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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Sep 05. 2024

한여름 밤의 꿈 -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책 <영화처럼 산다면야> 동상이몽 제작일지 #22

2년 전 여름, 동선 작가님의 한 문장으로 시작한 꿍꿍이.


'차라리 글쓰기가 방학 숙제 같은 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동선, '방학 숙제' 첫 문장)


열린 결말을 좋아하고 해시시, 잘 웃어요. 살짝 헤퍼 보이는 그 웃음은 낯가림 무마용이에요. 멋쩍음을 흐리려는. 부러 그러는 건 아닌데 여간해선 곁을 주지 않아요. 그래서인지 한 번 마음 빗장 안에 들이면 사람이 됐건 사물이 됐건 풍경이나 소리, 냄새가 됐건 어지간하면 내놓지 않아요. 시들고 부서지고 녹슬고 흘러내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행여 그리 될까, 애지중지. 볼썽사납고 흉하다고요? 글쎄요.


난 어둠 속에 있다는 생각도 안 들고

이 숲 속에 세상 만물 없지도 않아요

내 보기엔 당신이 온 세상이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나 혼자라 할 수 있죠.

온 세상이 여기서 나를 보고 있는데*  


니가 난지, 내가 넌지 모르고 한 몸인 양 뛰놀며 뒹굴어서 그런가. 온 세상이 나였다, 나를 뺀 나머지가 온 세상이었다… 하는 통에 내가 아닌 걸 골라내는 게 쉽지 않을뿐더러 굳이. 이런 게 집착이고 미련이라고요? 내가 날 어루만지고 포기하지 않는 게? 내가 날 버리지 않고 떼어내지 않는 게? 저는 잘 모르겠어요. 전에도 말한 것 같은데, 끝과 시작은 한 덩이고 한 통속이라고. 날 때부터 낯가림이 심한 데다 겁쟁이라 트머리에서 시작하는 고약한 버릇이 있어요. 공부도, 인생도, 사랑도, 꿈도. 모든 게 끝장난 뒤에야 부스스, 일어나 달겨드는 늦된 마음. 애정하는 박구용 철학자가 한 말. 돌아선 줄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마음. 그게 진짜 사랑이에요. 다른 델 보고 있는 걸 알면서도 거둬들이지 않는 그때 그 마음이.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한여름 밤의 꿈> 속 헬레나와 드미트리우스처럼. 하루에 골백 번도 더 천당과 지옥 문턱 밟느라 피멍 든 발바닥. 새벽녘이면 불에 데인 듯 화끈대는 발바닥 움켜쥔, 그 푸르른… 알까요.


짓다.

웃음을, 눈물을, 밥을, 집을, 편지를, 옷을, 농사를, 이야기를, 인연을, 삶을, 그리고… 매듭을. 지금껏 지은 사이, 사이들. 햇살처럼 바람처럼 닫힌 적 없는 창문으로 들락거리는 숨과 웃음과 눈물과… 짓고 짓고 또 지은 모든 사이 이야기. 단 하나의 매듭도 짓지 못하고바람등에 올라타고 시리고 푸른 어둠 향해 날아가는 검은 새 한 마리.


전에는 한 번도

내가 내 목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내 것이 아닌 언어로 이렇게 울부짖는 목소리

세계가 잘못되었다고

밤이 먼저 왔고 그다음에는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고

새들은 날아가서 그저 죽을 뿐이라고

얼음이 변화의 의미라고

나는 한 번도 아이인 적 없었다고   

(필립 러빈, <전에는 한번도>)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에서 리베카 솔닛이 필립 러빈의 시(詩)를 인용하면서 한 말. 나는 여러 가지가 섞여도 된다는 것, 사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이 번갈아 나와도 된다는 것, 서사가 간접적일 수 있다는 것, 산문도 시처럼 주제에서 주제로 건너뛰거나 날아오를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장르란 선택일 뿐이라는 것도 배웠다. 나는 긴급한 것, 강렬한 것, 과잉되고 극단적인 것, 구속을 깨뜨리고 터져 나오는 문장과 서사를 원했다. 반대로 안도감을 구할 때도 있었다. 책에는 둘 다 있었다. 그녀가 한 또 다른 말. 글에는 하지만 체온이 없었다. 글에는 내 몸을 만져줄 몸이 없었다. 황정은 소설가가 <일기>에 쓴 말. 까치는 난간을 떠날 때 아래쪽을 향해 곧장 몸을 던진다. 가붓하게 휙. 미련도 두려움도 없어 보인다고 나는 매번 멋대로 생각한다. 사람은 그렇게 될 수 없어. 날개가 없어서, 라기보다는 그 몸이 맥락으로 다른 몸과 연결되어 있으니까.


사랑은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는 거야.* 여지껏 사랑은 마음인 줄 알았어요. 눈에 보이진 않아도 쉽사리 끊어낼 수 없는, 몸처럼 썩지도 잘리지도 도려낼 수도 없는 끈끈하고도 질긴, 어떤. 마음은 썩어 문드러지는 몸처럼 쉬이 바스라지고 망가지지 않아. 그런 일은 일어날 리 없어. 절대, 절대루. 희망인지 부정인지 모를 어깃장. 요즘 들어 부쩍 빛처럼 꺾이고 휘지 않는 게 마음이기도 하지만 몸보다 쉬이 상하고 단칼에 베어지는 것 또한 마음은 아닐까, 의심의 눈초리가. 사랑에서 마음만큼, 아니, 어쩌면 마음보다 더 큰 몫을 차지하는 게 몸은 아닐까. 황정은 소설가 말마따나 우린 몸과 몸으로, 맥락으로 연결됐을지도 모르겠어요. 더운 피가 끓고 살이 타는 몸과 몸의 맞닿음.


온라인에 쓰긴 해도 아무하고도 소통하지 않고 골방에 틀어박혀 썼어요. 쓰기만. 그러다 글쓰기 플랫폼에 올린 글. 그랬더니 '좋아요'랑 '댓글'이. 전원이 꺼지면 신기루처럼 사라질… 어딘가엔 분명 살과 피, 뼈와 근육으로 있을 존재. 기뻤어요. 읽고 쓰는 두근거림을, 그 전율을 말할 수 있어서. 세상 무용한 짓에 몰두하는 우리를 웃을 수 있어서. 울 수 있어서. (이연, <영화처럼 산다면야> 중에서)


전원이 꺼지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게 아니라 어딘가엔 살과 피로, 뼈와 근육으로 있고, 있을 존재. 함께 수다 떨고 웃음을 짓고 눈물을 짓고 글을 짓고 꿈을 짓고 함께 지은 이야기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존재. 그 시공간 안에서. 그 세계, 그 우주에서.


쓰고 싶은 걸 쓰세요.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질 않아 깜깜해도 이 계절이 끝나갈 즈음엔 분명 남은 게 있을 거예요. 우릴 성장시킬 무언가가. 이 여름 끝자락엔.' (이연, <영화처럼 산다면야> 중에서)


천둥벌거숭이로 허허벌판에서 만난 츤데레 탐험가와 금사빠 관찰자가 함께 짓고 엮은 영화책 <영화처럼 산다면야>. 거센 비바람에도 끄떡없게, 세상 그 어떤 빛보다 부시게. 들이파고 들이파다 고고학자가 되어 마침내 캐낸 보물… 다시, 꾸는 꿈.


내게 있던 걸 말해 주려 한다면 말이야. 내 꿈이 뭐였는지는 인간의 눈으로 듣지도, 인간의 귀로 보지도, 인간의 손으로 맛볼 수도, 혀로 이해할 수도, 마음으로 말할 수도 없어.*


(이어서)

가려면야 하루에 몇 번이라도 갈 수 있는 거리에 살면서 이상하게 내키지 않았다. 그쪽으로 갈 일이 있어도 일부러 먼 길로 돌아가고 그럴만한 일도 만들지 않았다. 뭔진 몰라도 겁이 났달까. 찰랑대는 뭔가가 둑처럼 무너질까. 간신히 부여잡은 균형감각 잃을까. (…) 영혼 저 깊숙이 미라처럼 방부처리해 놓은 그 시절이 똑 떨어진 피 한 방울에 부활해서 거짓으로 쌓아 올린 이 세계를 툭 치기만 하면 금세 쩍쩍, 금이 가 와르르 주저앉을까…… 무섭고 무섭고 또 무서웠다. 탕, 하고 내가 튕겨나갈까, 미쳐 날뛸까. 그러면 날 놓아주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내 손에 든 패가 딸랑, 그거라.


(…) 그러다, 암이라서, 얼마 못 살 줄 알고 갔다. 더 미룰 수 없어서, 그러면 안 되겠기에. 막상 가보니… 없었다. 아무것도. 거기에 발 묶여 한 발자국도 못 떠난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도 않았다. 난 거기 있으면서, 없었다. 여전히 거기 있기도 했지만 멀리 와 있기도 했달까. 쫄랑쫄랑 자주 갔다. 마음 놓고. 첨엔 노오란 햇살 아래 앉아 찔찔 짰지만, 점점 마알간 낯빛으로. 오랜 세월이 흐르고 흘러 또 다른 문 앞에 선 늙고 병든 내가 거기 앉아 어린 내 흔적을 더듬고 있을 거라곤 짐작도 못했겠지… 노천에 앉아 쌩, 바람 일으키며 내달리는 어린 내 뒤를 쫓으며 상념에 젖기도 하면서. 그러다 알았다. 여태 그리워한 건 스무 살 어린 내가 아니라 그 시절 날 움직이게 한 바람이란 걸. 그 힘이란 걸. 쉼 없이 불어와 내 등을 밀어준.


어떤 시절도 하나의 감정으로 통과하진 않는다. 여러 감정이 어지럽게 뒤엉켜 빠르게, 혹은 더디게 흐른다. 그때도, 그 시절을 못내 그리워하며 버린 지난날도. 그리고 오늘도 내일도 폭죽 터지듯 동시다발적으로 들이닥칠고통이 잉태한 안도, 한 발짝 다가온 죽음에 선명해질 삶의 기꺼움, 돌아갈 곳을 향한 태생적 그리움.  


어디선가

바람이 인다.

이 여름,

(2022년 여름 끝자락)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죽은 사람이다. 마치 내 안에서 울리던 소리 같던 사노 요코 말에 돋던 소름. 그런데 이제 고만두려고요. 부랑자처럼 죽음 언저리 배회하면서 다 식어빠진 사랑부스러기 주워 먹는, 썩은 내 진동하는 사랑덩이 뒤적이는, 죽은 가지 살려보겠다고 청승 떠는 그 짓거리. 온기 없는 몸뚱어리 내 부둥켜안고 있었더니 펄떡임이 땡겨요. 더운 숨이 고파요. 혼자 사랑하고 혼자 웃고 혼자 울고 혼자 삐치고 혼자 달아나고 혼자 꿈꾸는 거, 지긋지긋해요. 진력났어요. 언젠가 서무아 작가님이 답글에 써준 말. 만질 수 없다는 것, 가장 큰 슬픔이지요… 작가님, 많이 사랑하세요. 만나고 이야기하고 손 꼭 잡고…. 그 말에 얼마나 오래, 자주 울었나 몰라요. 이제 고만 뚝, 할래요. 애저녁에 말라비틀어진 죽은 가지 죄 솎아내구 지지고 볶다 끝장나더라두 따끈따끈 숨 몰아쉬고 보들보들 말캉말캉 그럴래요. 까짓 죽기밖에 더 할라구요. 썩어 문드러지면 그만인 몸뚱아리 아껴 뭐 할라구 여태 이러구 살았나 몰라요. 고삐 틀어쥐고 평생 저 단도리한 울 엄마가 팔순 훌쩍 넘긴 요즘에야 하는 말. 지금도 안 늦었어. 한 살이라두 젊을 때 내빼.


(이어서)

"너 왜 이렇게 우울하니?"


몸에 밴 우울에 진저리 치는… 마음귀 밝은 드문 이 몇.

나머지는? 떨어진 반짝임만 주워갔다.

달랑달랑, 그 화창함만.


고약한 병이 잉태한 글, 쓰기. 그 화안한 키움.

흉터 위로 돋은 새살 인연, 인연들.

어둔 영혼에 든 설레고 두려운 한 줌 볕.

겁 없이 달려 나간 불나방 욕망.

나는야 막가파.


'하염없이 걷다가 아, 이대로 이 금빛 들판, 떠나도, 괜찮겠다 했다 어디 다시 도착해도 좋겠다 했다 천지간, 그 사이에서 실종되어도 그만 그러려니 했다 그래서 내 여름의 신발은 닳았다'

(허수경, <운수 좋은 여름>)


기고 걷고 뛰고 날아댕기고

맨바닥에 문대고 쓸리고 깎이고

피투성이, 살갗 없는 영혼


승질 드러운 변덕쟁이에 말귀는 또 을매나 어둔지. 눈치코치 없는 것도 모자라 시쭉빼뚝 삐치기 선수에 뒤끝 작렬 인간. 지워지고 잊히고 버려진대도 하나 이상할 것 없는 존재. 지당한 처분. 두 손 그러모아 수긍.


내가, 세상천지에 나밖에 모르는 못돼 처먹은 인간인 내가, 여기서, 이렇게, 빗장 열고, 맨날 맨날, 쓰는 건, 이런 날 쓰게 하는 건, 딱 하나, 딱 한 가지밖에 없다. 그것 말고, 다른 이유 따위, 그런 거, 없다. 한 방향으로 돌진. 나는야 막가파. 태생적 자연인. 성실한 욕망 추종자. 사랑에의 복종.

(2024년 유월에)


처음 쓰기 시작할 무렵, 허구한 날 써재끼는 날더러 미친 거 아니냐며 은사님이 한 말.


"원도 한도 없이 써라!"


평생 떠받든 마음. 그 낮은 경배. 이젠 좀 다르게 살려고요. 몸의 말에 귀 기울인, 지극한 엎딤으로. 모든 걸 거스른 한 마리 짐승이 된대도. 될지라도. 읽고 읽고 또 읽어도 질리기는커녕 점점 더 빨려 들어가는 모니카 마론의 소설 <슬픈 짐승> 속 그녀처럼 모든 게 기억날 때까지. 기억난 모든 걸 하나두 흘리지 않고 몽땅 받아 적을 때까지. 여한 없이. 그걸 다 해내고 나면 잘 거예요. 슬픔의 눈 감겨 주는 잠.* 그날은 오래, 아주아주 오래 비가 내렸으면 좋겠어요. 자장가 같은 빗소리가 귓바퀴에 고이게. 눈물이 아닌 빗소리에 온몸이 잠기도록.


'미친 사람들, 그리고 사랑에 빠진 사람들과는 싸우지 말라.'


'가을의 그 밤만 기억이 난다. 비는 오지 않았다. 오늘 나는 기억을 해야 한다. 프란츠를 기다리는 일을 오늘 그만둘 것이기 때문이다. 기억하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


'나의 몸이 내게는 유일한 괴로움이다. 몸이 나를 꼬집고 물고 잡아당기고, 발은 마비되고, 누군가가 척추골을 통과하는 내 신경다발을 끌어당기는 것처럼 등이 아프다. 끝까지 기억하는 일을 해내게 되면 나는 식육식물들 사이에 누워 아주 오래오래 잠을 잘 것이다. 마지막 밤까지는 이제 겨우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 그날 밤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모니카 마론, <슬픈 짐승> 중에서)



광인과 연인과 그리고 시인은

오로지 상상으로 꽉 차 있는 자들이오

거대한 지옥보다 더 많은 악마를 보는 자

그것은 광인이고, 연인도 돌았기는 마찬가지

(…) 시인의 두 눈이 세련된 광기로 구르면서

하늘에서 땅, 땅에서 하늘까지 쳐다보고,

상상력이 알려지지 않았던 형상들을

구체화함에 따라 시인의 펜촉은

그것들을 형체 있는 것으로 바꾸면서

무형물들에게 거주지와 이름을 준다오.

강력한 상상력은 속임수가 뛰어나서

그 어떤 기쁨을 감지만 하여도

그 기쁨의 원인이나 제공자를 떠올리오.

또는 밤에 무언가가 두렵다고 상상하면

덤불은 얼마나 쉽사리 곰으로 보입니까?*


꼭 뭐가 돼야지, 하진 않았어도 막연하게 쓰고 싶었어요. 쓰는 사람. 차마 입 밖으로, 아니, 속엣말로도 감히 품지 못한 말. 그럴 깜냥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아서. 그런데, 그러고도 거둬들여지지 않는 마음. 착, 들러붙어서 빛처럼 막무가내로 내달리는. 왁, 내질렀더니 메아리처럼 다시, 돌아오는. 작년 여름, 은우 선배가 한 말. 올핸 정말 이상해. 과거 사람들이 막. 니가 과거를 헤집고 다녀서 그런가? 내가? 끄덕끄덕. 내가 막 들쑤셔서? 어. 그렇게 저는 헤집고 들쑤시고 뒤죽박죽 뒤섞는* 쓰는 사람으로. 이제야. 이제라도.


바람등에 올라타고 시리고 푸른 어둠 향해 날아가는 검은 새 한 마리.


가물가물 꺼져 가는 불빛으로

집 전체를 어렴풋이 밝혀라.

가시덤불 위를 나는 새처럼

모든 요정 가볍게 뛰놀고

나를 따라 이 노래를 부르며

거기 맞춰 경쾌하게 춤을 춰라.*


이 방학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이 여름이.



'당신은 아름다워요.'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중에서)


씀벗 동선 작가님이랑 함께 짓고 엮은 책 <영화처럼 산다면야>.

오늘로 매듭짓는, 그 과정 돌아본 <수다만 떨었을 뿐인데> 매거진.

탐험가와 관찰자였다 고고학자 되어 다시, 꿈꾸기 시작한 동선 작가님과 함께한 방학.


오! 가장 눈부신 여름! 오, 가장 행복한 여름날이여!*


혹시 너와 나 사이 오랫동안 소식이 끊긴다 하더라도

- 이윤설


나는 별에다 소원을 빌고 퇴근길에 한 다발 장미를 안고 문조, 눈같이 흰 몸과 분홍 부리를 꼭 다문 새의 모이 한 봉지를 사고 흰 입김을 날리며 언덕을 오를 것이다 그때 너는 어느 지구의 지붕 아래 나의 생각은 없이 저녁까지 미루어 놓은 신문을 읽고 프라이팬에 달걀을 깨뜨려 적당히 때우는 저녁과 귤을 사러 슬리퍼를 끌고 집 앞 슈퍼로 걸어가는 날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모습을 생각하며 한없이 쓸쓸해지는데 어찌하여 서운하지는 않고 우리는 왼팔과 오른팔처럼 나란한 신의 어깨높이에서 흔들리며 어찌 되었든 걸어가는 것일  것이라고, 그때 어 눈이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볼 때 찬 입맞춤의 보드라운 입술 같은 눈이 너의 뺨에 나의 뺨에 닿아 눈물처럼 녹을 때 맨발의 슬리퍼를 끌고 나온 네가 하아 숨을 쉴 때 입김이 태어나 겨울의 육체가 되고 나의 퇴근길 구두가 멈춰 맨팔 같은 가느다란 가지에 눈이 쌓이이가는 걸 보며 하아 숨을 쉴 때 우리는 절대 서로를 떠올리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그리운 아무도 없을 것이며 우리는 그리하여도 슬프지는 않을 것이며 하아 하아 흰 입김이 태어나 사라지는 것처럼 다시 걸음을 재촉할 것이다 얼어터진 귤 하나가 섞인 너의 귤 봉다리와 나의 사락사락 싸락눈소리를 낼 새의 모이 봉다리는 신의 어깨높이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 흔들릴 것이나 만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지구의 지붕 아래 살아가는 것이 더이상 슬픔만이 양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며 우리의 일부가 우주로 섞이어가는 것을 말없이 지켜볼 것이다 그러한 한 생이 지나는 것을 더이상 기억하려 애쓰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일부가 우주로 말없이 섞이어가는 것.

내가 나로부터 떠나는 미련도 뭣도 없이, 가붓하게, 휙.


호옥시라두 어느 초저녁, 아니면 늦은 밤, 그것도 아니면, 이른 새벽녘

문득 올려다본 밤하늘에 유난히 반짝이는 별 하나 보이걸랑

머언 우리, 눈맞춤이려니.


썩 조잡한 이 연극이 밤의 둔한 걸음을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벗들이여, 침실로.*



글 제목과 '*'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한여름 밤의 꿈>에서 인용·변주했어요. 그림은 출판기념회 전시를 위해 동선 작가님이 새로이 그린 영화 <남색 대문> 포스터고요.


매거진에 쓴 제 모든 글에 '산울림' 곡을 넣은 까닭은 동선 작가님이랑 제가 젤 좋아하는 가수가 '산울림'이라서요. 한 번도, 그 누구한테도 말한 적 없는데 <더 숲>에서 처음 만난 날 동선 작가님이 '산울림'을 젤 좋아한대서 심장이 쿵, 내려앉았더랬어요. 티가 났는가는 몰라도. '산울림'을 젤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그런 사람을 만난 것도 처음이라 저도 모르게 저도 그렇다고 말해버리고 말았어요. 비밀까진 아니었는데, 뭔지 모르게 묘한 밤이었어요.


잘 있어요.

끼니 거르지 마시고 영양도 챙기시고, 그다음은 마음대로 하세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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