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만든 밥이 제일 맛있더라 #2 - 함박스테이크
살면서 만들어본 음식 중 두 번 다시 만들고 싶지 않은 음식이 있나요? 어렵다든지 재료비가 많이 들어서라든지.. 근데 대부분 너무 귀찮아서 그런 거겠죠. 준비과정이 지겨워서. 전 있습니다. ‘감자 고로께’.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만든 건진 저도 잘 기억은 나지 않아요. 아마도, 가장 높은 가능성으로, TV나 만화에 나온 걸 보고 꽂혔을 거예요. 대중문화에 쉽게 영향을 받거든요. 일본 영화나 만화에 많이 나오잖아요. 하굣길에 들러서 먹는 감자 고로께. 보통 오래된 정육점에서 부업으로 시작한 고로께 장사는 오후 내내 온 동네에 튀김 냄새를 풍기니까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거겠죠. 그런 고로께를 한 입 바삭, 하는 장면을 보고 나면 무조건 만들어야 직성이 풀립니다. 원체 따라쟁이에 팔랑귀거든요. 근데… 아놔… 제가 이제껏 만든 것들 중 손이 많이 가는 음식 탑 3에 꼽히는 음식이었어요. 워낙에도 레시피 그대로 따라 만들기보다 잔머리 굴려가며 쉽게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터라 제빵, 제과 같은 건 엄두도 못 내고 있는데, 고로께도 그에 못지않게 지켜야 할 절차가 많거든요.
일단 폭실폭실한 감자 식감을 유지하려면 전분이 많은 감자를 사용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실온에 오랫동안 보관해 둔 감자처럼요. 안 그러면 푸석하지 않고 질척한 고로께가 되어 버리거든요. 마찬가지 이유로 감자를 썰어서 삶지 않고 통감자 상태로 ‘찐' 후, 껍질을 대충 벗기고 으깬 다음 (김이 빠지도록) 식혀둬야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재료, 양파, 당근, 소고기 역시 죄다 깎고, 썰고, 다진 후에 각각 따로 볶아서 식혀놔야 합니다 (고기는 간장, 맛술, 후추, 설탕 등 양념이 들어가고, 야채는 각각 익는 시간이 다르니까 말이죠). 일단 여기까지만 해도 보통 두 시간 후딱이에요. 그리고 난 후 재료를 뭉치는데, 포슬포슬한 식감을 최대한 내려고 했으니 당연히 형태를 제대로 갖추는 게 힘이 들겠죠. 그걸 부서뜨리지 않은 채 밀가루-계란물-빵가루 순으로 입히는 것도 장난이 아닙니다. 끝으로 기름에 넣어 튀기는 동안에도 형태가 무너지지 않도록 천천히 익혀야 하는데, 거의 마법 수준이에요. 이렇게 한 번 만들고 나면, “아. 맞다. 고로께는 원래 사 먹는 음식이었지?”라는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이 고로께 만큼이나 귀찮디 귀찮은 게 함박스테이크입니다. 심지어 함박스테이크는 소스까지 따로 만들어야 하잖아요. 마지막에 만들었던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나요. 성공했었는지 실패했었는지는 물론. 그런데 무슨 일인지 최근에 보고 있는 넷플릭스나 일본 여행 유튜브에 계속 등장하는 거 있죠. 마치 누가 작정하고 알고리즘을 만든 것처럼. 이 팔랑귀에 주술을 걸듯이. 주먹만 한 크기의 함박스테이크를 썰었을 때 육즙이 철판 접시에 튀면서 육향이 사방으로 번지는 장면들이. 처음 몇 차례는, 왜 밴쿠버 일식당이나 한국식 돈까스 집에서는 함박스테이크를 맛있게 하는 집이 없는가.. 담에 일본 가면 사 먹어야지, 뭐 이런 정도로 넘어갔었는데, 엊그제 <삭휘 유튜브>에서 시즈오카 현 사와야카 함박스테이크를 보고 나니 더 이상 못 참겠더라구요. 팔랑팔랑. 야메로라도 만들어 먹어야지. 지난번 솥밥도 사실 오랫동안 생각만 하고 있던 걸.... 그 넘의 <흑백요리사>에 삘을 받아서 ㅠㅠㅠ.
제일 먼저 한 일은 냉동실 깊숙이 동면 중이던 간 돼지고기를 해동하는 것이었습니다. 언제 사둔 건지 기억도 안 나요. 아마도 한참 교자를 만들어댈 때 사놓은 것 같은데, 그러면 최소 일 년 이상 파묻혀 있던 게 되겠네요. 그러고 보면 누가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일식 함박스테이크에는 쇠고기와 돼지고기가 50:50으로 섞어 들어간다는 걸 어떻게 알았던 걸까요 (만화겠죠, 또 뭐). 그래서 이날 아침에는 코스트코에 가서 간 쇠고기를 사왔습니다. 돼지고기가 해동되는 동안 그걸 소포장으로 소분한 후 진공포장합니다. 저것들 중 하나는 또 내년 이맘때에나 냉동실에서 발견되겠네요.
그러고 나서 재료를 잘게 다지기.
함박 반죽에는 밀가루 대신 빵가루가 들어갔던 걸로 기억하거든요. 계란과 함께 결착제 역할을 하는 셈인데, 아마도 밀가루를 넣게 되면 글루텐이 너무 많이 생겨 고기 맛이 사라지니까 그런 거라고 추측만 합니다. 집에 빵가루가 상시 있을 리는 만무하고, 마침 코스트코에서 산 빵 끄트러미를 모아서 푸드 프로세서로 갈았습니다. 그리고 간 김에 당근, 마늘, 생강도 같이. 역시 이것도 입맛에 맞게 눈때중으로 재료 비율을 정하는 셈인데, 빵가루와 당근이 4라면 다진 마늘이 2, 다진 생강이 0.5 정도 되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생강 향을 좋아하시는 사람은 더 넣어도 되겠죠. 전 그냥 쇠고기 냄새를 누르기 위해서 넣은 거라서.
양파와 피망(혹은 풋고추)의 경우는 그냥 생으로 반죽에 넣으면 물이 나와서 반죽을 망치게 되니까 따로 볶아서 넣어야 합니다. 수분이 어느 정도 빠져나오도록. 근데 캐나다 피망은 어쩌면 이렇게 두꺼운지 모르겠어요. 그냥 먹으면 마치 과일처럼 아삭하고 달콤하니 맛이 좋은데 이렇게 다져서 요리 재료로 넣기에는 애로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요리에는 풋고추나 꽈리고추를 많이 사용했는데, 이번엔 냉동실에서 화석이 되어가던 할라피뇨 고추를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할라피뇨도 왠지 모르겠는데 오래 냉동해 두면 매운맛이 많이 사라지더라구요.
요놈들을 볶아대는 동안 1차로 반죽을 합니다. 기본적으로 양념은 소금, 후추, 카이엔 페퍼, 케첩(조금), 우스터소스입니다. 근데 우스터소스 같이 귀족스러운 양념이 이 조막만 한 주방에 있을 리가 없잖아요? 어쩌겠어요. 만들어야지. 냉장고 히키코모리 중에서 하날 꺼내 써야지. 지난해 언젠가 또 유튜브를 보고 감동받아서 야키소바와 간짜장을 같이 만들어 비교시식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한 번 쓰고 버림받은 야키소바 소스가 있지 뭐겠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이 버림받은 소스를 빨리 써야 했기 때문에 함박스테이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걸 베이스로 어떻게 잘 비벼 보면 메인 소스까지 어떻게 만들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고요. 데미그라스 소스 만든답시고 버터에 밀가루부터 볶지 않아도.
양파와 할라피뇨들이 어느 정도 볶아지고 수분이 빠지고 나면 계란 한 알과 함께 1차 반죽에 넣어서 또 열심히 치댑니다
교자 만드는 것과 달라서 반죽하는 동안 공기를 많이 넣을 필요는 없습니다. 주먹만한 함박을 만들 생각인데 아무래도 굽다가 반죽이 부서질 가능성이 높으니 오히려 단단하게 뭉치는 것이 좋습니다. 이 중 몇 개는 안에 모차렐라 치즈를 넣어서 뭉치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 향신료에 섞이는 탓에 치즈맛이 잘 살아날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칼질할 때 보기는 좋겠죠.
그리고 잘 뭉쳐서 무쇠 프라이팬에 투하!
원래는 버터에 굽는다고들 하지만, 저는 버터를 먹으면 까칠한 장이 투덜대는 터라 올리브유를 사용했습니다. 중간불에 천천히, 데굴데굴 굴려가면서 지글지글 굽습니다. 그렇더라도 이 정도 크기의 함박스테이크가 팬프라이만으로 속까지 완전히 익을 수는 없겠죠. 그야말로 시어링하는 수준으로만 요리조리 굽습니다. 이런 다음 보통 식당에서는 알루미늄 포일에 싸서 (육즙은 가둔 채) 오븐에 넣어 마저 익힌다고 하던데, 그러곤 포일에 싼 채로 서빙을 하고는 테이블에서 포일을 연다고 하던데, 왜 우리 집엔 알루미늄 포일 같은 것도 없는 거죠? 뭐, 충분히 시어링이 되었다 싶어서 그냥 저 무쇠 프라이팬 채로 토스터 오븐에 넣습니다. 그리고 탐침 온도계를 꽂아두는 거죠. 예전에 맥도널드 그릴 수리하러 다닐 때 배운 게 있거든요. 화씨 165도에 햄버거의 익힘 정도와 육즙 상태가 가장 완벽하다고. 그런데 포일도 없는 집에 왜 탐침 온도계 같은 건 있는 거죠?
굽는 동안 다른 편으로는 양파와 브로콜리를 소스와 같이 볶습니다. 네. 데미그라스 소스 같은 건 밀가루 볶아가면서 만들 의지도 능력도 없습니다. 죽어가던 야키소바 소스를 여기에도 백분 활용합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일식 함박스테이크에 계란프라이가 빠질 수는 없겠습니다. 오븐 속 고기 내부 온도가 160도 전후가 되면 슬슬 계란프라이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모든 걸 조립하면...
계란노른자와 같이 썰면 함박 속에 숨어있던 치즈가 주르륵 (생각보다 비주얼이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
나름 만족하며 먹기는 했습니다만... 화씨 165도까지 익힌 게 좀 너무 익었다 싶더라구요, 약간 퍽퍽하니. 아무래도 맥도널드 햄버거 패티 두께보다 몇 배로 두껍다 보니까, 오븐에서 꺼내 레스팅하는 도중에 더 많이 익어버린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도 TV 보다가 삘 받아서 팔랑팔랑 만든 것치곤 제법, 하하.
물론 이놈의 팔랑귀 따라쟁이는 음식에만 한정되지는 않습니다. 그림도 그렇고 사진도 그렇고... 심지어 얼마 전에는 유튜브 보고 베개도 새로 샀잖아요. 뭐, 수면의 질이 달라질 정도로 무척 편하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음식 만들기만큼이나 제 맘을 들썩이게 만드는 건, 역시 영화인 것 같아요, 영화. 엊그제 본 영화 <햄넷>은... 참... 보는 내내, 최고의 영화 연출이란 배우들의 연기가 최고로 돋보이게 하는 연출이라는 상식을 되씹게 하더군요. 화려한 카메라 워크 같은 거 전혀 필요 없고, 편집이나 장면전환에 잔재주를 피우지 않아도. 그냥 앵글과 화면 사이즈만 필요에 따라 조절하는 것만으로 저만한 걸작이 나올 수 있다니. 그러고 보면 영화사에 길이 남는, 아무리 길어도 보는 내내 지루하지 않은 영화들은 대부분 배우들의 연기가 죽이는 영화들이었어요.
그리고 보고나선, 영화를 만들고 싶어졌습니다. 단 한 사람에게 위로를 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