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를 쫓고 흠모하던 나는 소리 없이 사라지고
공상의 세계마저 헛되고 헤픈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상한 내가 고집스럽게 또 우악스럽게 우두커니 서있다
헛헛한 기분
헛 것을 궁리하는 나는
과거의 나를 부질없다 비웃으면서도
그 시절의 나를 남몰래 그리워한다
너절한 지갑을 들고
책방에 들러 시집 한 권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얼마나 충만했던가
한 편의 시를 다 이해할 수 없어도
한 줄의 문장으로 마음 저렸던 미흡한 감정들
하나의 단어로 하루가 요동쳤던 그 계절들
당연한 것인 줄 알았던 그 시절의 모든 것들이
이렇게 쉽게 사라질 것인 줄 알았다면
좀 더 보듬어 주었을 텐데
그리움 가득한 눈길로
오늘의 나를 바라보는 가운데
나는 꿈을 꾸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