 언급했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독창적인 것"이라는 말을 상기하면서 말이죠.








요즘 어딜 가도 Ai니 4차 산업혁명이니 말들이 많습니다. 물론 실생활에서 그 단어들은 대개 장식용으로 쓰일 뿐이지만요. 신상품이 되었든 대통령 담화가 되었든 말이죠. 이렇게 어떤 산업 주류가 바뀔 때마다 도그마를 나타내는 단어가 홍보 키워드로 사용되는 건, 뭐 당연히, 하루 이틀 일은 아닙니다. 조만간 Ai 붕어빵이 나올지도 모르는 세상이지만, 한 때는 모든 제품이나 회사명에 '디지털'이, 한 때는 '닷컴'이 붙었던 적도 있었죠. 인터넷이 대중적으로 활용되기 전 어느 시절에는 '뉴미디어', '멀티미디어'라는 단어들을 곳곳에 갖다 붙이기도 했어요. 또 그전에는 '콤퓨-타'라는 단어가, 그리고 아득하게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한때 소상공인들에게 유행했던 단어는 '근대화', 혹은 '새마을'도 있었으니까요. 예전 저희 집 앞 구멍가게의 이름은 '근대화 연쇄점'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기간 동안 '책'은 여전히 '책'이었잖아요. 글자가 적힌 네모난 종이 다발을 옆으로 묶어 놓은 걸 몇백 년 동안 책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면 '책'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요? 일단 저자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정보, 저자의 경험, 상상, 생각 등이 담겨 있어야 하겠고, 그게 문자, 점자, 그림 등 독자가 해석할 수 있는 소통수단으로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종이나 웹사이트, SNS 등 매체를 통해 배포가 되어야 책이라고 할 수 있겠죠. 다시 말하자면 기원전 5,000 경에 작성된 걸로 추정되는 동굴 벽화나 낙서의 경우 배포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책의 기원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사람들은 책의 기원을 기원전 3,000~2,500년 정도에 만들어졌다는 이집트의 파피루스에서 찾습니다. 이 당시만 해도 두루마리 (스크롤 Scroll, 볼루멘 Volumen) 형태가 주류였다죠. 이집트의 파피루스, 그리스나 로마 시대의 볼루멘 중에는 30미터 길이도 있었다고 해요. 그러고 나서 낱장의 양피지나 파피루스를 여러 개 묶어서 페이지를 넘겨 읽는 방식 (코덱스 Codex)이 4~5세기 유럽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2세기 중국에서 발명된 종이 역시 두루마리로 사용되기도 하고 병풍처럼 접은 후 측면을 묶어서 배포되기 시작하기도 하죠. 그렇다고 해서 5세기에 들어서자마자 요이땅하고 스크롤을 중단하고 코덱스로 넘어간 건 아닐 거예요. 이 두 가지 방식이 적어도 몇 백 년 동안은 공존했을 겁니다. 적어도 금속활자가 발명된 15세기까지는 말이죠. 어찌 되었든 코덱스 방식의 책은 지금 2024년까지도 시장 주류를 차지하고 있으니, 언어와 문자가 존재한 이래 인류 역사상 한 가지 형태로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살아남은 물건은 수레와 책 정도가 아닐까 생각도 됩니다.    


하지만 엄밀하게 따지자면,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책의 형태 (독서의 형태)가 다시 두루마리 형태로 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단지 죽간이나 파피루스, 양피지가 아니라 컴퓨터나 스마트 폰 화면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겠지만요. 노년층들이 컴퓨터를 처음 배울 때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바로 마우스 스크롤이거든요 (제 아버지는 '에레베따'라고 해야 알아들으셨습니다). 20세기에 태어난 이들에게 문서를 보는 방식은 평생 동안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는 일이었으니까요. 어떤 문서를 볼 때 (단어 자체에 '두루마리'라는 의미가 있는) 스크롤 업이나 다운을 해서 본다는 걸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세대들이었던 거죠. 16절지 안에서 세상을 상상하던 이들에게 스크롤이 제공하는 무한 공간을 처음 접했을 때의 당혹감은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1995년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 95에서 GUI (그래픽 기반 사용환경)를 대중화한 이래,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를 통한 문서를 읽을 때 스크롤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모자이크나 넷스케이프를 통해 인터넷 접속의 대중화도 열렸는데, 뉴스와 포르노가 중심이었던 초기 인터넷은 스크롤을 통해 정보가 끊임없이 제공될 수 있다는 문화적 충격을 전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더 이상 코덱스에서처럼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한 호흡 쉬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던 거죠.


스크롤을 내려가며 읽는 독서법과 페이지를 넘기며 읽는 독서법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밝혀낸 매체는 다름 아닌 만화였죠. 영화만 쫓아다니면서 보던 제게, 칸과 컷, 페이지 분할의 연출이 주는 심리적 충격을 가장 극적으로 전달했던 건 <슬램덩크>였습니다. 긴장감이 넘치는 연출을 할 때는 칸을 잘게 쪼개고 그 안에 인물들의 클로즈업을 병렬적으로 배치하기도 한 후, 바로 다음에 두 페이지를 가득 채운 그림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들기도 했어요. 마치 영화 속 컷 편집처럼 말이죠. 그리고 스크롤 방식의 독서법 역시 웹툰을 통해 가장 먼저 그 진가가 발견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특히 '강풀'의 작품들에서는 마치 당대의 일반적인 컴퓨터 모니터 수평 해상도를 고려라도 한 것처럼, 한 컷의 장면이라 할지라도 스크롤을 내려가면서 점점 변화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었죠. 영화 속에서 롱테이크나 타임랩스를 보는 것처럼요. 그리고 이후 <옥수역 귀신>에서처럼 멀티미디어와 결합된 방식의 만화가 나오면서 출판 만화와는 질적인 변화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지금으로선 페이지 형태의 만화책과 스크롤 형태의 만화 중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 단지 아직은 페이지 형태의 코덱스 책이 더 주류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니 수많은 웹툰들이 종이책으로 출간하기 위해 페이지 형태를 위한 컷분할을 웹상에서 연출하기도 하겠죠.


글로만 구성되어 있는 일반 책은 어떨까요? 저는 여전히 스크롤 방식과 코덱스 방식에 있어서 연출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영어권 사회에서는 몰입감이 쩌는 장르문학책에 Page Turner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하는데, 다음 페이지를 넘기는 걸 참을 수 없게끔 만들기 때문에 그렇겠죠. 또한 페이지 간 여백이나 간지를 넣어서 독자의 호흡조절을 유도하기도 합니다. 대신 스크롤 방식의 문서의 경우에는 줄 간격으로 호흡 조절하는 경우가 많겠죠. 저처럼 온라인으로 글쓰기를 시작한 많은 사람들의 글을 종이책으로 옮길 때 가장 힘든 부분이 바로 줄 간격일 거예요. 종이의 경우 한 장 한 장이 다 비용이니까. 디지털 글쓰기처럼 줄간격을 무한정 늘리기는 어렵겠죠. 그런데 이번에 책을 만들면서 보니까, 그게 바로 재미있는 부분이더라구요. 온라인, 디지털 글이 가지고 있던 매력을 종이책에 그대로 살리는 방법을 연구하는 일이.  








<업 - 삶은 모험> 꼭지에서 썼던 대로, 전 어릴 적 꿈을 그대로 간직하는 것에 대해서 무척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때 당시의 꿈에는 어떤 구체적인 형상을 가지는 게 힘들기 때문에 더 그럴 수 있겠죠. 과학자, 대통령, 영화감독, 유튜버가 되고 싶다고 한다 하더라도, 그걸로 끝이 아니잖아요. 어떤 과학자가 될 것인지, 무엇을 연구하고 무엇을 발명할 것인지가 더 중요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저 역시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꿈도, 영화를 하고 싶다는 꿈도 있었지만, 그리고 그 꿈대로 살기도 했었지만, 생각해 보면 그 꿈은 그냥 내가 가진 재주로 창작일에 종사하면서 그걸로 밥벌이를 하고, 또 사는 재미와 보람도 느끼고 싶다는 거였어요. 그게 영화처럼 사는 거라고 생각했고요. 이후에는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 툭하고 떨어져 맨땅에 헤딩을 하며 살다가 자리를 잡아가는 삶이 더 영화처럼 사는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지만요.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면서는, 제 인간적 품위의 하한선을 지킬 수 있을 정도는 밥벌이가 되면서도 딴짓을 할 수 있는 시간적 / 정신적 여유가 있는 직업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돌아 돌아 다시 제 이야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추천사를 써주신 김진해 교수님은 최근 칼럼에서 "읽기의 목적은 즐거움이고, 쓰기의 목적은 간절함입니다"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 말 그대로 내가 생각하는 것을 들어달라는 간절함 때문에 다시 창작을 하게 된 것이겠죠. 쓰는 내내 무척 즐겁고 재미있었지만, 동시에 제 자신의 능력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기도 했었어요. 따지고 보면 어릴 적부터 정말 창의성은 눈곱만큼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는데, 사는 내내 오리지널 스토리보다 2차 창작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것보다 그걸 어떤 틀에 담아낼 것인가를 엔지니어적 시각으로 고민하는 걸 더 잘했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이렇게 3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쓰고 있자니, 고백하자면, 아, 이거  좀 아니지 않나...라는 불안감이 계속 등골을 조이고 있었습니다. 책이 시장에 깔린 이후에도 아쉬웠던 건 마찬가지예요. 주변에서 좋다는 얘길 듣더라도, 제 입장에서는 뭔가 부족한 면이 계속 보이고, 부끄럽고 그런 것이 있죠.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와중에도 스크롤 형식으로 쓰인 글을 코덱스 형식으로 변경하면서 그 맛을 지켜내는 고민이 무척 즐거웠었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출간기념회 때 폴폴 작가님이 물어본 질문. 요즘 자기 자신에게서 새롭게 발견한 점이 있냐는. 급작스러운 질문에 그때는 적잖이 당황했는데 지금은 제대로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인쇄물 편집 디자인을 공부하고 싶어 졌어요. 언젠가 코덱스가 사라지고 종이책이 사라질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책이라는 매체의 진화를 목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건 또 그만큼의 행운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셀 애니메이션에서 디지털 애니메이션으로 변화하는 시기에 애니메이션 업계에 있었다는 귀중한 경험을 했었던 것처럼, 이 전환기의 징검다리를 연결하는 일에 당분간 몰두해보고 싶습니다. 다시 이렇게, 꿈을 꾸면서 살아도 되는 걸진 잘 모르겠지만요. 뭐 사실, 좀 무리한 바람일 수도 있잖아요. 사실 이제 활자가 눈에 금방금방 안 들어오기도 하고, 근력과 유연성이 떨어져 오랫동안 책상에 앉아 있는 게 어렵기도 합니다. 그래도 뭐, 노년에 이걸로 한몫 잡아 일확천금을 얻겠다는 욕망만 없다면, 그냥 코덱스 방식의 인쇄물이 멸종할지도 모르는 순간에서 그 마지막 숨결을 지키는 일에 재미를 느끼며 산다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도 같아요.






지금까지 책 <영화처럼 산다면야> 제작일지 매거진을 읽어주신 모든 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영화 DVD에 들어있는 영화 메이킹 영상 같은 목적도 있었고, 책 판매의 홍보의 목적도 있었지만, 책 한 권  출간을 완료하고 나서의 시원섭섭함을 달래려는 의미가 컸던 것 같아요. 또, 만일 저희처럼 브런치나 다른 글쓰기 플랫폼에서 사람을 만나 같이 종이책 출간을 계획하는 작가분들이 계시다면 간단한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꿈을 이루는 것에 가장 도움이 안 되는 마음가짐 중 하나는 조급함이었던 것 같아요. 언제까지 뭔가를 이루어야 하고, 몇 살이 되면 이 정도는 가져야 한다는 조급함. 결국 이건 어떤 결실을 맺기 위해 현재의 삶은 그저 투자용으로만 쓰이는 걸 당연하게 만들잖아요. 자신의 꿈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결과물이 어떻게 나오든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인생 후르츠>에서 반복적으로 나왔던 화두 “차근차근 천천히”처럼 말이죠. 그리고 야구처럼, 삶이란, 그리고 꿈을 꾸는 일이란, 9회 말 쓰리아웃을 잡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잖아요.



Mitsuru Adachi, H2, 1999, Shogakukan










이 매거진의 연재는 오는 목요일 이연 작가님의 22회로 이만 막을 내립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후 이연 작가님, 폴폴 작가님과 함께 하는 팟캐스트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덧, 표지 사진은 지난 8월 24일 출간기념회 포스터 전시입니다. 다시 한번 출간기념회를 준비해 주신 전미경 편집장님, 이연 작가님, 폴폴 작가님, 그리고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제 얼굴이 스크린에 그렇게 크게 나올 줄은 몰랐어요. 그 정도면 별풍선 받았어야 했는데.











이제 꿈 따윈 꾸지 않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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