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원고택에서의 하루

by vanitas


아원고택을 방문했습니다. 산속에 있는 고택은 퍽이나 고즈넉하여 마음이 절로 평온해지는 안도감까지 주었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공간이 주는 미쁜 마음에 요 근래 불안으로 점철되었던 알 수 없는 높낮이의 증폭이 일정해지는 기분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동행을 같이 해준 두 명의 친구들의 배려에, 이 외딴곳에 우두커니 무사히 잘 있어준 공간에 말입니다.


시장에서 사 온 황태 구이와 모주 한 잔을 걸치고 관람객이 빠질 즈음에 고택 주변을 산책하였습니다. 뒤편에 조그맣게 자리 잡은 대나무 숲에서 잎사귀가 서로 부대끼는 소리, 짝을 찾아 짹짹대는 새의 소리,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작은 연못에 부딪히는 소리. 그 어느 것 하나 소중하고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백 년 이상의 고택을 이 곳으로 옮겨 새롭게 손 보아 사람들에게 잠자리를 내어주는 이 공간은 산 벌레도 많고 외풍도 제법 있었지만 그 불편한 것들 때문에 이 장소가 더욱더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단지 하루를 묵었기에 그것들을 즐겁게 감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밤이 찾아오고 개구리가 웁니다. 빗 발은 더욱 거세졌고요. 고택에 매달린 면 천은 바람결에 몸을 맡기고 휘날립니다. 어둠이 내렸어도 저 멀리 산 등성이의 윤곽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사람들이 내 달은 인공조명이 작은 정원에 불을 밝힙니다. 이 곳이 내 집이었으면 하고 생각해봅니다. 이 집이 내 평생을 몸 담을 집이라면 이런 기분을 계속해서 만끽할 수 없다는 것을 예감합니다. 모든 것은 완전히 주어졌을 때, 그 소중함을 망각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현재 갖고 있는 것을 하찮게 여기고 새로운 것을 갈망하며 또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겠지요.


집으로 돌아와 어제의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글로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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