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실은, 펜을 쥐는 것조차 너무나 오랜만의 일이다. 지금보다 많이 어렸을 때는, 내 안에 쌓여있는 울분이 너무나도 많아서 그걸 다 쏟아부울 만한 오물통이 필요했다. 그때에는 그게 노트였고, 스케치북이었다. 현실은 진절머리 날 정도로 보잘것없었고, 종이 위에 적힌 것들도 자기 연민에 찌든 걸레짝 같았다. 그럼에도 그 종이 안은 솔직하지 않은 구석이 제법 많이 보였다. 난 내가 오물통이라고 정의한 종이 위에서 마저 진실을 최대한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은유하고, 비틀어버리고야 마는 허세를 떠는 중이었다. 나는 자신의 신랄한 솔직함이 무서워 여분의 가면들을 마련해 둔 것이었다. 아무도 나의 글과 그림을 눈여겨보지 않을 것이 뻔하였지만, 한 톨의 여지도 남기고 싶지 않은 이 우매한 과거의 마음들이 나조차 웃긴다.
일기를 쓰려고 무언가를 다시 기록하기로 작정한 이유는 간단하다. 말할 곳이 없어서. 다시 오물통이 필요해져서다. 시시콜콜하다 못해 보잘것없는 내 잡념들을 받아내 줄 이는 사람이 아닌 결국 종이 었다.