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욕.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욕구 중 하나다. 비단 인간에게서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동물들을 길들일 때에도 먹이를 보상으로 하여 특정 행동을 교육시키니, 식욕이란 지구 상 생명에게 있어 (광합성을 하는 식물이 아니라면)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에게 식욕은 단순히 살아가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음식을 통해 우리는 인간으로서 스스로의 존재를 다시금 각인시킨다. 음식을 만들며 창조성을 발휘하며, 음식을 함께 나누며 서로에 대한 애정읠 확인하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린 음식을 먹으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 음식을 '통하여' 살아간다고 봄이 옳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다큐멘터리인 [필이 좋은 여행-한입만!]은 이러한 '먹는'행위의 본질을 잘 투영하고 있다. 내용 자체는 별것 없다. 주인공 필 로젠탈이 세계 어려 도시를 돌아다니며, 그 도시의 이름난 먹거리들을 두루 먹고 즐기는 내용이다. 각 도시의 특산품과 독특한 식문화들이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고 편하게 설명된다. 필의 먹방과 먹으면서 나오는 행복한 미소는 덤으로 주어진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필의 먹방의 주제는 음식이 아니라 '사람'이다. 음식을 함께 만들고 그것을 나눈다는 것. 그리고 음식을 둘러싼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다룬다는 점에서 [필이 좋은 여행-한입만!]은 음식 다큐가 아닌 '휴먼 다큐'이다.
우리가 음식을 통해 기억하는 것은 산해진미의 훌륭한 맛이 아니다. 그건 바로 사람들과의 추억이다. 모두가 어렸을 적 할머니의 음식을 떠올리며 돌아가신 고인을 추억한다. 헤어진 연인과 함께했던 식사를 추억한다. 특히나 힘들었거나 즐거웠을 때 먹고 마셨던 것들을 추억한다. 또한 우리는 식사를 하며 친목을 다진다. 즉, 음식은 우리가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하는 통로가 되며, 나아가 서로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하는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네가 먹는 것을 알려줘. 그럼 네가 누구인지 알려줄게. 앙텔름 브리야사바랭-프랑스의 법학자, 미식가
[서울]이라는 도시를 생각할 때 무엇을 떠올리는가. 서울에서 먹은 음식? 아니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우리가 서울에서 만난 사람들, 그들과 먹고 마신 것들, 행복하고 슬픈 기억들, 그 모든 것의 총유로서의 집합이다. 다큐의 주인공 필은 이 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는 특유의 밝은 미소로 부대찌개에 얽힌 슬픈 우리의 역사를 설명한다. 북한의 음식을 다루며 탈북민들의 애환을 어루만져준다. 치맥을 먹으며 최근 유행하는 k팝을 다루기도 한다. 음식의 맛이나 만드는 방법에서 멈추지 않고 그 속의 의미와 이야기를 그려낸다. 그러므로 필의 이야기는 곧 우리의 이야기이다. 서울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도쿄, 방콕, 리우데자네이루, 미시시피 삼각주, 로스 엔절러스. 이 모든 곳에서 필은 음식을 통해 그곳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다.
음식은 단순히 먹는다는 행위를 넘어, 우리 스스로를 정의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주인공 필이 좋다. 힘든 하루를 끝내고 책상 앞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필의 여행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의 (비단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 인류애의 관점에서!)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와 닿는다. 그래 이게 우리의 삶이지. 그리고 필이 여행지에서 함께 웃음, 경험, 그리고 음식을 나누는 것을 지켜보며, 나도 동참한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외친다. 나도 한입만!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