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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아빠 Oct 02. 2022

나를 위험하게 하는 도구

'날 향한 날'

목공 장비를 처음 접할 때 신기했던 건

같은 원리로 설계되어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가 동양식, 서양식으로

분명한 선을 긋고 이원화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선을 가르는 기준은 방향이다.


도구로 뭔가를 자르거나 깎고 있노라면 어린 아들 관심을 보이고 그럴 때면 붙잡고 앉아
구의 위험요인과 안전한 사용법을 려준다.

어린아이들도 알기 쉽도록 단순하다.
위험은'날이 선 쪽'에 있다.

안전을 확보하려면  "날"이 내 몸에 닿지 않으면 된다.

그러려면 날이 내 몸을 향하지 않게 하는 게 가장 좋다.
그런데 이건 서양식 공구에 국한된다.

동양식 공구는 그게 안된다.
날의 위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서양식 공구는 날이 사용자의 몸 바깥쪽을 향 설계되어 있다.

톱의 예를 들어보자.

서양식 톱은 절삭을 위해 몸 바깥으로 밀어야 한다.

공구에 내 체중을 싣는 것이 요령이고

힘이 톱의 끝단으로 실리다 보니 톱날은 두꺼워야 한다.

속도가 빠르고 편하다.
반대로 동양식 공구의 경우 내 몸이 언제나 날카로운 날과 마주 보고 있다.

내 몸 쪽으로 당겨야 절삭이 되다 보니 내 근력을 사용해야만 절삭이 된다.

당길 때 힘을 받으므로 저항력이 감소해야 해서 두께가 얇아야 한다.

사람이 당기는 힘으로 인장력을 받아야 톱날이 선다.
른 공구들 역시 절삭, 연마 따위를 하는 방법도
나무를 잘라내기 위해서, 서양식 공구는 몸 바깥쪽으로 날을 내보내야 하고 동양식은 내 몸 쪽으로 날을 당겨야 한다.

이 방식은 공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무기에도 적용된다.

상대방을 베기 위해서 동양의 무기인 "도"는 내 몸 안쪽으로 날을 휘둘러 베어야 한다.

반면 서양의 무기인"검"은 상대방 쪽으로 날을 쳐내야 한다.
대패질/톱질/끌질 따위도 모두 같다.
나는 그 차이의 근원을 음식을 통해 한번 추론해 봤다

동양은 벼를 중심으로 한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번성한 문명이다.
한 곳에 정착하여 일정 규모의 공동체를 형성해 협업을 바탕으로 생존을 도모하던 농경 문화권은 언제나 '나'보다 '우리'가 더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농사는 데이터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노령층의 축적된 데이터가 농사라는 생존수단의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때문에 개개인의 능력보다 연륜이 더 중요한 가치로 존중받았다.
한자리에 머물러 한 해의 농사를 지어야 하는 까닭에 동양의 미덕은 "부동"이었다. 움직이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움직이지 않는 것들을 쌓아 그들은 수직적인  위계질서와 수직적인 사고방식을 만들었다.
반면 서양은 유목문화를 기반으로 번성한 문명이다.
유목민의 생존의 기반이 된 소, 양, 그리고 그 동물들이 먹는 풀은 가만히 있어도 자라난다.

훗날 주식이 된 밀도 벼에 비해  사람의 손이 안 가도 잘 자랐다.
여기에 없으면 다른 곳에 가면 된다.
내 것이 없으면 타인의 것을 빼앗으면 된다.
못 빼앗으면 다른 가치 있는 것과 맞바꾸면 된다.
때문에'우리'여야 생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자신의 판단이 생존 여부를 결정한다.
생존을 위협하는 부족함을 충족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나 공동체가 아니라 "나"와 "너"를 잇는 길이다.
그래서 서양의 주소는 길을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고
동양의 주소는 동네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고도 한다.
서양인들은 그 길을 통해 남의 것과 자신의 것을 거래하기도 하고, 그 길을 통해 남의 것을 빼앗으러 칼을 들고 뛰쳐나가고, 그 길을 이용해 남의 것을 자신의 집으로 가져왔다.

그래서 서양인들이 나누는 악수는 "내 손에 무기가 없음"을 확인시켜 주고 상대방을 감시할 수 있게끔 서로 눈을 마주치고 하는데 반해,
동양인들이 하는 인사는 고개를 숙인다.
허리를 더 굽혀 내가 상대방의 의도를 읽을 수 없게 할수록 더욱 극진한 인사인데.. "내 목숨은 너에게 달려있다"는 굴종의 자세라고도 볼 수 있다.

결과에 대한 원인도 동양은 언제나 "나"에 있다.
어떤 결과에 대한 원인을 찾기 위해 동양인은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반성한다. 추구하는 가치도 내재적인 가치의 발전이다.

그래서 결과보다 과정에 굳이 의미를 두었다.

반면 서양인은 결과를 중시하며 결과에 대한 원인도 외부요인부터 체크하고 분석한다.

어순에서도 잘 드러나고 주소를 쓰는 법 역시 최종 목적지가 최우선이다.


결국 이러한 요인들이 날붙이의 위치와 절삭 방향의 차이도 만들었을지 모른다.
동양의 공구는 위험요인"날"을,
나를 제외한 모든"우리"를 향하지 못하게 한다.
우리보다 아래인 "나"를 위험하게 한다.
서양의 공구의 "날"은 멍청하게 "나"를 향하지 않는다.
나를 제외한 어딘가에 있는 "너"를 향한다.
네가 다치면 그건 뻔히 보이는 위험 앞에 들어온  너의 부주의 탓이다.

이러한 비교들을  내 삶에 빗대 보노라면 언제나 내 삶과 사고의 방식은 동양식 공구의 날 방향 비슷했다.

그래서인지 동양식 공구보다 서양식 공구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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